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크린은 ‘레트로’를 어떻게 재연할까. 1994년부터 2005년까지 10년 동안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하는 미수(김고은)과 현우(정해인), <유열의 음악앨범>은 두 남녀가 10년 동안 만들어낸 감정의 블록버스터다. 배준수 미술감독은 두 남녀의 감정의 흐름 속 보이는 당시의 서울을 스크린에 창조해낸다. 이 작업을 두고 그는 “보이지 않는 미술”이라고 설명한다. “많은 시대극이 소품 하나로 시대 전체를 대변하려는데, 우리는 미술을 자연스럽게 흘러가도록 최대한 묻히도록 작업했다.” 자료조사도 많이 했는데, 그 자료 중에는 77년생으로 90년대를 자취를 하며 보낸 20대, 그 자신의 기억도 포함되어 있었다.
배준수 미술감독은 미술작업의 바탕이자 원칙으로, “좁은 미수의 방 세트까지, 촬영용이 아닌 일대일 비율 크기로 만들어 사실감을 놓치지 않으려 했”던 정지우 감독의 리얼함을 꼽는다. 그 원칙은 바로 “공간 하나 하에 히스토리를 쌓는 일”로 이어졌다. “미수의 제과점이 있는 오
<유열의 음악앨범> 배준수 미술감독 - 공간의 히스토리를 쌓으며
-
정지우 감독은 유독 ‘기분’이라는 말을 즐겨 쓴다. 극중 인물이 그려내는 마음의 풍경에 주목하는 감독다운 습관이다. 그의 영화는 대상과 환경에 따라 변화하는 인물의 감정을 예리하게 포착한다. 중요한 건 이들의 가장 큰 걸림돌이 일상에 균열을 내는 타인이나 환경이 아니라 자신의 마음이라는 점이다. 1994년부터 2005년까지 10여년에 걸친 동갑내기 두 남녀의 만남과 헤어짐을 조명한 <유열의 음악앨범> 또한 이러한 ‘정지우 월드’의 궤적을 따른다. 라디오에서 자신의 사연이 소개되고, 사연에서 언급된 대상이 그 방송을 들을 확률만큼이나 희박한 ‘기적’이 두 사람의 사랑을 돕지만 서로의 마음속 그늘이 자꾸만 그들을 갈라서게 한다. 두 남녀가 미처 전하지 못한 마음속 이야기는 핑클, 루시드폴, 토이, 신승훈 등 90년대를 풍미한 대중가요 가사를 통해 전달된다. 그러니까 이건 유행가를 닮은 사랑 이야기다. 어디에나 있을 법하지만 누구와도 같지 않은 것처럼 느껴지는. <해피엔드
<유열의 음악앨범> 정지우 감독, "각자의 문제로 관계가 흔들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
"기적 같은 일." 국내 개봉도 하기 전에 전세계 영화제를 돌며 무려 25개의 상을 수상한 <벌새>의 배우 박지후의 지난 1년은 그런 시간이었다. “베를린국제영화제 당시 1천여석을 채운 관객 앞에 섰을 때는 다리가 후들후들 떨렸다. 극장 조명과 카메라 하나하나까지도 기억하려고 계속 눈을 마주쳤다.” 트라이베카필름페스티벌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은 것에 대해 “10대인 나에게 너무 과분한 상”이라고 겸손하게 말하는 신인이지만, 박지후는 그를 본 관계자들이 “앞으로 더 잘될 것 같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는 매력의 소유자다. <벌새>로 시작한 날갯짓이 어디까지 가닿을지, 사뭇 궁금해지는 신인을 만났다.
-14살 소녀 은희는 어떤 아이일까.
=처음에는 은희가 불쌍하다고 느꼈다. 부모님에게 사랑을 갈구하고, 쓸쓸함과 외로움이 가슴 한구석에 있는 듯 보였다. 그런데 지금은 그냥 평범한 아이인 것 같다. 사랑받고 싶다는 마음은 나도, 내 친구들도 다 느끼는 감정이다. 당차게
<벌새> 박지후 - 소녀, 날다
-
무적의 카드패를 뽑아든 형상이다. 사기극을 계획 중인 노련한 타짜 애꾸(류승범)는 도일출(박정민)과 함께할 세명의 멤버를 스카우트한다. 기원 원장과 사기꾼의 두 정체성을 능숙하게 운영 중인 권 원장(권해효), 놀라운 카드 셔플 기술을 보유하고 수완이 좋은 까치(이광수), 화려한 언변과 미모를 자랑하는 영미(임지연)가 그 주인공. 평범한 듯 만만치 않은 이들이 시나리오상에서 처음 소개되는 시퀀스는 호쾌하고 일견 사랑스럽기까지 하다. 어둡고 비정한 도박판에 케이퍼무비의 밝은 활력을 불어넣어주는 반가운 3인의 등장이다. 배우 권해효는 이들을 “한없이 가볍다가도 또 한없이 무거워지는” 사람들이라 묘사하면서 <타짜: 원 아이드 잭>을 “같이 성장하는 캐릭터들의 영화”라고 말했다.
