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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님, 여기 좀 봐주세요.” 아직은 ‘감독님’이란 호칭이 어색한지 김윤석이 멋쩍게 웃는다. 배우로서 숱하게 방문한 <씨네21> 표지 촬영 현장이지만, 이날 분위기는 좀 다르다. 첫 연출작 <미성년>으로 염정아, 김소진, 박세진, 김혜준과 함께 스튜디오를 찾은 김윤석은 영화에 출연한 배우로서 함께 사진 촬영에 임하는 한편, 자신의 영화를 빛낸 네명의 여자배우들이 돋보이도록 끊임없이 스포트라이트를 양보했다. “감독 되니 이런 게 어렵다”며 배우들에 대한 가장 큰 상찬의 어휘를 고민하던 김윤석과 그런 그에게 무한 신뢰를 보내는 네 주연배우를 보고 있자니 <미성년> 촬영현장의 화기애애했을 분위기가 짐작됐다. 김윤석 감독은 <미성년>을 통해 “우리 모두가 미성년”이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고 한다. 평범한 고등학생 주리(김혜준)와 윤아(박세진), 그들 가족에게 어느 날 갑자기 불어닥친 시련을 조명하는 영화는 나이와 환경에 관계없이 누구나 경험하는
<미성년>의 네 배우 염정아, 김소진, 김혜준, 박세진과 감독 김윤석 - 배우들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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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자의 욕망을 덜어내고 접근해야 하는 작업이 있다. 세월호 이후 유가족의 이야기를 담은 <생일> 현장에 임하는 이목원 미술감독처럼. “현실에서 일어난 일이기 때문에 공간을 영화적으로 윤색하거나 주관을 개입하지 않으려 애쓰며 최대한 리얼하게 표현했다.” 영화 후반부 수호(윤찬영)의 생일 파티 전에 등장하는 공간은 제작진이 유가족의 집을 방문해보고 느낀 점을 반영한 결과물이다. “아이가 방금 나간 것처럼 아이의 물건을 그대로 보관하고 계시더라. 그 모습을 보며 가슴이 많이 아팠고, 죄책감도 들었다”는 그는 이종언 감독과 의견을 나누며 수호의 방 세팅을 조금씩 매만졌다. 영화의 주 공간인 순남(전도연)의 집에 최대한 색을 배제한 것도 유가족의 심리를 배려한 결과다. “큰 트라우마가 있으면 감정도 비워진다. 조명이나 의상의 색감이 조금만 더해져도 영향을 받는다. 자그마한 것에도 영향을 받는 순남의 마음을 보여줄 수 있게 컨셉을 잡았다. 또 유가족들이 너무 남루해 보이지 않기를
<생일> 이목원 미술감독 - 욕심을 버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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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이런 작은 영화까지 챙겨주는 <씨네21>은 항상 무척 감사하고, 기자님도 참언론인입니다. <오늘도 평화로운>이 손익분기점을 넘기면 사비를 털어서라도 참언론인상 트로피를 제작해서….” 백승기 감독은 오늘도 평화롭게 재밌는 상상을 한다. 사비를 털어 무언가를 만드는 일은 백승기 감독에겐 이제 아주 흔한 일이다. 여건이 될 때까지 기다리는 대신 스스로 여건을 만드는 개척정신으로 어느덧 세편의 장편영화를 찍었다. 혼자라면 불가능했을 일. <숫호구>(2011)에서 원준(백승기)의 섹시 아바타로, <시발, 놈: 인류의 시작>(2016)에서 최초의 인류 시발(始發)놈으로 누드 투혼을 불사른 배우 손이용이 <오늘도 평화로운>에선 주성치와 백승기와 원빈 등을 짬뽕한 캐릭터 영준을 연기하며 백승기 감독의 일당백 아군이 되어준다. <오늘도 평화로운>은 ‘중고나라’ 사이트에서 노트북 사기를 당한 뒤 사기꾼 일당을 잡기 위해 중국으로 향
<오늘도 평화로운> 백승기 감독, 손이용 배우 - 이렇게라도 우리는 끝까지 찍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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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소니는 <씨네21>이 미리 알아본 신예다. 2017년에는 <여자들>의 네 배우 대담 기사로, 2018년에는 ‘라이징 스타’로 선정하기도 했다. 이후 드라마 <남자친구>에서 진혁(박보검)을 짝사랑하는 오랜 친구 조혜인으로 대중에게 눈도장을 찍고, 상업영화 데뷔작 <악질경찰>로 돌아왔을 때 새삼 반가운 마음마저 들었다. <악질경찰>에서 친구를 잃은 후 방황하는 고등학생 미나는 극에서 가장 중요한 질문을 던지는 핵심 캐릭터다. <여자들> <죄 많은 소녀> 등 독립영화에서 신비한 마스크로 관객의 호기심을 자극하던 전소니는 여전히 고유한 매력을 잃지 않으면서 더 넓은 바다로 헤엄쳐 나갈 발차기를 준비하고 있었다.
