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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소위 ‘움짤’을 즐기는 사람이다. ‘움짤’이라는, 한때 신조어였지만 지금은 벌써 사어가 되어가고 있는 단어의 의미가 무언지를 세세히 설명하진 않겠다. 그러려면 ‘짤방’이라는 단어부터 이야기해야 하고, 그것이 소위 ‘밈’과도 어떻게 같거나 다른지까지 말해야 한다. 친절할 필요는 있지만 제한된 지면 안에서 그걸 다 해야 할지 말지는 필자의 전략적 선택의 문제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다시 한번만 더 말하건대, 나는 동물들의 어떤 행동을 포착한 대체로 10초 이내의 동영상 이미지를 좋아하는 편이다. 그러나 여러 짧은 동영상을 스크롤링하며 소비하는 쇼츠나 릴스 등은 사양한다. 아니 심지어 경계하고 혐오하는 쪽이라 해두자.
내가 즐기는 귀여운 동물 움짤은 괜찮고, 대다수가 몰입해 즐기는 쇼츠와 릴스는 무슨 죽을죄라도 지은 거냐고 묻는다면, 그런 말을 하려는 게 아니라고만 답하겠다. 나는 누군가를 혐오하고 조롱하고 폄훼하고 왜곡하기 위해 자극적인 부분만 잘라서 무한 반복시키는 콘텐츠를 싫
[정준희의 클로징] 쇼츠무한스크롤링구체의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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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격의 거인> 보다가 <스타크래프트> 한판 하고 나온 느낌이네.” 수요일 점심, 방금 아내와 <호프>를 보고 나오는 길이라며 친구에게서 연락이 왔다. 전반적으로는 아쉬웠다는 말과 함께 보내온 저 직관적인 한줄 평을 들으니 흐릿해지려던 인상이 선명해졌다. 딱 맞는 표현인 것 같은데, 뭔가 말을 더 보태고 싶어지는 기분. 마침 <호프>에 대한 비평을 쓰던 중이었는데, 따끈따끈한 일반 관객의 반응을 들으니 온갖 생각이 솟구친다. 오랜만에 쓰는 글이라 너무 몸을 사렸나. 괜히 입장과 상황에 눈치를 보고 있는 건가. 좀더 과감하게 써야 하나. <곡성> 때 썼던 지난 글을 뒤적여보니 그건 또 다소 과하게 느껴졌다. 이땐 왜 이렇게 화가 나서 쓴 거야? 설명하기 힘든 자기검열이 이어진다.
개봉 첫날 35만 관객 동원이란 스코어보다 훨씬 와닿는 반응을 접하며 새삼 <호프>를 향한 기대를 실감한다. 1년에 영화 한두편 보기 힘든
[송경원 편집장의 오프닝] 희망의 건너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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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피가 3천을 넘네, 마네 하던 때가 그리 멀지 않게 느껴지는데 지난 6월에 9천을 돌파했다. 주변인들의 근황은 ‘삼전닉스’ 주식을 보유하고 있느냐 아니냐에 따라 양분되는 것처럼 보인다. 주가가 워낙 빠른 속도로 상승하다 보니 마치 주식 투자도 암호화폐처럼 하루아침에 고수익을 노리는 무리한 베팅의 장처럼 여겨지는 듯하다.
