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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론 서바이버>는 2005년 탈레반 부사령관을 체포하기 위해 실행됐던 ‘레드윙 작전’을 바탕으로 제작된 영화다. 서사는 단순하고 전투과정도 복잡하지 않지만 영화를 보는 내내 전장 한복판에 내던져진 느낌을 안긴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만큼 박진감 넘치는 전투 화면은 기본이지만 <론 서바이버>가 주는 충격은 성실한 재현 그 이상이다. 관객에게 전장을 ‘체험’시키는 연출의 비결은 치밀한 사운드 구성에 있다. 이미지보다 오래 뇌리에 남는 사운드의 힘. 전장을 지배하는 소리의 정체를 알기 위해 사운드믹싱 전문회사 라이브톤의 최태영 음향감독, 영화진흥위원회의 서영준녹음실장, 영상원의 이규석 음향전공 교수에게 도움을 청했다. 세명의 사운드 전문가와 함께 <론 서바이버>의 전장 속으로 들어가보자.
최태영_<론 서바이버>는 근래 나온 전쟁영화 중에서도 사운드가 특별히 도드라지는 영화다. 다들 어떻게 보았나.
서영준_재미있었다. 주로 총격전을 중심으로
‘진짜 사나이’의 호흡 담은 조용한 전쟁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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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세월 사랑받아온 만화/동화/애니메이션의 대표 캐릭터들이 현실 세계로 튀어나왔다. 꽁꽁 감춰둔 속사정을 털어놓게 될 <잠자는 숲속의 미녀>의 마녀 말레피센트부터 신문 밖으로 나와 손에 잡힐 듯 움직이는 3D 버전 스누피까지 21세기 버전으로 다시 태어난 캐릭터들을 모았다.
마녀의 탄생
<말레피센트>
늘어지게 자다 일어나 당연한 듯 왕자의 사랑을 차지하는 <잠자는 숲속의 미녀>의 오로라가 21세기엔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다. 실사영화 <말레피센트>는 오랫동안 사악한 마녀로만 치부돼온 말레피센트의 역습이다. 디즈니 애니메이션에서 막 빠져나온 듯 완벽한 싱크로율을 자랑하는 안젤리나 졸리의 말레피센트는 섹시하고 유혹적이다. 특히 졸리의 도드라진 광대뼈와 선명한 입술 라인이 애니메이션 속 말레피센트를 빼다 박았다.
<말레피센트>는 말레피센트가 어떤 사연으로 마녀가 되었는지를 그녀의 입장에서 전개하는 영화다. 신비로운 마녀, 용
다시 만나서 반가운 친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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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인기 캐릭터 코난과 루팡 3세가 전면전을 벌인다. 괴도와 탐정은 5년 전인 2009년 3월에 이미 <니혼TV> 개국 55주년, <요미우리TV> 개국 50주년을 기념한 동명의 TV특별판에서 한 차례 만난 바 있다. 원작자와 출판사가 다른 만화가 하나의 작품으로 콜라보레이션을 시도한 건 일본 애니메이션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TV특별판은 기획부터 완성까지 2년 이상 소요된 대작이었다. <극장판 루팡 3세 vs 명탐정 코난>에서의 재회 역시도 <니혼TV> 개국 60주년, <요미우리TV> 개국 55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이루어졌다. 극장판 스토리는 베스파니아 왕국의 보물인 체리 사파이어의 행방을 다뤘던 지난 TV특별판에서부터 이어진다.
‘은행에 보관된 체리 사파이어를 가져가겠다’는 루팡 3세의 예고장이 경시청에 날아들고, 루팡 3세는 예고대로 체리 사파이어를 훔쳐낸다. 루팡 3세는 훔쳐낸 보석을 의문의 남자 알란 스미시에게
괴도와 탐정의 빅매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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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전정식. 서류번호 8015번. 사진 속 어린이는 얼떨떨하고 무구한 표정이지만 이 아이가 자라서 그려낸 이때의 자기 모습은 서글프기 그지없다. 모두에게 버려진 듯 우울한 표정을 짓고 있는 어린아이의 모습에서 본격적인 이야기는 시작된다. <피부색깔=꿀색>은 고아원에서 자라나 홀트아동복지회를 통해 벨기에로 입양된 소년전정식, 융 헤넨의 자전적인 스토리에 바탕한 애니메이션이다. 입양아 문제가 심각한 한국 사회의 어두운 단면과 아픈 기억을 간직한 채 타국에서 어른이 되어야 했던 감독의 서글픈 성장통이 고스란히 담겼다.