-이정범 감독이 학교에서 가르치는 학생의 단편영화 속 모습을 보고 먼저 미나 역을 제안했다고. 하지만 처음에는 한번 거절했다고 들었다.
=복합적인 이유가 있었다. 나 역시 세월호 사건을 지켜본 사람으
<악질경찰> 전소니 - 활기차게 앞으로 나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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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나가면 다 고생이다. 폴란드와 우크라이나에서 촬영한 <국경의 왕>은 박진수 프로듀서에게 “맨땅에 헤딩하기”였다. 임정환 감독이 사비를 탈탈 털어 마련한 제작비만으로 배우와 스탭 합쳐 열댓명을 데리고 유럽에서 3주에 걸쳐 영화를 찍는다는 건 웬만한 맷집과 능통한 외국어 실력 없이는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럼에도 박 프로듀서가 흔쾌히 참여한 건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동기(06학번) 임 감독의 전작 <라오스>를 보면서 우리 같은 젊은 영화인도 해외에서 영화를 찍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제작비가 넉넉지 않았지만 “감독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솔직하게 하는 게 프로듀서로서의 목표”였다.
폴란드와 우크라이나에서 영화 제작을 진행한 사례가 전무한 까닭에 박진수 프로듀서의 “최우선 과제는 첫째도 둘째도 제작진의 안전”이었다. 폴란드와 우크라이나에서 각각 전체 촬영 분량의 절반씩 촬영했다. 폴란드는 “영어를 구사하는 사람이 많아 제작 진행이 수월”한
<국경의 왕> 박진수 프로듀서 - 감독이 하고 싶은 말을 할 수 있게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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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의 <아사코>에서 배우 히가시데 마사히로는 두명의 인물을 연기한다. 아사코(가라타 에리카)의 첫사랑이자 자유롭고 이기적인 청년 바쿠, 8년 후 아사코가 도쿄에서 만난 평범하고 성실한 료헤이. 성격이 정반대인 두 인물은 무심히 흐르는 시간의 간격을 두고 아사코의 인생에 등장한다. 2013년 <키리시마가 동아리활동 그만둔대>로 영화를 시작한 히가시데 마사히로는 지난 6년간 <기생수 파트1>(2014), <데스노트: 더 뉴 월드>(2016) 등 대중적인 영화와 <크리피: 일가족 연쇄 실종 사건>(2016), <산책하는 침략자>(2017) 등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의 영화를 오가며 연기 경력을 다각도로 넓혀왔다. 이 밖에 드라마 <문제있는 레스토랑>(2016), <당신을 그렇게까지는>(2018), 순정만화를 영화화한 <아오하라이드>(2016) 같은 작품에서는 속을 알 수 없는
<아사코> 배우 히가시데 마사히로 - 사랑에 관한, 리얼리즘이 가미된 판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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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거짓말은 또 다른 거짓말을 낳는다. 영화 <선희와 슬기>는 거짓말을 거듭하다 급기야 자신의 삶을 버리고 슬기라는 새로운 사람이 된 선희(정다은)의 사연을 그린 이야기다. 유복하지만 자신에게 관심과 애정을 주지 않는 부모 때문에 학교 친구들에게 관심받고 싶어 거짓말을 하는 선희가 한편으로는 이해되면서도, 같은 실수를 또다시 저질러 슬기로 사는 새로운 삶을 포기할 수밖에 없을 때는 무척 안타깝다. <소녀 배달부>(2014), <1킬로그램>(2016) 등 단편영화로 국내외 여러 영화제에서 인정받은 신인 박영주 감독은 첫 장편영화인 <선희와 슬기>를 통해 거듭된 거짓말로 어리석고 나약한 모습을 드러내는 한 인간을 집요하게 그려낸다. <선희와 슬기>는 제23회 부산국제영화제 뉴커런츠 부문과 제42회 예테보리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되었다.
