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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내 한류열풍의 진원지가 된 드라마 〈겨울연가〉의 연출자 윤석호 피디가 유네스코서울협회(회장 손봉락) 선정 ‘올해의 인물상’을 받는다. 유네스코서울협회는 14일 “윤 피디는 〈가을동화〉를 연출해 아시아에서 한국 드라마의 우수성을 입증했고, 〈겨울연가〉로 정치·경제적으로 할 수 없었던 한-일 우호증진에 이바지한 공로가 크다”고 선정 이유를 밝혔다.
유네스코 한국위원회 산하 민간기구인 유네스코서울협회는 1989년부터 해마다 사회·문화·예술 전반에 끼친 영향력 있는 인사들을 한명씩 선정해 ‘올해의 인물상’을 시상해왔으며,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 소설가 박경리씨, 영화감독 임권택씨, 지휘자 정명훈씨 등이 이 상을 받았다. 시상식은 15일 오후 6시30분 서울 하나은행 본점 강당에서 열린다.
<겨울연가> 윤석호 피디 유네스코서울 올해의 인물상 받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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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방송이 총체적 위기 국면을 맞고 있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다. 한때 ‘왕국’으로 불렸던 드라마 분야의 침체가 두드러진다. 2002~2003년 〈네멋대로 해라〉와 〈다모〉 〈대장금〉 등을 잇따라 방영하며 한국 드라마의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온 생동감을 소진한 듯, 작품성과 흥행 어느 쪽에서도 뚜렷한 전망을 보여주지 못한다는 비판을 받는다. 최근 ‘뉴스 보수·수구화’ 논란에 휩싸인 보도 분야의 정체성 위기도 심각한 상태다. 90년대 중반까지 뉴스의 대명사처럼 인식되던 〈뉴스데스크〉가 시청률에서 10% 가까이 한국방송 〈케이비에스 뉴스 9〉에 뒤처진 지도 제법 오래됐다.
상황은 예능 쪽이라고 크게 다르지 않다. 그나마 선전하는 〈일요일 일요일 밤에〉와 돌아온 〈!느낌표〉(사진)가 포진하고 있긴 하다. 하지만, 문화방송의 유일한 코미디 프로그램인 〈코미디하우스〉는 〈개그콘서트〉나 〈폭소클럽〉 〈웃찾사〉 등 코미디의 새로운 흐름에 좀체 적응하지 못한 채 고답적인 상황극 중심으로 시청자
MBC 희망의 불씨, 다큐멘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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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글을 써보고 싶더라고
조선희 l 이창동 선배는 농담을 잘하는 사람이고 기본적으로 사람에 대해 애정있고 낙관적인 데가 있어요. 김영호가 고통받고 망가지는 것도 그 사람에게 어떤 맑은 심성이 있었기 때문이고, 홍종두도 그렇고. 지금까지는 굉장히 비극적이고 우울한 분위기를 즐겨왔지만 결국은 밝고 낙관적인 영화로 나아가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어요.
이창동 l 그러지는 않을 것 같아요. 기본적으로 낙관하지. 인간에 대해. 한국사회도 긍정적으로 나아갈 거라고 봐요. 사람들 하나하나의 내면은 뭔가 이해하고 사랑하고 받아들이고 긍정하지만 그걸 위해서는 어떤 어두운 걸 통과해야 해요. 어둠을 통해서 빛을 본다고 할까. 그게 예술체험의 과정이랄까. 아까 분열을 말했는데 작가는 기본적으로 속에 분열을 갖고 있다고 봐요. 영화감독도 굉장히 많은 다중인격적인 게 있어야 돼. 그러니 분열을 받아들이세요. (웃음) 나는 장관도 내 역할을 하는 거라고 생각했어요. 내 속에 그런 것도 있을 테니까.
독점인터뷰[6] 돌아온 이창동 감독, 갑자기 글을 써보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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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로, 영화로 이어진 힘
조선희 l 무엇이 이창동 감독을 작가로 만들었을까요.
이창동 l 아, 이건 어려운 단답형 질문이다. 외로움 같아. 외로움. 십대 초반에 이미, 나 스스로 작가라고 생각했거든. 그때 소설도 썼어요. <삼국지>도 썼고. 촉나라 오나라 위나라 그림도 그려가면서 내 나름대로 쓴 거예요. 누구한테 보여준 적은 없지만 내가 그 무엇과 통신하는 방법이야. 외로우니까, 현실하고 소통이 안 되니까 그랬던 거 같아요. 지금도 그 정서나 심리상태가 거의 변하지 않은 거 같아요.
