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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IFF의 ‘디지털 삼인삼색’은 감독들에게는 꿈의 프로젝트다.” <자유 낙하>를 연출한 헝가리 출신의 기요르기 폴피 감독에게 JIFF는 “신이 보낸 구원의 메시지” 같았다. JIFF의 제작비가 모태가 돼 헝가리 현지 투자자들을 끌어들여 제작비 규모를 키웠고 영화로까지 완성했기 때문이다. “헝가리 필름 펀드의 경우는 ‘네 작품을 좋게 만들기 위해서 그래’라는 이유를 붙여가며 내게 어떤 스토리를 쓸 건지 미리 묻기부터 한다. 그렇게 해서 시나리오가 통과된다 해도 내게 여러 번 수정을 요청한다. 이 시간만 1년반이 넘게 걸리고 중간에 엎어지는 경우도 허다하다. 어쩔 수 없는 구조적인 문제로 나는 많이 지쳐 있었다. 3년 전부터는 더 이상 영화를 만들 수 없는 상태에까지 이르렀다. 영화를 그만둬야 하나 심각하게 고민했다. 그때 JIFF에서 연락이 온 거다.” 일정 정도의 예산과 영화 제출 기한만 제시하고 모든 걸 감독에게 전임하는 JIFF의 시스템이 감독에게는 다시 영화에 집중
인간이라는 존재 자체의 비극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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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사카조선고급학교(이하 오사카조고) 럭비부 아이들의 모습을 담은 다큐멘터리 <60만번의 트라이>는 김명준 감독의 <우리학교>가 그랬던 것처럼 쉼 없이 관객을 웃기고 울린다. 박사유(왼쪽) 감독은 아픈 몸을 이끌고 3년간 럭비부 아이들을 쫓아다녔고, 재일동포 3세인 박돈사 감독은 박사유 감독의 손과 발 그리고 정신적 지주가 되어 영화 완성에 힘을 보탰다. 가슴에 노란 리본을 달고 나타난 두 감독은 긴 시간 흐트러짐 없는 자세로 재일동포 사회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한국경쟁부문에 출품된 <60만번의 트라이>는 제15회 전주국제영화제에서 CGV 무비꼴라쥬 배급지원상을 수상했다. 국내에선 8월 개봉예정이다.
-오사카조고 럭비부 학생들의 이야기를 카메라에 담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박사유_2010년, 유방암 항암제 치료를 막 끝냈을 때 오사카 재일동포 한분이 전화를 걸어왔다. 오사카조고 아이들이 (전국고교 럭비대회가 열리는) 하나조노 경기장에서 ‘큰
일본에서도 볼 수 있도록 ‘상영운동’ 벌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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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의 삶이나 기록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늘 기록으로 남아 있는 건 승자들의 기록뿐이지 않나.” 부산을 근거지 삼아 다큐멘터리 작업을 해오고 있는 김지곤 감독에게 이 말은 그의 카메라가 어디로 향할지를 가늠하게 하는 방향키와도 같다. 그간 감독은 세상의 관심으로부터 밀려난 공간과 그 속에 사는 사람들에게 눈길을 보내왔다. 허물어져가는 부산의 오래된 극장을 보여주던 <오후 3시> <낯선 꿈들>, 부산 산복도로 근처 재개발 지역에 거주하는 ‘할매들’을 기록한 <할매> <할매-시멘트정원>이 대표적이다. 부산에서 태어나 지금껏 그곳에 살며 부산의 주변부 인생을 카메라로 기록하는 그가 이번에는 악사들을 따라갔다.
“나조차도 ‘악사’라는 말이 낯설었다. 흔히 ‘딴따라’라고 불리는 사람들을 떠올리면 나이트클럽의 취객들 뒤에서 연주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나. 연주인인 그들의 삶을 제대로 담아보고 싶었다.” <악사들>은 혜광
부산의 주변부를 보듬는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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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우리의 끝이다>는 손님에게도 점주에게도 철저히 ‘을’이 될 수밖에 없는 편의점 아르바이트생들과 그들에게 철저히 ‘갑’ 노릇을 하려는 손님과 점주의 이야기를 엮은 영화다. 영화 속 편의점은 두말할 것 없이 우리 사회의 축소판. 영화는 노동을 착취당하는 20대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하지만 김경묵 감독의 전작 <줄탁동시> <얼굴 없는 것들>에 비하면 <이것이 우리의 끝이다>는 한층 샤방샤방한 느낌을 준다. 김경묵 감독이 편의점이라는 공간을 빌려 말하고자 한 것이 무엇인지 들어봤다.
