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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이야기> 공식상영 때 관객의 반응이 아주 좋았다고 들었다. 아무래도 한국 관객과 또 달랐을 것 같은데.한국에서는 좀 진지하게, 지루하게 보는 것 같았는데, 안시의 관객은 생각보다 많이 웃어서 뜻밖이었다. 영화를 같이 볼 때보다 끝나고 난 뒤가 인상적이었다. 상영관을 나오는데 머리가 허연 60대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감동적이었다고, 사인해달라고 그랬다. (웃음) 악수하면서 손을 꼭 잡기도 하고. <마리이야기>가 유럽의 60대가 좋아할 만한 작품인가? (웃음)<메트로폴리스> 같은 작품과 경쟁했는데, <마리이야기>의 어떤 점이 안시 혹은 유럽 관객에게 호소력이 있다고 보나.음…. 풍경이 좋았다는 말도 듣고, 특히 서정적인 내용과 정서가 좋았다는 얘기를 꽤 들었다. 추억, 향수 같은 느낌에서 공감을 사지 않았나 싶다. <메트로폴리스> 같은 경우 아마 예산이나 제작규모를 고려하지 않았을까. 단편이나 독립애니메이션에 비중을 둬온 안시에
이성강 감독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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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거나 말거나, 최근 <씨네21>은 익명의 제보자로부터 서류 봉투 하나를 건네받았다. 그 봉투 안에는 놀라운 서류가 담겨 있었다. ‘충무로 귀신박멸 프로젝트를 위한 기초 수사 회의록’이란 제목이 붙어 있는 이 서류에는 그동안 소문으로만 떠돌았던 한국영화계의 귀신에 관련된 내용이 적혀 있었다. 이 글에 따르면, 이 기록은 ‘세계 귀신박멸단(International Ghost Busters) 한국 지부’라는 정체불명의 조직 내 회의를 정리한 것이었다. 이 회의록의 앞부분에는 이 회의가 한국영화계 주변에 자주 출몰한 귀신을 퇴치하기 위해 실태를 파악하기 위해 열린 것이라는 정황도 적혀 있다.이 충격적인 기록을 접수한 뒤, <씨네21> 내부의 비밀조직인 ‘믿거나 말거나 연구위원회’는 기사화할 것인가를 놓고 격론을 벌였다. 상당한 논의가 진행된 뒤 우리는 이 기록에 인용된 관련 인물들에게 사실 여부를 확인한 뒤 결론을 내리자고 합의하게 됐다. 확인 작업이 진행됐고, 놀랍
한국영화 제작현장 미스터리 X파일(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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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E NO .4 ┃정체불명 청년의 출현┃“거참 이상하네.” 의 편집이 이뤄지던 1997년 말. 편집실에서 작업을 하고 있던 허진호 감독과 조민환 프로듀서는 모니터를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한 장면을 찾기 위해 편집기를 돌리던 중 베타테이프가 떡 하니 서더니 이상한 화면이 눈에 들어왔다. 리더필름(카메라 매거진에 새로운 필름 릴을 끼우고 난 뒤 버리게 되는 필름의 시작부분)에서 이상한 모습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보통의 경우 이 부분이 촬영분이 아니라, 의도적으로 버린 필름이라는 것을 표시하기 위해 사람의 손가락을 찍는데, 여기에는 모르는 청년 한명이 환하게 웃으며 슬레이트를 들고 있었던 것.그 괴청년 뒤에는 익히 잘 알고 있는 스탭 두명이 서 있었지만, 그 청년만큼은 누군지 알 길이 없었다. 는 모든 장면이 군산에서 찍힌 탓에 보조출연자로 동원했던 인근 주민들의 얼굴은 모두 알고 있었기 때문에, 조민환 프로듀서는 처음엔 유영길 촬영감독의 영상원 제자인 줄 알았다. 하지만 유
한국영화 제작현장 미스터리 X파일(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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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E NO .8 ┃소름끼친 <소름> 현장, “돈도 필요없으니 당장 떠라라”┃저주받은 아파트를 배경으로 삼은 공포영화 <소름>의 촬영현장은 유독 어수선했다. 촬영지가 곧 재개발을 앞두고 있던 시영아파트였던 탓에 으스스함은 더했다. 복도에 늘 흥건하게 고여 있었던 물과 곳곳에 깊게 드리운 어둠은 스탭과 배우의 공포심을 자극했다. 당시 제작실장이었던 김경미씨는 촬영하는 동안 이상하게도 스탭들의 교통사고도 잦았다고 기억한다. 이 영화는 3월 말까지 촬영됐는데, 날씨는 유난히 추웠고 눈이 오기도 했다. 모두를 오싹하게 하는 일도 있었다. 아파트가 불타오르는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을 찍기 얼마 전, 같은 아파트의 다른 편 동에서 불이 났다. 소방차의 사이렌 소리를 들으며 스탭들의 정신은 혼미해졌다. 이주하지 않고 남아 있던 일부 아파트 주민들도 영화 촬영 때문에 이런 괴기스런 일들이 일어난다며 소란을 피웠다. 일부 주민은 “돈도 필요없으니 빨리 나가라”고 고래고래