조선희 l 소설 쓰다가, 아 이거 못해먹겠다 해서 딴 데로 간 게 또 다른 작가의 길이었잖아요. 지금까지 포기하지 않고 소설로, 영화로 끌고 온 힘이 뭘까요.
이창동 l 글쎄요, 힘이 있었나? 그냥 흘러오다보니까 이렇게 됐다고 생각하는데. 조선희씨가 잘 알겠지만 그건 있었어요. 이른바 80년대에 내가 글을 썼잖아. 우린 20대 때엔 인문학적 감수성이었거든. 그런데 80년대는 인문학
독점인터뷰[5] 이창동 감독을 작가로 만든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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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 그야말로 폼이지”
조선희 l 지난해에 <오아시스>가 칸영화제 비평가주간에 초청돼서 칸에 가셨죠? 그 기사 보면서 ‘딴지일보’식으로 ‘아, 쓰바, 저거 너무 폼나는 거 아니야’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장관이 다른 나라 방문할 수도 있고 감독이 초청받을 수도 있는데, 장관이 감독 자격으로 칸영화제에 간다는 건, 진짜 폼나 보이더라고요.
이창동 l 그렇게 폼나진 않아요, 실제로 그 폼을 취하고 있으면. 근데 실은 일이 있어서 갔던 거예요. 해외문화원장회의라는 게 있어요. 그게 파리에서 있었고, 또 프랑스 문화부 장관하고 만나게 돼 있었어요. 문화분야에서는 프랑스와의 국제적 유대가 굉장히 중요하죠. 미국은 문화에
대한 개념이 없는 나라예요. 근데 어쨌든 우연인지 그쪽에서 기획을 한 건지는 모르겠어요. <오아시스>는 베니스에 나갔던 작품이라 칸에선 안 받아야 하는 거였거든.
조선희 l 전에 한길사 사옥 오픈하면서 단재상 시상식 할 때 정도상이 상받는다
독점인터뷰[4] 이창동, “권력, 그야말로 폼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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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반 만의 영화계 복귀
조선희ㅣ 저는 여행을 좀 다녀와도 처음엔 집이 낯설거든요? 집안 분위기도 낯설고 아침밥 준비해서 애들 학교 보내야 하는 것도 내 일이 아닌 거 같거든요. 근데 1년 반 만에 영화계 사람들을 다시 만나는 건데, 고향은 고향인데, 좀 낯선 느낌은 없으세요?
이창동ㅣ 전혀.
조선희ㅣ 아무런 이물감이 없으세요?
이창동ㅣ 그럼요.
조선희ㅣ 자신은 예전과 다를 게 하나도 없다고 해도 사람들 태도가 예전과 달라진 것, 어려워하는 건 없어요? 저도 예전엔 좀 만만하게 생각했는데, 장관 하시고 나선 아주 어려워 죽겠는데요. (웃음)
이창동ㅣ 영화계 사람들은 괜찮아요. 나를 다르게 보지 않아요. 근데 일상적으론 많이 느끼거든요. 이건 심각해요, 나한테. 물론 예상은 했었어요. 그런 문제가 심각하게 걱정돼서 가능하면 안 하려 그랬죠. 공직을 하기 전에도 알아보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별로 신경 안 썼어요. 그만큼 자유로웠던 거죠, 책임감도 없고. 이번엔 좀 달라요.
독점인터뷰[3] 이창동, 1년 반 만의 영화계 복귀를 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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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기작 <밀양>, 회수를 건너 <선샤인 스트리트>로
조선희ㅣ 차기작에 대해서 얘기들이 벌써 나오던데요. 강우석 감독이 돈 대기로 했다는 얘기도 있고 벌써 시나리오가 나왔다고도 하고. 어떤 기사 보니까 제목이 <선샤인 스트리트>인데 40대 여자 이야기다, 어쩌고 하는 기사들이 난무하던데….
이창동ㅣ (웃음) 내가 공무원 되기 전에 좀 생각하던 게 있었어요. 제목이 <밀양>, 경남 밀양. 영어로 하면 ‘secret sunshine’이에요. 실제론 빽빽하다는 밀(密)자인데, 햇볕이 좋단 말이지. 거기 강가에 서 있으면 햇볕이 좋다는 느낌이 들거든. 제목이 <밀양>이 뭐냐고 해서 ‘시크릿 선샤인’ 하면 영어제목은 괜찮다고 농담처럼 했는데 그걸 누군가 기억하고 있다가 얘기를 한 거예요. 근데 그걸 ‘선샤인 스트리트’로 잘못 들은 거고, 누구는 ‘선샤인 불리바드’라고도 그러고.
조선희ㅣ 그럼 그걸 영화할 생각은 없는 거예요?
