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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악 바이크 동아리 SANGAJA는 치악산의 한 별장으로 MT를 떠난다. 그곳은 동아리 회장 민준(윤균상)의 사촌 동생인 현지(김예원)의 별장이자 현지 아버지(배유람)가 의문의 실종을 당한 곳이다. 별장에 도착한 수아(배그린)는 주변 모든 것들이 맘에 들지 않아 만사에 과민하게 행동하고, 양배(연제욱)는 바이크 라이딩보다 자신의 유튜브 영상 촬영에 더 관심이 많다. 한편 독실한 개신교 신자 이삭(이태환)은 여행길 내내 토막살인이 벌어졌다는 치악산 괴담에 열중한다. 현지는 별장에 도착한 후 끊임없이 이상행동을 보이고 네 동아리 부원들 또한 초자연적 공포를 경험한다.
<치악산>은 공포영화의 여러 관습을 서사 내부로 들여온다. 청년들이 인적이 드문 산속에서 공포를 마주한다는 작품의 큰 줄기는 미국 공포영화의 흔한 설정을 빼닮았고, 양배의 영상 촬영은 <블레어 윗치> 연작을 비롯한 수많은 파운드 푸티지 호러를 연상케 한다. 하지만 <치악산>은 공포영화의
[리뷰] ‘치악산’, 공포를 추동하지 못하는 공포영화의 관습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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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니퍼 로히어르스(타커 니콜라이)는 촉망받는 23살의 젊은 피아니스트다. 제니퍼는 세계적 권위의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본선 진출에 성공해 대회 참가 전 뮤직 샤펠로 향한다. 뮤직 샤펠은 외딴 고성으로, 11명의 콩쿠르 본선 진출자들은 이곳에서 외부와 격리된 채 합숙하며 1주일간의 연습 기간을 필수적으로 거쳐야 한다. 뮤직 샤펠에 도착한 제니퍼는 서로 어울리며 지내는 다른 참가자들과 달리 홀로 고독한 시간을 보낸다. 특히 합숙 내내 스스로를 과시하기 바쁜 나자렌코(재커리 샤드린)는 제니퍼에겐 눈엣가시다. 그렇다고 연습에만 열중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제니퍼는 격리 기간 내내 끝없이 자신을 괴롭히는 트라우마와 싸운다. 제니퍼를 괴롭히는 두 가지 기억은 모두 그의 원가정으로부터 연유한다. 일찍이 제니퍼의 재능을 알아본 어머니(루스 베쿠아르트)는 어려운 가정 형편에도 불구하고 제니퍼를 세계적인 피아니스트로 만들기 위해 정서적으로 억압했고, 제니퍼의 성공 이후에도 딸에게 집착한다. 그런 아
[리뷰] ‘뮤직 샤펠’, 신경쇠약과 강박의 장엄한 협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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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을 읽으면서 한번쯤 책의 내용뿐 아니라 종이의 색과 질감, 삽화와 폰트, 가름끈과 띠지의 조화 등 본연의 디자인에 매료된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주목할 만한 영화가 개봉한다. 50여년간 1만5천여권의 책 표지를 디자인해온 일본의 ‘명장’ 북 디자이너 기쿠치 노부요시의 작업 현장과 일상을 근거리에서 포착하는 다큐멘터리 <책 종이 가위>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 제작에 참여한 바 있는 히로세 나나코 감독의 연출작으로, 기쿠치 노부요시의 디자인처럼 군더더기 없는 담백하고 깔끔한 연출이 돋보인다.
종이책의 소멸이 당연하게 예고되는 디지털 시대에 기쿠치 노부요시는 (영화의 제목에서 예상 가능하듯) 종이를 가위로 오려서 풀로 붙이는, 다소 번거로운 ‘수작업’을 고수한다. 이것만으로도 가히 일본 특유의 ‘장인 정신’을 대표할 만하다고 할 수 있겠지만, 단지 아날로그적 도구의 사용만이 미학적으로 완성도 높은 그의 작품 세계를 탄생시킨 것은 아니다. 타이포그래피의 1mm
[리뷰] ‘책 종이 가위’, 여전히 종이책을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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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지의 녹색 액체가 뉴욕의 깊은 하수구 아래로 방류된다. 그 방사능 물질에 노출된 네 마리의 거북이는 그렇게 사람과 비슷한 모습을 가진 돌연변이 거북이가 된다. 그 순간 곁에 있던 한 마리의 쥐 스플린터(성룡) 역시 같은 과정을 겪어 돌연변이가 되는데, 그날부터 스플린터는 어린 레오나르도(니컬러스 칸투)와 미켈란젤로(샤몬 브라운 주니어), 라파엘(브래디 눈)과 도나텔로(미카 애비)를 거두어 닌자 기술을 가르치며 나름의 안정적인 삶을 꾸려나간다.
