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5년 말 기준 전국 스크린 수는 1648개. 산책을 가듯 영화를 보러가는 시대다. 하지만 독립영화는 어떨까. 독립영화를 보기 위해서 관객은 1년에 몇번 찾아오는 영화제의 프로그램을 뒤적여야 하고, 반대로 독립영화는 관객을 찾아가기 위한 기회를 잡기 위해 기를 써야 한다. 땀 흘려 제작한 작품이 그들만의 잔치로 끝나지 않기 위해서는 독립영화가 관객을 만날 수 있는 통로가 절실하고, 그러기 위해선 작품의 존재를 관객에게 알리는 일 역시 시급하다. 얼마 전 로카르노영화제에 공식 초청된 노경태 감독의 <마지막 밥상>, <대학로에서 매춘하다가 토막살해당한 여고생 아직 대학로에 있다>로 주목받았던 남기웅 감독의 <삼거리 무스탕 소년의 최후>, 그리고 동명의 단편으로 인기를 끌었던 오점균 감독의 <생산적 활동>. 아직 극장을 통해 관객을 만나지 않은 세편의 독립 장편영화를 소개한다. 주류영화에서 볼 수 없었던 독특한 상상력과 화법이 빛나는 이 작품
미지의 독립장편영화 세편 [1] - <마지막 밥상>
-
연일 흥행 기록을 세우고 있는 <괴물>은 잘 알려졌다시피 봉준호 감독이 고등학교 시절부터 간직하던 꿈의 결정체다. <괴물>에 또 다른 사람의 꿈이 서려 있다면 그 주인공은 이 영화의 제작사인 청어람의 최용배 대표다. 오로지 <괴물>의 완성이라는 목표를 위해 그동안 단단한 기반을 다졌던 배급업까지 포기했을 정도로 그는 이 프로젝트에 사활을 걸었다. 그런 그의 베팅은 일단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폭발적인 흥행 성과는 그 성공에 대한 증명 중 일부일 뿐이다. 어려운 환경에서도 완성도 있는 영화를 제작했다는 칭찬이나 그의 뚝심에 대한 재평가도 그에게는 성공이라면 성공일 터. 하지만 무엇보다 최용배 대표 개인에게 <괴물>은 가깝게는 10여년 전, 멀게는 20여년 전, 막연하게 세워놓았던 ‘한국영화로 할리우드영화를 대체한다’는 목표를 어느 정도 달성케 했다는 의미를 가진다. 연출, 투자, 배급이라는 우회로를 통해 결국 제작자의 세계로 들어와 오래된 꿈
배급업 포기하며 <괴물> 제작에 매달린 청어람 대표 최용배
-
<각설탕>의 각설탕은 주인공 말 천둥이가 먹는 간식이다. 사람과 말이 나누는 따뜻한 정이 영화 제목인 것이다. ‘말에게 속삭임’(Horse Whispering)이란 말이 따로 있을 정도로 말은 인간과 친밀한 의사소통을 나눌 수 있는 몇 안 되는 섬세한 동물이다. <각설탕>은 <호스 위스퍼러>가 그리는 말과 인간의 교감, 그리고 <씨비스킷>에서 보여준 말과 인간이 함께 장애를 딛고 일어서는 감동을 함께 주는 영화다.
시은(임수정)은 제주도 푸른 목장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시은에게 말보다 더 친한 친구는 없다. 태어나자마자 엄마를 잃은 말 천둥이에 대한 시은의 사랑은 너무나 애틋하다. 시은 역시 엄마 없이 자란 터라, 천둥이는 친구 이상의 가족 같은 각별한 존재로 다가온다. 달리는 일이라면 아무한테도 지고 싶지 않은 시은은 최고의 기수가 되고 싶은 꿈을 키워나간다. 그러나 천둥이가 다른 곳으로 팔려가면서 둘의 운명은 끝이 난다.
낙마 사
소녀 기수와 경주마, 꿈은 이루어진다, <각설탕>
-
집에 ‘애들’이 놀러왔을 때 사람들은 반응에 따라 크게 두 부류로 나뉜다. ‘귀여워라!’라며 눈을 반짝이는 사람과 ‘어떻게 이것들을 피하지’ 하고 뜨악한 표정을 짓는 사람. 당신이 후자에 속한다면 다음 글로 초대한다. 영화에 등장했던 아이들 10인의 아귀다툼 배틀을 구경할 기회다. 꿈에라도 내 조카일까 두려운 아이를 가리는 결승전의 최후 승자는 누가 될 것인가. 빅마마와 맥피 아줌마가 중계한다.