-<타짜> 시리즈는 전통적으로 캐릭터의 매력이 부각되는 이야기다. 한팀으로 활동하게 된 권해효, 이광수, 임지연 세 배우의 조합 자체도 신선하다. 역할을 수락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
<타짜: 원 아이드 잭> 이광수·임지연·권해효 - 여유만만 팀플레이
-
-
마돈나는 <타짜: 원 아이드 잭>의 시작과 끝 같은 존재다. 다시 말해 도일출(박정민)이 본격적으로 도박의 세계에 풍덩 빠져들게 만드는 계기를 마련해주는 인물이다. 자신의 속내를 숨긴 채 돈에 눈이 멀어 달려드는 포커판의 상대를 휘어잡아 결국은 매정하게 무너뜨려야 하는 야수 같은 존재가 바로 마돈나다. <비밀은 없다>의 담임교사 소라, <밀정>의 사희, <봉오동 전투>의 독립군 자현을 거쳐 배우 최유화가 다다른 <타짜: 원 아이드 잭>의 마돈나란 캐릭터는 그녀의 표현에 따르면, 왜 이제 만났을까 싶을 정도로 몸에 딱 맞는 인물이었다고.
-<타짜> 시리즈의 계보를 잇는 배우로 합류한 소감이 어떤가.
=박정민 배우와 권오광 감독을 믿고 합류했다. 나는 두려움보다는 설렘이 컸다. 감독님과 만나 이야기를 나누면서 잘 통한다고 생각했다. 처음부터 내가 될 거라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시나리오에 쓰여 있는 것 이상으로 왠지 마
<타짜: 원 아이드 잭> 최유화 - 마음을 꿰뚫어보는 여자
-
“시작하기가 두려웠다. 찍을 때는 재미있었지만. 그런데 요즘 다시 두려워졌다”는 박정민은 <타짜: 원 아이드 잭>의 개봉을 앞두고 걱정이 많다. 마케팅 차원에서는 ‘도박판’이라는 단어도 자제하자는 분위기가 있을 정도로 접근하기 조심스러운 소재의 영화이기 때문이리라. 물론 어떤 의미에서는 추석 연휴에 가장 잘 어울릴 소재이기도 하다. 조승우, 최승현의 뒤를 이어 <타짜> 시리즈의 주연을 맡은 배우 박정민을 만나 포커에 일생을 건 타짜 도일출의 탄생기를 물었다.
-<타짜> 시리즈의 계보를 잇는 배우로 합류한 소감이 어떤가.
=시나리오는 재미있게 읽었지만 <타짜> 시리즈여서 선택하기에 큰 부담으로 다가왔다. 원작 만화의 굉장한 팬이었고 사실 나는 <타짜-신의 손>에서 (이)동휘 형이 연기한 짜리 역 오디션을 본 적도 있었기 때문에 관심은 갔지만 그래도 주변 사람들에게 많이 물어봤다. 해야 한다는 사람이 반, 하지 말라는 사람이
<타짜: 원 아이드 잭> 박정민 - 흥행의 기술을 익히다
-
어디서 이런 고수들만 모였을까. 대사기극을 설계 중인 타짜 애꾸(류승범)의 눈에 들어온 멤버들의 면면이 심상찮다. 고시생이지만 하우스 출입이 더 익숙한 도일출(박정민)을 중심으로 놀라운 셔플 실력을 자랑하는 까치(이광수), 미니 카지노를 쥐락펴락하는 언변의 소유자 영미(임지연), 얌전히 기원을 운영 중인 사기의 귀재 권 원장(권해효), 그리고 의외의 타이밍에 나타나 도일출의 넋을 빼놓는 마돈나(최유화)까지. 포커판을 무대로 인생 한방을 준비하는 이들의 도박을 펼쳐내는 <타짜: 원 아이드 잭>은 <타짜> 시리즈의 세 번째 영화이자, 원작 만화 중에서도 명작으로 꼽히는 3부를 바탕에 둔 작품이다. <돌연변이>(2015)로 데뷔한 권오광 감독의 <타짜: 원 아이드 잭>의 배우들을 만났다. 화기애애했던 영화 촬영장 분위기처럼, 유독 편안하고 유쾌했던 현장의 모습을 화보로 전한다.
