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여운 것들>은 제96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총 11개 부문의 후보에 올랐다. 흔히 주요 부문이라 부르는 작품, 감독, 배우, 각본상은 물론 대부분의 기술 부문에 모두 노미네이트된 셈이다. 이중 오스카 후보에 오른 음악, 분장, 미술, 의상, 촬영에 관한 비하인드를 전한다. 남우조연상 후보인 마크 러펄로와 <씨네21>이 나눈 대화도 함께 담았다.
음악
저스킨 펜드릭스는 <가여운 것들>을 통해 영화음악감독으로 데뷔했다. 펜드릭스는 요르고스 란티모스가 어떠한 음악적 레퍼런스도 어떠한 해석도 강요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펜드릭스는 대본을 분석하며 벨라(에마 스톤)가 어떤 순간에도 보편적으로 행동하는 여성이 아니라는 점에 주목했다. 그래서 그는 <가여운 것들>의 음악이 어떤 순간에도 관객에게 안정감을 제공할 필요가 없고, 벨라의 순진성과 직설성을 중간 단계 없이 오가는 음악이 필요했다고 한다. 영화 속 음악이 화면과 가장 마찰하며 빛을 발하는 장면은 벨라의 춤 시퀀스다. 이 스코어를 작곡하기 위해 펜드릭스는 헝가리 전통음악을 연구했고, 나흘간 촬영장에 출근해 테이크마다 스코어를 라이브로 연주했다.
미술
<가여운 것들>의 세상은 쇼나 히스, 수자 미할렉, 제임스 프라이스 등 총 3인의 미술감독이 만들었다. 런던과 리스본, 파리를 오가는 영화와 달리 모든 세트는 헝가리 부다페스트에 지어졌다. 하지만 코로나19 팬데믹 한가운데 작업이 진행돼 각 도시의 답사가 어려웠다고. 이들은 각 도시 방문의 기억에 의존해 디자인에 착수했다. 영화 속 세상은 하늘에 자동차가 떠다니는 등 시대와 무관한 스팀펑크적 상상력이 돋보인다. 이 세계는 곧 벨라의 시선과 상통한다. 이들은 벨라가 세상을 보는 눈이 독특하고 마치 꿈같기 때문에 과감한 초현실적 세상을 만들 수 있었다고 술회한다.
분장
2020년 초, 란티모스와 에마 스톤은 <더 페이버릿: 여왕의 여자>로 한 차례 호흡을 맞춘 적 있는 분장감독 나디아 스테이시에게 메일을 보냈다. “다음 장편영화를 만들고 있으니 합류해주세요. 제목은 <가여운 것들>입니다.” 마침 앨러스데어 그레이가 쓴 원작 소설을 소장 중이던 스테이시는 책을 집어들고 ‘엄지척’을 한 셀피로 합류 의사를 밝혔다. <가여운 것들>에서 가장 돋보이는 분장은 갓윈(윌럼 더포)의 몫이다. 스테이시는 사람들이 갓윈을 ‘괴물’이라 부르는 대사에 착안해 괴물에 가까운 특수분장을 만들려 고심했다. 분장팀은 윌럼 더포의 얼굴을 3D 스캔한 후 석고본을 떴다. 그리고 그 석고본을 부위별로 해체해가며(“윌럼의 귀를 여기다 붙이는 건 어때?”와 같은 대화를 나누었다고 한다) 얼굴에 붙일 보형물을 만들어갔다. 갓윈의 외양은 10개의 얼굴 보형물과 그의 자세를 만들기 위한 한두개의 옷 속 신체 보형물을 통해 탄생했다.
의상
갓윈의 구속을 박차고 세상 밖으로 나선 벨라는 리스본에 이르러 처음으로 바지를 입는다. 의상감독 홀리 워딩턴에 따르면 벨라는 더이상 드레스를 입혀줄 사람이 곁에 없어 바지를 택한 것이다. 워딩턴은 벨라의 코디의 키워드를 불협화음이라 설정했다. 5살 여아가 성인의 옷장에서 옷을 고른 듯 상하의가 따로 놀지만 벨라 스스로는 조화롭다고 여길 법한 조합이다. 워딩턴은 벨라가 파리 사창가에서 일하는 직후 입는 라텍스 재질의 우비를 갓윈이 비상용으로 챙겨준 옷이라 상상했다. 벨라의 우비는 고무로 만들어진 초창기 콘돔의 형태를 본떠 디자인됐고 파리 세트의 차가운 느낌과 대비되도록 온화한 컬러를 사용했다.
촬영
켄 로치, 앤드리아 아널드 등 사실적인 화면을 추구하는 감독들과 수차례 작업한 로비 라이언 촬영감독은 상상력의 극치인 <가여운 것들>을 촬영할 때 또한 자연스러운 화면을 추구했다. 그래서 자연광과 유사한 톤을 낼 수 있는 조명을 찾았고, 필요하다면 세트장에 창을 내 외부 자연광이 세트로 들어올 수 있게 만들었다. 란티모스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렌즈로 영화를 찍어야 한다”고 라이언을 설득했다. <가여운 것들>의 프레임에서 눈에 띄는 비네트 효과는 그가 16mm 카메라용 4mm 렌즈를 35mm 카메라에 부착해 만들어낸 결과물이다. 라이언은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면 오로지 한대의 카메라로만 촬영하길 고집했다. 그리고 본인이 직접 크레인이나 돌리에 올라 모든 숏을 촬영하길 희망했다. 마스터숏과 줌숏을 자유자재로 오가는 영화의 촬영도 그가 직접 만든 결과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