다섯살의 한국인 소년 전정식을 입양한 벨기에 양부모에겐 이미 네 아이가 있다. 전정식은 양부모로부터 융이라는 이름을 받고 낯선 환경에 적응해간다. 남다른 피부색을 가진 소년 융은 집안의 천덕꾸러기로 자라난다. 수도 없이 엄마의 속을 끓이며 사춘기를 맞이한 융은 또 한명의 낯선 식구를 받아들이게 된다. 융의 집에 한국인 소녀가 입양돼 온 것이다. 양부모의 관심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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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야자키 하야오와 함께 스튜디오 지브리를 떠받치고 있는 또 하나의 이름, 다카하타 이사오. <가구야 공주 이야기>는 <반딧불의 묘> <추억은 방울방울> <폼포코 너구리 대작전> <이웃집 야마다군>에 이어 다카하타 감독이 스튜디오 지브리에서 연출한 5번째 극장용 장편애니메이션이다. <이웃집 야마다군> 이후 무려 14년 만의 신작인 <가구야 공주 이야기>는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설화로 전해지는 ‘다케토리 이야기’를 원작으로 한다. 대나무장수 할아버지가 대나무를 캐다 손바닥에 쏙 들어올 만한 크기의 여자아이를 발견해 집으로 데려온다.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아이에게 가구야라는 이름을 지어주는데, 이 신비로운 아이는 순식간에 절세미녀로 성장한다. 가구야의 미모는 금세 널리 소문이 나고, 장안의 명문가 자제 5명이 가구야에게 청혼을 한다. 급기야 나라의 황제까지 가구야의 마음을 사로잡으려 하지만 가구야가 지상에서 보낼 시
지브리 애니메이션의 다른 색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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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림웍스는 인간 캐릭터보다 동물 캐릭터에 깊고 진한 애정을 쏟아온 애니메이션 스튜디오다. <슈렉> <쿵푸팬더> <드래곤 길들이기> <마다가스카> 등이 그것을 잘 증명한다. 드림웍스의 올해 첫 애니메이션 <천재 강아지 미스터 피바디> 역시 웬만한 사람보다 똑똑한 강아지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동심을 공략한다. 인간 세상에 섞여 살고 있는 미스터 피바디는 IQ 800에, 노벨상 수상 경력까지 지닌 천재 강아지다. 거기에 요리 능력도 출중하며 댄스에도 일가견이 있다. 그런 피바디가 쩔쩔매는 한 가지가 있으니 바로 입양한 인간 아들 셔먼이다. 매사에 이성적이고 분석적이고 계획적인 피바디와 달리 셔먼은 즉흥적이고 호기심 많은 꼬마다. 둘은 피바디가 발명한 타임머신을 이용해 남몰래 과거로의 시간여행을 즐겨왔는데, 어느 날 셔먼의 친구 페니가 타임머신의 정체를 알게 된다. 호기심 많은 두 꼬마와 피바디는 고대 이집트부터 시민혁명 당시의 프랑스까지
드림웍스의 동물 사랑 프로젝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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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래곤 길들이기>가 개봉한 지 4년이 흘렀다. 그사이 히컵은 어엿한 바이킹 전사로 성장했고 바이킹족 사이에선 드래곤을 타고 경주를 하는 드래곤레이스가 유행이다. 어느 날 투슬리스와 주변을 탐험 중이던 히컵은 오래된 얼음동굴을 발견한다. 얼음동굴 안엔 수백종의 새로운 드래곤들과 그 드래곤들을 통솔하는 드래곤라이더가 있었다. 히컵을 보고 놀란 드래곤라이더는 헬멧을 벗어 보인다. 그는 히컵의 어머니 발카다. 발카는 히컵에게 자신이 얼음동굴에서 드래곤들과 숨어 지내게 된 사연과 무시무시한 드래곤헌터의 존재를 이야기해준다. 히컵과 바이킹족은 발카와 힘을 합쳐 흉포한 드래곤헌터들에 맞서기로 한다.
