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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우리가 사랑했던 정원에서, <땅에 쓰는 시> 정다운 감독, 정영선 조경가 인터뷰와 정영선 조경가의 작품 소개
정재현 사진 오계옥 2024-04-19

<이타미 준의 바다>(2019), <위대한 계약: 파주, 책, 도시>(2020) 등 건축물을 통해 사람과 공간을 탐구해온 다큐멘터리스트 정다운 감독이 <땅에 쓰는 시>로 돌아왔다. <땅에 쓰는 시>의 주인공은 정영선 조경가다.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1호 졸업생, 최초의 여성 국토개발기술사. 여러 기록을 보유한 정영선 조경가는 대한민국 현대사의 굵직한 순간마다 조경을 책임진 역사의 산증인이다. 정다운 감독은 6년여간 정영선 조경가 곁에 머물며 생활인 정영선의 맨얼굴과 현역 조경가 정영선의 카리스마를 모두 담았다. 그리고 정영선 조경가가 지은 이 땅의 수많은 정원을 찾고 각 공간이 지니는 가치를 탐구했다. 정영선 조경가의 반세기 조경 활동을 종합하는 전시 <정영선: 이 땅에 숨 쉬는 모든 것을 위하여>가 진행 중인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에서 정다운 감독과 정영선 조경가를 만나 6년여의 취재와 50여년의 작업에 대해 물었다.

- <이타미 준의 바다> 작업 당시부터 두분의 인연이 시작됐다고 들었다.

정다운 데이비드 치퍼필드가 지은 아모레퍼시픽 신사옥 완공 시점에 <아모레퍼시픽과 건축가들>이란 전시를 기획했다. 그때 교수님을 처음 뵈었다. 시골 소녀, 섬 소녀로 살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서울 도곡동 타워팰리스 부지 앞으로 이사를 가게 됐다. 할머니의 텃밭에 물을 길어와 뛰놀며 자연을 사랑하던 아이가 대도시 한복판에 떨어져 한동안 충격 속에 지냈다. 그때마다 나를 지켜준 곳이 양재천이었다. 고통스러운 청소년기는 예술의전당, 정확히 말하면 당시 예술의전당 내에 있던 한국영상자료원에서 보냈다. 아이를 낳고 태교를 할 땐 선유도공원을 거닐었다. 인생의 중요한 순간을 교수님의 손길이 닿은 공간에서 함께했다.

- 정영선 조경가를 주인공으로 한 다큐멘터리를 연출해야겠다고 마음먹은 결정적 계기는.

정다운 개발 논리에 의해 우리 자연이 훼손된 데에 상처를 갖고 있었다. 이에 관해 교수님이 “자연의 복원력은 생각보다 훨씬 강하다. 물론 그 힘만 믿어선 안되지만 자연을 믿어도 좋다”는 위로를 건네셨다. 말씀을 듣자마자 이분의 이야기를 전하고 싶었다. 내가 지금껏 연출한 작품의 주제가 미래세대에 보내는 연서다. 그런데 교수님도 늘 다음 세대에 좋은 걸 물려주어야 함을 강조한다. 서로의 철학이 통한 이상 꼭 교수님을 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정영선 처음엔 안 하려 했다. 나를 섭외하려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괴롭히더라. 이들에게 나물 볶듯 볶여 결국 함께하게 됐다.

나의 작업에 모든 꿈이 깔려 있다

- 영화 제목인 <땅에 쓰는 시>와 교수님의 삶이 딱 들어맞는다. 서울대학교와 서라벌예술대학(현 중앙대학교) 신춘문예에서 등단한 경력도 있고, 영화에도 시를 사랑하는 교수님의 모습이 여실히 드러난다.

정영선 초등학생 때부터 대학 졸업할 때까지 나를 아는 사람들은 내가 다 시인이 될 줄 알았다. 그런데 그들의 기대에 구속되고 싶지 않았다. 나는 식물하고 살고 싶었다. 내 삶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끼친 사람 중 한분이 아버지의 친구였던 박목월 시인이다. 박목월 선생님은 남들처럼 내가 시인이 될 거라 보지 않으셨다. 대신 내가 대학과 대학원에 가고 <주부생활>의 기자로 사는 동안 늘 나를 다독이고 바른길을 걷게 도와준 고마운 분이다. 시를 꼭 원고지에만 써야 할까. 나는 원고지에 활자로 남는 시보단 땅에 시를 쓰는 마음으로 살았다. 시를 쓰듯 정원을 설계하고 경관을 만지며 조경을 한다.

- 영화 초반 선유도공원의 부감숏이 대동여지도로 전환되는 매치컷은 어떻게 구상했나.

