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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상의 신(神)과 천하의 몹쓸 악인 사이. 루크 에반스의 얼굴을 보고 누군가는 선한 의지를 읽고 누군가는 악한 기운을 읽는다. <드라큘라: 전설의 시작>에서도 루크 에반스는 상반된 얼굴을 연기한다. 이 영화에서 그는 비정한 전사이고 왕이며, 자상한 남편이자 아버지이다. 악마와 어둠의 거래를 한 뒤엔 인간의 피를 끊임없이 갈망하는 드라큘라가 된다. 엄청난 힘을 얻은 대신 저주의 굴레에서 평생 고통을 맛봐야 하는 드라큘라는 브람 스토커의 <드라큘라> 이후 끊임없이 변주되어 되살아난 위험하고도 매혹적인 인물이다. 루크 에반스는 “드라큘라를 연기한 수많은 배우들을 떠올리며 ‘이건 엄청난 도전이구나’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전형에 갇힐 필요가 없었다. <드라큘라: 전설의 시작>은 블라드 공작이 어떻게 드라큘라가 되었는지, 그 “기원”을 짚어가는 영화이기 때문이다. 굳이 벨라 루고시(<드라큘라>(1931)), 크리스토퍼 리(<드라큘라
[루크 에반스] <드라큘라: 전설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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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순례 감독의 차기작을 보려면 시간이 걸릴 거라고 예상했었다. 전작 <남쪽으로 튀어> 때 연출권침해 논란이 있었고 적잖이 홍역을 치렀던 터라 얼마간 쉬고 싶을 거라고 짐작했다. 복귀는 예상보다 훨씬 빨랐다. 이내 차기작을 발표했고 순항했으며 좋은 결과물로 돌아왔다. 2005년 있었던 황우석 스캔들을 극화한 <제보자>는 사회적으로 가치 있는 동시에 영화적으로도 흥미로운 임순례 영화의 방향성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 PD 윤민철(박해일)이 제보자 심민호(유연석)의 도움으로 이장환(이경영) 박사의 줄기세포 조작 사건을 취재하는 내용이다. “이 영화는 진실을 수호하는 분들에 대한 헌사”라고 그녀는 <제보자>에 관하여 일찌감치 선언한 바 있다.
-<남쪽으로 튀어> 직후 <씨네21>과 인터뷰했다. 그 인터뷰가 끝났던 지점에서 시작해보자. “<남쪽으로 튀어>에 대해서는 복기를 좀 해봐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남쪽으로
[임순례] 진실을 수호하는 분들에게 바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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볕 좋은 가을날 서교동 주택가에 자리 잡은 도서출판 강을 찾았다. 평론집 <흔들리는 사이 언뜻 보이는 푸른빛>을 펴낸 정홍수 문학평론가를 만나기 위해서였다. 직접 출판사를 운영하며 책을 펴내고 문학비평으로 문학의 가능성을 타진해온 저자의 작업실에 들어섰다. 지상과 지하 사이, 반지층에 자리 잡은 소담한 공간이 퍽 인상적이었다. 지나치게 도드라지지도, 깊이 침잠하지도 않은 중간 지대의 그 공간이 문학과 세계 사이에서 민감한 촉수를 세우고 서 있는 평론가의 집으로 더없이 적합해 보였달까. 문학에 삶의 진실이 있다고 믿는, 문학을 통해서 삶의 진실을 찾고자 하는 그와 마주앉았다. 뜨거운 커피가 식어갈수록 문학을 향한 그의 깊은 연정은 뭉근히 달아올랐다.
-<소설의 고독>(2008) 이후 두 번째 평론집이 세상에 나왔다.
