제28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이하 부천영화제)의 화두는 AI 영화다. AI 영화 국제경쟁부문 신설과 AI 국제 콘퍼런스 개최에 더해, 영화제 개막을 앞둔 지난 7월2일부터 4일까지는 60명의 참가자를 대상으로 한 ‘BIFAN+ AI 필름 메이킹 워크숍’을 개최했다. 기존 영화 환경에서 제약을 느꼈던 신진 창작자들에게 AI를 활용한 영화제작 공정을 체험케 하고 국내외의 AI 영화 생태계를 활성화하기 위함이다. 각 3~4인 구성의 16개 팀은 2박3일간 ‘SF’와 ‘환경’이라는 키워드와 관련된 2분 내외의 단편영화를 제작한다. 스토리 기획부터 AI 툴을 활용한 키 이미지 및 영상 생성, 편집과 음향까지 모두 48시간 이내에 마무리하는 해커톤 스타일의 워크숍이다. <씨네21>은 그중 7월3일 일정에 동행해 현장의 열띤 분위기를 담았다.
지원자 600명 넘게 몰려
BIFAN+ AI 필름 메이킹 워크숍에 쏟아진 업계 안팎의 관심은 뜨거웠다. 연출가와 각본가 등의 현업 영화인, AI 아티스트, 대학생, 미디어 정책 연구자와 교수까지 각양각색의 배경과 경력의 참가자들이 모였다. 영화제의 한 관계자는 600명이 넘는 지원자가 몰린 덕에 선발 인원을 30명에서 60명으로 늘렸다고 귀띔했다.
이날의 일정은 AI 기술을 활용한 스토리텔링의 선구자인 영화감독 데이브 클라크의 특별 강연으로 시작되었다. 어머니의 나라인 한국에서의 이번 일정이 더욱 뜻깊다며 강연을 시작한 그는 참가자들이 궁금해할 만한 실무적인 팁을 아낌없이 제공했다. 시중에 서비스되는 수많은 영상 생성형 AI의 성능 비교와 작업 시 즐겨 사용하는 AI 툴 목록, 작은 아이디어의 씨앗을 빠르게 시나리오화할 수 있는 비법까지 밝혔다. 그는 특히 “창의적 동료”라고 표현하는 여러 AI 툴의 활용 방식이 “전통적 영화제작의 단계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을 강조했다. “여전히 스토리보드, 편집, 사운드디자인 등 제작의 모든 과정을 거친다. 차이점이라면 작업 속도가 무척 빨라진 덕분에 프리프로덕션과 본 프로덕션, 포스트프로덕션의 구분이 무의미해졌다는 것이다.”
참가자들의 반응이 특히 좋았던 대목은 지난 1일 공개된 최신 영상 생성형 AI인 런웨이 젠-3(Runway Gen-3)의 성능 시연이었다. 데이브 클라크 감독이 직접 작성한 프롬프트는 ‘후지필름 X-T4 카메라로 촬영’, ‘돌리 아웃 후 회전’ 등 촬영 설계의 세부와 ‘골동품풍의 우주비행선’, ‘공포스러움’ 등의 정서적 표현을 조합해 의도한 장면을 최대한 자세히 기술했다. 참가자들은 런웨이 젠-3의 미려한 결과물을 목격할 때마다 가벼운 탄성을 입에 올렸다. 같은 기술을 활용해 제작한 한국형 호러 단편영화 <봉화 밑에>(Below Bonghwa)의 최초 상영이 끝난 후에는 우레와 같은 박수가 쏟아졌다.
