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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룹 A에서 연출을 경험 중인 샤리파와 그룹 B에서 조연출을 경험 중인 쿠 준 쟁, 그룹 A의 지도교사인 셍 탓 리우 감독, 그리고 FLY 2014 졸업생으로 후배들을 격려하려고 FLY 2015를 찾은 버디 안와르디. FLY 2015에 참여한 말레이시아 출신의 영화인들이다. 이들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올해 6월 말레이시아에서 처음으로 시도된 젊은 영화인 양성을 위한 워크숍 ‘넥스트 뉴 웨이브’(Next New Wave)에 참여한 경험이 있다는 것. 말레이시아국립영화개발위원회(FINAS)가 지원하고 말레이시아의 대표 감독이자 FLY 2014의 지도교사였던 탄추무이가 주축이 돼 만든 영화 제작 워크숍이다. 일종의 ‘말레이시아판 FLY’라고 보면 된다. 탄추무이는 FLY 같은 교육 프로그램이 말레이시아 내에도 필요하다고 판단해 팀을 꾸렸다. 그녀의 뜻에 동의한 타이의 아딧야 아사랏 감독, 필리핀의 카를로 멘도자 촬영감독 등이 멘토로 나섰다. 셍 탓 리우는 초청 연사다. 말레이시아 출신 학
“동남아 지역에서의 영화적 연대가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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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주 동안 단편영화 한편씩을 완성하라.’ FLY 2015 참가 학생들 앞에 주어진 미션이다. 10명씩 두팀으로 나뉘어 각각 영화 한편씩 만들어내야 한다. 시놉시스는 동일하다. ‘어느 날 10대 남매가 일출을 보기 위해 부모 몰래 가출을 단행한다. 맨날 서로 싸우기 바쁜 부모는 뒤늦게 아이들의 부재를 알고 패닉 상태에 빠진다. 과연 아이들은 무사히 일출 보기에 성공할까.’ 이 내용은 FLY 2014에 지도교사로 참여했던 말레이시아 출신의 탄추무이 감독이 직접 작성해 보내온 것이다. 이야기의 뿌리는 같지만 팀별 과제인 만큼 각 팀의 색깔과 개성에 따라 극의 서사는 얼마든지 변주 가능하다. 참가 학생들의 언어, 문화, 종교, 사상은 다 다를지라도 오직 영화를 만들겠다는 일념으로 똘똘 뭉친 만큼 그들의 패기와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기대되는 프로젝트다. 기자가 현지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3일간의 촬영은 끝난 상태였다. 후반작업을 진행하고 있는 아이들과 지도교사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촬영현장을
“즐거움 한가득 안고 집으로 돌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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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세안 지역의 미래 영화 인재들을 미리 만났다. 부산영상위원회가 의장기구로 있는 아시아영상위원회네트워크는 4회째 아세안 지역의 재능 있는 젊은 영화인을 발굴하는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한-ASEAN 차세대영화인재육성사업(ASEAN-ROK Film Leaders Incubator: FLY 2015, 이하 FLY 2015)이라는 이름의 프로그램으로 올해는 11월9일부터 22일까지 말레이시아의 조호르바루에서 진행됐다. 한국을 포함한 아세안 11개국에서 온 20명의 학생들이 단편영화 제작의 전 과정을 직접 경험했다. <씨네21>은 촬영을 마치고 한창 후반작업에 돌입한 참가 학생들을 만나기 위해 조호르바루로 향했다. 라오스, 말레이시아, 브루나이 등 다양한 국적의 학생들과 지도교사들이 울고 웃으며 강렬한 영화적 체험을 나누고 있는 현장을 지면에 옮긴다.
영화를 향한 우리들의 꿈은 이제부터 시작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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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립연극학교를 졸업했다. 고전 작품을 접해본 것이 이 작품에 도움이 됐나.
=트레이닝이 도움된 것은 사실이다. 다만 그때는 셰익스피어나 르네상스 시대의 작품들을 많이 했고, 고딕 로맨스쪽은 아니었다. <크림슨 피크>는 18세기의 다양한 소설을 바탕으로 했기 때문에 새로운 면을 경험할 수 있는 기회였다.
-촬영기간이 길었던 데다 차기작들도 쉴 새 없이 찍었다. 지치진 않나.
