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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란젤리나. 브래드 피트와 안젤리나 졸리를 한데 일컫는 이름이다. 톰캣(톰 크루즈 + 케이티 홈즈), 보니스톤(빈스 본 + 제니퍼 애니스톤), 가플렉(벤 애플렉 + 제니퍼 가너), 애시미(애시튼 커처 + 데미 무어) 등 유사한 스타일의 합성어들이 할리우드를 떠돌고 있지만, 브란젤리나의 막강한 파워 앞에서는 모두 아류로 보일 지경이다. 물론 처음엔 브란젤리나도 통속적인 삼각관계의 주인공처럼 보였다. 그러나 현존하는 가장 섹시한 남녀 스타의 결합이라는 프리미엄에다가, 당당한 연인을 넘어 실천하는 박애주의자로서 세계를 누비는 안젤리나 졸리의 특별한 행보는 이 할리우드 스타 커플에게 인류의 평화와 복지를 추구하는 현대적 귀족의 아우라를 둘러주었다. 게다가 브란젤리나는 지난 5월 ‘완벽한’유전자 조합의 2세, 실로 누벨 졸리-피트를 낳고 연예 저널의 지면을 도배하면서 영국 왕실 뺨치는 세계적 로열 패밀리로 자리잡는 듯한 모습마저 보이고 있다. 스캔들을 뛰어넘은 스캔들, 미세한 움직임만으로도
브란젤리나 신드롬, 가십에서 판타지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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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쳐지나도 기억에 남는 강렬함을 꿈꾼다
<그의 진실이 전진한다> <미성년자 관람불가>의 정인기
“이런 건 한번도 해본 적이 없어서….” 쑥스러운 듯 뒤통수를 긁는 정인기의 얼굴에 난처함과 어색함이 동시에 어린다. 뒤늦게 연락이 닿은 탓에 모든 취재가 끝난 뒤 혼자 스튜디오에 서게 된 그는 의도와는 상관없이 ‘뒷북’을 쳐야 하는 입장. 이미 4명의 배우를 찍어놓은 단체 사진에 자연스럽게 붙여넣을 수 있는 모습을 연출하는 것이 이날의 첫 도전과제다. 시종일관 뻘쭘한 표정으로 걱정을 자아내던 그는 그러나 막상 촬영이 시작되자 언제 그랬냐는 듯 천연덕스레 자유자재의 포즈를 선보인다. 만화책에서 막 오려낸 것처럼 ‘ㄱ’자 모양으로 팔과 다리를 꺾은 그가 풀쩍 뛰어오를 때마다 플래시와 폭소가 동시에 터진다.
“출연이라고 하기도 사실 민망하다.” <연애소설> <중독> <싱글즈> <주홍글씨> <주먹이 운다> <
독립영화를 사랑한 배우들 [5] - 정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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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음으로 슬픔을, 눈물로 웃음을 전할 수 있을 때까지
<양아치어조> <내 청춘에게 고함>의 양은용
“제가 여기 껴도 되는 거예요?” 안부 묻고 수다 떠는 다른 배우들과 달리 새침한 새색시마냥 입술 물고 있는 이유를 물었더니 양은용이 조심스레 답한다. “다른 분들은 다 유명하시잖아요. 난 아직 몇편밖에 안 했는데….” ‘독립영화’ 배우라는 낙인(?)은 기꺼이 받겠으나, 독립영화 ‘배우’라는 명명은 아직 부담스럽다면서, 그는 쑥스러워한다. 1997년, SBS 공채로 브라운관에 얼굴을 비춘 지 10년째. 아직 사람들도 <비단향꽃무> 같은 미니시리즈나 <드라마시티> 같은 단막극에 자주 출연한 탤런트로 그를 기억한다. <양아치어조>를 시작으로 <팔월의 일요일들> <내부순환선> 그리고 최근 <내 청춘에게 고함>까지, 4편의 독립장편에 내리 출연한 독특한 배우로 받아들이기보다는.
