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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나리오작가 찰리 카우프먼은 <존 말코비치 되기>가 다른 어떤 유명인사도 아닌 존 말코비치에 관한 이야기여야 한다고 고집했다. 입에 착착 달라붙는 성(姓)의 발음도 발음이지만 (남녀노소가 오직 ‘말코비치’라는 말로만 대화하는 명장면을 추억해보라), 카우프먼이 꼽은 더 중대한 이유는 이 배우의 중심에 들어앉은 ‘불가지성’(unknowability)이었다.
그는 무슨 생각일까? 어떤 기분일까? 말코비치는 고도로 오만한 동시에 공손해 보인다. 악역을 연기하는 그의 분노는 대개 폭발보다 암시를 통해 우리를 소름끼치게 한다. 소싯적부터 극단을 결성해 연출까지 나아간 엄숙한 면모의 배우이면서도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보이는 데에 코털만큼도 개의치 않는다. 연기 리서치를 의미 없게 여긴다는 점도 유명하다. <마음의 고향>에서 시각장애인 역을 맡은 그를 영화사가 특수학교에 보내놨더니 딱 2시간 듣고 땡땡이를 쳤는데 결국 오스카 후보 지명을 받았다. 활동 분야는 영화제작부터 오
[trans × cross] 말코비치, 말코비치? 말코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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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지원 감독은 혜성처럼 등장한 독립애니메이션계의 기대주다. 대학 2학년 때 만든 첫 단편 <코피루왁>으로 2010년 인디애니페스트 대상을 수상해 주변의 관심을 한몸에 받았다. 그 후 4년, 한지원 감독이 차곡차곡 쌓아올린 성과를 극장에서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왔다. <코피루왁>을 시작으로 <학교 가는 길> <럭키 미> <사랑한다 말해> 4편의 단편을 묶은 <생각보다 맑은>이 극장 개봉을 앞두고 있다. 단편을, 그것도 학창 시절 작업과 졸업작품을 묶어 극장용으로 개봉하는 건 이례적인 일이지만, 반대로 말하자면 그만한 완성도를 지녔다는 의미다. 기존 극장판 애니메이션에서는 쉽게 찾아보기 힘들었던 신선함과 참신함은 기본이고 청춘의 고민을 솔직하고 깔끔하게 담아 대중성도 충분히 갖춘 수작이다. 어쩌면 한국 독립애니메이션의 내일을 맑게 해줄 한지원 감독에게 첫 극장 개봉까지의 과정을 들었다.
-얼마 전 첫 시사를 마쳤다.
[flash on] 한국 독립애니메이션의 내일을 맑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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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광주에서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이 개관한다. 수도권에 집중된 문화예술 분야의 균형 발전을 위해 10년 이상 추진해온 노력의 결실이다. 아시아문화전당의 콘텐츠를 채울 예술극장은 본격적인 개관에 앞서 1월부터 7월까지 한달에 한번 ‘컨템포러리 토크’를 기획했다. 영화, 연극, 전시 등 동시대 공연예술을 이끌고 있는 여러 예술가를 한자리에 불러 생생한 이야기를 나눠보는 보기 드문 자리다. 아시아 예술극장을 기획총괄하고 있는 김성희 예술감독은 차이밍량, 아피찻퐁 위라세타쿤, 헬리 미나르티, 프리 라이젠 등 얼핏 조합하기 힘들어 보이는 각국의 아티스트들을 한자리에 불러 모았다. 동시대 아시아 예술의 현재와 공연예술 분야의 비전을 확인할 수 있는 참신한 기획이다. 그간 공연예술 분야에서 경계를 넘나들며 쌓아온 역량을 유감없이 발휘한 김성희 예술감독에게 동시대 아시아 공연예술에 대해 물었다.
-아시아 예술극장이 추구하는 방향은 무엇인가.
=현재 경제, 정치 분야뿐 아니라 문화 영역의 지도도
[flash on] 아시아를 중심으로 사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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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궁금했어. 진짜 네가 누군지. 숨는 놈 말고 견디는 놈 말고 네 인생을 상대하는 놈. 있기는 하냐?” 승민의 도발은 수명을 바꿔놓았다. 나중에야 수명은 이미 사라지고 없는 승민에게 뒤늦은 답을 건넨다. “나야. 내 인생을 상대하러 나선 놈, 바로 나.” 정유정 작가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내 심장을 쏴라>. 이민기(오른쪽)는 갇혀서 미친놈 승민을, 여진구(왼쪽)는 미쳐서 갇힌 놈 수명을 연기한다. 이민기와 여진구에게도 <내 심장을 쏴라>는 지금까지의 그들을 똑바로 마주하게 만든 특별한 작품이다. 수리정신병원 안에서 그들은 어떤 시간을 보냈을까. 미친놈들의 정신병원 동기 시절 이야기가 궁금해 이민기와 여진구를 나란히 불러 앉혔다.(<내 심장을 쏴라>의 크랭크업을 얼마 앞두지 않은 시점인 2014년 7월18일에 진행된 인터뷰입니다.)
