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위로 유명한 도시에 살면서 깨달은 의외의 사실 중 하나는 폭염이 사람을 침착하게 만든다는 것이었다. 2018년 8월의 어느 날에도 나는 침착했다. 땀으로 미끌거리는 남의 팔뚝에 코를 박아도, 8차선 도로 횡단보도 앞에서 뙤약볕을 정면으로 맞으며 신호를 기다려도 나는 점점 더 침착해질 뿐이었다. 오랜만에 내려간 대구는 내가 생각하고 있었던 것보다 훨씬 더 습하고 더운 도시였다. 짜증낼 힘을 남겨주는 더위란 얼마나 고마운 것인가? 대구의 더위 앞에서는 종교를 가지고 있는 편이 낫다. 신의 이름을 부르거나 기도를 외우는 것만으로 버틸 힘이 생기니까. 그날 나는 정류장에 서서 부처님을 108번 호출하고 3천번 가까이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을 외웠다.
덥거나 추운 날엔 도로도 버스도 똑같이 날씨를 겪는다. 그날 정말이지 아무리 기다려도 버스가 오지 않았다. 불심으로 봉인한 내 성질머리도 슬그머니 고개를 내밀었다. 그런데 그때 어디선가 내 이름을 반갑게 부르는 목소리가 들렸다. 힘겹게 시선을 옮긴 곳엔 빨갛게 익은 중학교 동창 A가 있었다. 거의 20년 만의 만남. 반가운 척을 해야 하는데 더위를 먹은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인사 대신 “너 눈썰미 좋다. 어떻게 나를 알아봤어?”라고 물으니 A는 “중학생 때랑 똑같은데?”라는 말을 했다. 나는 중학생 때 내 모습이 어땠는지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그러니 그건 전혀 칭찬이 아니었다. “너 인마! 왜 나 알아봤어! 몰라보란 말이야!”라고 하고 싶은 것을 간신히 참아내니 포상처럼 버스가 도착했다.
같은 동네에 살았으니 같은 버스를 타는 것도 당연하겠지. 나는 동창과 2인석에 나란히 앉아 에어컨이라는 신의 응답을 받으며 먹은 더위를 토했다. 하지만 그렇게 친하게 지낸 친구가 아니었기 때문에 어떻게 지내냐는 안부 외엔 딱히 건넬 질문이 없었다. 무슨 질문을 해야 할지 몰라 두통을 느끼던 사이 A는 내가 중학생 때 글짓기 대회에서 대상 받았던 것을 기억한다며 먼저 입을 열었다. 나도 가물가물한 걸 얘는 대체 어떻게 기억하는 걸까? 그랬던 것 같다고 대충 넘어가려 하는데 A는 그 글짓기 대회가 ‘호국 보훈 백일장’이었다는 사실과 내가 상을 받을 때 보훈청 관계자와 재향군인 할아버지들이 ‘공산당 척결!’을 외쳤던 것, ‘틈만 나면 남침 야욕을 드러내는 괴뢰들과 이 땅에 잠입한 간첩세력에 맞서자’고 적힌 기념품들을 여전히 잊지 못한다고 말했다. 이마에서 식은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그만… 그만 말해주면 안될까? 내가 기억하지 않는 데는 이유가 있을 거 아냐….
A는 엄청난 기억력의 소유자였다. “나는 그 시상식 볼 때 네가 작가보단 정치인 같은 게 될 거라고 생각했어.” 중학생 A는 통찰적인 사고가 가능한 아이였군. 도대체 집엔 언제 도착하나. 버스는 왜 이렇게 느리게 가는 건가. 잊힌(조금은 부끄러운) 기억이 상기된 덕분에 내 머리 속은 새하얗게 변했다. A에게 당장이라도 고함치고 싶었다. 오른쪽은 옳은 쪽이라 여기는 곳에서 태어나 보수의 딸로 무럭무럭 성장했던 중학생 복길은 이제 죽었어. 니 앞에 있는 2013년의 난 ‘괴뢰’이자 ‘공산당’이자 무시무시한 ‘노동자’다! 하지만 A에겐 아무런 악의가 없어 보였다. 그의 얼굴엔 어렸을 땐 알던 동창을 어른이 되어 만난 환희와 설렘만이 존재했다. 적당히 호응을 해주다 창밖으로 고개를 돌리려 하는데 A가 판도라의 상자 같은 그 입을 다시 열었다. “아, 맞다. 우리 신화 누드집 돈 모아서 샀던 거 기억나?” 닥쳐 제발.