“독립영화에 대해 아
독립영화를 사랑한 배우들 [4] - 양은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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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영화를 돌 위에 새긴다
<바라만 본다>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의 양익준
사진 촬영을 위해 준비해야 할 의상을 설명하던 기자는, 성인 남자 혹은 배우라면 가지고 있을 것이라 여겼던 양복 한벌, 가죽점퍼 하나가 없다는 그의 말에 할 말을 잃었다. 옷장을 뒤져 준비했다는 의상을 입고 카메라 앞에 선 그가 이번에는 ‘깜찍한 표정으로 셀카를 찍는 귀여운 남자’라는 난해한 주문에 난감해한다. 그러나 이내 얼굴에는 장난기가 가득하다. 남들은 당연하게 지니고 있다는 옷 한벌 없이, 주어진 순간에 최선을 다하여 감동을 주는 배우 양익준의 진면모랄까. 10편에 이르는 단편영화, <강적>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등의 장편에 출연했고, <KBS 독립영화관> 진행자로 얼굴을 알린 그는, 지난해 미쟝센단편영화제에 세편의 출연작이 상영된 끝에 연기상을 수상했고, 올해는 출연작(<낙원>)과 연출작(<바라만 본다>)을 본선에
독립영화를 사랑한 배우들 [3] - 양익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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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귀옥 순경, 이런 면이 있는줄 몰랐네
<살인의 추억> <그녀의 핵주먹>의 고서희
<살인의 추억> 이후 3년이 흘렀건만, 고서희는 아직도 권귀옥이다. 있는 듯 없는 듯 선배 형사들의 잔심부름에 열중하던 중, 얼굴없는 연쇄살인범에 대한 결정적 단서를 제공하던 그 모습이 워낙 인상적이었던 탓이다. 평상심을 잃지 않는 뚱한 모습은 초췌한 남자 형사들과 묘한 대조를 이뤘더랬다. <호랑이 푸로젝트>에 제야의 종소리를 들으며 방바닥을 굴러다니는 엉뚱한 ‘백조’로 고서희를 캐스팅한 이지행 감독 역시 그 묘한 이미지에 끌렸다. “약간 우스꽝스러우면서도 재밌다는 생각을 했다. 봉준호 감독이 <플란다스의 개>에서 갱생한 배두나 이미지로 쓴 게 아닌가 하는 느낌을 받았고, <호랑이 푸로젝트>에서 고서희에게 노란 후드티를 입히기도 했다.”
때론 나른하고 때론 똘망똘망한 동그란 고서희의 눈망울은 영락없는 엉뚱녀의 그것이지만, 어떤 이
독립영화를 사랑한 배우들 [2] - 고서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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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분명히 아는 사람인데, 이름이…. 우리를 응시하는 이 다섯 얼굴을 마주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런 생각을 하고 있지 않을까. 그러나 어디선가 본 것 같은 익숙하고 낯선 인상이 이들을 묶는 유일한 키워드라 생각하면 큰 오해다. 외양에서 풍기는 이미지는 물론이고 나이도, 경력도 천차만별인 이들을 묶는 키워드는 바로 독립영화. 독립영화계로부터 끊임없이 구애를 받고 있다는 것이 우리의 초대장을 받을 수 있는 유일한 조건이었다. 사실 배우의 평범한 얼굴 속에서 비범함을 끌어내고, 친근하지만 어딘가 삐걱거리는 생생한 캐릭터에게 아낌없이 자리를 마련하는 데 충무로는 비교적 인색한 편이다. 그러나 그럴듯한 시스템 안에서 많은 돈을 들여 만들지 않는 대신 늘 새롭고 도전적일 수 있는 독립영화라면 얘기가 다르다. 맹봉학, 고서희, 양익준, 양은용, 그리고 정인기. 누군가의 아버지로, 친근하고 개성있는 감초로, 있는 듯 없는 듯한 조연으로 충무로의 스크린과 브라운관에 수시로 얼굴을 비쳐왔던 이들은,
독립영화를 사랑한 배우들 [1] - 맹봉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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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관객들이 날 알아보니 신기하다”
-여러 운동에 능하다고 알고 있다.
=아홉살부터 5년간 무술 수련을 했다. 내가 연마한 것은 중국 대륙의 북방권이었고, 무술 수련의 특별한 동기는 없었던 것 같다. 그저 그 나이 또래 대부분의 사내아이들처럼 강해지고 싶은 욕구가 있었고, 아무래도 싸움이 많은 나이이니 확실히 배워보자는 생각을 했었다. 그 뒤에는 수영을 하게 되었는데, 홍콩 대표로 3관왕을 차지한 경력도 있다. 그 때문인지 지금도 건강만큼은 자부를 한다.
-장철 감독의 <호협섬구>로 영화계 데뷔했는데, 당시 홍콩 영화계로서는 이례적인 일인 것 같다.