데이브 클라크 감독은 참가자들과 적극적으로 소통하며 작업물에 대한 다양한 피드백을 제공했다
데이브 클라크 감독은 AI 기술을 통해 영화산업의 평등한 기회 분배가 가능해졌다는 점을 반복해 강조했다. “이제 AI를 활용해 제작한 프리비주얼 시안으로 대형 제작사에 자신의 아이디어를 피칭할 수 있고, 더 나아가 혼자서도 작품을 만들 수 있다.” 많은 각본가 동료가 AI 기술을 이용해 직접 자신의 작품을 연출하기 시작했다는 그는 “신진감독들은 타인의 이야기가 아닌 자신의 이야기로 작품을 만들 권리가 있다”고 역설했다. 하지만 문턱이 낮아졌어도 기본기는 여전히 중요하다. 뉴욕 프랫 인스티튜트에서 영화를 전공한 그는 “영화의 전통적 구성 방식을 이해하는 이들만이 결과물을 차별화할 수 있는 정교하고 기술적인 프롬프트를 작성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서 오후 내내 개별 작업 및 피드백 시간이 진행되었다. 대부분의 팀은 1일차에 작성한 스토리라인과 문서 콘티를 바탕으로 본격적인 영상작업에 돌입했다. 콘티의 각 장면을 프롬프트화해 미드저니 등의 이미지 생성형 AI에 입력하여 키 이미지를 생성하고, 이 이미지들을 런웨이 젠-3, 루마 드림 머신 등의 영상 생성형 AI에 다시 입력해 약 10초 길이의 영상을 생성하는 단계다. 가장 적합한 이미지와 영상을 얻기 위해서는 여러 번 프롬프트를 수정하고 결과물을 비교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많은 모니터에 미드저니로 생성된 이미지 시안 수십개가 띄워져 있었고, 참가자들은 이들 중 가장 연출 의도에 가까운 이미지를 선택하는 토의 과정에 몰두했다. 데이브 클라크 감독이 “물리법칙이 없는 카메라”라고 표현한 생성형 AI는 실사보다 한층 더 자유롭고 독창적인 소재를 다룰 수 있게 한다. AI만이 탐방할 수 있는 세계를 바탕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팀도, 현재 기술 수준에서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소재를 선택한 팀도 있었다. 영화 연출가와 각본 전공 대학원생, AI 애니메이션 아티스트와 대학 학부생으로 구성된 팀 ‘AI 매직’(AI MAGIC)은 달걀을 주인공으로 설정했다. 인간이나 동물 등을 주요 피사체로 삼기에는 아직 AI 툴의 표현력에 한계가 있다는 판단에서다. 반면 단편영화 연출가와 애니메이션 작가, 콘텐츠 정책 연구자로 구성된 다른 팀은 실사 촬영이 어려운 심해를 배경으로 한 이야기를 고안했다. 실사와 애니메이션 사이의 대안적 표현기법으로서 AI 영화의 가능성을 발견했다는 팀원들은 “제작자의 예상을 벗어나는 결과물의 추상성과 의외성”이 AI 작업의 강점이자 매력이라 답했다.
여러 도구 오가며 실험하고 배운다
데이브 클라크 감독은 여러 테이블을 바삐 오가며 참가자들에게 다양한 피드백을 제공했다. 외계인이 인간으로부터 죄책감의 감정을 훔쳐간다는 설정의 작품 <죄책감 도둑>의 제작팀은 액체의 질감 표현을 위해 루마 드림 머신을 사용해보라는 데이브 클라크 감독의 피드백이 주효했다고 말했다. 한편 기계와 유기물이 결합한 새로운 생명체의 출생 과정을 그리는 팀 ‘120’은 감독에게 묻고 싶은 질문들을 화면에 큼지막하게 띄워놓아 이목을 끌었다. 추상적이고 몽환적인 배경을 구현하고 싶은데 생성한 이미지들은 너무 사실적이라는 고충이었다. 이들은 “기계가 결합한 신생아의 시점을 표현하기 위해 엑스레이, 열화상카메라 화면 등의 연출을 도입하고자 한다”며, “각 질감 표현에 더 적합한 AI 툴이 있기 때문에 여러 툴을 오가며 실험 중”이라고 밝혔다.
이후 참가자들은 생성한 영상을 보정 및 편집하고, 유디오, 일레븐랩스 등의 사운드 생성형 AI로 음악과 효과음을 제작하는 등 마감 기한인 익일 오후 4시까지 작업을 분주히 이어갈 계획을 밝혔다. 이번 워크숍에서 제작되는 총 16편의 단편영화는 영화제 기간 중 부천아트벙커B39에서 전시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