이창
독점인터뷰[2] 감독으로 돌아온 이창동 감독의 차기작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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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판 사람들 만나면 편해져, 좀 숨쉴 만해”
이창동 감독을 12월1일 오후 일산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잘 빗지도 감지도 않는 것처럼 보이는 장발, 우중충한 배색의 후줄근한 옷차림, 느릿느릿한 말투, 농담까지, 모든 게 예전 그대로였다. 늘 자기 내부를 향하는 감시의 안테나도 여전히 성능 좋게 작동하고 있었고, 자학에 가깝게 자신을 엄격하게 다루는 결벽증 증세도 전혀 차도를 보이지 않고 있었다. 작가의 정체성도 그대로인데, 그것은 작가주의 감독의 태도로 또 다른 현장을 지휘하다 돌아왔다는 뜻일 수도 있다. <초록물고기> <박하사탕> <오아시스>의 관객이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대로, 그에게서, 권력의 맛을 보았거나 신분적으로 수직상승한 흔적 같은 건 없었다. 다만 긴 여행에서 돌아온 사람 특유의 여독 같은 게 짙게 느껴졌다. 그 여독을 푸는 게 당분간 그의 숙제처럼 보였다.
그는 장관 취임 초기 인터뷰에 응한 뒤 1년 반 만에 <씨네2
독점인터뷰[1] 소설가 조선희가 만난 장관에서 감독으로 돌아온 이창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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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파이어들이 천장에서 뿜어 내려오는 피로 샤워를 하며 춤을 추는 나이트클럽 장면만으로도 <블레이드 1>은 흥분제라고 부를 만하다. <헬보이>의 기예르모 델 토로가 만든 2편은 1편을 어린애 장난으로 만들 정도로 격렬한 혈관 수축을 부르는 아드레날린 촉진제였다. 테크노 리듬 속에서 뱀파이어를 잿더미로 만드는 스타일 강한 액션은 물론이거니와 아들이 아버지를 물어뜯고 아버지가 딸을 죽음으로 내모는 전도된 관계가 잘 짜인 이야기와 서로 잘 스며들었다. 뱀파이어가 얼마나 무궁한 이야기를 담고 있으며 창조적으로 변용될 수 있는가를 보여줬다고 할까. 할 얘기는 끝도 없이 더 이어질 듯했다.
2편에서 에일리언적인 해부적 상상력을 극대화하고 자외선 폭탄 등의 신필살기로 중무장했던 블레이드 웨슬리 스나입스는 3편에선 좀더 담백한 모습을 보여준다. 창조적 변용보다는 맨주먹과 칼 그리고 활로 뱀파이어를 잡는 원초적 무용담을 택했다. 그러나 이야기의 부피도 함께 줄어들면서 뱀파이어가
뱀파이어들의 원초적 무용담, <블레이드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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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의 기적을, 산타클로스의 존재를 믿으십니까?’ 하는 질문이 무색해진 지 오래다. 속세의 때가 묻은 어른들은 물론 영악해진 아이들에게도 산타클로스는 상징 그 이상은 아니다. 하지만 입장 바꿔 생각해보자. 만약에, 만에 하나, 북극 어딘가에 산타와 요정들의 마을이 있다면, 믿음이 사라진 이 세상에서 자신들의 존재를 어떻게 입증하려 할까. <엘프>는 이런 엉뚱한 가정에서 출발해, 유쾌하게 ’크리스마스 정신’을 설파하는 가족용 코미디다.