=대부분 청탁을 받아서 쓴 글들이다. 그게 어느 정도 모였고 전 직장인 문학동네에서 제안을 해와 묶게 됐다. 책을 내고 보니 그냥 내가 살아온 걸
[trans x cross] 울림을, 작은 등대를 찾는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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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부가 선글라스를 끼고 세상에 처음 나왔을 때 그냥 멋있었으면 좋겠어.” “그럼 멋있는 사람을 캐스팅했어야지.” “최대한 멋있게 나왔으면 좋겠으니까 살을 좀 빼줘.” “그러면서 중국집에 데리고 가냐. 에라이~ 앞뒤도 안 맞아.” <슬로우 비디오>의 김영탁 감독의 주문대로였다. 살도 빼고 선글라스도 끼고 멋지게 차려입은 차태현이 여장부(주인공 이름이니 오해 마시라)가 돼 돌아왔다. <슬로우 비디오>는 서른아홉 동갑내기인 두 사람이 <헬로우 고스트> 이후 4년 만에 의기투합한 작품이다. 김 감독은 “태현씨가 합류하면서 내 마이너한 이야기가 대중에게 친근하게 표현될 수 있었다”면서 고마움을 전했다. 손을 뻗으면 금방이라도 닿을 것 같은 자리에서, 상대방에게 부담을 주지 않는 선에서, 담담히 사람들을 웃게 만드는 건 분명 차태현의 재주다. 쉽게 대체될 수 없는 그만의 매력이 과연 이번에도 통할지 지켜보고 싶다. 올해로 데뷔 19년차 배우가 택한 작품, &l
[차태현] 부담 없는 유쾌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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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사카조선고급학교(이하 오사카조고) 럭비부를 통해 재일동포사회를 조명한 박사유, 박돈사 감독의 다큐멘터리 <60만번의 트라이>가 9월18일 국내 개봉했다. 개봉일에 맞춰 영화에 출연한 럭비부원 황상현(오른쪽)과 럭비부 매니저 김옥희(왼쪽)가 한국을 찾았다. 영화에서 장난기 가득하던 까불이 상현은 여전히 개구져보였고 해맑게 웃던 옥희는 어느새 여성미가 철철 넘치는 대학교 4학년생이 됐다. 92년 동갑내기 두 친구는 인터뷰 내내 “하하호호” 웃으며 톰과 제리처럼 티격태격이다. 그러다가도 재일동포 사회에 대해서 물으면 서툰 한국어 실력이지만 각자의 생각을 차분히 말로 옮겼다. 오사카조고에서 보낸 그들의 유년기 이야기를 듣다보니 이것이 곧 <60만번의 트라이>가 아니겠나 싶었다.
-한국은 첫 방문인가.
=상현_그렇다. 정말 미인이 많더라. (인터뷰 장소에 놓인 TV에서 ‘태티서’가 나오자) 티파니가 좋다.
옥희_나는 세 번째다. 유학 중인 친구를 만나러 온 적이
[flash on] 꿈과 희망의 트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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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2015 <레버넌트> <샵리프터스 오브 더 월드> <옐로버드>
2014 <메이즈 러너>
2013 <위 아 더 밀러스>
2011 <와일드 빌>
2010 <나니아 연대기: 새벽 출정호의 항해>
2007 <나의 판타스틱 데뷔작>
TV시리즈
2010 <페이즈>
2008~2010 <스쿨 오브 코미디>
“눈에 띄는 얼굴이라는 말을 많이 듣곤 하는데…. 그런가요? 전 잘 모르겠어요.” 뒤집힌 여덟 팔자 눈썹과 부루퉁하게 튀어나온 입. 과연 윌 폴터는 한번 보면 누구도 쉽게 잊지 못할 외모를 지녔다. 상냥한 인상은 아니지만 폴터는 그 독특한 외모 덕에 몇편 안 되는 출연작에서도 관객의 뇌리에 강한 인상을 남겼다. 데뷔는 열세살 때. 당시 해로디안스쿨에 재학 중이던 폴터는 우연히 <나의 판타스틱 데뷔작>의 오디션을 보게 됐고, 5개월간 수천명의 소년들을 보아왔던 감독 가
[who are you] 윌 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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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곱슬머리와 갈색 피부, 커다란 코를 가진 존 터투로(57)는 30년 동안 주로 이상한 사람들을 연기했다. 인간성 때문은 아니었고, 외모 때문이었다. “영화에선 피부색이 진하면 나쁜 놈이라는 뜻이 된다. 내가 거절한 악역만도 100만개는 될걸?” 돈 밝히는 유대인, 정신이 조금 이상한 유대인, 인종은 모르겠지만 무작정 화만 내는 탈주범…. “나에게 다른 기회를 주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러니 그냥 주어진 것을 받아들이고 이용할 수밖에.”
그리하여 기다리다 지친 존 터투로는 스스로 기회를 만들었다. 자기가 시나리오를 쓰고 연출을 맡은 영화에 자기를 캐스팅한 것이다. 브루클린을 휩쓰는 마성의 남창(男娼), 발음부터 로맨틱한 이름만으로도 이미 외로운 여인들을 사로잡는 지골로 휘오라반테로, 대담하고도 뻔뻔하게 본인을 데려다 썼다.
<지골로 인 뉴욕>은 폐업한 서점 주인(우디 앨런)이 멋대로 영업을 하고 다니는 바람에 느닷없이 몸을 팔게 된 중년 플로리스트의 이야기다.