-씨네21_원작에선 건장하던 승민과 가냘픈 수명이 이민기와 여진구를 만나며 느낌이 많이 달라졌다. 시작은
[여진구, 이민기] <내 심장을 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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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2015 <오늘의 연애>
2014 <모모살롱>
드라마
2012 MBC <아들 녀석들>
2011 MBC 시트콤 <몽땅 내 사랑>
<오늘의 연애>에서 18년 친구 사이인 준수(이승기)와 현우(문채원)가 거의 매일 들르는 술집에서, 리지는 그 술집 주인이자 준수의 친구(고윤)를 짝사랑하는 아르바이트생으로 출연한다. “내가 너무도 좋아하는 로맨틱 코미디 장르에서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제의가 들어왔을 때부터 무조건 내가 하고 싶다고 졸랐다. 내 짧은 연기 인생(?)에서 가장 ‘화끈’했던 러브신이 편집된 건 너무 아쉽지만. (웃음)” 그럼에도 박진표 감독에 대한 신뢰는 상당하다. <내 사랑 내 곁에>(2009)에 브라운아이드걸스의 가인을 캐스팅했던 박진표 감독은 ‘매의 눈’을 가진 감독이기도 하다. 리지에 따르면 자신의 평소 말투나 동작들을 캐릭터에 적극 반영해줘서 고맙다고.
2010년 걸그룹 애프터
[who are you] 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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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어부 프로젝트(이하 어어부)는 무엇이다, 라고 규정하려는 건 바보 같은 짓이다. 좀처럼 들어본 적 없는 음색의 보컬, 기이한 사운드, 그보다 더 파격적인 앨범 구성은 어어부를 규정 불가한, 아니 규정을 허하지 않는 밴드로 만들어버린다. 어어부의 보컬이자 작사를 담당하는 백현진과 작곡과 편곡을 책임지는 장영규 두 기인이 오랜만에 정규앨범 ≪탐정명 나그네의 기록≫을 발매(2014년 12월18일)했다. 앨범 제목부터 궁금증을 자아내더니, 앨범의 구성을 들여다보면 더욱 기묘해 도통 빠져나올 수가 없다. 대강의 내용은 이러하다. 한 남자가 있다. 그는 남한에 거주하는 40대 이혼남. 그의 직업은 탐정이며 탐정명은 나그네다. 그가 쓴 1년간의 일기 혹은 일지 뭉치를 누군가가 주워든다. 그리고 일기는 뒤죽박죽 뒤섞인다. 그러니까, 이 앨범에 수록된 곡들은 모두 그 남자의 어떤 하루들이 무작위로 섞인 모음이다. 어어부는 어째서 나그네를 앞세우고 나타난 걸까. 음악뿐 아니라 영화와도 범상치 않은
[trans × cross] 탐정명 나그네의 분노와 농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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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를 강타한 한류스타의 호방함이란. 이민호는 141개국을 도는 4개월여의 글로벌 투어 <2014 리부트 이민호(RE:MINHO)>를 성공적으로 마치고 며칠 전 귀국했다. 여독을 다 풀기도 전에 <강남 1970>의 홍보에 뛰어들었지만 이민호에게 이 정도 바쁜 일정쯤은 익숙해 보였다. 인터뷰 중에도 이민호는 천진함과 당당함을 넘나드는 차세대 셀러브리티로서의 애티튜드를 한순간도 잃지 않았다. “피곤하지 않냐고요? 벌써 4, 5년째 계속하고 있는 투어라 이젠 무대 위에서 즐겁게 놀고 있어요. 노래를 너무 많이 불러서 목도 다 쉬었네요. 하하하.” 무엇보다 이민호는 정말 즐거워 보였다. 쉴 틈 없는 일정과 자신을 향한 대중의 환호 모두가 못 견디게 좋다는 듯.