얼마 전 지인과 대화를 나누다 고등학생인 아들이 학교 숙제로 주식을 매수했던 일화를 들었다. 경제 공부는 그래야지, 하며 멋지다고 생각했는데 웬걸, ‘이젠 고등학생까지도 투기에 가담하는 것이냐’고 호통치는 아내에게 아이가 아주 크게 혼났다고 했다. 어쨌거나 숙제는 해야 했으므로 아들은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를 1주씩 샀고 ‘투자’는 성공적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지인은 아들로부터 모든 주식을 처분했다는 고지를 들었는데 ‘숫자’와 ‘화면’에 지나치게 전전긍긍하게 되는 게 싫어서라고 했다. 나는 크게 감탄했으나 진정한 ‘킬링 포인트’는 그 후에 등장했다. 전체 수익
[전승민의 클로징] 하우스는 항상 이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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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언가를 목격했다. 누군가는 압도당하고 때때로 혼란에 빠진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존재가 두렵지만 미지에 대한 호기심과 흥분이 걸음을 부추긴다. 다음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 어디서 무엇이 덮쳐올지 알 수 없기에 긴장을 놓을 수 없다. 불투명할수록, 실체를 보여주지 않을수록 상상이 더해져서인지 저편의 존재가 더욱 뚜렷하게 실감된다. 오해하지 마시길. 특정 영화에 대한 묘사가 아니다. 영화라는 매체가 우리를 매혹하는 메커니즘 전반에 대한 설명이다.
영화는 서스펜스와 쇼크의 징검다리다. 서스펜스의 원칙은 간단하다. 여기 무언가, 그러니까 정체를 설명할 수 없기에 ‘괴물’이라 명명한 대상이 있다. 괴물은 노출이 적을수록 위협적이다. 보여줄 때도 지나치게 자세히 보여주면 신비감까지 함께 떨어진다. 명확하지 않을수록 마음속에 떠오르는 이미지가 도리어 더 선명해지는 마법. 그리하여 관객은 자신의 경험에 기반해 각자 보고 싶은 것을 본다. 각자의 오해를 먹고 자라는 괴물이라고 할까. 불투명, 그
[송경원 편집장의 오프닝] 불투명과 불명확 사이 어딘가의 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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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전반 대학 농구는 고려대와 연세대의 양강 구도였다. 이를 격파한 팀이 중앙대고, 그 주역이 허재다. 그는 기아자동차에 입단해 삼성과 현대의 실업 농구 양강 구도도 무너뜨렸다. 농구에 허재가 있다면 경북 안동에는 ‘한국 녹색당 최초의 당선자’ 허승규가 있다. 시의원 선거에 세번 도전한 끝에, 거대 양당과 문중 정치를 뚫고 36.86% 득표율로 1위를 했다. 허승규는 지난 칼럼 ‘거북이 달린다’(<씨네21> 1559호)의 주인공 장시원 전 울진군의원처럼, 그리고 한때의 나처럼, 경북에서 나고 자라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다 귀향해 지역 기득권 세력에 대항해온 정치인이다. 나는 ‘거북이 달린다’에서 허승규를 거명하지 못했다. 그는 현직 후보였다. 공직선거법 저촉을 피하기 위해 그를 익명화하고 간단히 언급했다. 그때 나는 짐짓 그가 처한 선거 구도를 비관했다. “바깥 사람의 관점”이라고 전제하면서 말이다. 은근슬쩍 깔아놓은 역전극의 복선이었다.
6·3 선거 스무날 뒤
[김수민의 클로징] 역전의 명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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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인연이다. 클레베르 멘도사 필류 감독을 제대로 알게 된 건 무주산골영화제를 통해서였다. 무주산골영화제는 해마다 동시대 시네아스트를 선정해서 전작을 틀고 한편의 책으로 엮어낸다. ‘설명하기 어려운 괴력의 영화’라는 소문으로 먼저 만난 <바쿠라우>(2019)가 클레베르 멘도사 필류 감독과의 첫 만남이었다. 2021년 무주산골영화제에서 멘도사 필류를 동시대 시네아스트로 소환하지 않았다면 그의 전작을 순서대로 찾아보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그렇게 인연을 맺은 이후, 나는 이 감독의 다음 걸음 걸음을 따라가지 않을 수 없는 처지에 놓였다. 언어의 그물에 포획되지 않는 대상을 굳이 설명해야 하는 상황은 난감해서 더 흥미진진하다. 개인적으로 그것이야말로 영화를 읽고 글로 쓰는 잉여로운 작업 중에 누릴 수 있는 희귀한 특혜라고 생각한다.