=그렇다. 당시로서는 매우 드문 일이었다. 홍콩 배우들이 거의 대부분 차근차근 절차를 밟아서 성공을 하는데 나는 그들 가운데 운이 대단히 좋은 편이었다. <호협섬구> 오디션을 열었는데, 3명의 배우를 뽑는 데 3천명이 넘게 몰려왔고, 그중 한명으로 발탁됐다. 첫 데뷔작으로 비중있는 역을 맡았으니 운이 좋
천황거성 왕우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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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전자전(父傳子傳). 1980년에 시체애호증을 다룬 지알로 영화 <마카브로>로 데뷔했을 때부터 람베르토 바바는 될성부른 떡잎이었다. 아버지로부터 유전자를 이어받아 다리오 아르젠토의 휘하에서 수업한 재원이었으니 당연한 결과이기도 했다. 일찌감치 능력을 인정받은 람베르토 바바는 곧 갇힌 공간을 무대로 한 좀비영화 <데몬스> 시리즈를 연이어 성공시키며 <아쿠아리스>의 미켈레 소아비와 함께 다음 30년의 지알로를 책임질 것처럼 보였다. 그것이 벌써 20여년 전의 이야기다. 90년대가 오기도 전에 (스파게티 호러라고 불리운) 이탈리아 호러영화는 갑자기 사라져버렸다. ‘시체스 호러영화제 수상작’ 등등의 이름을 내걸고 한국의 동시개봉관을 강타했던 이탈리아 호러영화들이 부계의 유전자를 어느 순간 상실해버린 것이었다. 거기에는 수많은 이유가 동시에 있었을 것이다. 어쨌든 람베르토 바바는 사라지지 않았다. 이탈리아 TV계로 진출해 계속해서 영화를 만들어온 그는 2006
이탈리아 공포영화의 대부, 마리오 바바의 영화세계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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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오 바바는 낯선 이름이다. 1914년에 태어나 1979년 사망하기까지 25편의 영화를 남긴 바바는 ‘이탈리아 공포영화의 대부’였다. 그는 다리오 아르젠토와 아들인 람베르토 바바를 통해 지알로(범죄잔혹극)를 탄생시켰고, 80년대 시작된 슬래셔공포영화의 기반을 다졌다. 하지만 그는 싸구려 제작비로 특이한 B급영화를 양산한 로저 코먼류의 컬트 감독은 아니다. 그는 고딕호러의 전통 속에서 현대 공포영화의 전통을 새롭게 사유한 장르의 거장이었다. 90년대 이후 들어서야 몇몇 감독과 비평가들에 의해 새롭게 재평가되고 있는 ‘이탈리아의 앨프리드 히치콕’ 마리오 바바의 삶과 영화를 돌아본다. 그리고 장편 심사위원으로 부천영화제를 방문한 아들 람베르토 바바를 만나 아버지의 유산과 이탈리아 공포영화의 미래에 대해 들어보았다. 편집자
“나는 그만큼이나 이미지로 이야기를 잘 표현하는 감독을 한명도 알지 못한다. 그의 영화는 문학적인 것이 아니다. 그는 전통적인 방식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지 않지만
이탈리아 공포영화의 대부, 마리오 바바의 영화세계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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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가 새겨진 마스크, 창의적 자극을 주시는 존재”
봉준호/ <플란다스의 개> <살인의 추억> <괴물>에서 연출자로 만남
<안국동 아씨>의 점쟁이 역이나 <조선왕조 500년-설중매>의 유자광 역으로 출연하시기 전부터 변희봉 선생님의 팬이었다. <수사반장>이나 <113 수사본부>에서 선생님은 범인이나 간첩으로 나오곤 했는데, 그게 그렇게 인상 깊었다. 가장 기억나는 에피소드는 <수사반장>의 ‘할렐루야 교주’ 편이다. 변 선생님은 러시아 스타일의 모자와 두루마기 같은 것을 걸치고, “할렐루야, 렐루야, 렐루야”라는 노래를 부르면서 신도를 이끌었다. 좌우를 보면서 손을 가슴에 엑스자로 모으는 무용 동작을 하면서. 그때 형언할 수 없는 그 느낌에 압도당했던 것 같다. 사실 <플란다스의 개> 초고에는 경비원 역할이 없었다. 그러다가 어릴 때 좋아하던 변희봉 선생님이 경비원 옷을 입고 지하실을
특별한 배우, 변희봉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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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희봉은 어느 날 홀연히 날아온 외계인 같은 배우가 아니다. 1970년부터 우리와 만나기 시작한 그는 TV와 영화를 통해 자주 접할 수 있는 익숙한 존재였다. 하지만 우리는 그를 너무 늦게 알아봤다. <수사반장>과 <113 수사본부>의 악역이나 사극드라마의 단골 조연, 영화 속의 개성 강한 캐릭터 정도로만 생각했던 변희봉을 우리가 제대로 알아차리기 시작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은 일이다. 그리고 7월27일 개봉하는 <괴물>은 그를 새삼 ‘발견’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변희봉은 이 영화에서 따뜻한 부정(父情)과 강인한 카리스마를 동시에 드러내면서 기억에서 지울 수 없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여줬다. 너무도 낯익지만, 그 때문에 오히려 잘 모르고 있었던 변희봉의 연기인생을 돌아본다.
