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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장르와 팬덤 문화를 고려한 새로운 전략, 쇼박스의 <파묘> SNS 마케팅은 어떻게 달랐나
이자연 2024-04-11

<파묘> 천만 관객 달성을 예기치 못한 이변처럼 여기는 사람은 거의 없다. 개봉 3일 만에 100만, 10일 만에 500만 관객을 달성하는 쾌거를 보이며 많은 이들이 순조로운 천만 영화를 점쳤다. 오컬트 장르의 명확한 기획과 컨셉, 화림(김고은)과 봉길(이도현)의 미묘한 관계, 기성세대 배우와 MZ세대 배우의 색다른 조합, 미성년자, 임신부 등으로 구성된 세 자매의 민속학적 전투, 한국사와 항일 정신 등 다양한 흥행 요소가 포진해 있어 작품성만으로 성공 요인을 분석하기에 충분해 보인다. 하지만 단기간에 이뤄진 고공행진에는 열렬한 관객 반응을 이끌어낸 마케팅적 도움닫기가 크게 작용했다. <파묘> 제작사인 쇼박스는 작품색과 맞지 않는 유튜브 채널에 홍보 순회 촬영을 돌거나 영화 요약 콘텐츠가 관심을 이끌어주길 수동적으로 바라기보다 진짜 관객들이 있는 곳으로 나아가길 선택했다. 갑작스러운 돌풍에 맞춰 돛을 돌려 묶듯, 쇼박스는 시시각각 사람들의 반응에 맞춰 새로운 전략을 모색했다. 마케팅의 근본적인 역할이 재화와 용역을 대중에게 효율적으로 알리는 데 있다면, 쇼박스의 <파묘> SNS 마케팅은 극장가의 새로운 물결을 만드는 데 출중한 윤활유가 되었다.

2차 창작물을 존중하는 방식

<파묘> 개봉과 함께 X(옛 트위터)에는 원작 영화에 기반한 2차 창작물이 쏟아졌다. 작품 밖의 이야기를 상상하는 사람들은 자연스레 팬덤을 형성했고, 실시간 트렌드로 등극하고 관심 여론이 형성되면서 지금까지 <파묘>에 대해 잘 몰랐던 사람들도 해당 콘텐츠를 자연스레 접하게 되었다. 영화시장에서 보편적으로 2차 창작물을 작품과 별개의 세계로 바라보았다면 쇼박스는 이를 적극적으로 마케팅 방식에 차용했다. 이연지 쇼박스 콘텐츠기획마케팅팀 과장은 “영화 메시지를 직관적으로 녹인 한반도 컨셉이 좋았고 많은 사람들이 호응하는 장면을 보면서 더 많은 관객이 볼 수 있도록 공식 선재로 작업하고자 바로 팬아트 작가님(@poncho_anything)의 동의를 구했다”고 섭외 과정을 설명했다. 은연중 2차 창작물을 원작의 하위 개념으로 여기던 분위기와 달리 쇼박스가 팬아트를 존중하고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무엇보다 섭외 과정이 팬아트 작가의 후일담으로 직접 전해지면서 영화에 대한 대중적 호감도도 함께 올라갔다. 창작자로서의 작업과 실관객으로서의 팬심을 모두 이해받았다는 긍정적인 평도 SNS상으로 빠르게 퍼져나갔다.

이러한 새로운 시도는 쇼박스 내부에서도 일종의 도전이었다. “기존 영화마케팅이 해왔던 방식대로 투자배급사가 포스터를 만들어 관객에게 선보이는 일방향적 공개”에 머물지 않고 “관객의 관심과 사랑에서 비롯한 아이디어를 차용해 또 다른 서사를 완성”(이연지 쇼박스 콘텐츠기획마케팅팀 과장)했다. 과감한 선택처럼 보이는 결단에는 관객들과 적극적으로 상호작용하며 호흡하는 인터랙티브 마케팅이 근간에 있었다.

손 없는 날 미드나이트 상영회와 액운 퇴치 소금

쇼박스는 메가박스와 손 없는 날 미드나이트 상영회를 진행했다. 오컬트, 민속학 등 영화 전반을 관통한 메인 키워드를 두고서 마인드맵을 하듯 구체적인 상영회 컨셉을 찾아나갔다. 그 결과 이사, 결혼, 상견례 등 중요한 날을 잡을 때 (일종의 미신이란 걸 알면서도) 누구나 한번쯤 신경 써본 ‘손 없는 날’을 상영회 컨셉으로 선택했고, 개봉일에 가까운 어느 손 없는 날 관객들은 재미와 신기함 속에서 극장을 찾을 수 있었다. 이날 이어진 상영회의 특전 선물은 바로 액운 퇴치용 맛소금이었다. “요즘은 상영회도 구체적인 컨셉을 가지고 흥미로운 경험을 제공하는 게 중요하다. 손 없는 날 상영회를 기획한 뒤 그와 어울리는 재미있는 굿즈도 함께 선물하고 싶었다. 그때 떠올린 게 소금이다. 영화 속에서 상덕(최민식)과 영근(유해진)이 소금을 뿌리는 장면이 많다보니 이 부분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굿즈와 영화 사이에 연결고리를 만들면 하나의 스토리텔링을 완성할 수 있다. 무엇보다 이런 참여 굿즈는 대단치 않은 물건이어도 유쾌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아이템을 선정하는 게 중요하다. 소금은 워낙 실용적이기도 해서 그 기준에 적합했다. 때마침 ‘영화 다 보고 집에 가는 길에 굵은소금 사서 나한테 뿌렸다’는 20자평 이후 소금에 관련한 관객들의 재미있는 반응이 많아서 기획 방향과 잘 맞아떨어진다고 확신했다.” (박예진 쇼박스 콘텐츠기획마케팅팀 대리)

특히나 ‘소금을 뿌린다’는 행위는 민속신앙 중에서도 미디어를 통해 대중에 친근한 행위에 속했다. 장례식장에 다녀왔을 때, 바라지 않던 손님이 집에 찾아왔을 때 등 다양한 상황에서 액운을 쫓기 위해 소금을 뿌리는 장면을 금세 떠올릴 수 있는 이유다. 이런 친근함은 <파묘>를 상대적으로 쉽게 선택할 수 있는 바탕이 되었다. 오컬트라는 장르적 진입장벽이 약점이었던 <파묘>는 일상적인 소재를 빌려 이해도를 높이고 관객과의 거리를 가깝게 만들었다.

