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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다, 지극히 이성적인 경제활동이다인상비평 혹은 여성학 에세이로 풀어낸 결혼에 대한 경제학★1적분석경고: 영화를 보기 전에, 먼저 이 글을 읽지 마시오!해도 후회. 안해도 후회. 결혼은 미친 짓일까? 당신은 당신의 배우자와 검은 머리 파뿌리 될 때까지 `죽어도 좋은` 변함없는애정을 견지할 수 있는가. 일부일처제라는 해묵은 판타지에 과연 돌파구는 있다고 믿는가. 여기, 그 모든 의문에 관한 한편의 도발적인보고서가 있다. 욕망의 거래소인 결혼시장의 본질은 무엇이며, 결혼을 통하여 얻을 수 있는 만족의 극한점은 무엇인가? 어떻게 하면합리적으로 욕망을 추구할 수 있는가? 공식적 의미의 결혼 뿐이 아닌 비공식적인 결혼인 동거나 사실혼까지를 포함하는 새로운 `결혼`의개념을 소개한다.대관절 결혼이 무엇이며, 무엇하자는 것일까. 애들은 가라! 결혼시장에 분할혼을 허하라. 연대박사과정에 있는 황진미씨의 원고는한편의 흥미로운 딴죽걸기이다.편집자어떤 이는 이 영화를 보고, 결혼은 정말 미친 짓이라는
인상비평 혹은 여성학 에세이로 풀어낸 결혼에 대한 경제학적 분석(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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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브리 스튜디오는 <천공의 성 라퓨타>로 시작해, <이웃집 토토로> <원령공주> <추억은 방울방울> 등 무수한 수작들의 모태가 되어왔다. 메이저 스튜디오 시스템을 잘 견디지 못하던 고집쟁이 미야자키 하야오가 다카하다 이사오와 함께 1985년에 설립한 이곳은 재패니메이션의 산실이 되었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국내 개봉을 앞두고 지브리 스튜디오와 미야자키의 꿈이 영근 지브리 박물관을 찾았다.편집자‘세계를 움직이는 재패니메이션의 산실’, 이라고 하기엔 지브리 스튜디오는 작고 아담했다. 도쿄 교외의 고가네이시 주택가에 자리한 이 3층의 목조 건축물은, 누군가 ‘여기가 바로 거기’라고 말해주지 않으면 그냥 지나쳐버릴 만큼, 별난 구석이 없었다. 대부분 2층인 주변 주택들보다 조금 높고, 조금 넓을 뿐. 유난스러운 게 있다면 흰색 벽을 타고오르는 담쟁이덩굴과 건물을 둘러싼 키 큰 나무들이다. 가로 50cm가 넘지 않을 만큼 자그마한
미야자키 하야오의 지브리 스튜디오 탐방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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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야자키 하야오 인터뷰10살 된 친구 딸을 위해 이 영화를 만들었다 “10살 된 친구 딸을 보면서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를 만들겠다고 생각했다. 이 영화를 구상하면서 생각하기가 귀찮아 온천장을 지브리 스튜디오라고 생각하고 이야기를 풀어갔다. (웃음) <센과 치히로…>는 센과 같은 10살짜리 어린아이가 가정을 떠나 다른 사람이 주는 밥 먹고, 그러면서 느낀 점들을 그린 영화다.” 기자들의 질문이 시작되기 전, 미야자키 하야오는 이렇게 먼저 이야기의 말문을 열었다. 이어 그는 기자들의 딱딱하고 어려운 질문에 대해 쉽고 평이한 대답을 돌려주었다. 숲 속의 예쁜 집 같은 그의 아틀리에에서 열린 한 시간의 인터뷰는 국내 개봉을 앞두고 있는 <센과 치히로…>에 집중됐다.지브리 작품 가운데 자연친화적 작품들이 많다. 당신이 생각하는 자연은.어려운 질문이다. 자연은 두 가지 의미를 갖는다. 인간의 생존의 수단이면서 재해와 죽음을 포함하고 있다. 인간은 문명을
미야자키 하야오 & 스즈키 도시오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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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다 함께 길을 잃자”(Let’s Lose Our Way Together). 미야자키 하야오가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을 제작하면서 함께 진행한 지브리 박물관은 <센과 치히로…>과 유사한 컨셉으로 만들어졌다. 그래서 박물관 안으로 들어가면 길을 잃어버리기 십상이다. 자신이 선 곳이 1층인지, 2층인지 헷갈릴 때도 많다. 아이들은 미로 같은 복도를 헤매며, 엉뚱한 곳에 나 있는 문을 열어보며 즐거워한다. 박물관이란 딱딱한 명칭이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곳, 이곳은 미야자키의 꿈이 총집결된 ‘아이들의 낙원’이다. 아이들이 만지지 못하는 건 아무것도 없다. 미야자키가 그린 원화라도 상관없다. 이같은 ‘방임’으로 인한 부작용은 박물관쪽이 기꺼이 감수한다.도쿄 도미타카시 이노바시라 공원 안에 자리잡은 지브리 박물관은 건물 전체에 미야자키의 손길이 묻어 있다. 건물 설계는 물론 내부 소품 하나하나 직접 미야자키가 그리고 만졌다. 지브리 박물관 문양이 찍힌 벽돌에서,