첫 번째 시리즈가 나약한 소년과 어린 드래곤이 연대해 성장하는 이야기였다면 두 번째 시리즈부터는 본격적으로 프랜차이즈 어드벤처물의 면모를 갖췄다. <드래곤 길들이기2> 제작 초기에 딘 드블루아는 말했다. “모든 것이 훨씬 커진다. 히컵은 더이상 북쪽 바다의 작은 섬에 안주하
북쪽 바다 작은 섬 너머의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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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를 놓치면 언제 다시 볼 수 있을지 알 수 없는 영화들이 있다. 이른바 ‘영화제용 영화’들이 그렇다. 스페인 단편애니메이션을 선보이는 제31회 부산국제단편영화제, 러시아, 브라질, 폴란드의 애니메이션을 소개하는 제18회 서울국제만화애니메이션페스티벌, 라이카 스튜디오의 전작을 소개하는 제16회 부천국제학생애니메이션페스티벌 미리 보기를 준비했다. 세계는 넓고 애니메이션은 많다.
제31회 부산국제단편영화제
4월25∼29일, 영화의 전당
부산국제단편영화제는 올해 주빈국으로 스페인을 선정, 스페인의 특색 있는 단편영화들을 선보인다. 그중 ‘스페인 애니메이션’ 부문은 관객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11편의 단편들로 채워졌다. 우선 <바르셀로나 저속 만화경>은 바르셀로나의 공간을 4년간 타임랩스(간헐 촬영) 기법으로 촬영한 뒤 그 이미지를 만화경처럼 바꿔놓은 작품으로, 이국적이고 이색적인 이미지가 황홀경을 선사한다. 탐욕스런 인간에게 일침을 가하는 실루엣애니메이션 <성스런 기
놓치면 후회할지도 몰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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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스 에이지> <에픽> 시리즈와 <리오>를 만들며 애니메이션 업계에 파란을 몰고 온 제작사 ‘블루스카이 스튜디오’로부터 반가운 초대장이 도착했다. 3년간 심혈을 기울여 작업한 애니메이션 <리오2>를 전세계 기자들이 미리 볼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한 것이다. <리오2>는 2011년 전세계적으로 4억8500만달러라는 엄청난 성공을 거둔 흥행작 <리오>의 속편이다. 홈페이지에 명시된 스튜디오 설명이 인상적이다. “세계에서 가장 성공한 애니메이션 스튜디오가 코네티컷 그리니치의 푸른 삼림이 우거진 곳에 있다고 하니 모두들 놀란다. 뉴욕에서 겨우 몇 발짝 안 되는 거리에 말이다.” 수백명에 달하는 애니메이터들의 터전인 스튜디오를 운영하자면 일정 규모의 부지가 확보되어야 한다. 땅값이 비싼 도심에 자리잡는 건 언감생심 힘든 일이다. 그러나 블루스카이는 뉴욕에서 불과 1시간40분 거리, 애니메이터들이 통근버스로 뉴욕에서 출퇴근할 수
마코 앵무새의 더 크고 더 화려한 모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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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억7200만달러. 한화로는 약 1조1400억원. <토이스토리3>를 제치고 역대 흥행 1위 애니메이션으로 등극한 <겨울왕국>이 전세계에서 벌어들인 수익이다. 디즈니의 경쟁사들이 가만히 있을 리 없다.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만반의 준비를 마친 애니메이션들이 줄줄이 개봉 대기 중이다. 3년 만에 돌아온 <리오2>, 4년 만에 돌아온 <드래곤 길들이기2>, 스튜디오 지브리의 <가구야 공주 이야기> 등 여름까지 국내 개봉이 확정된 크고 작은 애니메이션들을 모았다. 영화제에서만 만날 수 있는 애니메이션들의 목록도 정리했으니 꼼꼼히 살펴보시길. 우선 <리오2>를 제작한 블루스카이 스튜디오 탐방기부터 확인하시라.
누가 <겨울왕국>을 넘어설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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캡틴 아메리카가 마블 스튜디오의 새로운 히어로로 신고식을 치른 건 3년 전이었다. 캡틴 아메리카는 <퍼스트 어벤져>로 자신의 존재를 알렸고, <어벤져스>로 자신의 능력(리더십)을 보여주었다. <어벤져스> 이후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캡틴 아메리카: 윈터 솔져>(이하 <윈터 솔져>)에선 캡틴 아메리카가 왜 ‘캡틴’으로 불리는지 그 합당한 이유를 제시하며 매력 발산의 시간을 갖는다. 영화 역시 마찬가지다. <윈터 솔져>는 <아이언맨> <어벤져스>에 버금가는 마블의 역작으로 기록될 것이다. <윈터 솔져>를 둘러싼 궁금증들을 정리했다.