-절망을 선언하는 듯한 제목이 인상적이다.
=절망적인 끝의 느낌도 있고 ‘이게 정말 끝인가?’ 하는 느낌도 담겨 있다. 중의적인 뉘앙스의 제목이다. 모티브가 된 건 인디밴드 쾅프로그램의 <이것은 우리의 끝>이라는 노래다. 밴드에 양해를 구해서 제목을 지었다.
-애초 시나리오보다, 또한 이전의 작품들보다 영화가 한층 밝고 경쾌해졌다
여럿인 동시에 하나인, 유니폼 알바생들이 궁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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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만 보고 북한을 소재로 한 영화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간첩이 등장하긴 한다. 이상우 감독의 신작 <친애하는 지도자동지께>는 한국에서 가난하게 살아가는 북성(김영건), 영림(신원호), 우석(서현석) 세 친구를 간첩의 눈으로 바라보는 청춘영화다. 가난, 아버지의 폭력, 군대 성폭력, 장애, 기독교 문제 등 오랫동안 해결되지 않는 한국 사회의 문제로 고통받는 그들을 따라가다 보면 마음 한쪽이 애절해져온다. 영화는 희망 없는 이 땅에서 살아가는 청춘들에 대한 절박한 보고서다.
-간첩의 눈으로 한국 사회를 바라보는 영화다. 어떻게 구상하게 된 건가.
=유튜브에 월북한 남한 사람의 인터뷰 영상이 뜬 적 있다. 한국이 경제적으로 살기 어려워 북한으로 건너왔다는 내용이었다. 이 영상을 모티브로 삼았다. 최근 간첩을 소재로 한 상업영화가 많이 개봉됐는데, 기존의 영화 속 간첩과 다르게 다루고 싶었다.
-간첩이 캠코더를 들고 북성, 영림, 우석을 따라다닌다. 간첩을 대상화해
간첩 다룬 요즘 영화들과 다르게, 다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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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송희일 감독은 영화제가 반환점을 막 돌았을 때 전주에 도착했다. 이탈리아 토리노LGBT영화제가 이송희일 감독의 전작을 상영하는 특별전을 열었는데, 두 영화제의 일정이 겹쳤기 때문이다. 전주에서 국내 첫 공개된 그의 신작 <야간비행>은 한때 친했지만 고등학생이 된 뒤 소원해진, 기웅(이재준), 용주(곽시양), 기택(최준하) 세 친구의 성장 드라마다. 학교폭력, 결손가정 아동 문제, 왕따 문제, 게이 문제 등 사회의 여러 구조적 문제를 건드린다.
-베를린국제영화제와 토리노LGBT영화제에서 <야간비행>이 먼저 공개됐다. 관객 반응은 어땠나.
=베를린에서는 반응이 좋았다. 한국의 교육 시스템에 대해 많은 관심을 보였다. 토리노에서는 관객 반응을 확인하지 못했다. <야간비행>이 상영하던 날 전주로 가야 했다.
-<탈주>(2010) 이후 4년 만의 장편영화다.
=캐스팅하는 데 어려움이 많았다. 겨우 캐스팅을 한 뒤 촬영에 들어가려니까 너무 준
학교라는 구조가 아이들에게 어떤 고통을 안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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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바 ‘대형’ 게스트는 없었지만 신작을 들고 전주를 찾은 한국 독립영화 감독들이 5월의 전주를 불밝혔다. <야간비행>의 이송희일 감독, <60만번의 트라이>의 박사유/박돈사 감독, <친애하는 지도자동지께>의 이상우 감독, <이것이 우리의 끝이다>의 김경묵 감독, <악사들>의 김지곤 감독을 비롯해 ‘디지털 삼인삼색 2014’의 세 감독, 기요르기 폴피, 신연식, 박정범 감독을 만났다. 제15회 전주국제영화제 국제경쟁 대상 수상자인 <공포의 역사>의 벤하민 나이스타트, 한국경쟁 대상 수상자인 <새출발>의 장우진 감독도 시상식 다음날 만났다. 5월1일부터 10일까지 열린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씨네21>이 만난 감독들을 소개한다.