[존 터투로] <지골로 인 뉴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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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보자>에서 송하윤은 윤민철(박해일) PD를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는 조연출 김이슬을 연기한다. 부스스하게 빗지도 않은 머리에 하얗고 꺼칠한 민낯, 밤새 일하다 조는 바람에 입가에 생긴 침자국까지 일과 피로에 찌든 모습이 제법 사실적이었다. 만나고 나서야 그 ‘리얼리티’를 납득할 수 있었다. 인터뷰 때문에 다 녹아 물이 된 빙수를 후루룩 후루룩 마시는 송하윤의 모습엔 거짓이 없었다.
-<태릉선수촌> <아기와 나> <나는 공무원이다> 같은 전작들에서 대개 철부지 역을 맡아서, 사회파 드라마에 어울릴 줄은 생각도 못했다.
=민감한 부분이 있었기 때문인지 시나리오가 집으로 따로 배달돼왔다. 바른 자세로 앉아 경건한 마음으로 읽었다. 보통은 처음 읽을 때 집중해서 한번 딱 읽고 외워버린 뒤 다시 안 보는 편인데, <제보자>는 대본이 다 닳아서 새 책을 받아야 했을 정도로 밑줄쳐가며 공부했다. 사전지식이 없어선 입에 붙는 자연스러운 말이
[송하윤] <제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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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입
<황금시대> <비긴 어게인> <위크엔드 인 파리> <노예 12년> <가장 따뜻한 색, 블루> <서칭 포 슈가맨> <브레이킹 던 part2> <브레이킹 던 part1> <이클립스> <뉴 문> <트와일라잇> 외 다수
제작
<호우시절> <봄, 눈>
투자
<해안선>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 <올드보이> 외 다수
인터뷰 날 한번 잘 잡았다. 9월17일 수입•배급사 판씨네마가 들여온 <비긴 어게인>이 개봉 한달여 만에 관객수 200만명을 돌파했다. 다양성영화가 상업영화를 제치고 박스오피스 예매율 1위까지 했으니 겹경사다. 사무실에 들어서자 직원들이 “우리 모두 놀라고 있다”라며 활짝 웃어 보인다. “<위크엔드 인 파리>의 린제이 덩컨 같은 느낌?”이라는 사전 정보(?)를 입수하지 않
[STAFF 37.5] 궁금하면 옆길로 가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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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 한 인터뷰에서 야마시타 노부히로 감독은 자신을 ‘이야기보다 캐릭터에 끌리는’ 연출자라고 소개한 적이 있다. 그의 11번째 영화 <모라토리움기의 다마코>는 <린다 린다 린다> <마츠가네 난사사건> <마을에 부는 산들바람> 그리고 <마이 백 페이지>로 이어지는 전작들 안에서는 잘 이해되지 않았던 그의 이 말을 가장 정확하게 실천한 영화이다. 이 영화의 주인공 다마코는 아무 일도 하지 않은 채 집에 틀어박혀 빈둥대면서 ‘어른’이 되기를 잠시 미룬 ‘잉여청춘’이다. 하지만 아버지에게 얹혀살고 있는 데 대한 미안함이나 잉여가 되어버린 자신의 처지에 대한 머쓱함을 먹고, 소리치고, 투덜대는 것으로 에둘러 표현하는 그녀는 최근 본 다른 어떤 영화의 캐릭터보다도 매력적이다. 여기에 종잡을 수 없는 다마코를 연기한 마에다 아쓰코가 일본의 정상급 아이돌 가수 출신이라는 사실은 조금 놀랍기까지 하다. 무엇보다 사계절이라는 긴 시간 동안, 아무
[야마시타 노부히로] 이런 아버지는 없어, 그러니 위기의식을 갖고 살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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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연석의 봄날이 시작됐다. 상반기 드라마 <응답하라 1994>(이하 <응사>)의 칠봉이를 연기하며 여성 시청자를 끙끙 앓게 만들었던 유연석이 ‘엄마’와 ‘아빠’가 되어 돌아왔다. 예능프로그램 <꽃보다 청춘>과 영화 <제보자>에서 각각 맡은 역할이다. <꽃보다 청춘>의 자연인 유연석은 마치 칠봉이에게 추진력과 꼼꼼함을 한 스푼씩 끼얹은 것 같다. 어물어물하면서도 애정이 뚝뚝 묻어나는 느린 말투며, 동료들에게 여행의 즐거움을 알려주고 싶다는 일념 하나로 닳도록 여행 책자를 들여다보는 진득함이며, 동료들의 양말을 손빨래해주는 다정함까지. “무척 사람을 잘 챙기고 세심한 친구다. 얼마 전 아프리카에 갔다 와서는 선물이라며 커피를 안겨주더라.” 유연석의 “오랜 롤모델”이자, <제보자>에 함께 출연한 박해일도 유연석의 다정함에 제대로 마음을 뺏긴 듯했다(박해일이 이 말을 할 때, 유연석은 만면에 미소를 띠고 박해일을 바라봤다).