한국영화 제작현장 미스터리 X파일(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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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무로에서 영계(靈界)에 가장 통달한 이로는 이광훈 감독이 꼽힌다. 그가 이 세계를 접하게 된 것은 <패자부활전>을 만들던 1996년 무렵. 어느 날 사거리에서 신호대기하던 그는 술 취한 트럭이 옆 차를 받는 광경을 보게 된다. 옆 차에 타고 있던 일가족이 모두 사망한 사고를 본 그는 ‘저 일이 내게 일어났다면 어땠을까’라는 상상을 하게 된다. 결국 운명이라는 것이 있는 게 아닐까, 라고 생각하게 된 그는 지나온 삶을 되돌아보며 고민을 한다. 그뒤 그는 초현실적 세계나 기에 관한 공부를 했고 법사, 무당, 목사 등 갖가지 사람들을 만나 의견을 나눴다. “유령이든 귀신이든, 아니면 현대과학의 에너지든 용어만 다르지, 지칭하는 바는 같다”는 것이 그의 결론.어쩌면 그는 기질적으로 이런 세계가 가까운지도 모른다. 데뷔작 <닥터 봉>을 준비하던 94년, 한석규의 상대 여배우 캐스팅 문제로 그는 고민을 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꿈에서 한석규와 김혜수가 재밌게 이야기
충무로 영계 연구가 이광훈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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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큐버스>는 1965년에 에스페란토어로 제작된 흑백의 공포영화다. 악몽을 부르는 악마의 이름에서 제목을 가져온 <인큐버스>는 인큐버스의 여성형인 서큐버스 키아가 한 고결한 남자를 유혹하려다 그와 사랑에 빠지면서 갈등하는 이야기다. 지금은 기억하는 사람이 거의 없는 이 영화가 특이한 것은 저주를 받았다는 소문 때문이다. 프로듀서 토니 테일러는 “저주가 있었는지 누가 알겠는가”라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비극이 일어난 것만은 사실”이라고 인정했다.인큐버스를 연기한 유고 출신 배우 밀로스 밀로스는 그중 가장 드라마틱한 최후를 맞았다. 1966년 그는 연인이자 배우 미키 루니의 다섯 번째 아내였던 바바라 앤 톰슨을 권총으로 쏴죽이고 자신도 자살했다. 그러나 최초의 비극은 그보다 약간 앞서서 일어났다. 주인공 마르크의 여동생으로 출연한 앤 애트마가 촬영이 끝난 직후 자살했던 것이다. ‘인큐버스의 저주’라고 불리는 일련의 사건은 몇년 뒤 서큐버스 자매 중 큰언니였던 엘로이즈
괴담의 해외 사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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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양수리라 칭하는, 서울종합촬영소(종촬소)는 원귀의 본산이라 해도 무리가 아니다. 40만240평 규모에 세워진 6개의 스튜디오뿐 아니라 심지어 입구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음식점의 커브길, 올라서는 것만으로도 뒷목이 당긴다는 꼭대기 운단에 이르기까지 괴담이 끊이질 않는다. 심지어 <취화선>의 음악을 담당했던 국악가 김영동씨도 “이곳에 오기만 하면 맥이 풀린다”는 하소연을 늘어놓았을 정도다.1스튜디오의 귀신은 형체는 분명치 않지만, 주로 세트 작업을 위해 만들어놓은 아시바 위에 걸터앉아 내려다보는 것으로 유명하다. 2스튜디오와 3스튜디오를 갖춘 건물의 터줏대감은 다름 아닌 처녀귀신. 정재은 감독의 <도형일기> 촬영시에는 세트로 만들어놓은 다락 안에 숨어서 한 스탭을, 최근에는 조명 설치를 위한 바탱이라는 장치 위에 매달리는 기예를 선보여 종촬소 직원을 놀라게 하기도 했다. 5스튜디오와 6스튜디오는 화장실을 경계해야 한다. 특히 여배우들은 몸을 사릴 필요가 있다