산타의 선물 자루에 기어들어간 아기가 산타와 엘프들의 북극 마을로 간다. 500살 넘는 노총각 엘프에게 맡겨져 성장한 버디(윌 페럴)는 몸집이 서너배는 크고 바리톤의 음성을 지닌 자신이 ‘인간’이라는 사실에 충격받고, 생부가 살고 있는 뉴욕으로 찾아간다. 출판계의 거물인 아버지 월터(제임스 칸)는 ‘나쁜 어른’ 명단에 올라 있는 일중독자로, 버디가 친자임을 확인한 뒤에도, 그를 처치곤란한 사이코로 치부한다. 아버지와 그의 새 가족,
유쾌한 크리스마스 가족용 코미디, <엘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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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크레더블>은 지난 11월5일 미국에서 개봉해 첫주 7070만달러를 벌어들였다. <니모를 찾아서>가 지난해에 세운 개봉주 성적을 40만달러 넘어섰고, 2위를 차지한 레이 찰스의 전기영화 <레이>와는 약 5700만달러의 수익차를 냈다. 그 다음주에 개봉한 로버트 저메키스의 <폴라 익스프레스>도 <인크레더블>의 위력을 감잡지 못했다. 픽사나 디즈니나 이 애니메이션이 분명 잘될 거라 예상했겠지만 이 정도까지 폭발해주리라 믿었을지는 모르겠다. 실사영화가 배우와 감독의 네임밸류를 팔아먹을 수 있다 치면 <인크레더블>한텐 ‘<토이 스토리> <몬스터 주식회사> <니모를 찾아서>의 픽사 스튜디오 신작!’ 정도가 홍보에 써먹을 수 있는 가장 섹시한 문구였다. 여기에다빨간 옷을 입고 장난스러운 미소를 머금은 중년의 히어로와 그의 가족들을 내세운 <인크레더블>은 개봉 5주째까지 2억2500만달러
본격 액션 블록버스터 애니메이션, <인크레더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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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도산은 수수께끼와 같은 인물이다. 한국에서는 물론이고 그가 활동했던 일본에서조차 그의 진실은 논란거리였다. 80년대까지 그의 출신지(함경남도 홍원군 용원면)는 밝혀지지 않았고, 그가 펼친 승부는 항상 극적이었지만 사전에 짜여진 각본에 따른 쇼라는 소문을 늘 꼬리표처럼 붙이고 다녔다. 링 위에서 그가 보여준 열정은 비즈니스, 그러니까 돈에 대한 집착과 간혹 혼동됐고, 그를 둘러싸고 있던 암흑세계의 그림자 또한 사람들로 하여금 궁금증을 품게 했다. 특히 그의 돌연한 죽음은 단순사고에서부터 야쿠자의 계획범행, 의료사고, CIA 음모설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추측을 낳았다. 결국, 뛰어난 레슬러, 비정한 사업가, 여자관계가 복잡했던 난봉꾼, 어린이를 사랑했던 스타 등 사람들이 기억하는 역도산의 얼굴은 지금까지도 제각각으로 존재한다.
‘역도산의 진짜 얼굴은 무엇인가.’ 송해성 감독의 <역도산>이 던지는 질문은, 때문에 자못 의미심장하다. 역도산의 39년 인생 중에서도 가장 극적 순
한 사내의 격투와도 같은 삶, <역도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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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 영화 <내셔널 트레져>를 홍보하기 위해 주연배우인 니콜라스 케이지와 제작자 제리브룩 하이머등 할리우드 초특급 영화인들이 내한, VIP와 일반영화팬들을 대상으로 한 전야제 행사가 서울 용산 CGV에서 개최되었다.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이날 행사에는 1천여명 가량의 팬들과 취재진이 모여 세계적인 스타의 방문열기를 실감케 했다.
무대에 오른 이들은 제작자인 제리 브룩하이머와 니콜라스 케이지 외에도 감독인 존 터틀타웁과 출연배우 다이앤 크루거, 저스틴 바사 등 총 5명. 다른 배우들이 간단한 한국말과 영어를 섞어가며 인사말을 한 것과는 대조적으로 니콜라스 케이지는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용경(니콜라스 케이지의 한국인 부인 이름), 한국 사랑해요. 감사합니다”라며 연습했던 한국어 인사말을 능숙하게 구사해 팬들로부터 갈채를 받았다. 또 <내셔널 트레져> 출연으로 할리우드에서 주목받고 있는 신예 저스틴 바사는 “한국은 매우 멋진 곳이다. 아직 많은 팬들을 만나
내한한 니콜라스 케이지, 일반관객과 전야제 행사 가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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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은 안개 속에 머문 영화 교류그곳에 한류는 없었다. 2004 베이징 한국영화제를 위해 한국 배우와 감독, 스탭 등이 입국한 12월2일 베이징 공항에는 축하공연을 위해 찾은 쥬얼리의 팬만이 몇몇 모여 있었을 뿐, 최근 일본에서 목도됐던 거대한 인파는 보이지 않았다. 대신 무겁게 내려앉은 회색빛 하늘만이 생뚱맞게 한국인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몇십 미터 앞을 내다볼 수 없을 정도로 갑갑한 안개 속을 뚫고 행사 기자회견장인 조어대(釣魚臺·중국의 국빈용 숙소)로 달려갈 때까지만 해도 이 행사가 내걸고 있는 ‘한·중 영화협력을 통한 세계무대로의 도약’이라는 슬로건은 무망한 듯 느껴졌다. 아직까지 중국 안에서 공식적으로 개봉된 한국영화라고 해야 <좋은 사람 있으면 소개시켜 줘> <클래식> <내 여자친구를 소개합니다> 등 몇편이 고작인 상황에서 뜨거운 반응을 기대하기는 어려워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자회견이 열린 조어대 방비원으로 들어서는 순간, 예상치
2004 베이징 한국영화제, 언론은 들뜬 반응 보였지만 행사진행은 미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