천만으로 한 발짝 더, 겁쟁이 상영회와 굿어롱 상영회

누적관객수 900만명을 넘긴 이후 천만 관객을 향한 속도는 다소 더뎠다. 많은 관객이 관람한 만큼 추이가 느려지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지만 천만 관객을 안정적으로 달성하기 위해서는 이 구간에 다시금 도화선이 될 자극이 필요했다. 그때 쇼박스 마케팅팀은 또 다른 상영회를 고안해냈다. 바로 겁쟁이 상영회였다. 900만명을 넘길 때까지 보지 않은 관객이 누구인가, 쇼박스는 그 지점을 공략했다. 김진형 쇼박스 배급전략팀 대리는 “아무리 재미있어도 무서운 영화는 보기 힘들어하는 관객들이 있다. 그래서 오컬트가 넓은 관객층을 소화하기 어렵다고 불리는 편”이라며 장르적 한계를 되짚었다. 이 지점을 처음 경험한 것은 3년 전 <랑종> 때였다. 영화가 재미있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관심이 생겨났지만 공포물에 대한 두려움이 더 크게 작동한다는 게시글을 자주 접했다. 극장이란 공간 자체가 어둡고 폐쇄적이고 청음도 몰아치기 때문에 관객이 느낄 밀도 높은 공포심을 이해 못할 바는 아니었다. 쇼박스는 <랑종> 당시의 경험을 기반으로 새로운 마케팅 전략을 모색했다. 그게 바로, 겁쟁이 관객끼리 복작복작 영화를 보는 겁쟁이 상영회였다. 영화를 보기 위해 용기 낸 관객들에게 쇼박스는 두 가지 선물을 제공했다. 먼저 공포심을 자극하는 청각을 둔화시키는 이어플러그와 영화 속 저주를 피해가는 축경 타투 스티커다. 재미있는 컨셉과 이색적인 작품 접근 방식에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보였고 이에 따른 SNS 선점도도 높아졌다. 특히 이 겁쟁이 상영회는 천만 관객을 눈앞에 두고 비어 있는 관객층을 재치 있고 영리하게 독려했다는 점에서 눈에 띈다.

<파묘>의 명장면으로 손꼽히는 굿 장면에서는 경문을 자유롭게 따라 부를 수 있는 일명 ‘굿어롱’ 상영회도 진행했다. 추임새, 박수, 응원, 오열 등 다양한 리액션까지 수용한 편안한 분위기의 상영회였다. 굿어롱 상영회는 SNS의 뜨거운 반응과 함께 앙코르 상영회로 이어지기까지 했다. 겁쟁이 상영회가 <파묘>가 지닌 한계를 보완한 상영회라면 굿어롱 상영회는 작품이 지닌 장점을 십분 활용한 문화 행사와 같다. 특히 SNS상의 유쾌한 입소문을 십분 활용했다는 점에서도 마케팅 활용 방식이 효과적이다.

관객 친화적 무대인사, 일명 할·꾸

‘할아버지 꾸미기’의 줄임말 ‘할·꾸’는 무대인사를 찾은 최민식 배우를 팬들의 선물로 치장하는 것을 의미한다. 귀여운 머리띠와 모자, 봉지 과자를 이어 붙인 가방까지 팬들이 전해주는 선물들은 최민식 배우의 위엄과 권위를 귀엽게 무장해제했다. SNS를 개인 채널로 활용하는 데 익숙한 2030세대는 자신에게 너그러운 마음과 열린 태도를 지닌 배우를 적극적으로 홍보하며 나섰다. ‘가치소비 중심’, ‘돈쭐 내주자’ 등 선한 것을 널리 알리는 미덕을 지닌 이들이 체면을 차리지 않는 배우의 모습을 반기는 건 어떤 면에선 자연스러워 보인다. 기성배우와 젊은 배우의 융화가 작품의 관전 포인트였던 만큼 한국영화사의 궤를 오랫동안 함께해온 굵직한 중년배우가 반짝거리는 머리띠를 한 건 작품의 무게와 어울려 보이기도 했다. 배우에 대한 호감은 작품에 대한 호감으로 이어지기 마련이다. 쇼박스 마케팅팀은 할·꾸에 대한 적극적인 관객 반응을 SNS와 보도자료로 빠르게 노출시켰고, 이를 접한 많은 사람들은 <파묘>에 대한 긍정적인 이미지를 무의식적으로 얻게 된다. 소비자가 자기도 모르게 소비를 계획하도록 독려하는 것이 마케팅의 기본이라면 관객 친화적인 무대인사가 작품에 긍정적인 영향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연결해낸 대처는 단연 성공적이었다. 특히 적극적인 입소문을 자처하고 나서는 SNS 사용자층과 작품의 주요 타깃층이 일치할 것을 염두에 둔 것도 이 흐름의 주요한 거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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