<닌자터틀: 뮤턴트 대소동>은 거북이 4형제의 청소년 시기에서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거북이들은 그동안 스승이자 아버지 격이었던 스플린터의 강력한 경고로 인해 하수구 밖 인간 세계에 발을 들일 엄두를 내지 못했다. 그러나 사춘기 거북이들의 어디로 튈지 모르는 호기심은, 결국 자신들의 존재를 인간 에이프릴(아요 에데비리)에게 드러내게 만든다. 마침 학생 기자 일을 하고 있던 에이프릴은 특종을 잡았다는 생각에 거북이들에게 다음과 같은
[리뷰] ‘닌자터틀: 뮤턴트 대소동’, 너무 순하게 리부트 된 식은 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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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가을 대구. 어린 동준(홍사빈)과 강현(신주협)은 길을 걸으며 꿈에 관해 이야기한다. 강현은 서울에 있는 대학에 입학해 대구를 탈출하는 것이 꿈이고, 동준은 ‘다른 우주에 있는 또 다른 나’가 되는 것이 꿈이다. 강현은 동준의 수학 과외 선생이자 유일한 친구인 동네 형이다. 그는 동준에게 동경의 대상이다. 그의 뛰어난 두뇌와 또래 아이들과는 다른 음악적, 문학적 취향은 동준을 매료하기에 충분했다. 그러던 어느 날 강현의 엄마가 남편의 외도를 알고 충격을 받아 자살한다. 이에 화가 난 강현은 아버지의 차를 부수기 시작한다. 자신의 영웅이 추락하는 모습을 바라보는 동준도 충격에 휩싸인다. 시간이 흐른 2020년의 가을, 대구. 어른이 된 동준(심희섭)은 학교 선생이 됐다. 그는 게이바 앞에서 제자를 마주치고 당황한다. 자신의 정체성과 더불어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 것이 버릇이 된 동준은 고향 대구를 벗어나지 못한 채 점차 망가지고 있었다.
<안녕, 내일 또 만나>
[리뷰] ‘안녕, 내일 또 만나’, 세 개의 시공간 속에서 그들은 다시 나아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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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나는 모습으로 무대에 선 나의 우상은 어떤 슬픔을 간직하고 있을까. <NCT 127: 더 로스트 보이즈>는 이제 데뷔 7년 차에 이른 아이돌 그룹 NCT 127의 유년기를 되돌아본다. 쉼 없이 앞만 보고 달려온 나머지 과거를 회상할 때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는다”던 멤버들의 공통된 답변으로부터 착안된 제목처럼, 이 프로젝트는 멤버들이 잃어버리거나 잃어버리고 싶어 하지 않는 것들을 조명한다. 특히 이야기 속에 이야기를 집어넣는 액자식 구성과 과거를 재현하는 애니메이션 등 다큐멘터리 안에 담긴 영화적 장치들은 피사체가 간직한 역사를 다양한 방식으로 풀어낼 수 있게 한다. 기획부터 연출까지 긴 여정을 함께한 임필성 기획자, 제이박 감독을 만나 NCT 127이라는 세계관을 기록한 시간에 대해 들어보았다.
- <NCT 127: 더 로스트 보이즈>는 어떤 계기로 시작한 프로젝트인가.
임필성 미스틱스토리와 2년 넘게 대표 프로듀서로 함께하고 있다. 미스틱스토리가
[인터뷰] 'NCT 127: 더 로스트 보이즈' 임필성 기획자, 제이박 감독, ‘잃어버린 유년기를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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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전 유노윤호는 두 번째 솔로 미니 앨범 《NOIR》로 <씨네21>과 인터뷰를 했다. 시네마틱한 컨셉을 잡고 기획을 시작해 <킬 빌> <올드보이> <존 윅> <대부> <아이리시맨> 등의 이미지를 레퍼런스 삼은 뮤직비디오를 만들었다. 세 번째 미니 앨범 《Reality Show》를 발표하며 선보인 쇼트 필름 <NEXUS>는 타이틀곡 <Vuja De>뿐만 아니라 모든 수록곡이 등장한다. 영화와 뮤직비디오의 경계를 좀 더 과감하게 무너뜨리며 자신의 솔로 앨범이 천착해온 현실과 환상에 대한 스토리를 확장한다.
