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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였는지는 모르겠다. 수평선 너머로 뭉게구름이 피어나는데, 난 한적한 바닷가 그늘에 누워 그걸 바라보고 있다. 목책 사이로 난흙길을 걸어 매미 소리가 울려 퍼지는 짙푸른 색감의 야트막한 산을 향해 걷다 보면 배부터 꼬리까지 새빨간 고추잠자리가 여기저기 날아다닌다. 시각과 청각의 기억은 비교적 선명한데 필경 햇살이나 기온도 무척 뜨거웠을 당시의 촉각은 되살아나지 않는다. 그래서일까. 헉헉대는 힘겨움보다는 여유롭고 평화로운 분위기만 잔잔히 일렁인다. 짐작건대 이것은 특정한 시공간의 기억은 아닐 것이다. 대략 늦여름에 치우쳐, 내게 ‘전형적으로 남은’, 아니 이런저런 이미지를 끌어모아 하나의 ‘전형으로서 남긴’ 여름 풍광이었을 듯하다. 요컨대 나는 여름을 그렇게 (기분 좋은 모습으로) 기억하고 싶은 것이다. 스케치북 앞면에 그려졌던 어느 서양화가의 풍경화라든가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들이 뒤섞여 윤색해준 부분도 있을 테다. 단적으로 내 이런 기억의 일부는 <미래소년 코난> 등의
[정준희의 클로징] 또렷한 기억 속의 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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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걸 왜, 굳이, 지금 다시 만들었을까. 요즘 신작들을 쭉 보다 보니 나도 모르게 질문이 불쑥 튀어나온다. 오리지널 스토리의 부재는 영화업계의 유구한 전통이자 고질병이다. 많은 자본과 인력이 투입되는 만큼 (어떤 방식이든) 검증된 소재에 끌리는 건 당연한 일이라 소설에서 코믹스로, 웹툰에서 웹소설로 시대마다 인기 IP는늘 영상화의 표적이 된다. 그마저 몇해 전부터는 곳간에 동이 났는지 아예 고전 클래식을 리메이크, 리부트하는 프로젝트가 부쩍 늘어났는데, 넓게 보면 애니메이션 실사화 프로젝트도 같은 맥락이다. 하지만 여러 시도 중에서도 유독, 과거 성공한 영화를 다시 만들거나 이어 만드는 경우는 미묘하게 다르게 다가온다. 단지 인기 있을 만한 소재를 반복하는 것과는 다른 욕망이 슬쩍 끼어든다고 할까. 그 시절의 영광을 그리워하는 노스탤지어가 묻어난다고 해도 좋겠다.
슬프지만 노스탤지어는 기본적으로 되돌아갈수 없음을 전제로 한 감정이다. 불가능함을 알기에, 더 그립고 애잔하고 애틋해지
[송경원 편집장의 오프닝] 전지적 관객 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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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은 hzzzzs3e님이 쓴 유튜브 댓글에서 시작되었다. ‘간신히 겨우겨우 잘생겨진 그 위태로움.’ 개그우먼 엄지윤씨가 최근에 새롭게 내놓은 부케인 ‘엄지훈남’ 영상에 달린 댓글 중 하나다. ‘엄지훈남’은 엄지훈이라는 이름을 가진 훈남 요리사가 주인공인 가상의 유튜브 채널 이름이다. 개그우먼이 연기하는 남자 캐릭터라고 하면 우스꽝스러운 남자 모습일 것 같지만 놀랍게도, 정말 놀랍게도 엄지훈은 진짜 ‘훈남’이다! 도대체 어떤 모습이길래 궁금해하실 분들을 위해 영상에서 본 그대로를 묘사하자면 이렇다. 이마는 가리고 전체적으로 풍성해 보이는 올 블랙 커트 머리. 넓은 어깨가 돋보이는 블랙 셔츠, 셔츠를 걷어올린 손목에 자리 잡은 큰 사이즈의 시계, 웃을 때마다 얼굴을 다 가릴 정도로 큰 손, 무엇보다 188센티미터의 키. 꽤 큰 키를 빼고는 사실 그다지 특별할 것도 없는, 몇몇 남자 연예인이 바로 떠오르는 흔한 스타일이다. 엄지윤이라는 여성의 남자 흉내라고 하기에는 너무 훈남이라 다
[임소연의 클로징] ‘엄지훈남’에는 있고 ‘케데헌’에는 없는 이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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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열린 문화강국네트워크 제4차 정책토론회에 참여했다. 실제 콘텐츠 제작 현장에서 AI가 어떻게 활용 중인지 들을 수 있는 귀한 배움의 자리였지만 내내 목에 걸려 넘어가지 않는 부분이 있었다. AI가 스토리텔링 영상 콘텐츠의 미래가 될 것이냐는 질문이었다. 이는 더이상 유의미하지 않다는 게내 생각이다. 지난해 칸영화제에서 조지 루커스가 말했던 것처럼 “당신이 마차를 타는 선택을 할 수는 있지만 자동차 시대가 오는 걸 막진 못한다” . AI가 인류사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건 자명한 일이다. 다만, 그럴수록 엄밀한 구분과 방향성이 필요하다.