신작 <시크릿 에이전트>의 개봉을 앞두고 클레베르 멘돈사 필류 감독의 인터뷰를 싣는다. 정재현 기자가 꼼꼼히 보낸 서면 질문에 그는
[송경원 편집장의 오프닝] 영화를 굳이 글로 쓰고 읽는 사람들을 위한, (이번주의) 한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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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러다임이라는 말은 토머스 쿤의 과학철학을 통해 유명해졌으며 오늘날에는 일상적으로도 널리 쓰이고 있다. 그런데 이 말은 본래 언어학에서 쓰이는 말이었다. 유럽 언어에서 명사와 동사는 인칭, 성, 수, 시제에 따라 무쌍하게 변화한다. 그 변화를 하나의 표로 만들어 제시하는 것이 패러다임이었다. 이를테면 독일어 ‘sein’ 동사의 2인칭 복수 과거형은 무엇인가라고 물으면 ‘wart’라고 대답하는 식의 표를 말하는 것이다. 이 표는 그러니까 “질문의 틀”이라고 볼 수도 있으며, 과학탐구에서 연구자가 풀어야 할 과제로서 스스로에게 던지는 질문의 매트릭스도 패러다임이라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질문의 틀”이라는 말은 그저 피상적인 정의일 뿐이다. 그러한 질문의 틀이 나타나기 위해서는 그 배후에 엄청난 범위의 “의미망”이 깔려 있어야 하고, 이것이 나오기 위해서는 다시 그 근저에 거대한 세계관이 깔려 있어야 한다. 한 예로 우리 모두의 영어 공부를 골탕먹였던 완료 시제에 대해 생각해보라
[홍기빈의 클로징] 패러다임 찾아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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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야흐로 여름은 장르영화의 계절이다. ‘여름은 호러’라는 공식은 이제 옛말이 됐고, 이제 여름은 장르다. 올해 6월 미쟝센단편영화제로 시작하여 7월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이하 BIFAN)로 이어지는 장르 축제의 사이클이 완성된 덕분에 다채로운 장르영화의 한상 차림을 만끽할 수 있다. 생각해보면 극장가에서 ‘장르’는 마치 마법의 열쇠처럼 유통된다. 이걸 넣으면 영화가 재미있게 탈바꿈할 뿐 아니라 대중성도 확보할 수 있을 것 같은 환상의 재료. 모두가 장르를 말하고, 다들 어렴풋이 이해하지만 각자 말하는 장르의 실체는 조금씩 차이가 있다. 마치 사막의 신기루처럼 또렷하게 보이지만 손에 잡히진 않는, 그래서 더 매혹적인 무언가.
학교에선 이렇게 배웠다. 장르는 관객, 제작(스튜디오/산업), 비평의 꼭짓점에서 출발하여 교차하는 익숙함이라고. 달리 표현하면 관습에 대한 학습이라고 해도 좋겠다. 영화학자 톰 라이얼부터 시작된 장르 이론에 따르면 제작자가 패턴을 만들고, 관객이 학습하여 받아들
[송경원 편집장의 오프닝] 여름보다 한발 먼저 찾아온 장르의 계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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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거리가 있다고 치자. 여기저기에 네온사인이 번쩍이고 온갖 상인과 점포, 노점상, 거리 공연으로 넘쳐난다. 행인들도 북적인다. 시선을 끌기 위해 화려한 호객 행위를 일삼으면서 먹을 것을 파는데, 죄다 단맛과 짠맛 그리고 매운맛으로 범벅이 된 스낵류이다. 건강에 좋을 리는 없지만 입에는 짝짝 달라붙는 데다가, 조금씩만 맛보고 다른 것으로 넘어가도 별로 비용이 들지 않는다. 개중에는 심각한 중독 성분이 들어간 싸구려 화학 제제도 사용되지만 사람들은 그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갈수록 소위 ‘핫플’로 뜨고, 여기저기 유사한 이름을 딴 거리들이 생겨난다. 그곳에 그런 것들이 있다는 걸 나는 알지만, 그런 맛과 분위기를 영 좋아하지 않아서, 게다가 그런 비즈니스 행태를 비판적으로 보는 관련 업계 사람이기도 해서 그냥 없는 셈 친다. 주변 사람들로 하여금 그런 데 가지 말라고 경고나 몇번 할 뿐이다.