지브리 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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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나이 여덟살 때 <선셋대로>를 처음 봤는데, 그땐 그냥 웃긴 영화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호러영화라고 결론짓게 됐다. <선셋대로>는 할리우드를 가장 정직하게 묘사한 영화고, 할리우드는 그 자체로 충분히 공포스럽기 때문이다. 그 영화는 나로 하여금 카메라 뒤의 삶은 어떤 것인지 생각하게 만든다. 모든 위대한 호러영화는 관객이 영화 속 괴물 캐릭터에 공감하고 연민하게 만드는데, 이 영화 역시 글로리아 스완슨과 나를 동일시하게 만든다.” 칸영화제가 오매불망 기다리던 감독 마틴 스코시즈의 첫 마디에 많은 이들이 웃음을 터뜨렸지만, 그들 대부분은 웃은 것을 금세 후회한 것 같았다. 그렇지 않았다면, 3천명이 운집한 뤼미에르 대극장의 폭소가 삽시간에 수그러질 수는 없었을 것이다. 마틴 스코시즈와의 만남은 그처럼 거장의 긴 한숨을 엿들은 불경, 그 죄책감으로부터 시작됐다. 알려지지 않은 뉴욕의 과거를 찾아서 마틴 스코시즈는 올해 칸을 찾은 게스트 중
마틴 스코시즈, 신작 <갱스 오브 뉴욕>을 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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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명기 타는 동안, 기사의 마음도 탔겠지?2001년 10월1일, 부산 동래별장│43차 촬영 추석 연휴 기간 내내 스탭들은 부산에 붙들려 있다. 동래별장이라는 이 멋진 일식풍의 고가(古家)는 박정희의 별장이었다가 뒤에 요정을 거쳐 지금은 큰 일식 요리집으로 바뀐 곳이다. 그런 사연인지라 빌리는 과정도 어려웠고 겨우 빌린 게 영업을 하지 않는 연휴 즉 추석 전후 3일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꼭 빌려야 했다. 이런 독특한 분위기 때문에 일상적인 가옥보다 훨씬 특별한 곳- 영화 속에서 SI의 안전가옥 같은 곳으로 쓰이기 딱 알맞다. 이 장소에서 석과 희수의 유일한 멜로도 만들어진다. 어제 무척 많은 수의 컷들을 소화했지만 오늘 내일 사이 낮-밤-낮에 걸쳐 40여컷을 찍어내야 한다. 더구나 어젠 발전차가 불이 나는 사고로 국내 하나뿐인 새 조명기 루비세븐과 아우라 소프트가 타버렸다. 드러내진 않지만 염기사 속도 그렇게 까맣게 탔을 것이다. 오늘은 그런 대로 순조롭게 진행된다. 하지만 정작
정윤수 감독이 쓴 <예스터데이> 1000일의 제작 기록(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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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갱스 오브 뉴욕>은 길지 않은 미국 역사에서 가장 혼탁하고 어지러운 시절이었던 19세기 초반의 뉴욕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초기 이민자들이 평화로운 공존을 거부한 채 갈등하고 다투고 죽고 죽이는 사이, 남북전쟁이 발발하고, 그 와중에 아일랜드계 노동자들이 폭동을 일으키는 1860년대까지, 그 자체로 드라마틱했던 격변의 시대를 이야기의 배경으로 두르고 있다.이야기는 당시 뉴욕에서 기득권을 누리고 있던 초기 이민자의 사악한 리더, 그에게 아버지를 잃고 오랜 세월 복수를 꿈꾼 아일랜드 소년, 그리고 그들 두 남자의 사랑을 받는 바람 같은 여인을 중심으로 펼쳐진다. ‘도살자 빌’로 통하는 빌(대니얼 데이 루이스)은 미국에 정착한 초기 이민세대로서, 과격한 이민반대주의자다. 밀려드는 이민자들을 무단침입자로 규정한 빌과 그의 패거리는 아일랜드 이민자들의 정신적인 지주인 발론 신부(리암 니슨)와 그의 추종자들을 살해한다. 발론 신부의 어린 아들 암스테르담(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은 현