원귀의 본산, 서울종합촬영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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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원은 겉으로 보기엔 하나의 학교일 뿐이다. 그러나 옛 안기부 국제부가 있었다는 그곳엔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힘든 기묘한 시설들이 있고, 학생들 곁을 스쳐가는 수많은 원혼들이 있다. 문을 닫으면 누가 있는지도 알 수 없는 편집실, 마치 화장터처럼 관의 크기에 꼭 맞는 구멍이 뚫려 있는 쓰레기 소각로, 처음엔 학생들이 추락할 위험이 있다며 가까이 가지도 못하게 했던 이상한 구조의 스튜디오. 그곳에서 학생들은 믿을 수 없는 일들을 경험했다.‘영상원 괴담’의 중심은 건물 지하에 있는 편집실이다. 작은 방 몇개로 나뉜 편집실은 학생들이 “혼자 있으면 주기도문이라도 외워야 한다”고 말할 정도로 자주 누군지 모를 그림자가 허공을 지나가는 곳이다. 영상원을 졸업한 한 예비 감독은 그곳에서 밤을 새우다가 섬뜩한 일을 겪었다. 좁은 통로를 빠져나와 1층으로 올라가려던 그는 “여기 B1 312호가 어디예요”라며 말을 거는 긴머리의 여자를 만났다. 잘 모르겠다며 여자를 내려보낸 그는 순간 움직일 수가
영상원의 유령 목격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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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결혼은, 미친 짓이다>라는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 어느 정도 명확해졌다. 이 영화는 분할혼을 통해 결혼시장의요소와 운동법칙을 지극히 자본주의적으로 해부하여 동태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따라서 <결혼은, 미친 짓이다>의 제목 가운데에(어법에맞지 않게) 위치하고 있는 쉼표가 함축하고 있는 의미를 풀어보면 다음과 같다.“결혼은 (법적, 규범적 제도라고 이해하고, 아직도 그 결혼의 개념적 신성함을 극구 주장하며, 여전히 단 하나의 결혼의 형태와 절대적 일부일부체를맹신, 숭앙하는 것은) 미친 짓이다”라는 뜻으로 풀이된다★31.결혼은 미친 짓이 아니라, 욕망의 정직하고 현명한 거래를 통해 참여자의 후생을 증진시키는 매우 유익한 경제활동이다. 단, 이를 위해 유연한시장의 기능이 작동되어야 하며, 상호 자유롭고 평등한 개인★32이 전제되어야 한다. 이러한 완전 자유시장에서 서로의 욕망이 배치되면 거래는 더이상 성립하지 않으며, 새로운 거래 접점을 향해움직이는
인상비평 혹은 여성학 에세이로 풀어낸 결혼에 대한 경제학적 분석(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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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3자의 거래구도를 좀더 일반화시켜보면, 결혼시장에서 거래되는 품목은 세 가지- 화폐, 노동, 성이다. 감우성은 그녀에게 성을 제공하고,엄정화는 감우성에게 화폐와 노동과 성을 제공하고 있으며, 남편에게 노동과 성을 제공하고 있다★19.그녀의 남편은 그녀에게 화폐를 제공한다. 위 교환관계를 도표로 표시할 수 있다(각자 그려보기 바람).화폐, 노동, 성이 거래되는 결혼시장의 일반 노동시장과의 차이점은 무엇인가? 첫째, 화폐와 노동이 거래된다는 점에서는 일반 노동시장과같으나 성이 거래된다는 점이 큰 차이점이다. 성의 교환은 일반적인 매매춘시장에서도 볼 수 있으나, 매매춘시장에서의 성은 제공방향이 일방적이며,성이 하나의 완전한 상품으로 단지 화폐로 지불될 뿐이지만, 결혼시장에서의 성은 제공방향이 쌍방적일 수 있어서, 성이 상호교환될 때 상품인동시에 지불수단으로 기능할 수 있다. 엄정화와 감우성의 관계는 이런 쌍방향적 관계이다. 그러나 그녀와 남편과의 관계는 일방적인 관계이다.그녀는 남편
인상비평 혹은 여성학 에세이로 풀어낸 결혼에 대한 경제학적 분석(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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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다, 지극히 이성적인 경제활동이다인상비평 혹은 여성학 에세이로 풀어낸 결혼에 대한 경제학★1적분석경고: 영화를 보기 전에, 먼저 이 글을 읽지 마시오!해도 후회. 안해도 후회. 결혼은 미친 짓일까? 당신은 당신의 배우자와 검은 머리 파뿌리 될 때까지 `죽어도 좋은` 변함없는애정을 견지할 수 있는가. 일부일처제라는 해묵은 판타지에 과연 돌파구는 있다고 믿는가. 여기, 그 모든 의문에 관한 한편의 도발적인보고서가 있다. 욕망의 거래소인 결혼시장의 본질은 무엇이며, 결혼을 통하여 얻을 수 있는 만족의 극한점은 무엇인가? 어떻게 하면합리적으로 욕망을 추구할 수 있는가? 공식적 의미의 결혼 뿐이 아닌 비공식적인 결혼인 동거나 사실혼까지를 포함하는 새로운 `결혼`의개념을 소개한다.대관절 결혼이 무엇이며, 무엇하자는 것일까. 애들은 가라! 결혼시장에 분할혼을 허하라. 연대박사과정에 있는 황진미씨의 원고는한편의 흥미로운 딴죽걸기이다.편집자어떤 이는 이 영화를 보고, 결혼은 정말 미친 짓이라는
