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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에 축제 분위기의 새해 첫날과 어울리지 않는 단어가 있다고 개봉이 1주일 밀리긴 했지만, <행복한 장의사>는 웃음과 희망이 있는 영화다. 사는 게 별로 즐겁지 않은 세 사람이 노 장의사로부터 죽음을 경건하게 맞는 법을 배우면서 삶의 온기를 되찾는다는 이야기다. 연기와 음악을 오가며 양쪽에서 다 든든한 자리를 마련한 김창완과 임창정이 주연이라는 점이 또다른 관심거리. 까마득한 선후배 사이인 두 사람은 자살하려다 마음 고쳐먹고 장의사 일을 시작한 판철구, 장의사 자리에 오락실을 차리려는 철없는 청년 장재현 역을 각각 맡아, 새 천년 벽두의 관객을 찾았다.
노래 부를까, 영화할까
김창완
“록하기엔 너무 늙어버렸지”
“맞아. 이게 처음 주연 맡은 영화야. 소감? 누군가 ‘60, 70년대라면 당신 같은 사람은 어림도 없는 일’이라고 그러더군. 맞는 말이지 뭐. 난 영화 하는 거 자체가 좋아. 주연이라고 해봤자 멋있는 영웅도 아니고 그냥 허둥대는 초보장의사에 불과
<행복한 장의사>의 두 주연배우 김창완·임창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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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자가 배고프다고 풀 뜯어먹나? 최성국은 미니 홈피에 자신의 좌표를 이렇게 적었다. 선이 굵은 미남형 탤런트로 멜로드라마에서 자주 보아왔던 최성국이 어느 날부턴가 우릴 웃기기 시작했다. 사정없이. 거슬러올라가보면, 시트콤 <대박가족>에서 미모와 저음에 어울리지 않는 엉뚱한 행동들을 자주 연출했다고 쳐도, 영화로 옮겨온 뒤의 변신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색즉시공> <낭만자객>에서 그는 폼생폼사하려다 망가지고 마는 캐릭터들을, 시침 뚝 떼고 진지하게 연기했더랬다. 신작 <이대로, 죽을 순 없다>에서는 강력반의 막내 형사로서, <투캅스>의 열혈 형사 김보성을 연상시키며 등장했다가, 자신의 선배인 이대로 형사(이범수)를 추종하면서, 한없이 최성국스러워지는 변화의 과정을 보여주었다. 작품 속에서나 오락 프로그램에서나, 그가 웃기는 순간은, 모든 표현이 너무 진지하고 솔직해서, 멜로스러운 외모와 부조화를 이룰 때다. 그는 그런 편견이 불만스
희극지왕을 꿈꾸며, <이대로, 죽을 순 없다>의 최성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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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쉬움이란, 모든 것을 쏟아부은 사람이 마지막까지 가져가야 할 짐인가 보다. 인터뷰 전날 진행된 <가발>의 기자 시사회장에서도, 인터뷰를 위해 기자와 마주한 자리에서도 채민서는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3년 전 그는, 300:1의 경쟁률을 뚫고 (곽경택 감독의 말에 따르면) “튀지 않는 외모”를 가졌다는 이유로 <챔피언>의 유일한 사랑으로 낙점됐다. 신인이 감당할 수 없었던 악의섞인 소문, 시청률에 의해 중요한 설정까지 좌지우지되던 드라마(<진주목걸이>), 평단의 악평이 유난히 신랄했던 코미디영화(<돈텔파파>), 근거없는 정보 때문에 우익영화로 먼저 알려졌던 일본영화(<망국의 이지스>)를 거쳐 그가 선택한 영화, <가발>. 억울한 영혼의 저주가 깃든 가발 때문에 벌어지는 비극을 다룬 이 영화는, 누가 봐도 주연배우의 고생이 훤했다. 모든 것을 친절하게 설명하기보다는 눈빛과 분위기로 감정을 전달하려는 공포영화, 삭발에 특
삭발, 특수분장, 고행의 연기수업, <가발>의 채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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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2일 저녁의 홍익대 앞. 클럽 ‘롤링홀’ 앞 거리에는 서성거리는 젊은이들로 가득하다. 옐로우나인에서 주최하는 ‘뉴 뮤직 긱’(New Music GIG)의 첫 번째 공연. 군데군데 붙은 포스터에는 5인조 펑크록 밴드 ‘줄리엣과 더 릭스’(Juliette & The Licks)의 사진이 선명하다. 여자보컬의 사진을 어디선가 본 듯하다면 줄리엣이라는 이름으로부터 아스라한 기억을 되짚어볼 요량이다. 악마에게 몸을 내맡기던 <케이프 피어>의 순결한 여고생, 살인을 예술로 여기던 <올리버 스톤의 킬러>의 살인마, 상처입은 소년들을 끌어안았던 <길버트 그레이프>의 소녀. 바로 그 줄리엣 루이스가 펑크록 밴드를 이끌고 한국을 찾아왔다.