<갱스 오브 뉴욕> 20분 시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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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닫은 술집인데 영업방해라고?8월29일, 부산 초량동 러시안 거리│25차 촬영밤새 4컷밖엔 소화하지 못한다. 전혀 예상을 못한 건 아니지만 갑작스레 출현한 암초에 걸렸다. 애초에 유명한 유흥가인지라 촬영이 쉽지 않을 건 예상했었다. 하지만 상가나 거리의 분위기가 러시안, 중국계 상대로 형성된 독특함이 있어서 욕심을 냈었고 그런 거리를 오픈 세트로 구현할 엄두도 내지 못하는 우리 프로덕션 현실에서는 다른 대안 없는 선택이었다. 그 거리는 섭외 초기부터 갖은 고생을 다했고, 러시안 진영과 중국계 진영의 실력자를 찾아다니며 설득을 해야 했다. 촬영 당일 역시 술집 외에 일반 상가가 문을 닫는 밤 10시에나 촬영팀이 들어갈 수 있었지만 내심 촬영허가를 받은 것만 해도 제작부의 성과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취객과 불량배, 혹은 상인들의 불만과 언제 부딪칠지 모르는 상황이라 스탭 모두 긴장하고 조심하며 촬영준비를 했고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상가번영회, 해병전우회, 칠성파 인사들이 현장에 나와
정윤수 감독이 쓴 <예스터데이> 1000일의 제작 기록(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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켄 로치를 만나러 가는 길에 들은 인상적인 이야기 하나. 이제는 칸영화제의 트레이드 마크가 된 레드카펫 세리머니에서는 주인공은 물론 민간인도 턱시도나 이브닝 드레스 차림이어야 한다. 그런데 누군가 말하길, 언젠가 딱 한 사람, 바로 켄 로치가 청바지 차림으로 레드카펫에 오른 적이 있다는 것이다. 딱 그다운 행동이다 싶어 흐뭇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슬그머니 걱정스러워지기 시작했다. 대중매체에서 사라져간 좌파의 자리를 40년 가까이 씩씩하게 지켜온 고집스런 감독. 혹 꼬장꼬장한 성미라서, 말 한마디 잘못했다고, 쫓아내는 건 아닐까.그러나 모든 게 기우에 지나지 않았음을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한적한 호텔 정원에서 다른 기자와 인터뷰중인 켄 로치를 발견했는데, 그는 온화하고 겸손한 얼굴로 경청하거나 대답하고 있었다. 그리고 창백한 얼굴에 맑은 미소를 띠며 이쪽으로 다가와 먼저 인사를 건넸다. 그는 칸영화제의 단골 손님으로 느끼는 남다른 소회를 털어놓는 것으로 말문을 열었다.
<스위트 식스틴>의 켄 로치가 이야기하는 ‘좌파영화만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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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에서 <베일>로, 다시 <예스터데이>로. 제목이 바뀌는 것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다. 관객을 만나기까지 최소한 몇년의 시간을 야금야금 베어먹는 것은 영화의 어두운 숙명일지도 모른다. 과장도 엄살도 아닌 현실. 기획에서 촬영종료까지 3년여의 시간이 걸린 <예스터데이>도 그 현실을 비켜갈 순 없었다. 애초에 작은 영화로 기획되었던 <예스터데이>는 제작비 80억원짜리 블록버스터가 되면서 감독의 ‘고난지수’는 기하급수적으로 높아졌고 결국 촬영기간 9개월, 촬영횟수 112회를 기록했다. 관객과의 조우를 앞둔 <예스터데이> 감독이 털어놓는, 현장에서 생긴 일들. 편집자감독을 존중한다, 제목은 <예스터데이>!1999년 5월 혹은 6월│프롤로그1999년 5월인가 6월의 어느 날- 아! 그날은 명동에서 스크린쿼터를 반대하는 영화인들의 삭발 집회가 있었다- 삭발한 안병주 미라신코리아 대표를 처음 만났다. 일은 그렇게 시작