드라마 <시티헌터>의 이윤성, <신의>의 최영 장군, <상속자들>의 김탄은 모두 필요 이상으로 고민하고 방황하는 청년들이었다. 밝고 명랑한 이민호의 실제 모습과는 사뭇 다른
[이민호] 더 깊어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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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아르에 자주 불려나가는 배우들이 있다. 김래원도 그중 하나다. 유하 감독은 이미 김래원에게 한번 러브콜을 보낸 적이 있다. “그 반대예요. 제가 오히려 유하 감독님을 꼭 뵙고 싶었죠. 하필 다른 작품과 겹쳐 고사했는데 이번에 불러주셔서 적극 참여했어요.” <강남 1970>에서 김래원이 연기한 백용기는 “그냥 나쁜 놈”이다. “태생부터 야망이 넘치고 욕심 많은 친구예요. 영화 안에서 용기가 왜 이렇게까지 되었는지에 대한 배려는 사실 없어요. 그래서 감독님을 직접 찾아뵀죠. 감독님은 ‘그냥 깡패’라고 가볍게 일축하시더라고요. 그 말의 행간을 파악하고 나니 바로 수긍이 됐죠.” 김래원에 따르면 <강남 1970>에서 백용기의 몫은 크지 않다. 하지만 김래원에게 <강남 1970>은 “배우가 작품 안에서 해내야 할 몫의 의미”를 깨우쳐준 중요한 작품이다. 김래원은 인터뷰 도중 “이 작품은 종대의 이야기”라고 몇번이나 힘주어 말했다. “용기는 종대만큼 내면이 깊
[김래원] 여유를 배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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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적등본에 이름도 올리지 못한 두 소년, 종대와 용기는 서로에게 기대며 자랐다. 친형제 이상의 우정을 나누며. 김래원과 이민호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드라마 <펀치> 촬영이 끝나는 대로 함께 시간을 보내기로 했어요.”(김래원) “데뷔 전부터 알던 사이라 종대와 용기의 관계를 연기하기도 어렵지 않았어요.”(이민호) 촬영을 하는 동안에도 이민호는 김래원의 곁에 딱 붙어 쉴새없이 말을 걸어댔다. 김래원은 그런 이민호를 귀엽게 바라보며 내내 입가에서 미소를 내려놓지 않았다. 너그럽고 다정한 형, 솔직하고 쾌활한 동생이었다. 시작은 같았으나 다른 길을 걷게 된 김종대와 백용기처럼, <강남 1970>이란 영화는 김래원과 이민호에게 각각 다른 형태의 배움을 안겼다. 얻은 것 한 가지는 같다. 진짜 ‘남자’ 되기.
[이민호, 김래원] 두 남자가 배운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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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영화의 든든한 맏이, 쓰마부키 사토시는 최근 누군가의 아들을 연기하는 일이 늘었다. 야마다 요지의 <동경가족>(2013)에선 분방한 막내아들 쇼지를, 이시이 유야의 <이별까지 7일>에서는 가족 문제로 속을 끓이는 첫째아들 코스케를 연기했다. 1966년의 인기 드라마 <젊은이들>의 최근 리메이크 버전에서는 동생들을 먹여살리기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맏아들 아사히가 되었다. 자꾸만 누군가의 아들이 되어 나타나는 이유에 대해 묻자 그는 <이별까지 7일>을 예로 들었다. “‘가족’은 인간의 영원한 테마다. 내가 작품에 참여함으로써 (관객이) 이상적인 가족의 의미에 대해 좀더 생각할 수 있게 된다면 좋겠다.” 어머니(하라다 미에코)의 시한부 판정으로 가족이 안고 있는 깊은 문제들이 표면에 드러난다. 장남 코스케는 그 중심에서 가족의 변화를 이끌어낸다. <이별까지 7일>에 이어 이시이 유야, 이케마쓰 소스케와는 또 한번 작업을 함께했다.
[쓰마부키 사토시] <이별까지 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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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나먼 페루에서 혼자 런던에 온 꼬마 곰 패딩턴은 기차역에 오도카니 앉아 있다가 브라운 부인의 눈에 띈다. 그리고 우여곡절을 거쳐 가족이 된다. 빨간색과 겨자색을 즐겨 입는, 꼬마 요정처럼 친절하고 발랄한 엄마 브라운 부인, 겉은 까칠하지만 속내는 보드라운 큰딸과 마냥 천진하고 즐거운 작은아들, 그리고 아빠 브라운씨, 그는… 곰돌이를 닮았다. 길거리에서 굴러들어온 패딩턴이 싫다고 자꾸 내치지만, 패딩턴과 나란히 있으면 종(種)을 초월하여 영락없이 부자지간인, 커다란 인간 곰돌이다. 아무리 차갑게 보이려고 애써도 그 외모 때문에 자꾸만 푸근해진다.