AI 산업에 대한 정부의 강력한 의지가 표명되자마자 벌써 우후죽순 행사들이 쏟아지는 중이다. AI가 마치 위기를 돌파할 마법의 열쇠처럼 오인되진 않을지 괜한 걱정이 든다. 한때 인터넷이 정보의 평등을 가져올 거라 낙관했고, OTT 스트리밍서비스가 영화의 아카이브를 제공할 거라 기대했지만 경험상 미래는 늘 예상과 다른 경로로 접어
[송경원 편집장의 오프닝] 미래와 미지. 가지 않은 길과 가지 않을 길을 구분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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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원물이 좋다. <약한영웅> 시리즈는 최애작이고, <피라미드 게임>을 모티브로 이 지면에 칼럼도 썼다. 학생 정치는 어떤가. 주애령의 장편 동화 <승리의 비밀>과 <충영초 학생회를 지켜라>는 갓띵작이다. 최근에는 드라마 <러닝메이트>에 빠졌다. 주인공이 러닝메이트를 제의받는 초반에, ‘러닝메이트’라는 단어를 처음 들은 순간이 기억났다. 전교 회장에 막 당선된 6학년 형이 5학년 부회장 선거에서 낙선한 내게 다가왔다. “너를 찍었다. 러닝메이트였으면 좋았을 텐데.” 아쉽지는 않았다. 낙선 직후 정말 아까웠던 선거는 중2 때 실장 선거다. 1학년 실장 출신 넷이 붙었다. 투표마다 최하위를 떨어트리는 규칙이었다(다차 투표 형식의 선호투표제?). 이거 무슨 콘클라베도 아니고 5차까지 갔다. 나는 1차에서 2위, 2차와 3차에서 공동 2위였고(1학년 때도 담임이셨던 교사의 한마디, “누군가는 생각을 바꿔야 끝나”), 4차에서 한표가 줄어
[김수민의 클로징] 러닝메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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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도 어느덧 절반이 지났다. 영화진흥위원회 통합전산망 기준 2025년 6월까지 약 4200만명의 관객이 극장을 찾았다. 6개월 동안 5천만명에 미치지 못했으니 단순하게 계산하면 하반기에 극적인 변화가 없는 한 올해 1억 관객을 넘기 힘들다는 이야기다. 코로나19 팬데믹 직후였던 2020년과 2021년을 제외하면 2004년 1억 관객을 돌파한 이후 21년 만에 1억 관객이 어려울지도 모를 상황에 직면했으니, 시계가 무려 20년 전으로 돌아간 셈이다. 코로나 직전 규모였던 2019년 2억2천만명은 고사하고 1억2천만명이 극장을 찾았던 2024년과 비교해도 30% 넘는 하락세라는 점이 오늘의 그림자를 더욱 짙게 만든다. 어떤 산업에서도 전체 시장 규모가 절반 이하로 내려간다면 산업의 기초를 유지하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변화와 위기에 어떻게 대응할지에 대한 질문을 앞두고 두 가지 입장이 있다. 하나는 절반이나 줄어든 관객수를 원상 복귀시킬 방법에 대한 고민일 것이다. 코로나 직후
[송경원 편집장의 오프닝] 컵에 물이 절반 남았다. 당신의 선택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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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한국, 세계 어디라 할 것 없이 가지가지의 음모론이 판을 친다. 미국은 몇년 전 파충류들이 인류를 지배하기 위해 미국 정부와 주류 매체와 할리우드를 장악하고 있다는 ‘큐어논’ 이론이 창궐한 적이 있었고, 우리나라에서는 선거와 개표를 중국 공산당과 국내의 불순세력이 조작하고 있다는 부정선거론이 끈질기게 돌아다니고 있다. 조금만 생각해보아도 어처구니가 없는 이런 조악한 음모론들이 이렇게 강력한 신봉자들을 계속 끌어당기는 이유는 무엇일까? 어떤 이들은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가 자아낸 불평등 그리고 사회 전체에 만연한 불안감을 이유로 들기도 한다. 음미하고 생각해볼 점이 많은 이야기임은 틀림이 없지만 중요한 맹점도 있다. 이 음모론이 삶이 피폐하고 불안정한 그리고 ‘교육 수준이 낮은’ 하층계급에서만 힘을 발휘하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부정선거론을 외치는 집회 현장에 가보면 명품 옷을 입은 상류층들도 있고 교수, 변호사 등 전문직들도 많다. 가질 만큼 가지고 배울 만큼 배운 이들은
[홍기빈의 클로징] 변화의 속도와 음모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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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늦게 <드래곤 길들이기>를 봤다. 애니메이션의 실사화는 워낙 실망한 적이 많아서 이번엔 당하지 않으려 했지만 얼어붙은 극장가에서 좋은 반응을 이끌고 있다는 소식에 직접 확인하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예상대로 무난한 결과물이었다. 15년 만에 돌아온 이유를 설명해줄 독특한 재해석도, 새로운 이정표를 제시할 야망도 보이지 않는 성실한 리메이크.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그래서 만족스러웠다. 정확히 기대만큼 재미있었고 그 점에서 특별했다.