빅마마: 전국에 계신 시청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여기는 가장 상종하고 싶지 않은 아이, 왕중왕을 가리게 될 꽃동산 유치원 햇님반입니다. 이곳 플레이그라운드 스타디움은 이미 응원의 열기로 활활 타오르고 있습니다. 예비 학부모들이 관중석을 가득 채웠군요. 오늘 경기 해설을 위해 아동심리 전문가이신 내니 맥피 선생님이 자리해주셨습니다. 선생님, 안녕하시렵니까.
맥피: 네, 안녕하십니까.
빅마마: 얼마 전 새 저서 <애 키우기가 가장 쉬웠어요>를 내셨다고 들었습니다.
맥피:
상종하고 싶지 않은 아이 왕중왕전 중계
-
-
올해 1월부터 4월까지 <메종 드 히미코> <박치기> <스윙걸즈> <린다린다린다>가 매달 한편씩 차례로 개봉했다. 그 선두는 역시 최근 일본영화에 주목하게 만드는 연원을 제공한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의 이누도 잇신이 만든 <메종 드 히미코>였다. <조제…>에 환호했던 관객은 기다렸다는 듯이 재차 이누도 잇신의 영화를 반겼고, 그 관심의 폭은 이미 다른 영화들에도 미쳐 있었다. 네편의 영화는 적게는 2만에서 많게는 10만 사이를 오가는 관객을 모았다. 입소문은 늘어갔고, 마니아들은 더 분명하게 수면 위에서 형성됐다. 급기야 7월에 열린 일본인디필름페스티벌은 매진을 기록하며 보기 드문 성공 사례를 남기고 있다. 물론 이 성공을 뒷받침한 외부적 요인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마니아들을 상대로 한 영화사의 소규모 장기 상영 전략과 일본영화 전용관 개관에 따른 여파, 일본 텔레비전 드라마의 일반화로 인해
일본 젊은 영화의 힘! [4]
-
올해는 유독 일본 배우들의 방문이 잦았다. <메종 드 히미코>의 오다기리 조, <박치기!>의 사와지리 에리카와 다카오카 소우스케, <나나>의 나카시마 미카와 나리미야 히로키, <좋아해>의 미야자키 아오이와 니시지마 히데토시 등. 아사노 다다노부가 2001년 그의 20번째 영화 <일렉트릭 드래곤 80000V>를 마치고서야 처음으로 한국을 방문했던 것과 비교해보면 이들의 방문은 매우 빠른 편이다. 일본 배우에 대한 갈증의 해소. 하지만 이는 외우기 어려운 그들의 이름만큼 생소한 행사이기도 했다. 문화지체의 역설적인 현상. 1998년까지 금지된 일본문화 개방은 한국 관객들을 지체된 문화적 시차에 길들여왔다. 일본 배우는 당연히 지각생이라는 생각. 그래서 2006년, 실시간에 가까워진 일본 배우들의 방문은 다소 낯설게 느껴진다. 대체 이 배우는 일본에서는 얼마나 유명할까. 어, 얘는 노래도 하고 드라마도 했네. 이 꽃미남은 오다기리 조보
일본 젊은 영화의 힘! [3]
-
올 상반기 기대 이상의 성적을 거둔 일본 인디영화의 행렬은 하반기에도 계속된다. 오다기리 조가 출연한 영화 <유레루>를 시작으로 기타노 다케시와 이상일 감독의 신작인 <다케시들>과 <훌라 걸>, 재일동포 양영희 감독의 <디어 평양> 등 총 10편의 작품이 개봉을 기다리고 있다. 실화를 소재로 한 작품부터 휴먼드라마까지, 기대되는 하반기 일본영화 5편을 소개한다.