캡틴 아메리카는 마블의 히어로 중 가장 심심한 캐릭터다?
NO 어두운 과거도 없고, 복잡한 여자 관계도 없고, 욱하는 성질도 없는 캡틴 아메리카는 근래 우리가 보아온 히어로들 중 가장 행실 바른 사내다. 이는 <퍼스트 어벤져>와 <어벤져스&g
내가 슈퍼히어로 캡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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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와 사물에 대한 이야기를 닫는 이 지면에선 영화 바깥에 존재하는 사물에 관한 에피소드를 소개하려 한다. 감독들이 일상에서 좋아하고 아끼는 물건은 종종 영화 연출의 원동력이 되거나 적절한 활력소가 되어주기도 한다. 창작자의 개인적 취향과 영화적 스타일이 완전히 별개가 아닐 거란 믿음으로, 그 대답이 궁금한 한국 감독들에게 직접 물었다. 당신이 아끼는 물건은 무엇입니까, 라고.
봉준호 감독의 가방 속에는 엽서 사이즈의 공책이 항상 들어 있다. 작아도 “두께는 단행본 수준”이란다. 봉준호 감독은 이 공책에 그림도 그리고 글도 쓴다.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여기에 지난 4~5년간 봉준호 감독이 작업했던 영화, <도쿄!> <마더> <설국열차>의 중요한 아이디어들이 담겨 있다는 것이다. “얼마 전에 공책을 다시 보니 어떤 영화를 구상할 때 최초로 떠올랐던 생각들이 거기 있더라. 예를 들어 ‘기차는 1년에 한 바퀴를 돈다’ (<설국열차>)는 개념을
나의 집착, 나의 영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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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우샤오시엔의 ‘밥상’이라고 했을 때 모두의 머릿속에 가장 먼저 떠오르는 영화들은 아마도 <비정성시>나 <해상화>일 테지만, 문득 나는 이 짧은 지면에서 이미 많은 비평가들과 학자들이 분석해놓은 ‘허우샤오시엔 밥상의 비밀’을 반복해서 이야기할 자신이 없어졌다. 만약 그저 작은 나의 취향을 허락한다면, 허우샤오시엔 영화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두개의 밥상 이야기를 나누어보고 싶다.
그 첫 번째 영화는 <카페 뤼미에르>이다. 대만에 살고 있는 남자친구의 아이를 임신한 주인공 요코는 고향집에 내려가 아버지가 잠든 사이, 뒤늦은 저녁상을 차려준 새엄마에게 망설임 끝에 자신의 임신 사실을 알린다. 요코는 무심한 듯 계속 밥을 먹고 새엄마는 그 자리에 얼어붙어 있다. 이때의 밥상은 요코와 새엄마를 한자리에 불러 앉혀 이야기를 시작하게 만든다. 하지만 이 밥상에 요코의 아버지가 초대받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린다. 부부는 도쿄의 장례식에 다니러 왔다가 요코의
어서 오세요, 가족의 자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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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LA에서 열린 <블레이드 러너> 시사회에서(‘로스앤젤레스 안의 로스앤젤레스’라는 영화제 행사의 일환이었다.-편집자) 리들리 스콧은 한 관객에게 이런 질문을 받았다. “당신의 영화에는 자주 선풍기가 등장하는데, 거기에 특별한 이유나 의미가 있냐”라는 것이었다. 질문이 끝나자마자 리들리 스콧은 이렇게 맞받아쳤다고 한다. “음, 선풍기는 당신을 시원하게 해주잖아요.”(Well, they keep you cool.)
물론 웃자고 하는 얘기였을 거다. 하지만 마냥 웃어넘길 수만은 없는 일화이기도 하다. 영화의 스토리텔링에 부합하는 최적의 비주얼을 이끌어내는 것이 장기인 데다 시대의 기대치를 뛰어넘는 프로덕션 디자인으로 명성을 얻은 감독의 영화에 어떤 물건이 자주 등장한다면, 그리고 그 물건이 선풍기라면 이유가 궁금하지 않겠는가. 비록 감독 본인에게 속시원한 대답을 듣진 못했지만 짐작가는 바는 있다. 그 얘기를 하기 전에 먼저 물증부터 들여다보자. <블레이드 러너
불길한 바람이 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