실사영화 <드래곤 길들이기>의 미덕과 한계는 원작을 고스란히 따라간다는 데 있다. 이미 다 아는 내용을 반복하는 거면 굳이 다시 만들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대신 변명하자면 <드래곤 길들이기>는 드물게 동어반복의 선택이 유효한 케이스다. 그리고 이 모든 저력은 고양이, 아니 투슬리스의 귀여움으로부터 시작된다고 주장하는 바이다. 고양이를 모티브로 한 드래건 투슬리스의 일거수일투족은 일단, 귀엽다. 히컵은 투슬리스를 죽이지 못한
[송경원 편집장의 오프닝] 귀여움이 세상을 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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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1학기엔 학부 2학년 과목으로 저널리즘 강의를 한다. 코로나19 대유행 전부터 시작한 강의이니 5년은 훌쩍 넘겼다. 첫해와 올해의 강의록을 비교해봤는데 꽤 많이 바뀌었다. 첫해에는 저널리즘 사상과 각국의 서로 다른 저널리즘 양식에 거의 2/3를 할애했다면, 올해는 전체의 1/3쯤으로 그 내용이 줄어들었다. 그만큼 변화된 저널리즘 환경에 대한 이야기가 늘어났다. 흔히 ‘가짜 뉴스’라고 불리는 허위조작정보에 관련된 내용, 지난 한 세기를 풍미해온 서구식 객관주의 저널리즘의 한계 등이 그 자리를 메웠다. 교수가 나이 들수록 강의록은 안 바뀌게 마련인데 학문과 시류의 변화를 좇아가기 벅차서 그런 것도 있지만, 안 바뀌는 게 좋을 내용을 중심으로 관심이 옮겨가는 것이 자연스럽기도 해서일 테다. 하지만 저널리즘을 비롯한 미디어 관련 과목은 영 그러기가 힘들다. 워낙 세상의 변화 속도가 빠른 와중에 미디어가 그런 변화를 이끄는 동인이자 결과이기도 하다 보니 그렇다. 심지어 사상, 철학, 역
[정준희의 클로징] 기후 위기를 보듯 저널리즘을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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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집 근처 자주 가던 극장이 문을 닫았다. 지난해부터 퇴근 후 아이를 재우고 마지막 상영 회차를 챙겨보는 게 하루의 소소한 행복이었지만 이젠 어렵게 됐다. 심야영화는 사람이 적을수록 특별해진다. 아무도 없는 극장, 혼자 스크린을 독차지하는 날엔 전세를 낸 기분마저 들었다. 관객이 한명도 없는 날에도 꼭 제일 뒷줄에 앉아서 영화를 봤는데, 내 자리에서 스크린까지 객석이 모두 비어 있는 사치스러운 풍경이 한눈에 들어와 더 좋았다.
