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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차갑고 기이한, <기생수: 더 그레이> 배우 이정현
조현나 2024-04-11

준경의 어깨엔 수시로 묵직한 산탄총이 오른다. 총구 끝에 놓인 건 인간을 숙주삼은 기생생물들. 이들을 제거하는 것이 ‘더 그레이’의 타격 팀장 최준경의 일생일대의 목표다. 무자비하게 살생을 저지르는 그가 냉혈한처럼 보일 수 있지만, 준경의 과거를 알고 나면 기생생물을 몰살하는 것 외엔 관심을 두지 않는 그의 행보가 이해가 간다. “연기 변신은 언제나 어렵다”면서도 배우 이정현은 최준경으로서 극에 녹아들게 된 과정을 상세히 들려주었다.

- 시나리오를 보기 전에 작품에 참여하기로 했다고.

= <반도>로 무대인사를 다닐 무렵 감독님이 <기생수: 더 그레이> 작업에 들어간다고 말씀하셨다. 나도 같이하고 싶다고 하니 흔쾌히 그러자고 하시더라. 원작 만화도, 실사화한 영화도 다 본 상태였기 때문에 연상호 감독님이 이 세계관을 어떻게 구현할지 굉장히 궁금했다. 나중에 시나리오를 받았을 때, 특히 마지막 부분을 읽은 후엔 소리를 질렀다. 엔딩이 너무 마음에 들어서 잔뜩 흥분한 채로 감독님에게 ‘이 부분을 나보고 어떻게 연기하라는 거냐’고 연락드렸었다. (웃음)

- 최준경 팀장은 기생생물에 대한 혐오와 살기를 그 누구보다 강하게 드러낸다.

= 그래서 처음에 캐릭터를 잡을 때 너무너무 힘들었다. 이 여자가 정상적으로 보이면 안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남편을 그렇게 잃고 반은 미쳐서 게임하듯 기생생물을 죽이고 다니는 사람이기 때문에 절대 평범해 보여선 안됐다. 그래서 외형부터 변화를 줬다. 살면서 커트를 해본 게 처음이다. 머리를 자르지 않고 갈 수도 있었겠지만 자칫하면 최준경이 아닌 이정현처럼 보일 것 같아 과감하게 결심했다. 그리고 준경의 이미지 자체가 워낙 세지 않나. 가죽 장갑을 끼고 항상 산탄총을 들고 다니니까. 촬영 전에 감독님에게 조심스럽게 장문의 문자를 드렸다. ‘이 캐릭터를 소화하기 위해서는 스모키 메이크업을 하는 게 좋을 것 같다’고. 감독님은 화장하지 않은 맨얼굴을 선호하시는 편인데 다행히 내 의견을 좋아해주셔서 바로 메이크업을 바꿨다.

- 타격 팀장이 된 후로는 외형과 더불어 말투까지 달라진다.

= 준경의 목적은 오로지 기생생물을 박멸하는 것이다. 그래서 말투도 아주 차갑고 간결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액션도 끊어가는 게 좋을 것 같아 무술팀을 따로 만나 몸을 간결하게 움직이는 연습을 많이 했다.

- 앞서 말한 대로 준경에겐 산탄총이 자신의 오른팔과 다름없다. <반도>에서 이미 총기 액션 경험이 있어 이번 촬영이 별로 어렵지 않았을 것 같은데.

= 산탄총 무게가 상당해서 팔근육을 엄청 키워야 했다. 한번 촬영을 시작하면 몇 시간씩 이어지기 때문에 총을 들기 전에 아령을 들고 10~20번 팔운동을 한 다음 총을 들고 현장에 임했다. 그렇게 하면 총이 무척 가볍게 느껴진다.

- 기생생물과 대적하는 신들이 많은데 CG로 완성될 부분이라 상상하면서 연기해야 할 때도 있었을 것 같다.

= 그렇다. 그런데 특수효과팀이 기생생물의 더미를 제작해 보여줬고, 또 VFX팀이 현장에 와서 가끔씩 기생생물을 합성한 신들을 보여주곤 했다. 그래서 그 모습을 머릿속으로 상상하면서 편하게 몰입할 수 있었다.

- 1화에서 경찰들에게 기생생물에 관해 브리핑을 하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한편의 연극처럼 그들에게 기생생물의 위험성을 힘주어 전달했다.

= 시청자들과 극 중 현장에 있는 사람들에게 기생생물에 대한 정보를 전달해야 된다는 목적이 뚜렷한 신이라 강의하는 톤으로 시작했다. 그러다 사람들이 그냥 인간처럼 보인다며 별로 두려워하지 않으니 확 돌변하지 않나. 저 사람이 기생생물에 온 신경이 쏠려 있고, 저런 에너지로 기생생물을 없애가고 있구나 하고 강렬하게 느낄 수 있도록 신경을 많이 썼다. 그 장면만 4일 동안 찍었다.

- 남편과 함께할 때, 그리고 더 그레이의 팀장이 된 후의 모습이 확연히 다르다. 작품에선 그 사이의 시간이 명확하게 그려지진 않는데 감독과 이야기를 나눴거나 배우가 따로 생각해본 부분이 있나.

= 그 공백에 관해 깊게 파고들진 않았고 다만 훈련을 통해 스스로를 엄청나게 강화했을 거라고는 짐작했다. 기생생물에게 당한 남편을 준경이 울며 쳐다보는 장면, 그리고 꿈에서 깨어난 준경이 당시 상황을 떠올리며 눈물 흘리는 장면이 중요하다고 감독님이 항상 강조하셨다.

- 준경은 자신의 남편을 ‘사냥개’라고 칭하며 헬멧을 씌워 다른 기생생물의 위치를 파악하는 데 활용한다. 그렇게 하면서까지 모든 여정에 남편을 동반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 다른 기생생물을 찾기 위함도 있겠지만, 결국 남편을 놓지 못하는 거다. 이 사람이 남편이 아니라 기생생물이라는 걸 알면서도 말이다. 그래서 남편이 형사에게 죽임을 당했을 때 복잡한 감정을 느낀다. 안타까움, 그리움, 슬픔, 분노…. 그 모든 게 다 섞인 감정을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하며 연기했다. <기생수>의 원작자가 인터뷰에서 준경을 ‘지금까지 볼 수 없었던 기이하고 차가운 느낌이 드는 캐릭터’라며, 준경이 죽은 남편을 바라보는 신을 <기생수: 더 그레이>의 최고의 장면으로 꼽았다고 하시더라. 감독님이 해당 인터뷰를 캡처해서 보내주셔서 ‘감독님, 전 이걸로 됐습니다’라고 답변을 보냈다. (웃음)

- 준경은 자신이 쫓던 수인(전소니)과 강우(구교환)를 결국 “보통 사람”이라고 칭하며 부하들에게 공격하지 말 것을 당부하고, 강우를 자신의 팀 소속으로 넣어주기까지 한다. ‘공존’이라는 <기생수> 세계관의 주요 메시지를 가장 잘 대변하는 인물로 느껴졌다.

= 그들을 완전히 적으로 배척하는 게 아니라 우리와 같이 살아가는 보통 사람으로 인식하고 포용하며 결국 내 편으로 받아들이는 과정이 내게도 좋게 보였다. 결정적인 순간 수인의 말에 귀 기울일 정도로 기민하고, 겉으론 한없이 차가워 보여도 내면에 따뜻한 심성을 지닌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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