사람들에게 거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줄리엣 루이스는 이미 2장의 앨범을 발표한 록가수다. 2003년에 밴드 ‘줄리엣과 더 릭스’를 결성한 그는 2003년에 EP <…Like A Bolt Of Lightni
5인조 펑크록 밴드 ‘줄리엣과 더 릭스’ 보컬로 내한한 줄리엣 루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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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박하사탕>을 선보인 후 제작사 이스트필름의 명계남 대표는 보는 사람마다 “<박하사탕>은 안보면 손해인 영화”라고 말하곤 했다. 또 “서울에서만 100만명이 볼 영화”라고 큰소리 치면서 “100만명이 들지 않으면 은퇴하겠다”고 공언하고 다녔다. 듣는 이에 따라서는 농으로 들릴 수도 있는 말이었지만 실없이 던지는 허풍은 아니었다. 지금도 ‘안보면 손해’라는 <박하사탕>에 대한 그의 신념은 조금도 달라진 게 없다. 하지만 ‘서울 100만’은 이룰 수 없는 꿈이었음이 드러난 셈이다.
<박하사탕>은 거의 만장일치에 가까운 호평을 받으면서도 안정적인 상영극장을 확보하지 못해 안타까움을 사고 있다. 이런 상황이 불합리한 배급구조와 지나치게 상업논리에 따르는 극장들의 횡포 탓이라고 판단한 관객들이 <박하사탕> 두번보기 운동을 벌이고 있다. 네티즌들을 중심이 돼 <박하사탕>을 한번씩 더 보고 주변 사람에게
<박하사탕> 제작자, 이스트필름 대표 명계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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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누구의 삶이라도 거대한 진실을 껴앉고 있기 마련이지만, 눈에 띄게 유별난 인생 유별난 인물이 있다. 아직 그의 ‘한삶’을 다 산 건 아니지만 조디 포스터(38)를 두고 이렇게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는 배우이자 감독이며 제작자이고 영화 한편의 출연료로 1500만달러를 거두는 할리우드의 일급 여성스타이다. 여기까지라면 그도 하고많은 재주꾼의 한 사람일 따름이지만, 그는 레즈비언의 우상이자 연인이고 공공연한 페미니스트이기도 하다. 그래서 그로부터 꺼내지는 이야깃거리도 유별나게 풍요롭다. 어느 사이엔가 조디 포스터는 결이 풍부한, ‘하나의 텍스트’가 돼버렸다.
지난해 서울여성영화제에 상영된 <조디 포스터 이야기>는 조디 포스터에게 꽂힌 레즈비언들의 달뜬 시선을 주메뉴로 한 다큐멘터리다. 영화에는 “이십대 후반의 레즈비언들은 조디를 보며 자랐어요. 여성들이 어릴 때 그의 스타 이미지에 자신을 투사했던 건 당연하다고 생각해요”라든가, “부치(레즈비언 연인 사이에서 남성
그(녀), 주류 영화 최초의 여성영웅, 조디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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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궁금한 거 있으세요? 저번에 여진이랑, 소리랑 같이 만나고, 또 이창동 감독님 때문에 통화하고 하면서 다 말한 것 같은데. 요즘 인터뷰 기사가 많이 나서 더 물어볼 것도 별로 없다구요? 하긴 오전에도 인터뷰 하고 왔어요. 일간지라 사진 많이 안 찍을 줄 알았는데, 10통 가까이 찍고는 마지막 컷 하나 건졌다고 하더라구요. 카메라에 많이 익숙해진 줄 알았는데, 아직 멀었나봐요. 그래도 많이 발전했어요. 이제 카메라 앞에 서도 땀은 안 흘리거든요. 그러고 보니 저 1년 새 스타덤 코너 세 번째예요. 그런 배우 흔치 않죠? <박하사탕> 때문에 정말 컸나봐요. (웃음) 하긴, 전엔 시나리오 복사한 거 한 두장 받아서 오디션 하고 그랬는데, 이제 완전한 시나리오가 와요.