정다운 교수님 당신이 우리 국토 경관의 아름다움을 설명할 때 늘 대동여지도에서 시작하신다. 그리고 대동여지도를 찬찬히 들여다보면 고산자 김정호가 얼마나 깊은 애민정신으로 우리 국토를 탐사하며 기록했는지 느껴진다. 그게 교수님의 주장과 이어진다. 영화를 만들 때마다 늘 주제를 오프닝 시퀀스에 함축해 표현했다. 미래를 이끌어갈 아이가 힘차게 달리는 선유도공원이 대동여지도로 변하는 장면에 우리 영화의 메시지가 전부 들어 있다. 대동여지도에 표시된 우리나라 지역이 꽃으로 피어나는 그래픽도 경도와 위도 좌표를 정확히 계산해 만든 것이다.

- 영화에 가장 많이 담긴 시간은 아침이다. 영화를 보면 교수님이 “하여튼 나는 밝으면 나가”라며 매일 새벽 5시에 일어나 자택 정원을 가꾸는 모습이 나온다.

정영선 집 마당이 물에 푹푹 잠기고 뱀이 지나다니는 습지였다. 그런데 우리 국토의 습지를 지키는 일이 중요하기 때문에 싼값에 매입했다. 일이 바빠 그 땅을 내팽개쳐두다 남편이 아프게 됐다. 그때만 해도 의료법상 요양병원에 장기 입원이 어려웠다. 내가 병구완도 하고 직장도 다닐 상황이 여의치 않다 보니 그 습지 위에 환자도 머물고 서재에서 일도 할 수 있는 공간을 지었다. 당시 습지가 500평 정도 됐다. 내가 명색이 조경가인데 식물을 심어야 하지 않겠나. 그래서 못 쓰는 땅에 흙을 부으며 집 정원을 가꾸어가기 시작했다. 집 앞 경관이 농경지니까 농경지의 패턴을 유지하고, 뒤는 산과 연결되니 산의 환경을 받아들였다. 새벽에 눈을 뜨면 빵 한쪽과 커피 한잔을 먹은 뒤 정원에서 3시간씩 일을 하는 거다. 매일 정원의 다른 구석을 정교하게 돌보면 금세 하루가 가고 한해가 간다. 지금은 정원에서 보내는 시간이 내게 운동이자 휴양이자 명상의 시간이다. 내가 지나간 자리는 전부 표가 난다.

정다운 매일 혼나는 기분으로 교수님의 아침을 함께했다는 게 내 솔직한 심정이다. 주변에서 다들 좋은 걸 보며 영화를 찍어 좋겠다고 했는데, 영화를 찍는 내내 아름다움을 마주하는 게 괴로웠다. 이 풍광을 카메라로 담는 데엔 분명한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그 간극에 늘 괴로웠다. 그리고 실제로 교수님께도 자주 혼났다. (웃음) 더 좋을 때, 꽃과 나무가 더 예쁠 때가 있는데 왜 지금 왔냐며 말이다. 그럴 때마다 내가 슈퍼맨이 아니라 매번 곁에 존재할 수 없다고 읍소했다. 사실 교수님 곁의 자연은 매 순간 아름다울 텐데 말이다.

정영선 (단호한 목소리로) 그렇진 않아.

- 정영선 교수님은 조경을 통해 지역민들의 일상을 많이 바꾸어놓으셨다. 폐철도를 공원으로 바꾼 경춘선숲길이 대표적인데.

정영선 철도와 면한 아파트에 사는 아파트 주민들이 이제 막 시끄러운 소음에서 벗어났으니 그들이 주인공인 공간을 만들고 싶었다. 셰익스피어나 하이데거 같은 석학들이 산책에서 영감을 받지 않았나. 그런데 우리나라엔 그윽하고 조용하게 걸을 수 있는 길이 거의 없다. 그래서 경춘선숲길에 커피숍이나 음식점이 입점하는 걸 결사반대했다. 대신 아주 고요하게 산책할 수 있고, 조용히 명상할 수 있는 공간을 주민들에게 돌려주고자 했다. 그리고 경춘선은 한때 화랑대(육군사관학교)가 있던 곳이라 군인들과 면회 온 애인들이 만나던 곳이기도 하다. 그런 추억도 그대로 살리려 했다. 그 길에서 하이데거 비슷한 철학자나 시인이 탄생했으면 한다. 서울만큼 아름다운 도시가 더는 난개발로 치달으면 안된다. 이제라도 미래를 내다봐야 하지 않겠나. 나의 조경에 이 모든 꿈이 깔려 있다.

- 정영선 교수님의 작품을 봄, 여름, 가을, 겨울, 다시 봄의 순환구조로 재편했다.