JIFF는 진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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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그래픽 노블, 애니메이션을 오가며 융 헤넨(한국명 전정식) 감독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내는 일이다. 자전적 이야기를 토대로 한 작품 <피부색깔=꿀색>에 대한 질문은 감독 자신에 대한 질문과 구분되지 않았다. 한국계 입양아로서 벨기에에서 자라나 현재 프랑스에서 작가로 활동 중인 융 헤넨 감독을 만났다.
-한국은 몇 번째 방문인가.
=<피부색깔=꿀색>의 실사 장면을 취재하러 왔던 2010년 한국을 처음 방문했다. 지난해 부천국제학생애니메이션페스티벌(PISAF)에서 내 영화가 개막작으로 선정되어 방문했고, 이번이 세 번째다.
-동명 제목의 그래픽 노블이 있다. 처음부터 애니메이션화될 것을 예상했나.
=아니다. 본래 2007년에 단행본이 나왔고 애니메이션은 2012년에 만들어졌다. 처음 만화를 그릴 때엔 영화화까지 고려하지 않았다. 첫 번째 연재본을 본 뒤 영화 제작자가 연락해왔다. 그래서 그의 제의로 TV용 다큐멘터리를 찍기 위
그리움 품은 꿀색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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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경계인의 과거와 현재를 병치시키는 애니메이션 <피부색깔=꿀색>은 애잔하면서도 덤덤하게 마음을 움직이는 영화다. 이 작품은 2013년 자그레브국제애니메이션영화제의 대상과 관객상, 아니마문디국제애니메이션영화제의 작품상, 안시국제애니메이션영화제의 관객상과 유니세프상을 비롯해 세계 80여 영화제에 초청, 23개의 상을 휩쓸며 잔잔하지만 강력한 반향을 일으켰다. 영화의 출발은 자전적 그래픽 노블 <피부색깔=꿀색> 3부작(한국에는 2013년 통권으로 발간되었다)이었다. 결과적으로는 벨기에에서 자라난 한국계 입양아 ‘융’의 성장애니메이션, 영화에 직접 출연한 감독의 현재를 반영한 실사 영상, 여기에 뉴스릴 화면과 홈비디오 영상, 스틸사진까지 혼재된 하이브리드 애니메이션으로 완성되었다. 1965년 한국에서 태어난 감독 융 헤넨은 1971년 벨기에로 입양되어 성장했다. 브뤼셀의 생-뤽 아틀리에, 보자르 아카데미를 거쳐 라 캉브르 예술학교에서 그림과 애니메이션을 공부했다. 그
벨기에의 ‘융’이 한국의 ‘정식’에게 보내는 담담한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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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배가 늘었다. 뜬눈으로 지새우는 밤이 늘었다. 머리가 복잡할 때마다 잠시잠깐 바둑을 두다보니괜스레 바둑 실력만 늘었다. <송환2>라는 큰 숙제와 한창 씨름 중인 김동원 감독은 피로한 기색이 역력했다. 좀처럼 풀리지 않는 상황과 반복되는 고민들. 하지만 한시도 마음 놓고 쉬진 못한다. 그럴 수 없다. 고개를 돌리지도 않고 꺾이지도 않는 굳건한 마음. 그 마음의 소리를 들어본다.
-<송환> 개봉 10주년 축하드린다.
=지난해였는데? (웃음) 정식 개봉은 2004년에 했지만 첫 발표는 2003년에 했다. 지난해에 서울독립영화제나 서울아트시네마 등 몇 군데서 조촐하게 기념하는 행사도 가졌고 재상영도 했었다.
-다시 본 사람, 처음 본 사람 등등 다양했을 텐데 분위기는 어땠나.