-학창 시절 거짓말을 하던 친구를 보면서 구상한 이야기라고 들었
<선희와 슬기> 박영주 감독 - 비극이 된 거짓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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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9시에 장이 선 뒤 오후 3시에 마감할 때까지 시시각각으로 오르락내리락하는 숫자에 따라 눈치작전이 치열하다. <돈>에서 원진아가 연기한 박시은은 검은 정장 차림의 남성 브로커 사이에서 유난히 돋보이는 여성 브로커다. 원진아는 첫 장편영화인 <강철비>에서 개성공단에서 일을 하다 미사일 폭격을 피해 북한1호와 남한으로 내려오는 북한 여성 려민경을 연기한 뒤로 <그냥 사랑하는 사이> <라이프> 등 두편의 드라마로 얼굴을 알렸다. 어떤 질문을 던져도 막힘없이 술술 말하는 모습이 시종일관 여유 있는 시은을 쏙 빼닮았다.
-목소리가 영화나 드라마에서 듣던 것보다 훨씬 더 저음이다.
=하하. 오디션을 보러 가면 “안녕하십니까”라고 인사하는 내 목소리를 듣고 당황하는 감독님들도 계셨다. 목소리가 부드러울 거라고 생각하신 것 같다. 평소에는 목소리의 높낮이 폭이 큰 편이다. 장난칠 때는 어린아이 목소리가 나오기도 하고.
-고객에게 신뢰를 줘
<돈> 원진아 - 낮은 목소리, 당당한 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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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도연이 나오는 영화라면 믿고 볼 수 있지, 그래도 헛돈을 쓰진 않았지, 그런 믿음을 주는 배우이고 싶고 사람이고 싶다.” 이런 의지 때문일까. 스스로 납득할 수 있는 선택을 하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개봉 영화만 치면 2016년 개봉한 <남과 여> 이후 3년 넘게 영화에서 전도연을 볼 수 없었다. “누가 물어보더라. 혹시 일 그만두셨느냐고. (웃음) 마음은 빨리 다음 작품을 하고 싶은데 선택할 때는 생각처럼 잘되지 않는다. ‘이만하면 됐지’ 하고 타협하기 싫었던 것 같다.” <생일> 역시 “생각에 생각에 생각을 거듭”해 출연을 결정한 작품이다. 세월호 참사 이후 남겨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린 <생일>에서 전도연은 아들을 먼저 떠나보낸 엄마 순남을 연기한다. 순남이 짊어진 감당하기 힘든 슬픔은 전도연을 통해 스크린에 고스란히 맺힌다.
-<생일> 출연 제의를 받고 처음엔 거절한 것으로 안다.
=다가가기 힘든 큰 슬픔 때문에 엄두
<생일> 전도연 - 함께해서 감당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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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경구는 올해 <우상> <생일> <퍼펙트 맨> 등 최소 세편의 영화로 관객을 만난다. <우상>에 이어 <생일>까지, 하루 간격으로 <씨네21> 표지를 찍게 된 그는 이날 인터뷰가 끝나자마자 <킹메이커: 선거판의 여우> 의상 가봉을 하러 갔다. 현재 충무로에서 가장 바쁜 배우인 설경구는 <우상> 촬영 당시 이준동 대표로부터 <생일> 시나리오를 받았다. 빠듯한 일정에도 불구하고 그가 세월호 이후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생일>을 놓칠 수 없었던 이유에 대해 물었다.
-<우상> 촬영 분량이 남아 있을 때 <생일> 시나리오를 읽었다. 어떤 부분에서는 강력 사건의 피해자가 된 아이의 아버지를 연기했던 <소원>(2013)과 겹치는 작품인데, 어떻게 다가왔나.