=2014년 2월부터 5월까지 <크림슨 피크>를 촬영했고, 7월부터 8월까지 <하이라이즈>를 촬영했고, 10월부터 12월까지 <아이 소 더 라이트>를 촬영했다. <크림슨 피크>의 촬영 후반부에 내가 토마스 샤프의 분장을 하고 기타를 치며 행크 윌리엄스의 노래를 부르는 모습이 어딘가에 찍혔을 거다. (웃음) 지난해는 정신없이 바빴지만, 촬영 중에는 최대한 그 작품에 몰입하도록 노력한다. 캐스팅 해준 감독들에 대한 나의 기본적인 예의다.
-제시카 채
우아하고 시네마틱한 장면들을 만끽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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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러영화를 즐기는 편인가.
=다른 영화들과 비슷하다. 가끔 피범벅이 된 상태로 몇주 동안 촬영하는 것을 제외한다면. (웃음)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이 참고가 될 만한 서적을 몇권 줘서 재미있게 읽었다. 원래 호러나 스릴러 장르의 책을 많이 읽는 편이 아니라서 색다른 경험이었다. <나사의 회전> <프랑켄슈타인> 등을 읽으면서 이런 장르에 대한 즐거움을 알게 됐다고나 할까. 다크 판타지 측면이 인상 깊었다. 어떤 작가가 어떻게 하면 이런 이야기를 쓰게 될까를 생각하면서 메리 셸리에 대한 조사도 했다.
-의상도 세트장도 상당히 아름답다.
=놀라움 그 자체다. 의상은 물론이고, 세트 디자인도 너무 멋있었다. 코르셋을 입어야 해서 힘들긴 했지만 말이다. (웃음) 다른 작품에 비해 특수효과가 많지 않았고, 세트장이 잘 갖춰져서 연기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 세트장 안에 있는 자체가 큰 경험이라고나 할까. 그린룸 안에서 연기하는 것보다 얼마나 좋은지. (웃음) 송곳
의상과 세트, 놀라움 그 자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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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은 고전적인 유령 이야기를 사랑한다. 자신이 “멕시코 사람이기 때문에 그럴지도 모른다”는 농담을 자주하는 델 토로 감독은 가족과 친구, 이웃들의 ‘유령 목격담’을 듣고 자랐다고 밝혔다. 할리우드 고전 장르영화들을 답습하며 성장한 그는 이제 새로운 세대의 영화팬들에게 ‘델 토로의 프리즘’으로 재조명한 ‘잊혀진 장르영화’를 소개한다. 근래 할리우드에서는 구경할 수 없는 ‘고딕 로맨스’라는 장르에 대한 매력과 이를 스크린에 담기 위해 세심하게 신경을 쓴 부분까지 다양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크림슨 피크>를 고딕 로맨스 장르라고 불렀는데, 오랫동안 생각해온 작품인지.
=고딕 로맨스 장르라 하면 대부분 여자주인공이 약하고 순수하게 표현된다. 나는 정반대로 표현하고 싶었다. 섹스도 즐길 줄 알면서 자신의 목숨을 스스로 지킬 수 있는 그런 여자주인공 말이다. “스포일러 경고”를 포함시켜야 하겠지만, 대부분의 고딕 로맨스의 결말을 정반대로 표현하는
사랑은 고통에서 나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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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말로도 좋은 결과라 하긴 어렵다. 5500만달러의 예산이 들어간 <크림슨 피크>는 11월29일까지 전세계 박스오피스 7500만달러 남짓한 수익을 기록했다. 평단의 반응도 대체로 미지근한데 스토리에 대해선 결말이 일찍부터 예상되어 긴장감이 떨어진다는 등 아쉬움을 표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그나마 칭찬이 이어지는 건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의 미술적인 성취에 관한 것들이다. 기예르모 델 토로가 늘 지적받던 한계, 이를테면 비주얼에 경도되어 내러티브를 등한시한다는 푸념이 이번에도 여지없이 이어졌다. 그럼에도 이 영화 앞에 쉽사리 실패라는 단어를 가져다 붙일 수는 없다. 날카롭게 삐져나온 송곳처럼 델 토로는 항상 익숙함과 식상함을 비틀어 새로운 시점을 제공한다. 조금 늦게 도착했지만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과 두 배우의 긴 인터뷰를 계기 삼아 델 토로가 꿈꿨던 지점에 대해 다시 돌아보려 한다. <크림슨 피크>는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고 있나. 이 매혹적인 고딕 로맨스가 남