- 타이틀곡 <Vuja De> 뮤직비디오보다 13분짜리 쇼트 필름 <NEXUS>를 먼저 공개했다. 미니 앨범의 전곡이 등장하는 독특한 영상작업물이다.
= 테이프에서 스트리밍까지 많은 변화를 겪었고 어느덧 20년차 가수가 됐다. 예전에는 앨범을 내면 3주에서 한달 정도
[인터뷰] 현실과 환상 사이, 정체성을 고민하는 쇼맨, 미니 앨범 'Reality Show' 발매한 유노윤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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핑크를 기대했지만 온통 그레이다. 회색 콘크리트 아파트부터 핵폭탄이 만든 잿빛 하늘까지. 미국을 비롯해서 전세계적으로 흥행 중인<바비>가 유독 한국에서는 상영관을 찾기 힘들 정도로 고전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천쪽이 넘는 과학자 평전을 사 읽고 과학 공부까지 하며 보러 가는 <오펜하이머>와 너무나 대조적이다. 그냥 켄, 아니 백인 남성 과학자의 이야기에 한국인들은 왜 이토록 진심인 것일까? 아, 물론 나도 과학에 진심이다.
<바비>의 많은 것들이 좋았지만 그중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마지막 장면이었다. 영화 후반부에서 바비는 바비랜드와 현실 세계 중 후자를 택한다. 바비가 청바지와 면티에 베이지색 재킷을 걸치고 슬리퍼를 신은 채 현실 세계에 발을 내딛으며 처음 방문한 곳은 다름 아닌 산부인과 의원. “산부인과 의사를 만나러 왔어요”라는 대사를 듣기 전까지 나는 바비가 직장 면접을 보거나 출근하러 가는 길인 줄로만 알았다. 그런데 바비가 인간 여성
[임소연의 디스토피아로부터] 신비롭지 않은 바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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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라노 게이이치로의 소설 <한 남자>를 읽고 남긴 독서 메모를 보니, “다소 설명적이고 논평적”이라는 문구가 있다. 이 문구 때문이었을까? 이시카와 게이 감독의 <한 남자>는 소설과 전혀 다른 질감의 영화로 다가왔다. 원작 소설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으면서도, 소설의 사변적 설명을 이토록 매력적인 ‘영화적 행간’으로 연출하는 데 성공한 작품이 또 있었나 싶을 정도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비 오는 오후 문구점의 리에(안도 사쿠라)의 눈물, 낯선 손님의 등장과 멈추는 눈물, 그리고 정전으로 리에의 마음만큼이나 어두워진 문구점을 환히 밝혀주던 불빛으로 이어지는 영화의 (실질적인) 첫 장면을 떠올려보라. 이 장면만으로도 이시카와 게이가 소설의 이야기를 어떻게 영화적으로 압축하고, 형태 변환하는지 느끼기에 충분하지 않은가.
낙인 찍힌 자들의 뒷모습
‘타니구치 다이스케’라는 이름이 죽은 남편(구보타 마사타카)의 것이 아님을 알았을 때, 부인과 시아주버님(인 줄 알았건
[비평] ‘한 남자’, 누군가의 뒷모습을 본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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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역 건너편 골목에 있는 교동시장은 1960년대생인 우리 엄마가 젊은 시절 친구들과 함께 놀던, 지역 최고의 번화가였다. 그러나 90년대, 도시의 중심이 한일극장이 있는 동성로 2가로 완전히 옮겨가자 교동시장 부근은 영업을 중단한 단관 극장과 오래된 금은방, 철거하지 못한 백화점만 남았고, 이내 그곳은 외국인 노동자들과 노인들만 거니는 동네의 외진 그림자가 되었다.