하지만 올해는 같은 광경이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극장에 사람이 하나둘 없어지더니 텅 빈 극장에서 혼자 영화 보는 날이 많아진 탓이다. 넓은 극장에 사람이라곤 직원 한명과 나뿐일 때, 쾌적하다고 느꼈던 것들이 동전의 뒷면처럼 황량하게 다가왔다. 점점 불안해졌다. 이러다 극장이 망하는 거 아닌가 싶었지만 이내 기우에 불과하다며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6개월을 못 채우고 우려가 현실이 된 후에야 자각한다. 내가 즐겼던 건 적막함이 아니라 평소와 다른 특
[송경원 편집장의 오프닝] 침체를 부술 스펙터클에 시동을 걸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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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3일 대선투표일. 출구조사 발표를 앞둔 MBC 개표방송에 친숙하지만 의외인 두분이 등장했다. 유명 과학 유튜버 궤도와 물리학자 김상욱 교수였다. 무려 ‘민주주의 이즈(is) 사이언스’라는 제목과 함께. 두 이과 남자가 설명하는 민주주의가 과학인 이유는 다음과 같다. 과학의 역사를 보자. 궤도가 과학계의 “위대한 큰 형님”으로 소개한 아이작 뉴턴은 나무에서 떨어지는 사과를 보고 ‘만유인력의법칙’을 발견한 과학자로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절반의 이야기일 뿐. 뉴턴의 질문은 “사과가 왜 떨어질까?”에서 그치지 않고 “달은 왜 떨어지지 않을까?”까지 나아갔다. 그리고 이 질문은 지상계와 천상계에 공히 적용되는 보편적인 물리법칙으로서, 질량을 가진 두 물체는 서로를 끌어당긴다는 만유인력의법칙의 탄생으로 이어졌다. 천상계의 달과 지상계의 사과가 평등한 뉴턴의 물리학은 왕과 백성의 위계적 구분 대신 평등한 시민으로 구성된 민주주의 사회와 일맥상통한다. 이어서 김상욱
[임소연의 클로징] 민주주의 이즈 슬로 사이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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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야자키 하야오 감독 작품 중 뭘 제일 좋아하나요. 직업적으로 ‘당신의 올 타임 베스트가 뭐냐’는 질문을 자주 받는 편이다. 솔직히 묻는 사람도 진짜 궁금하진 않을, 자기소개서의 취미와 특기란 같은 질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이 예정된 테스트는 익숙해지긴커녕 매번 곤혹스럽다. 왜 그럴까 고민하며 작품들을 복기하다가 문득 깨달았다. 아, 나 이 작품들 고르기 어려울 만큼 하나하나 되게 진심으로 좋아했구나. 상황과 형편, 기분과 컨디션에 따라 리스트의 우선순위가 달라지는 와중에 요즘은 조금 엉뚱하지만 스튜디오 지브리의 단편 중 <On Your Mark>가 계속 뇌리를 맴돈다. <On Your Mark>는 일본의 록밴드 차게 앤 아스카의 뮤직비디오로 제작된 단편애니메이션이다. 1995년작 <귀를 기울이면>과 동시상영된 이 작품은 6분37초의 짧은 분량이지만 감히 지브리의 낭만과 정수가 응축된 결과물이라 할만하다. 안도 마사시의 작화, 야스다 미치요의 채
[송경원 편집장의 오프닝] 희망찬 비관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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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하순이면 두 사람의 김군이 생각난다. 한 사람은 1980년 5월22일 옛 전남도청 인근에서 ‘김군’이라는 문구가 적힌 머리띠를 둘렀던 시민군이다. 다른 한 사람은 2016년 5월28일 구의역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다 숨을 거둔 김군이다. 참사 직후 구의역에 붙은 메모에는 나의 것도 있었다. “2013. 1. 19. 심OO(성수역) / 2014. 4. 22. 노OO(독산역) / 2015. 8. 29. 조OO(강남역) / 2016. 5. 28. 김OO(구의역).” 모두 스크린도어 수리 도중 사망한 노동자들이다. 연결되어야 할 열차 운행과 스크린도어 수리 업무는 원청과 하청으로 분리되어 있었다. 이런 외주화는 ‘전문화’가 아니라 원청 퇴직자의 고임금 일자리를 창출할 뿐이며 그만큼 현장 노동자는 쪼들린다. 김군은 2인1조 규정이 무너진 자리에서 혼자 일했다. 나는 2015년 한 조직에서 상근을 시작하며 강남역 참사에 관한 논평을 썼다. 이듬해 상근을 그만두기 사흘 전 구의역 참사가 일어났
[김수민의 클로징] 김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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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21>은 1년에 한번 개편을 한다. 시기는 보통 창간기념일에 맞춘 4월을 목표로 하는데, <씨네21>을 오래 구독한 독자들도 매년 개편한다는 사실을 모르는 경우가 더 많을 것이다. 그럼에도 한해도 거르지 않고 개편을 하는 건 가장 효과적인 중간 점검과 평가의 시간이기 때문이다. 1년, 12달, 50권 정도의 잡지를 만들다보면 어떤 식으로든 익숙해지기 마련이다. 지겨워진다고 해도 좋겠다. 지겹다는 건 읽는 쪽뿐 아니라 만드는 쪽에도 해당한다. 사실 후자를 위한 것이 더 클지도 모르겠다. 익숙해진다는 건 편해진다는 거고, 하던 대로 하면 몸은 편해도 보이지 않는 곳부터 녹이 슬기 마련이다. 그런 의미에서 개편은 망망대해에서 배를 점검하고 나사를 조이는 작업이다. 지난 1년에 대한 중간 점검을 통해 첫걸음의 의도와 달리 어디까지 떠밀려왔는지 위치를 확인해야 한다. 그런 후에야 떠밀려온 만큼 새로운 좌표를 설정하고 다시금 노를 젓기 위한 의지를 다질 수 있다.
[송경원 편집장의 오프닝] 새날이 왔습니다. 개편을 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