<타짜: 원 아이드 잭> 박정민·최유화·이광수·임지연·권해효 - '진짜'들이 만났다
-
CG를 최소화할 것. <변신>의 주된 연출 포인트 중 하나였던 이 철칙은 특수분장에 막대한 영향을 미쳤다. 악마가 가족 중 누군가의 얼굴로 변신해 가정을 혼란에 빠뜨리는 하우스 호러물 <변신>은 한국의 어떤 오컬트영화보다 ‘진짜’ 같은 비주얼을 보여준다. 쉴 새 없이 피를 뿜어내는 부마자의 비주얼부터 음습한 이웃집에 걸려 있는 동물 사체까지, 실사 작업 중심으로 일을 진행했기 때문이다. 이는 “CG로 무엇이든 할 수 있지만, 관객은 저것이 CG라는 것을 안다”는 심창환 특수분장팀장의 철학과도 연결된다. “70% 정도는 실사로 만들고 나머지를 CG로 보강해야 진짜인 것처럼 보일 수 있다.” 심창환 팀장이 속한 특수분장업체 제페토는 특수소품 제작을 겸하기 때문에 분장을 돕는 다양한 아이템도 동원됐다. 극중 상징적으로 등장하는 까마귀 털은 직접 구한 것이며, 까마귀 박제에 모터를 심어 자연스러운 움직임을 만들거나 오프닝에 등장하는 소녀의 목이 꿀렁이는 모습을 표현하기
<변신> 심창환 특수분장팀장 - CG도 미니멀하게
-
김홍선 감독의 필모그래피는 하나의 가닥으로 쉽게 잡히지 않는다. 실제 장기밀매 사건을 모티브로 삼은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 영화 <공모자들>(2012) 이후 그는 김우빈, 이현우 같은 젊은 얼굴들을 내세운 케이퍼 무비 <기술자들>(2014)을 만들었다. <반드시 잡는다>(2017)는 ‘~들’로 제목을 짓던 법칙을 깨면서, 노인을 액션의 주체로 내세운 추적 스릴러다. 하지만 이들의 면면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가족과 이웃에 얽힌 사회문제를 조명해온 김홍선 감독의 일관성을 읽어낼 수 있다. 장기매매로 이익을 챙기기 위해 보험조사원이 일부러 피해자와 결혼까지 했다는 씁쓸한 반전으로 문을 닫는 <공모자들>부터 노인 고독사를 다룬 <반드시 잡는다>까지, 김홍선 감독의 작품에는 평범한 가정이 나오지 않는다. 또한 서로의 일상을 일정 부분 침범하는 필연에서 비롯된 이웃 문제는 최근의 세대론까지 아우른다. 그가 처음으로 오컬트에 도전한 <변신
<변신> 김홍선 감독, "잘잘못을 따지기 힘든 이야기가 흥미롭다"
-
“12년 전에도 이곳에 왔었는데….” 8월의 한낮에 <씨네21> 스튜디오를 찾은 김진원 감독이 장편 데뷔작인 고어영화 <도살자>(2007)로 인터뷰를 했던 추억을 떠올렸다. 20대 후반에 한국 공포영화의 신성으로 등장했던 그는 꽤 긴 시간이 흘렀어도 호러 마니아들 사이에서 잊히지 않는 이름이었다. 장고 끝에 나온 <암전>은 공포영화를 찍겠다는 열망에 사로잡힌 신인감독 미정(서예지)이 과거에 모교 선배인 재현(진선규)이 만든 영화가 사실은 귀신이 찍은 영화라는 소문을 파헤치면서 점점 광기에 사로잡히는 이야기다. 영화를 향한 지나친 애정이 과욕과 집착으로 이어지는 섬뜩한 과정을 그려낸 <암전>은 호러영화가 필연적으로 지니는 파괴적인 정서에 매료된 김진원 감독의 취향을 선명히 드러내는, 인장 같은 영화다.
-모든 영화는 숙명적으로 극장에서 잠시 암전의 시간을 거친다는 점에서 영화에 관한 공포영화인 <암전>은 제목부터 흥미롭다. 영화
<암전> 김진원 감독 - ‘미친’ 설정과 관객의 접점을 고민했다
-
“부끄러웠습니다.” 독립군 포로로 붙잡혔다가 되돌아온 유키오(다이고 고타로)는 학살을 지켜본 소감을 묻는 월강추격대 대장 앞에서 금기의 언어를 내뱉고 만다. 대장의 표정은 즉시 일그러지지만 소년의 눈동자엔 영민한 정의감만이 번뜩인다. 만주 봉오동의 산새를 누비며 일본군을 대파한 조선 독립군의 사투를 그리는 <봉오동 전투>는 일본군에 대한 묘사가 납작하다는 인상을 줄 만큼 모두가 여지없이 야만적으로 묘사되지만, 유키오만큼은 다르다. 독립군 무리를 따르는 소년 개똥(성유빈), 민간인 학살 생존자인 춘희(이재인)와 함께 황급히 피신하는 와중에도 계곡에서 서로 장난을 칠 만큼 천진난만한 성품의 소유자다. 절대적인 안타고니스트 무리 속에서 유일하게 관객에게 손을 건네는 캐릭터는 다이고 고타로라는 신선한 얼굴의 출현으로 시너지효과를 얻었다.