한국 영화계에서 변희봉은 독특한 존재다. 최근 들어 영화계에서 주목받는 ‘실버 연기자’의 경우 TV에서 주연급으로 확고한 지위를 굳힌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변희봉은 오히려
특별한 배우, 변희봉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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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마도 길어라. 맑은 하늘 못 본 지도 어언 한달이다. 한여름에 보일러 틀고 눅눅한 방에 누워 있을라치면 어딘가 시원하고 탁 트인 곳이 생각나게 마련. 그런 마음으로 여행사에 맞춤형 여행을 신청한 사람들이 있었는데, 비치섬, 발리섬, 피지섬, 주옥 같은 해변을 마다하고 구태여 설원 관광을 희망한 괴짜들이었다. 옹기종기 모인 이들 앞에 가이드 육대수라는 자가 나타났더라.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지금부터 여행이 끝날 때까지 여러분과 함께할 가이드, 육대수입니다. 우선 여러분의 왜곡된 취향에 박수를 보내고 싶군요. 좋은 데 다 놔두고 발 시린 설원관광을 하겠다고 나선 이유가 뭔지 묻지는 않겠습니다. 뭐, 각자 가슴속에 숨겨둔 사연이 있겠죠. 어쨌거나 확실히 해둘 것은 여름에 눈밭이 시원해 보여도 막상 발을 디디면 즉각 상황이 달라지실 거란 겁니다. 벌써부터 손끝이 얼얼해오지 않습니까? 화면으로 보기에나 시원하지 실제로 설원은 고생을 바가지로 할 게 분명할 최악의 여행지예요. 동상,
유쾌하고 오싹한 장르별 영화 속 설원 여행 가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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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아니 종종 아카데미영화제를 보고 있자면 너무 진지해 몸이 뒤틀린다. 진행 미숙하고 쇼의 성격도 부족한 국내 영화제들은 보고 있으면 썰렁하고 지루해서 끝까지 버티기조차 어렵다. 그럴 때 생각한다. 미국의 라스베리영화제나 MTV 영화 시상식처럼 말장난과 농담(거기엔 때로 뼈아픈 비판도 담겨 있다) 일색의 웃기는 영화상을 우리끼리 만들어보면 어떨까 하고 말이다.
그래서 마련했다. 2006 ME 무비 어워즈. 부제는 ‘지난 5년간 한국영화 최고의 연기 8선’이다. 2001~2005년까지 5년간(그리고 2006년 상반기를 살짝 더해서) 한국 영화 최고의 연기를 보여준 8명의 배우를 뽑았다. 특별상 부문에 해당하는 노력상과 인기상을 포함해 총 10개 부문의 상 이름은 <ME>에서 마음대로 정했다. 독자 여러분들은 그냥 즐겨주시길.
최고의 베드신 연기상
송강호(<살인의 추억>)
황정민(<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
작업 기술상은 이영애
ME ‘내맘대로’ 뽑은 한국영화 연기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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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쟝센영화제 ‘4만번의 구타’ 부문 수상자들, 김성수 감독과 만나다
김성수 감독은 연출부에게 엄격하기로 유명하다. 그러나 그 호된 엄격함은 후배를 향한 관심과 애정의 결과라는 것이 많은 이들의 증언. 그가 공동대표로 있는 나비픽쳐스가 정두홍 무술감독의 서울액션스쿨과 함께 신인감독들에게 액션영화 연출 기회를 줄 것이라는 최근의 뉴스는 이를 증명한다. 그런 김성수 감독이 올해 미쟝센 액션스릴러 부문 최우수 작품상을 받은 <2분>의 정태경 감독, 심사위원 특별상을 받은 <머리 위에 숯불>의 조형찬 감독과 자리를 함께한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나비픽쳐스 사무실에서 이루어진 이들의 만남은 감독과 심사위원, 학생과 제자(조형찬 감독은 영상원 졸업반이고, 김성수 감독은 영상원에서 강의를 진행한 바 있다), 선배와 후배의 그것으로, 수시로 정체성을 바꿔야 했다.
김성수/ <머리 위에 숯불>은 몇회 만에 찍은 영화야?
조형찬/ 20회차요.
김성수/
장편감독, 단편감독을 만나다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