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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어도 좋아>는 어떤 영화?
2002-05-24

천하를 얻은 남과 여

여기 이 할아버지, 담뱃갑만한 작은 점포에 무표정한 얼굴로 하루종일 앉아 있다가 집에 돌아오면 틀니를 물에 헹구고 별것 없는 찬에 저녁을 먹는다. 그리고 침침한 백열등 아래 홀로 잠자리에 든다. 그러나 공원에서 ‘너무 예쁜’ 할머니를 만난 이후, 그의 삶은 달라진다. 염색을 하고 방청소를 하고 “이름, 표오를∼ 붙여줘어∼” 콧노래도 흥얼거린다. 안 뿌리던 향수도 뿌리고 인사 연습도 한다.

할머니는 장구 한대와 조그마한 보따리 하나를 싸들고 할아버지 집으로 온다. 놀러온 것이 아니라 살러 들어온다. 그리고 두 사람은 촛불 두 자루에 술 한잔을 나눠 마시고 환희에 찬 첫날밤을 함께한다. 할아버지는 할머니에게 글을 가르치고, 할머니는 할아버지에게 민요를 가르치고, 가끔은 좁은 골목에서 다정한 키스를 나누고, 더운날엔 ‘다라이’에 마주앉아 함께 목욕을 하고, 그러다 눈빛이 맞닿는 날이면 “넘어가네, 넘어가네…” 살을 섞는다. 사진관에서 웨딩드레스에 양복을 빌려입고 젊은 사람들처럼 폼나게 결혼사진도 찍는다.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서로 너무 사랑해서 하루에 몇번이고 서로를 품는다. 하루에 두번도, 세번도 품는다. 빨간 동그라미가 하루가 멀다하고 그려진 달력에는 가끔 ‘낮거리’라는 단어도 적힌다. 그러던 어느 날 할아버지가 이발하러 간 사이, 할머니는 친구를 만나러 나간다. ‘나 쬐끔 나갔다 올께요.’ 할아버지가 가르쳐준 한글로 삐뚤빼뚤 메모만 남기고. 할아버지는 할머니를 기다린다. 6시가 넘어도 저녁 먹을 시간이 지났는데도 할머니는 돌아오지 않는다. 할아버지는 “순예야, 순예야, 누가 우리 마누라 못 봤어?” 온 시장통을 미친 할아버지처럼 뒤진다. 그래도 할머니는 돌아오지 않는다. 11시가 넘고 12시도 넘고 할아버지가 지쳐 잠이 들 무렵, 부스럭부스럭 문이 열린다. “늦어서 미안해요.” 할머니의 사과에도 할아버지의 화는 좀처럼 풀리지 않는다. 아이들 같은 승강이가 오가고 급기야 할머니의 울음보가 터진다. 알아들을 수 없는 말로 울먹이며 할머니가 서럽게, 서럽게도 울어댄다. 매정하게 등을 돌리고 있지만 할아버지의 마음도 예전부터 울고 있다. 하지만 한 이불 속으로 파고드는 순간 두 사람은 다시 더없이 다정한 부부가 된다.

할머니가 아픈 날에는 할아버지가 시장에서 닭을 사다가 목을 치고 털을 뽑아 백숙을 곤다. “감사해요, 너무너무 감사해요.” “그렇치? 영감이 좋은 것이여.” 찌는 듯 더운날에도 서로 팔베개를 하고 누워 있노라면 에어컨이 필요없다. 어느덧. 두 연인은 곱게 한복을 차려입었다. 할머니의 장구 장단에 맞춰 할아버지는 <청춘가>를 부른다. “무정세월아 가지를 말어라∼… 금수강산이 제 아무리 좋아도 정든님 없으면 적막이로다∼… 성동구 복지관 청춘가를 부르다 사랑을 맞이하였네, 이순예, 박치규가 천하를 얻었네∼!” 기적은 그렇게 작고 누추한 방 안에서 일어났다.▶ 70대의 사랑 담은 박진표 감독의 다큐멘터리 <죽어도 좋아>

▶ <죽어도 좋아>는 어떤 영화?

▶ <꽃섬>의 감독 송일곤, <죽어도 좋아>의 경이로운 힘에 감탄하다

▶ 토니 레인즈, <죽어도 좋아>의 박진표를 인터뷰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