인상비평 혹은 여성학 에세이로 풀어낸 결혼에 대한 경제학적 분석(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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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브리 스튜디오는 <천공의 성 라퓨타>로 시작해, <이웃집 토토로> <원령공주> <추억은 방울방울> 등 무수한 수작들의 모태가 되어왔다. 메이저 스튜디오 시스템을 잘 견디지 못하던 고집쟁이 미야자키 하야오가 다카하다 이사오와 함께 1985년에 설립한 이곳은 재패니메이션의 산실이 되었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국내 개봉을 앞두고 지브리 스튜디오와 미야자키의 꿈이 영근 지브리 박물관을 찾았다.편집자‘세계를 움직이는 재패니메이션의 산실’, 이라고 하기엔 지브리 스튜디오는 작고 아담했다. 도쿄 교외의 고가네이시 주택가에 자리한 이 3층의 목조 건축물은, 누군가 ‘여기가 바로 거기’라고 말해주지 않으면 그냥 지나쳐버릴 만큼, 별난 구석이 없었다. 대부분 2층인 주변 주택들보다 조금 높고, 조금 넓을 뿐. 유난스러운 게 있다면 흰색 벽을 타고오르는 담쟁이덩굴과 건물을 둘러싼 키 큰 나무들이다. 가로 50cm가 넘지 않을 만큼 자그마한
미야자키 하야오의 지브리 스튜디오 탐방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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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야자키 하야오 인터뷰10살 된 친구 딸을 위해 이 영화를 만들었다 “10살 된 친구 딸을 보면서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를 만들겠다고 생각했다. 이 영화를 구상하면서 생각하기가 귀찮아 온천장을 지브리 스튜디오라고 생각하고 이야기를 풀어갔다. (웃음) <센과 치히로…>는 센과 같은 10살짜리 어린아이가 가정을 떠나 다른 사람이 주는 밥 먹고, 그러면서 느낀 점들을 그린 영화다.” 기자들의 질문이 시작되기 전, 미야자키 하야오는 이렇게 먼저 이야기의 말문을 열었다. 이어 그는 기자들의 딱딱하고 어려운 질문에 대해 쉽고 평이한 대답을 돌려주었다. 숲 속의 예쁜 집 같은 그의 아틀리에에서 열린 한 시간의 인터뷰는 국내 개봉을 앞두고 있는 <센과 치히로…>에 집중됐다.지브리 작품 가운데 자연친화적 작품들이 많다. 당신이 생각하는 자연은.어려운 질문이다. 자연은 두 가지 의미를 갖는다. 인간의 생존의 수단이면서 재해와 죽음을 포함하고 있다. 인간은 문명을
미야자키 하야오 & 스즈키 도시오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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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다 함께 길을 잃자”(Let’s Lose Our Way Together). 미야자키 하야오가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을 제작하면서 함께 진행한 지브리 박물관은 <센과 치히로…>과 유사한 컨셉으로 만들어졌다. 그래서 박물관 안으로 들어가면 길을 잃어버리기 십상이다. 자신이 선 곳이 1층인지, 2층인지 헷갈릴 때도 많다. 아이들은 미로 같은 복도를 헤매며, 엉뚱한 곳에 나 있는 문을 열어보며 즐거워한다. 박물관이란 딱딱한 명칭이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곳, 이곳은 미야자키의 꿈이 총집결된 ‘아이들의 낙원’이다. 아이들이 만지지 못하는 건 아무것도 없다. 미야자키가 그린 원화라도 상관없다. 이같은 ‘방임’으로 인한 부작용은 박물관쪽이 기꺼이 감수한다.도쿄 도미타카시 이노바시라 공원 안에 자리잡은 지브리 박물관은 건물 전체에 미야자키의 손길이 묻어 있다. 건물 설계는 물론 내부 소품 하나하나 직접 미야자키가 그리고 만졌다. 지브리 박물관 문양이 찍힌 벽돌에서,
지브리 박물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