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별에 생명이 태어나 수많은 생물종이 나타나고 사라졌다. 혹여 인류가 멸망한다고 하더라도 지구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은하 속을 떠돌겠지. 인간의 역사 따위, 한없는 시간 속에선 찰나의 깜빡임조차 되지 못할 테니.”
“그럼 당신은 어째서 찾는 거야? 새로운 시간을….”
활쏘기가 취미인 평범한 고등학생 주나. 바다가 보고 싶다며 남자 친구 토키오와 즉흥적으로 떠난 여행에서 교통사고를 당하고, 사망 선고를 받는다. 지구 바깥으로 튕겨나간 주나의 영혼은 환영을 본다. 어쩌면 진실을. 죽어가는 생물들과 더러워진 바다. 시체들. 대량생산으로 낭비되는 식량과 버려지는 쓰레기들. 전쟁. 기아. 홍수와 가뭄. 그리고 재앙을.
방황하는 주나에게 누군가 속삭인다. 드디어 찾았다. 이 별을 종말에서 구원할 시간의 화신. 자신을 ‘크리스’라 소개한 요정 같은 존재가 제안한다. 만약 네가 재앙과 싸워준다면, 지금 다시 한번 네게 생명을 줄게.
수술실에서 오열하는 남자 친구와 엄마를 바라보며 주나는 결심한다. 싸우기로.
멈추었던 심장이 다시 뛰며 수술대에서 벌떡 일어난 주나는 모두를 뒤로한 채 갑자기 달리기 시작한다. 되살아나자마자 재앙을 막으라니. 비밀스러운 조직의 헬리콥터를 타고 도착한 곳은 일본 모처의 원자력 발전소. 이제 곧 폭발할지도 모르는 원전을 지켜야 한다. 그리고 앞으로도 이런 싸움을 계속해야 한다. 지구의 모든 생물을 지켜야 한다. 재앙의 마물 ‘라자’로부터.
<초시공요새 마크로스>로 유명한 가와모리 쇼지 감독의 문제작 <지구소녀 아르주나>는 정면으로 환경 문제를 이야기하는 TV애니메이션이다. 지금은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한 주제들을 무려 2001년에 꺼내들다니. 그것도 전혀 어울리지 않는 마법소녀 장르와 인도 신화를 결합해서 말이다. 누군가 내게 일본 애니메이션 작품 중 최애작을 꼽으라고 한다면 나는 망설임 없이 <지구소녀 아르주나>를 택할 것이다. 방영 당시 흥행 성적은 저조했지만, <지구소녀 아르주나>는 기획 단계부터 많은 주목을 받았었다. 이미 거장의 반열에 오른 가와모리 쇼지가 신생 애니메이션 업체 ‘사테라이트’를 설립해 처음으로 제작한 작품이라는 점에서 그렇고, 지금 보면 조잡하지만 3D 기술을 본격적으로 작화에 도입한 기술력도 화제가 되었다. 현재는 논란에 휩싸인 인물이지만 당시 기준으론 절정의 기량을 뽐내던 간노 요코가 음악 작업을 맡았다는 사실도 큰 이슈가 되었다. 개인적으로는 애정하는 가수(이자 성우)인 사카모토 마아야가 주제곡을 불렀다는 사실도 관심을 끌었다.
인도 경전 ‘바가바드기타’의 세련된 은유인 이 독특한 마법소녀 이야기를 처음 감상했을 때의 감정은 한마디로 ‘불쾌감’이었다. 리얼리즘 화풍으로 의도적으로 채워진 불편한 풍경들이 몽타주 기법으로 장면마다 홍수처럼 쏟아졌다. 폐수가 흘러드는 강물, 농약으로 사지가 마비되어 퍼덕이는 메뚜기, 퉁퉁 불은 쓰레기들과 함께 떠다니는 죽은 생선들, 분쇄기에 갈려 쏟아지는 소의 시체와 그 직후 페이드되며 이어지는 햄버거 식사 장면 같은 것들.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양의 불쾌감을 감각기관에 욱여넣는 불친절한 연출은 마치 비장한 사명감처럼 느껴졌다. 현실에서 눈을 돌리지 말아야 한다고. 당신은 이 행성의 진짜 모습을 알아야 한다고.