저번보다 많이 밝아진 것 같다구요? 그때가 부산영화제 직전이었죠, 아마. 그땐 저 스스로도 이상했어요. 질문 하나 잘못 하면 터져버릴 것 같았다구요? 왜 외국 배우들은 너무 역할에 몰입해서 끝나고 나면
누가 했어도 칭찬받았을 거예요, <박하사탕>의 설경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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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이 차 빌리신 건가요?” 한강 고수부지에서 촬영을 마치고 인터뷰 자리로 옮기기 위해 흰색 밴을 얻어타는 순간 입에서 맴돌았던 질문은, 끝내 발설되지 않았다. 그런 눈치를 챈 건지, “옮긴 (매니지먼트) 회사에서 주더라고요”라고 정재영이 선수를 쳤기 때문이다. 큼직한 가죽 시트의 아늑함을 즐기며 정재영과 밴, 어울리지 않는 두 항의 함수관계를 따지고 있을 즈음 그가 말한다. “이게 아주 어색해요. 밴에서 내가 내리면 사람들이 그럴 거 아녜요. ‘어, 배우는 안 탔나 보네’라고.” 민망해선지, 겸손해선지, 한국 연예계에서 밴이 상징하는 바를 애써 무시하려는 그의 말을 듣는 도중 바퀴가 스르르 멈춘다.
물론 밴의 존재 유무를 떠나더라도, 정재영이 한국 영화계의 대표 배우 중 하나로 성장한 것은 분명하다. <산부인과> <박봉곤 가출사건> 같은 영화에서 아주 미미한 역할을 맡았던 그는 <킬러들의 수다> <피도 눈물도 없이> <실미도&
가죽 의자가 어색한 남자, <웰컴 투 동막골>의 정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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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이란 얼마나 간교한가. 전지현과 함께 찍은 디지털카메라 CF에서 원경에 불과했던 대니얼 헤니(27)는 어느새 같은 CF를 바라보는 우리의 시야를 독차지한다. <내 이름은 김삼순> 이후 헤니는 그저 아름다운 피사체가 아니다. 대중이 알고 싶어 안달내는 비밀을 품은 얼굴을 갖게 됐다. 그리고 그것은 모델이 숙명적으로 질투할 수밖에 없는 배우만의 권능이다. <내 이름은 김삼순>에서 그가 연기한 헨리 김은, 사랑의 변질을 믿지 못해 휘청거리는 여자 희진 곁에 버티고 선 젊은 느티나무였다. 100% 영어 대사로 주연급 인물을 보여주는, TV드라마로서 대담무쌍한 모험을 성공시킨 헤니의 매력은 무엇일까? 먹으로 친 난초 같은 이목구비와 프락시텔레스의 조각 헤르메스를 닮은 토르소? 물론이다. 하지만 많은 여자들은 헤니가 전신은커녕 실물도 드러내기 전에, 희진에게 보낸 비디오테이프에 녹화된 그를 처음 봤을 때부터 마음이 기울었다. 그것은 특별한 미소의 힘이었다. 마른 목을
<내 이름은 김삼순>의 헨리 김 역, 대니얼 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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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떠나는 곳에 죽음이 있으리라는 것을, 두 남자는 모두 안다. 그럼에도, 운명을 믿느냐고 묻는 친구에게 그는 “운명? 내가 바로 신이야”라고 답하며 앞서 떠난다. 오만하지 않으면서도 저항할 수 없을 것 같은 그 말에 미련 따윈 묻어나지 않는다. 어느 뒷골목에 버려져도, 햇빛도 닿지 않는 하수구 어딘가에 묻혀 버려도, 그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다. 오직 친구를 위해 가망없는 싸움에 총을 들었던 이 남자는 속인들의 계산법을 무용하게 만든다. 이것은 삶과 죽음 사이에서 경계를 무너뜨리는 시대 불명의 신화, 오래 전 어디엔가쯤 있었을 법한 남자들의 이야기다. 말 그대로 <영웅본색>인 것이다. 그러므로 주윤발(44)을 설명하는 데 다른 수식어는 필요하지 않다. 그는 그저 ‘영웅’, 눈물 없이도 울고 있다는 느낌을 주는 영웅이다. <영웅본색2>에서 죽음을 향해 가는 그의 발걸음은 영화에 여백 같은 순간을 부여하며, 죽음 직전 연인을 찾는 그의 손길은 누구보다 성실했
내가 바로 신이야, <와호장룡>의 주윤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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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를 끼고 앉은 이미연, 맘에도 없는 ‘보험 가입’을 미끼로 보험설계사와 통화중이다. 시시콜콜 질문을 던지고 반응을 살펴가면서. 복장 체크도 해본다. 굽 낮은 구두, 큼지막한 가방, 무릎길이 치마, 오케이. 저녁시간에 TV를 보면서는, 남편 김승우를 고문한다. “보험 들겠다는 남자가 ‘당신 구두를 닦아주고 싶다’는 둥 이상한 소리를 하면, 다시 만났을 때 그 보험설계사, 기분이 어떨까?” 그 비슷한 질문만 벌써 열두 번째다. 둘만의 오붓한 시간에 불쑥불쑥 끼어드는 영화 얘기가 야속한 남편은 반쯤 포기한 표정으로 묵묵부답. <주노명 베이커리>를 찍던 무렵, 이미연의 어떤 하루다.