=<소원>의 동훈이 사건 당시 곁에 있었던 당사자라면, <생일>의 정일은
<생일> 설경구 - ‘힐링’은 <생일>의 금기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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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일>은 2014년 4월 16일 아들 수호를 잃은 가족의 이야기다. 설경구가 아들의 죽음을 곁에서 지키지 못하는 아빠 정일을, 전도연이 아들을 차마 떠나보내지 못하는 엄마 순남을 연기한다. 사랑하는 자식을 잃은 부모를 연기한다는 건, 게다가 여전히 진행 중인 국가적 참사의 당사자를 연기한다는 건 배우들에게도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슬픔을 감당할 용기 그리고 진심을 전할 용기. 바쁜 일정에도 <생일>을 외면할 수 없었던 설경구와 고심 끝에 부담감과 두려움을 마주하기로 한 전도연은 결과적으로 왜 설경구와 전도연이어야 했는지를 증명하는 연기로 <생일>을 빛낸다. <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2000) 이후 18년 만에 <생일>에서 재회한 설경구와 전도연을 만났다.
<생일> 설경구·전도연 - 사랑하는 네가 태어난 그날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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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현숙 편집감독은 10년도 훨씬 전에 <우상>을 알고 있었다. <아들의 것>(2006), <적의 사과>(2007) 등 이수진 감독의 단편영화를 연달아 작업한 뒤 <우상>의 원안이 되는 시나리오를 읽은 적이 있다. 지금의 <우상>과 제목도, 세세한 이야기도 다르지만, 최 편집감독이 <우상>의 시나리오를 받고 “반가웠던 건” 그때 생각이 났기 때문이다. 편집감독으로서 새로 읽은 <우상>은 “보통 영화보다 길고, 명회(한석규)와 중식(설경구), 련화(천우희) 세 인물이 계주하듯 서사를 끌고 가는 이야기”인 까닭에 “편집하기 쉽지 않겠지만 재미있을 것 같은 작업”으로 다가왔다.
이수진 감독의 전작 <한공주>가 그랬듯이 <우상> 또한 플롯이 퍼즐처럼 촘촘하게 엮인 이야기다. 그건 신 하나를 손대면 이야기 전체를 매만져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서사가 전개되면서 사건 정보의 어느 선까지 공개
<우상> 최현숙 편집감독 - 서사의 리듬을 살린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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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3월 11일, 규모 9.0의 대지진이 일본 8개현을 강타한 날이다. 동일본대지진으로 2만명에 이르는 사망자가 발생했으며 재해 직후 피난민 수는 47만명, 그중 8만명은 아직도 집에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폐허가 되어버린 땅에 남은 사람들은 어떻게 지금을 살아가고 있을까. 재일교포 3세 윤미아 감독의 <봄은 온다>는 동일본대지진 이후 6년이 지난 2017년부터 10개월간 재해 지역의 일상을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다. 무너진 삶을 재건하는 사람들을 만나며 “인간의 고결함과 강인함에 대해 배웠다”고 말하는 윤미아 감독을 만났다.
-재일교포 3세인데 국적이 한국이라고 들었다. 한국은 얼마 만에 방문한 것인가.
=이누이 히로아키 감독의 다큐멘터리 <이예: 최초의 조선통신사>(2013)의 프로듀서로 일하면서 울산은 여러 번 오갔다. 당시 조선통신사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면서 울산 MBC와 협업했기에 서울보다 울산을 자주 갔다. (웃음) 한국은 내게 짝사랑하는
<봄은 온다> 윤미아 감독 - 색을 잃은 세상에서 꽃을 심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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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일>은 2014년 4월 16일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한 가족의 이야기다. 아들 수호(윤찬영)의 시간은 그날에 멈춰 있다. 해외 출장 중이었던 아빠 정일(설경구)은 아들을 먼 곳에서 떠나보내야 했고, 엄마 순남(전도연)은 어린 딸 예솔(김보민)과 단둘이서 슬픔을 견뎌야 했다. 그리고 올해도 어김없이 수호의 생일이 다가오고 있다. 수호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수호가 없는 수호의 생일에 모여 각자의 기억을 꺼내놓는다. <생일>은 이종언 감독이 실제 안산에서 세월호 유가족들을 만나고 아이들의 생일을 치르며 느꼈던 마음을 조심스레 영화에 담은 작품이다. 세월호 유가족들의 마음과 상황을 “있는 그대로” 담고 싶었다는 이종언 감독은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할 때부터 편집을 마칠 때까지 유가족들과 소통하며 영화를 만들었다. 그 누구도 이 영화로 상처입지 않길 바라는 마음 때문이었다. 감독의 진심에 감응한 전도연과 설경구가 출연을 결정했고, 영화는 다가오는 4월 3일 개봉한다.
<생일> 이종언 감독 - 정직하게 있는 그대로를 보여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