욕망-사랑-불안으로 세운 고딕 로맨스의 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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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의 이름은 미아다. 혹은 민아이거나, 미나이거나, 민하일 수도 있고, 아미이거나, 유미이거나, 윤미일 수도 있지만, 어쨌거나 아이는 미아라고 불리고, 아이 스스로도 자신의 이름을, 미아라고 생각한다.” 한유주의 첫 장편소설 <불가능한 동화>에서 등장인물의 이름을 소개하는 대목이다. 그녀의 소설은 대부분 화자가 마치 결정장애라도 있는 듯 자신의 생각에 가장 부합하는 언어를 지나칠 정도로 신중하게 고르고 있고, 그 고민의 흔적을 모두 활자로 옮겨 펼쳐놓은 것 같다. 게다가 뚜렷한 ‘이야기’ 없이 진행되고, 종종 말장난처럼 반복, 변주되는 표현들과 주어 없는 문장의 주인을 찾아가며 읽어야 할 때도 있다. 명확한 사건이 없는 소설, 혹은 작가 자신의 표현처럼 “수다스러운” 소설들에 대해 우찬제 평론가는 “일단 읽힌다면, 현존 세상과 인간, 말과 이야기 문화에 대한 강력한 항의의 서사로 받아들여진다”라고 썼다. 그도 오죽했으면 ‘일단 읽힌다면’이란 전제를 달았을까. 물론 그녀
세상 모든 것의 이름을 찾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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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지향하는 문학은 바로 ‘항문발모형’(肛門發毛形) 문학이다.” 지난 2010년 단편소설 <시티투어버스를 탈취하라>로 등단할 당시, 최민석 작가는 이렇게 말했다. 항문발모형이란 대체 무엇인가. 그건 (독자들이) 울다가 웃어서 엉덩이에 털이 나는 작품을 써보겠다는 작가의 굳은 의지를 표현한 말이었다. 물론 그의 글을 읽고 정말로 그곳에 털이 난 사람이 있는지 확인할 길은 없지만, 적어도 독자를 울다가 웃게 하겠다는 최민석 작가의 선언은 이후의 작품들을 통해 꽤 성실하게 지켜져왔음이 분명하다.
무엇보다 최민석 소설의 가장 큰 미덕은 유머와 페이소스가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자연스러운 균형을 이룬다는 점이다. <능력자>의 두 주인공, 미치광이 전직 복서 공평수와 ‘청순문학’을 꿈꾸지만 현실은 야설작가인 남루한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지질하고 웃음을 자아내는 인물이지만 “너절해져도 찢어지진 않는다”는 그들의 결기 앞에서는 가슴 한켠이 뭉클해진다. 한편 <
울다가 웃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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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자의 소설.’ 조해진의 첫 번째 소설집 <천사들의 도시>에서 문학평론가 신형철은 ‘조해진의 소설을 읽는 코드 중 하나’를 그렇게 말해뒀다. 에이즈에 감염된 여자(<그리고, 일주일>), 시력을 잃은 연극배우와 죄지은 것 없이 전과자가 돼버린 남자(<기념사진>), 한국 남자와 결혼한 뒤 버림받은 우즈베키스탄의 고려인 여자(<인터뷰>), 거인병에 걸린 여자와 사랑하는 남자의 침묵 그리고 죽음을 받아들이는 또 다른 여자의 이야기까지(<여자에게 길을 묻다>, 2004년 <문예중앙> 신인상을 수상한 등단작). 작가의 소설 속 인물들은 그가 속한 사회로부터 내쳐졌거나 존재하되 그 존재감이 점점 더 희미해져가는 사람들이다. 뿌리 없이 부유하는 이들이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조해진 소설의 인물들은 누구보다 많이 아파하고, 누구보다 먼저 상대방의 아픔을 감지한다. 조해진은 “결핍된 사람들에 대해 말하는 것이야말로 소설의 운명”이라고 담
위로의 운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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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돈. 1983년 대구 출생. 작가. 후장사실주의자!? 정지돈을 비롯한 오한기, 이상우 등 일군의 젊은 작가들의 한줄 프로필에도 후장사실주의자라는 말이 따라붙는다. 후장은, 그 후장(anal)이 맞다. 이들은 얼마 전 이라는 독립잡지까지 펴냈다. 2013년 <문학과사회> 신인상에 <눈먼 부엉이>가 당선돼 등단했을 때 정지돈이 쓴 당선소감엔 후장사실주의의 탄생설(!)이 나와 있다. “2012년 여름 오한기와 후장사실주의 그룹을 결성했다. 통화 중에 우연히 나온 것으로 내가 후장사실주의를 결성하자고 말하자 오한기는 핸드폰을 손에 쥐고 데굴데굴 굴렀다. 후장사실주의는 <야만스러운 탐정들>(로베르토 볼라뇨)에 나오는 내장사실주의의 패러디다.” 기성문단을 공격하고 기성질서를 파괴하길 서슴지 않았던 로베르토 볼라뇨가 20대 초반 초현실주의를 패러디해 인프라레알리스모(밑바닥사실주의-내장사실주의)를 결성했고, 정지돈과 오한기는 다시금 로베르토 볼라뇨의 말을 패러디