정다운 건축을 소재로 한 전작들을 작업할 때도 물성과 공간성 못지않게 시간성을 중시했다. 조경도 시간성이 가장 중요한 키워드다. 그래서 교수님의 작품을 계절별로 나누었다. 교수님이 어떤 계절에 어딜 방문하라는 데는 이유가 있다. 영화 현장엔 의도한다고 해서 절대 나올 수 없는 ‘영화적 순간’이라는 게 있다. 우리 영화의 엔딩 장면을 찍을 때가 그랬다. 마지막 신을 의도한 촬영이었지만, 교수님이 자연스럽게 만들어주신 그 장면을 찍으니 아이에서 시작해 아이로 끝나는 수미상관 구조가 절로 맞춰졌다.

모두가 누리는 나만의 비밀 정원

- 정영선 교수님이 제프리 젤리코상(세계조경가협회가 최고의 조경가에게 4년마다 수여하는 상.-편집자)을 수상하러 간 스웨덴 장면을 언급하고 싶다. 수상 장면을 포함해 교수님이 스톡홀름의 우드랜드 묘역공원을 산책하는 장면이 애상적으로 찍혀 있다.

정영선 조경 일을 처음 시작했을 때 청와대에서 우리에게 처음 맡긴 일이 공원묘지 조성 프로젝트였다. 그런데 공원묘지에 대한 사례가 없어 고생했다. 이후 우드랜드 묘역공원을 처음 알게 됐다. 당시엔 스웨덴에 갈 수 없어 언젠가 그곳에 가리라 벼르다 수상을 계기로 처음 방문했는데, 상상보다 훨씬 좋아 눈물이 질질 났다. 입구에서 묘지까지 넓은 여유 공간을 둬 망자를 만나러가기까지 명상을 할 수 있게 둔 점이 인상적이었다.

정다운 보통은 촬영감독이 교수님을 찍었는데, 묘역공원 장면처럼 교수님의 내밀한 시간을 찍어야 할 땐 내가 직접 촬영했다. 카메라 거치용 모노포드를 교수님이 지팡이 삼아 짚고 묘역을 걷는 장면을 찍는데 알 수 없는 감동에 휩싸였다. 앵글이 잘 안 잡힌다고 해서 동산을 오르는 교수님께 “다시 걸어주세요”라고 할 수는 없지 않나. 교수님이 묘지를 걸어가는 모습, 이곳을 스치는 교수님의 표정을 카메라로 포착할 기회가 단 한번밖에 없다는 두려움에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도 엄청 돌렸다. 기술보다는 말로 다 할 수 없는 교수님의 뒷모습과 풍광이 완성한 장면이다.

정영선 고맙다. 우리나라의 조경 역사도 기록으로 남겼는데 찍느라 그런 고생을 한지도 몰랐네.

- 교수님은 언제나 스스로를 조경가라기보다 인간과 자연, 자연과 자연을 연결하는 연결사라고 칭해왔다. 이는 영화에도 등장하는 우리나라 전통 정원의 특징인 차경(借景)(자연을 거스르지 않고 주위 풍경 그대로 경계를 섞어 경관을 구성하는 방법.-편집자)의 원리와도 닿아 있다.

정영선 전지구적인 기후 위기를 맞이한 지금 조화에 대해 말을 얹는 것이 민망하다. 꿀벌이 사라지는 게 이상기온의 징후라고 하지 않나. 내가 사는 시골 집에도 꿀벌이 모두 사라졌다. 벌농사 짓는 사람들의 생계도 우려될 정도다. 어제 낮 우리 집 마당을 정비하다 흰나비 한쌍을 보았다. 그런데 나비 날갯짓이 비실비실 연약하더라. 나비에게 “너 어데 아프나”라고 물었는데 지금 지구가 딱 그 나비 같다. 우리 집처럼 자연이 잘 가꿔진 곳도 이 모양인데 다른 지역은 오죽할까. 모두가 합심해 지구를 그만 학대했으면 좋겠다. 매일 꽃과 나무를 돌보는 입장에서 가슴이 찢어지는 통증이 실제로 온다.

- 정다운 감독님은 건축에 관련한 다큐멘터리를 두 작품 만든 후 조경과 조경가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만들었다. 세 작품은 공간에 관한 다큐멘터리라는 점에서도 공통점이 있지만 건축과 조경은 분리해 생각할 수 없는 작업이라는 점에서도 궤를 같이한다.

정다운 자연 속에서 유년기를 보낸 터라 내겐 자연이 정말 중요한 의제다. 자연이 품은 생명은 그야말로 예술이다. 결국 건축물도 자연과 연동해 숨 쉴 틈을 줄 때 생의 아름다움을 선사할 수 있다. 이 예술을 인간의 삶에 가장 가깝게 들여오는 역할을 조경가들이 해왔다는 걸 알아주었으면 한다. 나는 선유도공원이 모두의 비밀 정원이라고 생각한다. 선유도공원처럼 공공을 위한 공원이 있으면, 모두가 각자의 사연을 투영해 나만의 공원을 가질 수 있다. 모두가 나만의 자연을 누리고 그 안에서 생명의 아름다움을 느끼는 삶을 누리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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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제공 국립현대미술관 서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