빅 리버 Big River
감독 후나하시 아쓰시 | 출연 오다기리 조, 카비 라즈 | 8월17일
일본인 텟페이(오다기리 조)는 미국의 사막을 여행하던 중 우연히 파키스탄인 알리(카비 라즈)를 만난다. 알리는 아내를 찾아 미국의 곳곳을 돌아다니고 있는 중. 그랜드캐니언을 향하는 이들의 여행에 한명의 동반객이 더 등장한다. 홀로 여행을 하고 있던 미국인 사라(크로 스나이더). 서로 다른 국적을 가진 세 남녀의 여행기를 그린 <빅리버>는 9·11 이후 혼란스러워진
일본 젊은 영화의 힘! [2]
-
1998년 김대중 정부의 일본 대중문화 단계적 개방으로 1999년 겨울 이와이 순지의 <러브레터>가 개봉했다. 서울 67만명, 전국 140만명이라는 기록적인 흥행 스코어를 남긴 <러브레터>는 이미 4년 전 일본에서 개봉해 한국의 일본영화 마니아들과 대학가 사이에서 엄청난 입소문을 몰고 다닌 전설의 영화였다. 지직거리는 VHS로 20만 한국인이 보았다는 소문도 있었다. <러브레터>의 국내 흥행기록을 깨는 일본영화는 2002년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개봉 전까지 나타나지 않았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이 세운 200만명의 흥행기록은 2년 뒤 겨울 미야자키의 또 다른 신작 <하울의 움직이는 성> 밑에 깔렸다. <하울의…>는 전국 300만 관객을 동원했다. 한동안 <러브레터> 뒤를 이어 흥행 3위에 머무른 영화는 공포영화 <주온>이다. 복고적 감성의 일본 멜로
일본 젊은 영화의 힘! [1]
-
“여성을 잘 모르지만 마음을 열어두고 연출한다”
김석윤 감독은 1992년에 공채 19기로 KBS 생활을 시작했다. 입사 초기에는 버라이어티 프로그램 연출자로 이름을 날렸던 그가 본격적으로 ‘극’에 맛을 들인 것은 지난 2000년 유재석, 이휘재, 남희석이 출연한 시트콤 <멋진 친구들>을 연출하면서부터다. 일종의 시트콤 연출 실험이었다고 할 만한 그 작품 이후 김석윤 감독은 <달려라 울엄마>와 <올드미스 다이어리>를 거치며 한국의 대표적인 시트콤 연출자로 단단하게 자리를 잡았다. 그러나 여전히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을 연출하는 게 좋다”고 거침없이 말하는 그는 확실히, 여러모로, 버라이어티한 사람이다.
-직접 감독을 맡기까지는 고민도 많았던 것으로 안다.
=캐스팅이나 시나리오 부분에서 지원은 하겠노라고 했지만 감독에는 관심이 없었다. 이미 1년이나 시트콤 연출을 해서 타성에 젖은 상태여서 영화계 시각으로 완전히 새롭게 만들라고 했다. 영화는 나와
스크린에서 부활하는 <올드미스 다이어리> 촬영현장 [2]
-
미자에게는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 시트콤 <올드미스 다이어리>(이하 올미다)의 205회 제목을 빌려 표현하자면, <올미다>에는 뭔가 특별한 게 있었다. 그건 바로 다양한 세대의 여성들에게서 공감을 얻어낼 수 있도록 섬세하게 짜인 일상성과 현재성이었다. 음모와 혈연과 선녀들이 연방 ‘하늘이시여!’를 외쳐대는 브라운관의 세계에서 <올미다>의 일상성은 참 귀중한 것이었다. 미자와 친구들이 보여주는 오뚝이 같은 30대의 여성성과 세명의 할머니가 보여주는 ‘늙은 여성’으로서 여성성. 보통의 드라마들이 끝끝내 외면하고 가는 현실적인 여성들의 삶과 고민이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지를 보여준 <올미다>는 KBS 사장의 재치있는 말처럼 ‘오랫동안(Old) 기억될(Miss) 일기(Diary)’였다. 지지부진하던 시청률은 15%까지 치솟았고, 인터넷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열혈팬들이 모여들었다. 그리고 지난해 10월 종방한 <올미다>는 영화라는 새로운 매
스크린에서 부활하는 <올드미스 다이어리> 촬영현장 [1]
-
시네마테크 부산을 취재하기 위해 만난 부산영화제 프로그래머 김지석 교수는 대뜸 “왜 이제야 내려왔어요”라고 나무랐다. 그만큼 시네마테크 부산은 제대로 알려져 있지 않고, 알려져야만 한다는 뜻이었을 거다. 1999년에 개관한 시네마테크 부산은 오즈 야스지로와 구로사와 아키라, 장 르누아르, 하워드 혹스 등의 쟁쟁한 회고전을 기획해왔고, 예술영화를 상영하는 극장이 적은 지방에서 <더 차일드> <라스트 데이즈> 등의 예술영화를 상영하며 영화관으로서의 기능도 함께 수행해왔다. 최근에는 박찬욱과 김지운, 봉준호 감독 등을 부산까지 초대해 그들이 추천한 영화를 상영하고 강연을 듣는 ‘수요시네클럽’ 같은 적극적인 이벤트도 병행하고 있다. 터놓고 말하자면 시네마테크 부산을 찾아간 데는 그처럼 서울에서도 대면하기 힘든 화려한 이름과 제목에 이끌린 것이 컸다. 그러나 정작 그곳에서 만난 것은 바다를 향해 열린 번듯한 상영관과 소개 책자만 보아도 서울 관객으로서 부럽기만한 거장들의
영화의 바다를 비추는 작은 등대, 시네마테크 부산을 가다
-
“의식을 전환하면 쾌감이 생긴다”
-현장에서 콘티를 그려가면서 작업하더라. 대사도 그때그때 바꾸는 경우를 봤고.