나는 후장사실주의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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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강명은 겨루기에 능한 작가다. “신념이나 지향과 무관하게 도구를 제대로 다루는 사람을 존경한다”고 그는 말했다. “영화나 음악과 달리 문자는 감각을 이용하지 않는 비교적 빈약한 도구다. 도구가 빈약한 만큼 그것만으로 사람을 끌어당겨 책 한권을 다 읽게 만들고, 떠나는 순간 한방 남기고 싶은 것 또한 작가의 욕망일 거다.” 장강명의 소설을 읽는 일은 비유하자면 줄다리기 같다. 줄이 하나 있다. 독자가 한쪽을 잡고 작가가 한쪽을 잡는다. 당긴다. 작가는 힘껏 줄을 당기다 가끔 슬쩍 힘을 푼다. 가벼운 마음으로 줄을 잡았던 독자는 점점 작가를 이기고 싶어져 필사적으로 손에 힘을 준다. 그러다 어느 순간 작가가 줄을 탁 놓아버리고 독자는 망연히 줄과 작가를 번갈아 쳐다볼 수밖에 없게 되는 상황. 장강명의 소설을 읽고 난 대개의 독자가 그런 기분이었을 거다. 요는 “제일 해답이 궁금한 시점에서 멈춰버린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을 끊임없이 궁금하게 만들어라. 그러면 네가 가진 것의 가치가
편집술의 줄다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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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답하라 1988>의 스릴러 버전이라고 해야 할까. 소설이 출간되자마자 영화화 제의가 쇄도했던 송시우 작가의 첫 번째 장편소설 <라일락 붉게 피던 집>은 대중의 사랑을 한몸에 받는 스타 평론가 수빈이 칼럼 연재를 위해 유년 시절의 기억을 되짚어가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은 추리소설이다. 그때 그 시절, 다가구주택의 안방과 건넌방, 별채 등에서 옹기종기 모여 살던 사람들을 찾아나선 수빈 앞에 서서히 드러나는 추악한 진실은 때론 섬뜩하고 선정적이면서도 애잔한 연민을 불러일으키게 만든다. 많은 영화 제작자들이 이 소설을 주목한 이유도 뚜렷한 배경 설정과 ‘범죄 동기’가 분명하고도 다양한 캐릭터 등 장르소설의 기초공사가 탄탄했기 때문이다. ‘국민학교’ 시절에 ‘셜록 홈스’와 ‘뤼팽’을 마스터하고 중학생 때 이미 국내 출간된 모든 애거사 크리스티의 소설을 읽은 작가 송시우는 더이상 읽을 소설이 없어 방황하다가 PC통신 시대를 맞이하여 ‘추리동’이라는 동아리에서 활동하기도
범죄와 서글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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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중력을 이기고 날아오를 수 있게 도와주세요.’(<폭우> 중) ‘당신은 언젠가 중력에 맞서서 날아오를 거요.’ (<과학자의 사랑> 중) 손보미 작가가 어느 날 꾼 꿈에서 출발한 두 갈래의 작품은 각각의 인물을 통해 중력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그들은 개별 서사의 중력에서 벗어나 대화를 건네고, 그녀의 작품세계를 관통하는 리듬을 그려넣는다. 그녀의 소설은 한국 문단에서 단연 보기 드문 개성을 지녔다. 등단 후 한권의 단편집을 냈을 뿐이지만, 2012년 문학동네 젊은작가상 대상, 2013년 한국일보문학상 등을 수상하며 존재감을 드러냈다. 2011년, 아들을 잃은 남자와 그의 이야기를 소설로 쓴 작가를 그려낸 단편 <담요>로 작품 활동을 시작한 그녀는 마치 <담요> 속 작가와도 같은 포즈를 취한다. 그녀는 미국 드라마 <오피스>의 등장인물 마이클 스캇의 말을 빌린다. “우주에 어떤 망원경이 있어서 나를 보고 있다고 생각하면,
중력에서 이탈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