=특별한 기대는 없었는데 자원봉사했던 대학 1, 2학년 친구들이 재미있다고 해주니 이게 지금도 먹히는 이야기구나 싶어 뿌듯하기도 했다. 조창손 선생을 보고 울기도 하고 김선명 선생이 유독
그래도 사람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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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신인 김태일 감독
수신인 아직 만나지 못한 오월에게
제가 정말 만들고 싶은 게 무엇인지를 고민하면서 선택한 것이 ‘민중의 세계사’였습니다. 역사의 현장에서 주목받지 못하고 기록에서 누락되기 일쑤인, 특별하지 않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습니다. 언젠가 도서관 구석에서 발견한 한권의 책이 제 생각을 더욱 굳게 해주었지요. 고 권정생 선생님의 소설 <한티재 하늘>. 19세기 말부터 20세기를 살았던 이 땅의 이름 없는 민초들의 삶을 고스란히 담은 책입니다. 우리가 그동안 알고 있었던 역사가 권력의 역사이고, 힘의 역사였음을 뼈저리게 일러준 책이기도 합니다. 최소한 자신들이 살아가고 있는 삶을 자신의 방식으로 표현하고 자신의 시선으로 담아내는 작품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오월, 당신의 얼굴이 그때 떠올랐습니다. 80년 5월, 광주는 아름다운 공동체였습니다. 물자는 끊겼고, 통신은 두절됐으며, 언론 또한 당신의 말을 외면했습니다. 아니, 왜곡했습니다. 광주는 세상으로부터
광주의 이름 없는 당신에게 막걸리 한잔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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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신인 황윤 감독
수신인 박그림 환경운동가
설악녹색연합 대표. 설악산 산양 연구가. 설악산 환경지킴이. 1992년 설악산 언저리에 집을 지은 이후 모노레일 설치 반대, 설악산 세계자연유산 등록 추진, 대청봉 케이블카 설치 반대 등 꾸준히 환경보호 운동을 해왔다.
박그림 선생님께.
2001년 1월, 선생님과 함께 설악산에서 보냈던 그 겨울을 저는 잊을 수가 없습니다. 동물원 철창에 갇힌 호랑이들의 삶에 관한 영화 <작별>을 만들던 당시, 저는 ‘동물원 밖 세상’ 그러니까, ‘야생’이 너무나도 궁금했고, 알고 싶었고, 보고 싶었습니다. 야생에 관해서라면 일자무식이었기에, 야생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줄 사람들을 찾아다니다가 어떤 ‘이상한’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입만 열면 너구리 발자국이랑 개 발자국은 어떻게 다른지를 토론하는 ‘야생동물소모임’이었지요.
그 모임에서 설악산으로 6박7일간 장기탐사를 갔을 때 선생님이 이끌어주셨던 것이 생각납니다. 대피소에 옹기종기 모여앉아,
야생으로의 안내자시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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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신인 경순 감독
수신인 한경은 사진작가
계원예술대학교 사진학과를 졸업하고 중앙대학교 대학원 사진학과에 재학 중인 신진 사진작가. 2008년 서울디자인페스티벌, 2012년 브레다국제사진페스티벌, 2013년 <로드쇼: 대한민국-백령도> 등 다양한 그룹전을 통해 활발히 활동 중이다.
경은아. 나는 참 게으른 사람이다. 그 게으른 나에게 영화를 만드는 일조차 없었다면 아마도 아침부터 저녁까지 빈둥거리는 삶을 최고의 덕목으로 여기며 살았을지도 모르지. 더구나 다큐멘터리영화란 얼마나 많은 품이 필요한지 일단 제작이 시작되면 끝날 때까지 빈둥거리며 게으름을 피울 시간이 없으니 말이다. 근데 왜 또 찍고 또 찍고 그러냐고 누군가가 물어본다면 그것은 바로 미지의 사람을 만나는 즐거움 때문이 아닐까 싶다.
너는 <쇼킹 패밀리>를 준비하면서 만난 그 많은 사람들 중에서도 참 특별한 인연이었어. 출연자로 만나 <쇼킹 패밀리>와 <레드마리아> 두편의 영화
약한 척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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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신인 주현숙 감독
수신인 이주노동자 비두씨께
방글라데시 출신의 이주노동자. 2002년 4월28일부터 77일간 ‘집회결사자유 쟁취, 추방 반대, 노동비자 쟁취를 위한 명동성당 농성’을 하는 등 지속적으로 이주노동자의 인권 투쟁에 참여했다. 2004년 ‘전국비정규직 노동자대회’에서 연행되어 강제추방당했다
비두씨, 어떤 일이 일어날 때 그 일의 의미를 바로 그 순간에 알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아무리 준비해도 세상 사는 일은 매 순간 새로운 일이라서 예상을 빗나가게 마련이라 저처럼 순발력이 떨어지는 사람은 한참 뒤에야 어떤 순간의 의미를 알게 되기도 하고 어떤 순간은 기억에도 없이 사라지기도 하죠. 그래도, 아니 그래서 비두씨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몇몇 순간이 있어요.
처음은 이주노동자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만들겠다고 마석 가구공단에 드나들던 때였어요. 어떤 상황이었는지 기억나진 않지만 항상 너그럽고 부드럽던 비두씨가 저를 빤히 쳐다보면서 “현숙씨는 그것만 보여요?”라고 했을
존재해도 됩니다, 말해도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