도시의 모습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한국인이라면 모두 안다. 위와 같은 히스토리를 가진 골목들이 지금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 70년대와 80년대의 흔적이 적당한 낭만으로 남아 있으면서, 90년대와 2000년대에 받은 외면으로 자릿세가 낮은 모든 골목들. 교동시장 골목 역시 2010년대를 거치며 ‘O리단길’ 혹은 ‘제2의 성수동’ 같은 장소가 되고 말았다. 단관 극장, 금은방, 백화점이 있던 오래된 골목에 어느새 에스프레소에 레몬을 넣어주는 카페, 레코드판과 향초를 함께 파는 잡화점, 머리에 포마드를 발라주는 바
[복길의 슬픔의 케이팝 파티] 이제 남은 건 절망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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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정한 옷차림만큼이나 성숙한 말씨와 행동, 타인의 기분을 살필 줄 아는 배려심과 느긋한 성격. <안녕, 내일 또 만나>는 강현의 목소리를 직접 들려주기보다 고등학교 시절 그와 같은 아파트에 살던 후배 동준(홍사빈)의 시선을 빌린다. 관객과 강현 사이에 놓인 거리 또한 주인공 동준의 감정에 따라 좁혀지기도, 멀어지기도 한다. 비밀스러운 소년을 만난 배우 신주협은 자기 안에서 강현을 끄집어내기 위해 예리한 눈으로 그를 탐색했다. “강현은 LP를 모아 노래를 듣거나 단편소설을 써 문학상을 받기도 한다. 유행에 민감한 여느 10대 아이들과 달리 자기가 하고 싶어 하는 것을 해나간다.” 바깥세상의 일들에도 쉽게 흔들리지 않는 강현의 단단함을 발견한 신주협은 “강현의 위태로움은 그가 교복을 입은 미성년자라는 사실만으로 충분하다”는 예리한 관찰을 건네기도 했다.
뮤지컬 <난쟁이들>로 데뷔한 신주협은 어려서부터 무대와 친숙했다. 많은 사람 앞에서 노래, 춤, 연기를 꾸준히
[WHO ARE YOU] ‘안녕, 내일 또 만나’ 신주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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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개봉한 영화 <우리 선희>의 이선균과 정유미. 가까운 듯 아닌 듯, 닿을 듯 닿지 못한 둘은 10년 후 영화 <잠>에서 신혼부부로 다시 만난다. <잠>에서의 호흡은 어떨지 궁금해진다.
[ARCHIVE] 10년 전의 두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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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야흐로 가성비의 시대다. 각종 플랫폼에서 콘텐츠는 넘쳐나는데 시간은 부족하다. 빨리 감기로 영화를 보는 걸 넘어 아예 스토리 요약본으로 콘텐츠의 내용을 이해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그럴 수 있다. 사실 한편의 영화나 한 시즌의 드라마를 처음부터 끝까지 있는 그대로 관람하는 건 꽤 인내심을 요구하는 일이다. 다만 그렇게 본 내용으로 ‘영화를 보았다’고 착각하면 곤란하다. 약간의 과장을 보태 축약된 영상들은 별도의 2차 창작물에 가깝다. 축약본으로 스토리를 학습하는 것과 본편으로 전체를 관람하는 건 전혀 다른 영역의 체험이다. 이제 영화는 스크린 바깥으로 나와 다양한 형태로 소비된다. 구태의연하게 ‘영화가 무엇인지’를 되물을 수밖에 없는 시대는 그렇게 도래했다.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완성도의 영상물이 넘쳐나고, 긴 상영시간으로 더 풍성하게 이야기를 담을 수도 있으며, 입체영상처럼 더 실감나는 기술도 가능하다.
그렇다면 오직 영화이기에 가능한 건 무엇일까. 질문을 달리하자. 영화는
[리뷰] 시간은 다른 얼굴로 되돌아온다 (네오 클래식 무비 1990~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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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ST’는 매주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에게 취향과 영감의 원천 5가지를 물어 소개하는 지면입니다. 이름하여 그들이 요즘 빠져 있는 것들의 목록.
캘리그래피 쓰기
글자로 아름답게 쓰는 일을 좋아한다. 캘리그래피를 한 이후로 작품을 할 때 타이포를 더 유심히 들여다보게 됐다. <마스크걸>은 ‘걸’의 ‘ㄹ’이 넷플릭스의 N과 유사하게 만들어졌더라. 이런 디자인적 요소를 발견하는 재미가 있다.
콩물
어려서부터 엄마가 절기마다 음식을 꼭 챙겨주셨다. 대보름에는 오곡밥에 나물을, 동짓날에는 팥죽에 새알심을 빚으셨다. 여름에는 단연 콩물. 직접 콩을 삶고 갈아서 설탕 듬뿍 넣고 우무채 썰어 넣어 얼음 동동 띄운 맛이란! 이제는 이걸 손수 해먹는 게 얼마나 귀찮고 힘든 일인지 잘 알지만.
조조영화
리스트에 영화를 한편 추천하고 싶지만, 그보다 더 나를 근본적으로 행복하게 만드는 건 아침 일찍 보는 조조영화다. 아이를 등교시킨 후 아침 일찍 극장에 가서 영화를 보
[LIST] 염혜란이 말하는 요즘 빠져 있는 것들의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