정윤수 감독이 쓴 <예스터데이> 1000일의 제작 기록(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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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칸영화제에서 시나리오상을 수상한 <스위트 식스틴>은 켄 로치의 파트너인 폴 레버티의 작품이다. <스위트 식스틴>은 폴 레버티가 켄 로치와 함께 한 4번째 작품. 자신이 한번도 가져보지 못한 가정을 꾸리고 싶었던 한 소년의 고군분투, 그리고 좌절을 그린 <스위트 식스틴>은 캐릭터의 리얼리티와 상황의 아이러니를 잘 살려낸 수작이다.폴 레버티는 작가가 되기 전에 스코틀랜드 글래스고에서 법조인으로 일하다가, 중앙아메리카의 인권단체에서 일했다. 스페인 내전을 다룬 영화 <랜드 앤 프리덤>을 찍던 켄 로치가 스페인어에 능통한 폴 레버티를 단역으로 출연시킨 것을 계기로, 두 사람의 인연은 시작됐다. 폴 레버티는 다양한 지역에서 생활하며, 인권단체를 통해 각계의 노동자들과 교류해왔는데, 그런 그의 데이터베이스는 켄 로치에게 좋은 이야깃거리를 제공했다. “대개 영화의 아이디어는 폴이 먼저 준다”는 게 켄 로치의 설명. 폴 레버티는 켄 로치와 니카라과
켄 로치-폴 레버티의 파트너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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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장면에 나는 무릎을 쳤다
1. <스타워즈>(1977)
특수효과 총감독을 맡은 존 딕스트라는 기존 영화에서는 사용하지 않았던 기술들을 여러 장면에서 시도했는데, 특히나 모션 컨트롤 카메라를 활용한 마지막 우주전투 시퀀스는 상상을 초월하는 역동감을 선사한다. <스타워즈> 이전의 영화들이 특수효과 장면에서 정지된 화면이나 단선적인 카메라워킹만을 보여줬던 것과 비교하자면 가히 혁명적인 시도였고, 이 작품을 위해 연구된 우주선의 동선과 카메라 무브먼트는 이후의 SF영화에 교과서가 됐다.
2. <제다이의 귀환>(1983)
<스타워즈>는 한편만 언급하고 싶었지만 빼먹어서는 안 되는 이야기가 있어서 하나 더. <스타워즈>의 골수팬들조차도 시리즈 중 가장 떨어지는 작품으로 꼽는 <제다이의 귀환>은 기술적으로 보면 말도 안 되게 황당한 퀄리티를 보여주고 있다. 다름 아니라 다스베이더가 루크를 끌어들이기 위해 설득하는 동안
특수효과의 메카 ILM을 가다 [6] - ILM 최고의 CG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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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 없는 기술은 아무것도 아니다”
히피 같은 스타일에 긴 금발머리를 휘날리며 인터뷰장으로 들어온 존 버튼은 각국 기자들에게 악수를 청하던 중 ‘코리아’에서 왔다는 말에 “폴란드전은 대단했다”, “미국과의 경기는 어떨 것 같으냐”는 등 월드컵에 대한 지대한 관심을 표하는 전혀 ‘미국인답지 않은’ 미국인이었다. 오하이오 주립대학에서 예술교육과 컴퓨터그래픽 석사과정을 이수한 그는 1990년 <터미네이터2>의 CG 애니메이터로 일하면서 ILM과 처음 인연을 맺었고 이후 <마스크> <쥬라기 공원> 등의 CG 오퍼레이션 매니저를 거쳐 <미이라> <미이라2>의 시각효과 슈퍼바이저로 굵직굵직한 ILM의 작업들을 도맡아서 진행하고 있다. <맨 인 블랙2>에서는 시각효과 전체를 총괄하는 역할을 맡아 전편보다 훨씬 많아진 외계괴물들과 싸우느라 일년을 꼬박 지새웠다는 그는 “다음 작업에 대한 대답은 바로 휴가!”라며 너스레를 떨었
특수효과의 메카 ILM을 가다 [5] - 존 버튼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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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특수효과업계는 생존경쟁의 시대로 돌입했다. 현재 미국 내에서 단기적으로 일자리를 잃은 3D 인력은 수천명에 이르는 것으로 보고 있다. 1500∼2천여명의 인력을 거느린 매머드급 3D 제작사들이 1차, 2차에 나누어 많은 인력을 방출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외로 많은 대형 작품들이 빠져 나가고 있는 추세라는 것도 또 하나의 이유다. 실제 <반지의 제왕>의 경우 제작이 대부분 뉴질랜드에서 이루어지는 관계로 디즈니에서 일하던 실력있는 3D 제작진들이 비행기를 탔으며, 그 밖에도 많은 인재들이 자리를 털고 새 일터로 향하고 있다. ILM의 경우도 예외는 아닌 듯하다. 600명의 인력들을 1차 방출한 뒤 얼마 전 또 700명을 방출했고, 조지 루카스도 자리를 옮겨 독립적인 R&D(Research&Development)회사를 구상중이라는 설이 있어 여러모로 변화를 겪고 있음을 나타내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여러 가지 현상을 동반하는데, 한 가지는 실력있는 소수의 정예들이 뭉쳐
특수효과의 메카 ILM을 가다 [4] - 미국 특수효과업계의 현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