다 써먹을 수 없을 게 뻔한데, 그렇게까지 애쓸 필요가 있느냐는 걱정을 들을 때마다, 이미연은 “다른 생각이 안 나는데 어쩌냐”고 되묻곤 했단다. 사랑의 화살이 엇갈려 꽂히는 두쌍의 부부 이야기를 만나고, 3류 소설가를 남편으로 둔 보험설계사 해숙을 만나면서, 도무지 다른 생각을 할 수 없더라
작품수, 열정에 비하면 턱없이 적다, <주노명 베이커리>의 이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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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음악에 무식한 기자, 만나 본 적 없겠죠?”
“이렇게 영화에 무지한 취재원은 만나 본 적 있어요?”
자격지심 어린 물음에 신해철(32)은 명랑한 반동을 보내왔다.
세상을 향한 외침으로 가슴 속을 먹먹하게 하는 송능한 감독의 영화 <세기말>을 신해철이 반주한다는 소식은 너무 당연하게 들려 별반 뉴스처럼 느껴지지도 않았다. 직설과 조롱과 패션을 능숙하게 결합하는 그의 음악에서 우리는 그렇지 않아도 줄곧 모종의 ‘아우성’을 들어왔기 때문이리라. 주도면밀한 군주의 손길로 자신의 예술을 다스리는 이 자신만만한 음악 감독에게, 한 영화의 스탭으로 일하는 경험은 어떤 것일까? 새 앨범 <홈 메이드 쿠키스 & 라이브> 출반에 맞추어 지난 연말 뉴욕에서 귀국한 그에게 그 고충과 행복을 시시콜콜 물었다. 이제 네줄의 필모그래피를 갖게 된 영화음악가 신해철은 당김음과 스타카토가 군데군데 섞인 특유의 말투로 답을 들려줬다.
-근래 재미있게 본 영화가 있
<세기말>의 영화음악, 도발의 뮤지션 신해철을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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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 현장에서 처음 만난 임은경은 수줍고 과묵한 소녀였다. 조심스레 말을 붙여도 세상의 모든 비밀을 품은 듯한 까만 눈동자만을 드르륵 굴릴 뿐, 그의 표정은 어둑했고 그의 입은 좀처럼 열리지 않았다. 그리고 4년이 지났지만, 그에 대한 이미지는 그리 달라지지 않았다. <품행제로> <시실리 2km> <인형사> 같은 영화와 드라마 <보디가드>에 출연했지만 임은경의 느낌은 여전히 신비라는 베일에 둘러싸인 존재였다. <여고생 시집가기>에서 밝은 모습을 보이긴 했지만, 모두가 즐기기 힘들었던 영화인 탓에 그의 ‘변신’은 쉽게 알아차리기 힘들었다. 그러던 그가 이제 TV에서 아주 상쾌하고 씩씩하고 행복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7월16일부터 MBC <!느낌표>의 ‘눈을 떠요’ 코너를 김제동과 함께 진행하는 임은경의 모습은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다. 얼굴엔 밝은 햇살이 그득하고 입에선
데뷔 7년차 배우 임은경이 말하는 자신의 ‘새로운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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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바지를 쓱 벗는다. 멀쩡한 탈의실을 놔두고, 기자가 보는 앞에서.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본의 아니게 그의 팬티 색깔을 보고 만다. 몸매 근사한 거 세상이 다 아는데 꼭 저렇게 뽐을 내야겠냐, 싶어 얄밉지만 이미 봐버린 장면의 잔상이 가시질 않는다. 며칠 전 베니스에서 촬영하고 온 고추장 CF 얘기를 하다가 “처음엔 싫었는데 지금은 그런 게 너무 좋아. 내가 옷을 고추장스럽게 입고 다니는 건 아니잖아”라는 말의 뜻이 분명해진다. 슈트를 갖춰입고 새파란 넥타이까지 매고 나더니 전신 거울에 자기 모습을 지그시 비춰보고 표정없이 말을 잇는다. “음, 됐어, 좋아.” 옷입는 일만 10년을 해온 차승원은, 스크린 밖에 있을 때만큼은 누가 봐도 그 일만 죽을 때까지 할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는 <혈의 누>가 개봉하기 직전에 온라인 팬페이지에 이런 글귀를 남겼다. “죽을 때까지 분투하면서 연기만 하겠다.”
차승원의 시나리오 선택 기준은 “장르가 뭐건 간에 재미있는
멋과 코미디의 이중주, <박수칠 때 떠나라>의 차승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