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팝 그룹이 시간관을 다루는 가장 급진적인 사례가 5월 끝에 등장했다. 걸 그룹 아르테미스의 <Virtual Angel> 뮤직비디오는 과거, 현재, 미래의 일반적인 시간관을 탈피해 시간관 그 자체의 붕괴를 의도한다. <Virtual Angel>은 뮤직비디오 공개 이틀 뒤쯤 <Human Eye Ver.>이라는 편집본을 내놓았는데 그 사정이 무척 흥미롭다. 기존 뮤직비디오의 몽타주가 초 단위가 아니라 프레임 단위로 무수히 잘게 쪼개진 컷들로 구성된 탓에 영상을 제대로 시청하거나 이해하기 힘들다는 팬들의 원성이 불거진 것이다.
그렇다면 ‘Human Eye’의 반대는 무엇일까. <Virtual Angel> 뮤직비디오엔 미디어 속 아이돌의 모습을 욕망하고 추앙하는 소녀들이 등장한다. 그들과 그들이 숭배하는 아이돌(아르테미스)의 모습이 겨우 3~4프레임마다 교차하며 시공간의 혼동을 일으키는 와중에 소녀들은 마법봉처럼 생긴 오브제를 들고 비상을 꿈꾼다. 마법봉이라 하니 최근 들어 제니, 아이브, 에스파 등 K팝 걸 그룹이 ‘마법 소녀’ 컨셉을 적극적으로 표방하고 있음이 떠오른다. 과거 일본 문화계의 마법 소녀물이 소녀들의 꿈과 희망, 고민을 책임졌다면 지금은 K팝 걸 그룹이 그 역할을 대신하고 있는 셈이다.
마법 소녀물의 획기적 전환이었던 <마법소녀 마도카☆마기카>에서 마도카는 자신을 희생하여 모든 우주, 모든 시간대의 마법 소녀들을 죽음에서 구출한다. 즉 과거, 현재, 미래로 생각되는 인간의 일반적인 시간관을 깨부수며 온 시공간의 소녀들을 구원한 것이다. <Virtual Angel>의 목적도 유사하다. 프레임 단위 편집을 통한 인지적 혼란은 K팝 아이돌과 팬덤 사이에 통용되던 시각적 주체-객체의 위계, 아이돌의 과거를 보며 자신의 미래를 꿈꾼다는 K팝 문화의 직선적 시간관을 깨부수려는 것이다. 평범한 소녀가 주인공이 되어 캠코더를 들고 아르테미스의 잔상을 확인하고 있는 듯한 마지막 장면은 뮤직비디오의 목적성에 완전히 부합한다. 즉 <Virtual Angel>은 기존 인간의 시지각(Human Eye)으로 느꼈던 시간을 넘어 K팝의 새로운 시간관을 표방하겠단 선언과도 같이 느껴진다.
4세대 K팝 걸 그룹 뮤직비디오에 담긴 즐거움 덕분에 K팝 수용자의 일상과 시간이 녹아버릴 정도다. 마치 20세기 초 미술계의 아방가르드 운동이 표현주의, 다다이즘, 초현실주의, 입체파, 미래파 등으로 순간 나뉘어 각자의 관점을 쏟아냈던 일이 연상되기에 이른다. 시간관의 렌즈는 이토록 동시다발적으로 변혁하는 K팝 문화의 부흥을 더욱 즐겁게 마주하기 위한 괜찮은 도구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