그런데 여기서 팔리는 식품에 우리 농장에서 재배된 작물을 가져다 쓰는 일이 생겼다. 정확히 말
[정준희의 클로징] 나 모르게 벌어지는 나에 대한 범죄의 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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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로 5살이 된 딸 덕분에 아침 루틴이 생겼다. 아이가 잠드는 시간보다 퇴근 시간이 늦어진 후로는 따로 자는 중인데, 새벽 6시만 되면 어김없이 꿈나라에서 탈출해 내 침대로 달려온다. 출근 전 2시간 정도가 하루 중 딸아이와 온전히 보내는 유일한 시간인지라, 비몽사몽 중에도 눈 비비며 일어나 함께 놀려고 노력 중이다. 고등학생 이후 이렇게 성실하고 일관된 아침 생활은 처음이다.
같이 논다고 해도 별로 대단할 건 없다. 그냥 앞에서 앉아 요구하는 대사와 연기를 해주면 끝이다. 딸아이는 요즘 한창 역할놀이에 빠져 있는데, 눈 뜨자마자 시작하는 놀이를 보면 전날 밤 어떤 책을 읽으며 잠들었는지가 투명하게 보인다. 오늘은 신데렐라가 라푼젤의 머리를 타고 마녀의 탑을 올라가 백설 공주가 먹을 사과를 뺏어 먹는 스펙터클 활극이다. 몇 가지 동화가 섞이고 엉망진창이 되더니 어떻게든 마무리되는, 절로 미소가 지어지는 세상 유일한 공연. 내가 언제까지 이런 행복한 인형극에 참여할 수 있을까 싶어
[송경원 편집장의 오프닝] 다음에 또 같이 놀자, 기다리고 있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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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은 설렌다. 아니 떨린다. 아직 경험해보지 못한, 낯설고 생경한 세계로 발을 디딘다는 건 기대와 불안의 외줄 위로 올라가는 일이다. 쉴 새 없이 흔들리는 줄 위를 내딛는 걸음걸음, 혹여나 실수해서 떨어지지 않을까 그야말로 혼신의 힘을 기울이기 마련이다. 돌이켜보면 새로운 무언가를 시작할 때만큼 그 일에 진심을 다했던 순간이 없었던 것 같다. 이번이 마지막 기회인 양, 실수 한번 하면 마치 모든 게 끝날 것처럼 집중하고 쏟아부었던 첫걸음들.
다시, 지금 와 돌이켜보면 뭘 그렇게까지 했을까 싶기도 하다. 완벽하다 믿었던 것들도 지나고 보면 어설프기 그지없고, 실수하면 세상 끝날 것 같았지만 실은 그리 대단치 않은 한 걸음에 불과했던 순간들이 더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첫걸음, 시작이 이토록 소중한 건 거꾸로 그때 그 순간 모든 걸 쏟아부었기 때문일 것이다. 할 수 있는 최선을, 진심을 다한다는 것. 익숙해질수록 희미해지는 감각이다.