우스꽝스런 형광 쫄쫄이를 뒤집어쓰고 ‘시간의 화신’으로 각성한 주나는 힘겹게 재앙의 마물을 물리치고 원전 사고를 막아낸다. 하지만 시작일 뿐이다. 스승이자 인도자인 크리스는 칭찬은커녕 주나에게 이렇게 말한다. 너는 더럽혀져 있어. 주나에게 정화하고 돌아오라며 문명의 발길이 닿지 않는 으슥한 산속에 던져버린다.
그곳에서 주나는 깨닫는다. 문명이 몰래 자신을 생존시키고 있었다는 사실을. 자신이 무엇을 먹어야 하는지도 모르는 나약한 존재라는 사실을. 먹는다는 행위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타자의 생명을 내 뱃속에 넣음으로써 자신의 생명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을. 먹는 자와 먹히는 자는 하나이며 생명은 결국 모두 이어져 순환하고 있다는 사실을.혹시 이런 생각해보신 적 있는지? 수십억년 전 지구의 바다에서 우연히 아미노산이 생겨나 세포가 되고, 세포가 뭉쳐 생물이 되고, 그 생물이 끝없는 진화를 거듭해 호모 사피엔스가 되기까지, 그리고 그 호모 사피엔스가 수십만년간 먹고 싸우고 아이를 낳아 대를 이어온 존재가 나란 것을. 수십억년간 마주했을 수천억번의 선택 앞에서 단 한번도 오답을 택하지 않고, 언제나 먹히는 쪽이 아닌 먹는 쪽에 서서 살아남은 존재가 나란 사실을 말이다.
조금 더 아득한 상상도 해본다. 아무것도 없던 우주에 빅뱅이 일어나 우연히 물질과 반물질의 균형이 어긋나고, 그 차이만큼의 막대한 에너지가 우주의 부스러기로 남아, 그것이 우연히 뭉쳐 별이 되고, 별의 중력에 사로잡힌 돌들이 회전하며 행성이 되고. 행성의 외핵과 내핵의 절묘한 밀도 차이가 자기장을 만들어 물과 대기를 가두고 생명이 탄생할 환경을 갖추게 되기까지 얼마나 복잡한 확률이 개입했을지에 대해. 이 모든 일들이 지구가 태양을 138억번 도는 아득한 시간 동안 계속되어왔다는 사실에 대해. 빛의 속도로 영원히 나아가도 끝에 다다르지 못할 거대한 시공간이 저 바깥에 존재한다는 사실에 대해. 우주의 먼지인 우리는 무엇을 위해 이 하찮은 생명 하나를 아득바득 지키려 하는 것인지. 거대한 우주의 순환체계 속에서 인간 존재는 잠시 개별자로 튕겨나온 찰나의 비정상적 상태일지도 모른다.
산속에서 생명의 진실을 목도한 주나는 또다시 재앙의 마물과 마주한다. 그리고 마물의 진짜 모습을 처음으로 직시하게 된다. 마물의 본모습은 농약을 대량 살포하는 비행기다. 장내 세균을 어지럽히는 유전자 조작 농산물이다. 플라스틱 쓰레기를 대량생산하는 컨베이어 벨트다. 전쟁의 부산물로 남게 된 독극물과 땅속에서 끝없이 추출해낸 검은 석유다. 인간과 인간의 문명 그 자체다. 마물은 재앙이 아니라, 재앙의 원인인 인간을 막기 위해 생겨난 부산물일 뿐이다.
도시로 돌아온 주나는 아무것도 먹지 못한다. 싸우지 못한다. 애초에 싸움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던 것이다. 학교에서 마주친 괴짜 수학 선생님의 말처럼, 재앙을 막을 방법은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삶의 방식을 바꾸는 수밖에 없다. 하지만 처음 변화를 결심한 최초의 한 사람은 어떻게 되지? 괴짜로 낙인 찍혀 세상의 모서리에 처박힐 뿐이다. 인간은 한여름에 2주 동안 에어컨을 틀지 말자는 간단한 제안조차 해내지 못하는 존재니까.
어영부영하는 사이 결국 마물은 인간 세상을 덮치고, 주나는 마지막 선택의 기로에 선다. 먹을 것인가. 먹힐 것인가. 혹은 또 다른 선택을 할 것인가.
환경을 보호하는 마법소녀 이야기가 어째서 SF냐고 물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원전 사고로 시작해 석유 고갈로 끝나는 이야기가 SF가 아니라면 대체 무엇이 SF란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