다이고 고타로는 만화체로 그려놓은 것처럼 귀공자 같은 생김새를 자랑하지만, 얼굴에 표정이 드러날수록 고향에서 막 상경한 시골 소년 같은 친근
<봉오동 전투> 다이고 고타로 - 일본의 차세대 순정소년
-
또 ‘구마사제’인가 싶다가도, 그를 연기하는 배우가 배성우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변신>의 중수는 타인의 행복을 위해 선택한 직업이 타인에게 고통을 줬다는 죄책감 때문에 귀농을 택한, 직업을 제외하면 보통의 평범한 남자다. 그는 형 강구(성동일)의 집에서 악마가 가족의 얼굴로 변신해 서로를 헐뜯는 기이한 사건이 벌어지자 이들을 지키기 위해 다시 사제복을 입는다. <김복남 살인 사건의 전말>(2010)의 징글징글한 악역부터 드라마 <라이브>에서 연상의 전 부인을 향한 순애보를 뽐낸 오양촌까지, 극단의 얼굴을 보여주면서 매번 현실감을 잃지 않는 배성우는 정서적 요소가 강한 오컬트영화 <변신>이 가진 결정적 승부수다.
-드라마 <라이브>를 한창 찍고 있을 때 캐스팅 제안을 받았다고.
=원래 제작사 대표와 친분이 있어서 일찌감치 제안을 받았다. 시나리오가 신선하고 재미있었지만 드라마 촬영 때문에 정신이 없어서 바로 결정을 못하겠
<변신> 배성우 - 장르가 아니라 인물에 집중한다
-
"갑자기 튀어나와서 놀라게 하는 호러가 아니라, 우리 안에 있는 양면적인 모습을 들추면서 공포를 건드린다." 배우 장영남이 표현한 <변신>의 매력은 정확했다. 빙의가 아닌, 직접 사람의 모습으로 변한 악마의 대사는 가족들의 신뢰를 뒤흔들 만큼 교묘하고 음습하다. 장영남은 눈앞의 가족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믿을 수 없는 극한상황 속에서도 자녀를 지키려는 모성을 지닌 명주를 연기했다. “과하게 표현하지 않고 평범하고 인간적인 모습에 집중했다”는 배우의 말 속에는 누군가의 엄마 혹은 아내이기 전에 한 사람의 중년 여성인 캐릭터를 향한 단단한 존중이 서려 있었다.
-<헨젤과 그레텔>(2007), <불신지옥>(2009) 이후 오랜만에 공포영화에 출연했다. 호러영화에 성동일, 배성우 배우를 캐스팅한 것이 새롭다면, 장영남 배우는 잘 어울리겠다는 생각이 먼저 든다.
=실제론 아닌데 사람들은 내가 호러영화를 많이 찍은 줄 안다. 약간 그로테스크한 이미지가 있다
<변신> 장영남 - 늘 새로운 자극을 기다린다
-
“굳이 메이크업 해야 하나? 영화도 맨얼굴로 찍는데.” 성동일 배우가 있는 현장은 언제나 분위기를 풀어주는 그의 가벼운 농담으로 문을 연다. 편하고 자연스럽게 촬영하자는 농담 섞인 격려겠지만 가만히 곱씹어보면 그 안에 연기에 대한 철학과 무게가 느껴진다. <변신>에서 생애 처음 공포연기를 선보이는 그는 이번 영화에서 “연기를 안 하는 게 가장 잘하는 것”이라 말했다. “사람이 무서운 게 아니고 상황이 무서운 거다. 거기다 대고 과장된 연기를 할 필요가 없다.” 진짜 같은 공포,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두려움은 그렇게 완성됐다. “연기를 즐긴다기보다는 배우라는 직업과 현장을 즐긴다”는 성동일 배우에게 이번 ‘연기 변신’에 대해 물었다.
-공포영화는 처음이다.
=처음 시나리오를 전달받았을 때는 고사했다. 당시 윤제균 감독의 <귀환>을 준비 중이었는데 제작이 뒤로 밀리면서 공백이 생겼다. 김홍선 감독이 그걸 기다리고 있었던 것 같다. (웃음) 직접 집에 찾아와서 배
<변신> 성동일 - 연기를 안 하는 게 가장 잘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