미쟝센단편영화제는 (이런 표현이 다소 민망하
[송경원 편집장의 오프닝] 서로의 시작을 응원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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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었음 청년’은 ‘특별한 이유’ 없이 구직활동을 하지 않으면서 경제활동을 하지 않는 청년을 말한다. ‘이유’에는 이런 것들이 포함된다. 육아나 가사, 진학 준비, 육체적이거나 정신적인 문제로 일을 할 수 없는 경우나 가족을 부양해야 하는 경우 등. 이 용어는 청년 주체의 구직 의사의 부재를 ‘쉰다’는 동사를 통해 전적으로 개인의 의지를 기준 삼는다는 점에서 문제적이다. 예술인 청년은 어떨까? 많은 이들이 창작 활동을 지속하고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별도의 겸업을 한다. 얼마 전 종영한 드라마 <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이하 <모자무싸>)의 황동만이 떠오른다. 케이터링 알바와 학원 강사로 성실히 노동해온 동만은 ‘쉬었음 청년’에 집계되지 않는다. 하지만 그는 명랑한 실패자로 스무해나 버티어서 끝내 하고 싶은 일을 하게 되는 인물이며 그의 일대기는 ‘쉬었음 청년’을 주요한 예상 독자로 삼는다.
황동만은 그야말로 비호감인 인물인데 여러 결점에도 불구하
[전승민의 클로징] 나는 당신의 말로 죽을 수 없는 존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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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장의 신작이 나올 때마다 설레고 즐거운 한편, 반복되는 숙제를 다시 받는 기분이다. 어쩌면 그저 한편의 새로운 영화에 불과할 수도 있다. 그게 오해하지 않고 영화를 정확히 보는 길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꾸준히 곁을 지켜준 감독이 그간 걸어온 궤적을 자연스럽게 뒤돌아보는 건 싫어도 귀찮아도 할 수밖에 없는, 일종의 조건반사에 가깝다. 거장의 지난 경로를 복기하는 시간은 대체로 익숙하고 종종 부담스럽지만 가끔 미처 보지 못했던 새로운 얼굴을 발견하는 기쁨을 누리기도 한다. 그런 의미에서 개봉을 앞둔 <디스클로저 데이>는 단순히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최신작 이상의 궁금증을 자아낸다. 얼핏 익숙해 보여도 새로운 보물을 발견할 확률이 높다는 말이다. 여러 지점에서 호기심을 자극하지만 그중에서도 오랜만에 돌아온 스필버그의 SF, 외계인과 음모론에 얽힌 이야기라는 점에서 솟구친 기대감이 공개된 내용을 앞서간다. 스필버그의 기나긴 필모그래피를 몇 단어로 축약하긴 곤란하다. 심지어 그
[송경원 편집장의 오프닝] 스필버그 게임, 이미 아는 세계와의 낯선 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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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지방선거 이튿날, 정치경제학자 정태인씨는 <경향신문>칼럼에서 “마포구 오진아, 구미시 김수민, 관악구 나경채 의원”의 낙선에 안타까움을 나타냈다. 그 이후에도 저들 모두 다시 공직에서 활동하지 못했다. 저들과 비슷한 성향의 지방의원은 소수정당뿐 아니라 거대정당이나 무소속에도 있었으나, 그들도 차례차례 자리에서 내려왔다. 의회 재입성에 도전하는 이들도 줄었고, 이들과 비슷한 성향의 새 도전자도 줄었다. 한 시대가 남몰래 끝나가고 있었다.
전 울진군의원이자 경북도의원에 두번 도전했던 장시원씨도 지난 4월에 불출마를 선언했다. ‘불출마 인사’까지 다녔다. 불출마가 더 큰 뉴스였기 때문이다. 그와 나는 몇몇 공통점이 있다. 2010년 무소속으로 기초의원이 된 ‘동기’다. 경북에서 나고 자랐고 대학은 서울에서 다녔다. 지긋지긋했다는 고향을 떠나 그는 신나게 예대 극작과를 다녔다(그때 어울린 사람들 가운데는 ‘연극과 해진이 형’도 있었다). 그러나 그는 졸업 후 귀향했다
[김수민의 클로징] 거북이 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