=즉흥적인 요소가 많았다. 미리 준비한 콘티는 거의 없었고. 시나리오를 현장에서 적용하니 안 맞는 게 생각보다 많았다. 만화적 상상력으로는 가능하지만 배우가 연기를 하면 안 맞는 게 생기기 시작했다. 그래서 현장에서 시나리오를 바꾸는 일도 생긴 셈이고. 그런 결정은 직감으로 이루어졌는데, 그러다보니 불안한 점이 많았다.
-뮤지컬은 처음부터 생각한 건가.
=시나리오를 쓰면서 여러 번 곱씹어본 이야기보다 즉흥적으로 떠오르는 이야기들을 넣게 되었는데, ‘이런 장면에서 노래가 나오면 재밌지 않겠냐’는 생각이 떠올랐다. 뮤지컬을 하자고 마음먹고 <다세포소녀>를 시작했다기보다는, 시나리오를 쓰면서 ‘뜬금없이 카메라를 보고 얘기하면 어떨까’, ‘춤과 노래를 넣으면 어떨까’ 하는 식으로 결정했다. 뮤지컬에 관심이 있었고 언젠가 해보겠다고도 생각했지만 이 영화가 형식적으
<다세포소녀> 촬영현장을 가다 [2]
-
<다세포소녀>는 특이한 영화다. 학교를 배경으로 한 이야기치고는 난데없이 ‘막 나가는’ 주인공들이 등장하고, 원조교제, 복장도착자와 같은 단어들이 일상적으로 등장한다. 학교와 학생에 관해 갖고 있던 그리움이나 환상에 대항하는 동시에, 학교에 관한 발칙한 상상력이 극한에 이른 영화. 어느 대목은 순정만화 같고, 어느 대목은 발랄한 뮤지컬 같다. 원작 만화의 전복적인 아이디어를 살리면서도 만화와 다른 영화적인 요소들이 십분 살아난 영화 <다세포소녀>는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네번에 걸친 촬영현장 방문과 추후 취재를 통해 개봉을 앞둔 <다세포소녀>를 들여다보았다.
“선생님, 죄송한데요. 저도 오늘 원조교제 약속이 있어서 가봐야겠습니다.” 가난을 등에 업은 소녀가 주섬주섬 짐을 챙기며 담임선생님에게 말한다. 선생님은 놀라지도 않고 대답한다. “그래. 늦진 않았니? 얼른 가봐라.” 인터넷 만화를 원작으로 한 <다세포소녀>는 엉뚱한 상상력이 반짝거
<다세포소녀> 촬영현장을 가다 [1]
-
“경의선에 관한 모든 권한은 우리 일본이 갖고 있다.” 일본의 이 한마디에 한반도가 얼어붙는다. 100년 전의 조약을 근거로 남북의 경의선 개통식을 방해한 일본은 개통을 취소하지 않을 경우, 한반도로 유입된 모든 기술과 자본을 철수하겠다며 대한민국 정부를 압박한다. 이에 대통령은 일본의 억지 주장에 강경하게 맞서려 하지만, 국가안보와 경제안정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총리(문성근)와 보수파 장관들의 주장도 거세긴 마찬가지다. 한편, 사학계의 이단아 취급을 받아온 역사학자 최민재(조재현)는 100년 전 조약문서에 찍힌 국새는 고종이 직접 만든 가짜이며, 진짜 국새를 찾는다면 한국과 일본의 근대사가 다시 쓰일 수 있다고 확신한다. 최민재에게 마지막 희망을 건 대통령은 ‘국새발굴진상규명위원회’를 구성하여 그에게 일임하고, 불화의 씨를 없애려는 총리는 국정원 서기관 이상현(차인표)에게 최민재를 저지할 것을 명령한다.
영화의 첫 장면은 강우석 감독이 비분강개하는 한반도의 현실을 드러낸다.
강우석 감독의 팩션 블록버스터 <한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