H.O.T와 젝스키스는 우리 언니 세대들이 좋아하던 아이돌이었다. 그 두 보이 그룹은 활동 기간도 짧았기 때문에 유명한 노래만 조금 흥얼거릴 수 있을 뿐 직접 좋아할 기회는 없었다. 그러나 그들과 그들의 팬들이 만든 종교 활동에 가까운 팬덤 문화는 god와 신화가 천하를 양분하던 나의 세대에 고스란히 계승되었다. 당시 나에게는 god를 좋아하던 애들은 대부분 공부를 잘하고 부모님과 선생님의 말씀을 잘 듣는 순한 애들이란 편견이 있었다. <목표달성! 토요일-god의 육아일기>라는 대안 가족 모형의 예능프로그램은 늘 가족주의적인 만족감을 줬고, 그것을 바탕으로 형성된 신뢰는 그들에게 ‘국민그룹’의 타이틀을 안겼다. god를 좋아하던 애들은 그 표상에 자부심을 느끼는 아이들이었다.
그러나 신화를 좋아하던 애들은 조금 달랐다. 뭐랄까…. 그들은 조금 더 욕망에 충실했다. ‘오빠’들의 존재가 거룩해지는 것보단 그냥 ‘오빠’들이 더 멋진 모습으로 등장하길 바라는 그런 애들. god 팬들이 천사 같은 손호영에게서 ‘왕엄마’의 따스함을 느끼며 우는 동안, 신화 팬들은 이민우를 매일 오토바이에 태우며 그에게 늘 ‘쿨워터’ 향을 입혔고, 김동완이 과도한 헬스로 둔한 근육을 키우는 것을 미치도록 싫어했으며, 에릭과 전진이 자신의 외모를 담보로 더이상 회사와 싸우지 않기를 바랐다. 자기가 좋아하는 가수한테 모두가 ‘짱’을 외칠 때 ‘신화 산’이라는 뜻 모를 단어를 붙이는 것도, 모두가 동그란 풍선을 들고 응원할 때 경광봉이 생각나는 주황색 막대풍선을 흔드는 것까지도 모두 내 눈에는 이상하게만 보였다.
아니, 신화라는 그룹은 실제로 이상했다. 아이돌은 감히 넘볼 수 없는 우상이거나, 나의 결핍을 채워주는 가족이거나, 달콤한 사랑을 약속하던 연인이어야 했던 때에 신화는 그냥 ‘동네에서 잘생긴 걸로 유명한 오빠들’이었다. 그들의 노래 역시 순정만화나 ‘인터넷 소설’ 같은 구성이었다. 이민우가 대뜸 나타나 자기가 찜한 여자를 향해 ‘널 내가 갖겠다’는 무례한 선포를 하면, 김동완이 분위기를 좋게 만들기 위해 설득을 하고, 그러다 또 갑자기 전진이 자기 화에 못 이겨서 ‘넌 내 거야!’를 외치면 뒤에서 그걸 보던 에릭이 나타나 전진의 얼굴에 주먹을 꽂았다. 그 난리통 속에서 앤디가 꽃을 들고 다가와 조용히 고백을 하면 신혜성은 이 모든 사태를 지켜보다 어두운 기운을 뿜으며 크레셴도 샤우팅을 발사했다. 그들의 노래에는 늘 여섯명의 남자들과 지독하게 얽히게 되는 내가 있었고 그 낭만을 대체해줄 존재는 이 세상에 없었다.
당시 공산당을 척결하는 것이 바빠 어떤 아이돌에게도 마음을 주지 않던 회색분자인 나는 화보집을 사려는 데 돈이 부족하다는 A와 J의 간절한 얼굴을 무시할 수 없어 내 작은 용돈을 보탰다. “어 기억나. 야 그거 지금 누가 갖고 있어?” A는 수줍게 웃으며 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리켰다. “나 신화 아직도 좋아해!” A의 말을 듣고 역시 신화 팬은 이상하다고 생각하면서 다시 물었다. “너 그때 신화에서 누구 제일 좋아했지?” A는 잠시 머뭇거리다 대답했다. “신혜성.” 말문이 겨우 트였는데 버스는 A가 내려야 할 정류장에 도착했다. 우리는 급하게 연락처를 나누고 작별 인사를 했다. 과거를 말하느라 나누지 못한 현재의 안부는 나중에 묻기로 하고. A가 나를 바라보며 손을 흔들었다. 중학생이었던 A의 얼굴이 그제야 보였다. 너도 진짜 하나도 안 변했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