이 남자, 작고 동그란 파란 눈과 조그맣게 오뚝 솟은 코, 재미있는 곱슬머리, 동그스름한 얼굴과 둥근 배를 가진 영화 <패딩턴>의 아빠는 휴 보네빌이다. 어디서 봤는지는 모르겠지만 분명 눈에 익은 배우. 20년 넘게 무대와 TV, 라디오, 영화를 넘나들며 영국의 얼굴과 목소리가 되었던 그도 자기를 제대로 알고 있어, 자신과 가
[휴 보네빌] <패딩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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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관을 쓰려는 자, 그 무게를 견디라고 했던가. 어떤 역할을 맡든 완벽하고 치열하게 파고드는, 그래서 그 빛나는 성취의 왕관이 얼마나 매혹적인 것인지 잘 알고 있는 배우에게도 종종 그가 감당해야 할 왕관의 무게는 버겁게 느껴지는 편이다. 지난 2014년 상반기까지 원나라의 황후가 된 고려 여인, 기황후를 연기했던 하지원의 심정이 바로 그런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모든 근육의 움직임을 허투루 하지 않으며 끊임없는 연습이 수반되어야 했던 작품인 <기황후>는 그녀에게 연기 대상을 안겨주었지만 몸과 마음의 피로 또한 함께 주었다. 그런 상황에서 하지원에게 찾아온 <허삼관>은 계산하지 않는 연기와 유쾌한 동료들, 상상의 즐거움을 다시금 느끼게 해준 청량제 같은 작품이었다.
-오늘 촬영을 지켜보니 하정우와 눈만 마주쳐도 웃더라.
=진짜 웃긴다. 내가 웃음이 많고 재미있는 걸 좋아하는 성격이긴 하지만 (하)정우씨의 웃음코드와도 잘 맞는 것 같다. 현장에서도 연기할 때를
[하지원] 늘어진 티셔츠 입고 맘껏 놀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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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정우는 철저한 계획자다. <허삼관>의 감독 겸 주인공 허삼관 역을 완벽하게 소화하기 위해 그는 무서울 정도로 시나리오에 파고들었고 프리 프로덕션에 온 힘을 쏟았다. 감독인 자신이 작품을 완벽하게 통제할 수 있어야만 배우로서 연기에 집중하고 드라마 안에서 자유롭게 유영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것이 곧 희극적 인물 허삼관이 진한 부성애를 깨달아가는 대장정 <허삼관>을 만든 하정우의 제일원칙이었다.
-첫 연출작 <롤러코스터> 이후 1년을 조금 넘기고 곧바로 두 번째 연출작을 내놨다. 여러 작품을 동시에 진행하는 멀티 플레이어형 배우라는 건 알았지만 감독 하정우와 이렇게 빨리 재회할 줄이야.
=주인공으로 캐스팅된 후 제작사로부터 감독 제안을 받았을 때 가슴이 막 뛰더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롤러코스터>를 끝내고 상업영화를 제대로 한번 해보고 싶었고 <허삼관>이라는 산을 넘으면 성장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출연을
[하정우] 엉덩이 힘으로 끝까지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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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크리스마스이브. <허삼관>의 감독 하정우는 하지원에게 <허삼관>에서 허삼관, 허옥란으로 부부의 연을 맺자고 프러포즈했고 그날 비로소 결실을 맺었다. 그로부터 정확히 1년 후, 2014년 크리스마스이브에 두 사람은 <허삼관>을 완성해 스튜디오를 찾았다. 감독이자 주연배우로 <허삼관>을 책임진 하정우에게서는 위화 작가의 <허삼관 매혈기>를 스크린으로 옮겨온 과정을 세세하게 전해들었다. 시대극 속에서 처음으로 엄마 역을 맡으며 배우로서 변화를 시도한 하지원에게서는 생생하고 유쾌했던 현장의 추억을 들을 수 있었다. 동갑내기 두 배우가 들려줄 허삼관네 이야기 <허삼관>(1월15일 개봉)을 미리 만나봤다.
[하정우, 하지원] 許許 河河 好好(허허 하하 호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