[유연석] 양심에 마음을 뺏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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촉이 발동하면 일단 전진할 것. 한번 뛰어든 취재는 어떤 외압에도 흔들리지 말 것. 제보자는 무슨 일이 있어도 보호할 것. 밝혀낸 진실은 세상에 알릴 것. <제보자>에서 박해일이 연기한 윤민철은 이 명령어에 충실한 시사 방송 프로그램 PD다. 뚝심 있는 저널리스트라는 얘기다. 이장환(이경영) 박사와 함께 줄기세포 연구를 해온 연구원 심민호(유연석) 팀장으로부터 “줄기세포는 하나도 없다”라는 제보를 받았을 때 증거가 없음에도 앞뒤 돌아보지 않고 취재에 뛰어든 것도 그래서다. 윤민철 캐릭터에 어떤 배우가 어울릴까 떠올렸을 때, 임순례 감독은 “박해일 외엔 다른 배우가 떠오르지 않았다”고 밝혔다.
강산이 한번하고도 반이나 더 바뀌었다. 데뷔작 <와이키키 브라더스>(2001) 이후 박해일이 임순례 감독과 <제보자>로 재회한 건 무려 14년 만이다. 임순례 감독이 극단 동숭무대 연극 <청춘예찬>을 보고 <와이키키 브라더스>의 고등학생
[박해일] 진실을 향해 질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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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석아, 뒤에 일정 없지? 인터뷰 다 끝나면 내려와. 같이 밥 먹고 가자.” 먼저 인터뷰를 끝낸 박해일이 친근하게 유연석을 불렀다. “네, 형. 먼저 가 계세요.” 유연석도 상냥하게 답했다. 함께 영화에 출연하는 건 임순례 감독의 <제보자>가 처음이지만 두 배우는 가늘고 긴 인연을 오래전부터 이어왔다. 유연석은 데뷔 초부터 박해일을 “오랜 롤모델”이라고 얘기해왔고, 두 배우는 <짐승의 끝>과 <늑대소년>에 출연해 각각 조성희 감독과 가까운 사이였다. 두 배우가 사석에서 처음 만난 것도 조성희 감독이 주최한 모임이었다고 한다. 유연석이 “그 자리에 해일이 형도 계시다기에 잘 보이고 싶어서 제가 비싼 재킷까지 입고 갔었어요”라고 말하자 박해일이 장난기 어린 말투로 대꾸한다. “어, 처음 보는 친구가 이상한 가죽잠바 같은 걸 입고 왔더라고.” <제보자>에서도 두 배우는 끈끈한 신뢰로 이어져 있다. 방송국 PD 윤민철(박해일)은 아무런 증거도 없
[제보자] 믿고 따르는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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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는 메시지다.” 미디어아트 비엔날레인 ‘미디어시티서울 2014’를 찾은 아티스트 호신텅은 마셜 매클루언의 꽤 오래된 명제를 물리적으로 실현시켰다. 이번에 전시된 ‘홍콩 인터-비보스 영화제’는 가상의 영화 28편으로 이뤄진, 영화 없는 영화제다. 홍콩현대미술상 전시와 상하이비엔날레(2012)에서 호평받으며 2012년 홍콩예술진흥상을 수상한 이 전시는 영화 스틸, 포스터, 시놉시스, 예고편까지 모두 가상으로 이뤄졌지만 실제 열리는 영화제와 다를 게 없는 효과를 발휘한다. 관객은 없지만 영화적 체험은 존재하는 색다른 경험의 끝에서 86년생 젊은 작가에게 영화의 오래된 미래에 대해 물었다.
-영화 없는 영화제란 컨셉이 신선하다. 어떻게 구상하게 됐나.
=해마다 홍콩국제영화제를 관람하면서 답답했던 부분이 있었다. 10곳이 넘는 장소에서 동시다발로 진행되다 보니 분명 ‘영화’제인데도 원하는 영화를 제대로 볼 수 없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생기더라. 그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에서 출발했다.
[flash on] 영화관람, 일종의 종교 행위와 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