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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천포 가는 길>의 윤성호
2002-05-24

우리 심심한데 섹스나 한번 할까?

섹스 한번 못해본 한 남자와 한 여자, ‘그들’만의 상상기. 대학생인 ‘구보’는 섹스를 해보고 싶다는 간절한 소망이 있다. 그러나 상황은 절망적이다. 자신에겐 이성친구조차 없다. 고질적인 액취증으로 고민하던 친구 녀석조차 최근에 축농증이 심한 여자친구를 만나 사귀게 되면서 그의 고민은 커져간다. 유일하게 남은 솔로는 재석. 녀석에게 조언을 구할 겸 그를 찾지만, 기회비용을 고려하면 여자친구보다 에로비디오가 훨씬 효율적이고 경제적이라는 신조를 갖고 있는 재석은 인터넷에서 이성친구를 다운받는 세상이 오지 않는 한 자신이 이성을 사귀는 상황은 절대 없을 것이라고 고개를 젓는다. 그룹 god의 멤버 윤계상이 이상형인 ‘시목’ 역시 상황은 마찬가지. 포르노 비디오를 얻어 보게 되고, 지하철 안 화장실 자판기에서 콘돔을 사기도 하지만, 호기심에 대한 갈증은 좀처럼 채워지지 않는다. 그러던 차에 초등학교 동창인 구보와 시목은 우연한 만남을 갖게 되고 둘은 예기치 않은 사건을 기대한다.

치기발랄

“우리, 심심한데 섹스나 한번 할까?” <삼천포 가는 길>이 들려주는 농담은 ‘짓궂다’기보다 ‘안쓰럽다’. 초등학교 동창인 구보와 시목은 어엿한 성인이지만, 정작 섹스 한번 못해봤다는 흔치 않은 공통점을 갖고 있다. ‘동정없는 세상’, 이라지만 그들에게 ‘섹스’는 여전히 ‘저 너머’의 세계에서나 벌어지는 일이다. 영화는 샘솟는 성적 상상과 호기심으로 괴로워하는 그런 두 사람의 고민을 코믹하게 꾸며놓는다. 지나치게 군더더기가 많은 것이나 거친 연결을 흠잡을 수도 있겠지만, 발랄한 에피소드와 맞물리다보면 깔끔한 매듭보다 오히려 자연스럽다. 관객의 뜨거운 호응을 등에 업고서, 제1회 퍼블릭액세스 영상제 최우수 작품상, 제3회 서울국제청소년영화제 일반부문 대상, 제15회 십만원비디오페스티벌 십만원상 등 지난해 연말에 열렸던 각종 영화제의 큼지막한 상을 독식했다. 프로듀서를 맡았던 친구가 몰래 출품한 탓에, 이후 쏟아진 관객 호응을 전혀 예상치 못했다는 윤성호(26)씨는 “성적 열패감에 싸인 이들의 상상으로 국한시키지 말아달라”며, “두려움 없는 관계를 희구하는 영화”로 봐달라고 말한다.

3天포

물론 <삼천포 가는 길>에 ‘돌’을 던지려던 사람들도 있었다. 바로 경남의 사천 시민들. 굳이 없어진 옛 지명을 다시 꺼내든 윤성호씨에게 이들은 각종 인터넷 게시판을 통해 “우리 고향을 비하하는 영화면 뒷일은 알아서 하라”고 협박(?)하기도 했다. 이 때문에 가끔 전화라도 걸려오면, 윤성호씨는 항상 “제목의 삼천포는 현실에는 없는, 일종의 이상향을 의미하는 곳”이라고 설명해야 했다. 그러나 영화를 보면 궁지에 몰린 윤성호씨가 다급히 내놓은 ‘변명’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여러 개의 장으로 나뉜 에피소드들 중 가끔 전체 이야기의 흐름과 무관하게 ‘삼천포’로 빠지는 장면들도 꽤 있기 때문. ‘웃음’을 자아내기 위한 장치들치곤 꽤 길다. 고 정주영씨가 북한에 코끼리 200마리를 보냈으나, 이를 보관할 냉장고 수가 부족하여 남은 70마리가 평양 시내를 휘젓는 사건이 발생, 남북관계의 급격한 경색이 예상된다는 식의 황당한 다큐멘터리가 그 예다.

첫 경험

사실, 윤성호(26)씨는 지난해까지만 해도 취업난을 코앞에 둔 ‘평범한’ 복학생이었다. 수업을 챙겨듣고, 도서관을 들락거리고, 짬이 나면 비슷한 처지의 친구들과 몰려다니며 농구와 술로 시간을 때웠다. 그러던, 여름이었다. 갑자기 시간을 흘려보내기엔,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념품’ 하나쯤은 있어야 하지 않나 싶었다. 거창한 이야기는 자신없고, 그냥 자신들이 직접 등장해서 지금까지 품어왔던 고민들을 털어놓는, 뭐 그런 기록물을 하나 만들어보자는 취지에 동의한 여섯명의 복학생은 그렇게 모였다. 알고보니 공교롭게도 ‘경험 한번 없던 청년’들이 거개였고, ‘섹스’에 대한 호기심은 만장일치로 채택됐다. 그 또한 신문방송학 전공수업 시간에 아는 선배의 지휘 아래 도서관 영상홍보물을 만든 것이 유일한 경험이었고, 나머지 스탭들은 ‘생짜초보’들이었지만, 열의는 대단했다. 디지털카메라와 편집시스템은 학교 기자재를 활용했고, 진행비 포함 1주일 동안 40만원을 확보, 급기야 촬영에 돌입했다. 미팅에서 만난 상대까지 무보수 스탭으로 끌어들였다. 물론, 사운드나 조명을 위한 준비는 ‘언감생심’이었다. 영화 속에서 롱숏이 좀처럼 보이지 않는 이유도 그 때문. 디지털카메라에 달린 마이크가 고작이었으니, 인물이 등장해서 대사를 나누는 장면에선 카메라가 “인물을 급작스레 덮쳐야” 사운드를 건질 수 있었다. 광각으로 찍는 경우도 많아서, 화질이 떨어지게 마련인 프레임의 구석에는 매번 ‘눈가리개’용 사물을 배치하는 수고를 떠안아야 했다.

웃기는 놈

이름이 알려진 뒤에, 그는 올해 초 한 시민단체로부터 제의를 받았다. 아줌마를 위한 교육용 다큐멘터리를 만들어달라는 것. 조건은 하나였다. “웃겨달라는 것”. <회화식 아줌마 입문>은 그렇게 탄생했다.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초보아줌마가 육아에 관한 문제에 부딪히게 되고, 난관에 봉착한 초보 아줌마를 위해 전국의 아줌마들의 조언이 뒤를 잇는 구성. 여행 삼아 전국 순회공연을 하면서 시민방송 등 웹진을 타고 퍼진 뒤로 ‘웃기는 놈, 웃기는 영화’라는 칭찬이 더해졌지만, 정작 그는 “알고보면 진지한 놈인데 사람들이 믿지 않아 죽겠다”고 투덜거린다. 한때 주성치와 이명세의 열혈 신도였던 것이 원죄라면 원죄다.

기회가 된다면 <회화식 아줌마 입문>을 찍기 전 구상했던 다큐멘터리도 완성하고 싶다. 지성과 미모를 갖춘 여성들이 겪어야 하는 스트레스가 무엇인지를 인터뷰 형식의 다큐멘터리로 만들 예정. 뮤지컬도 기회가 된다면 도전해볼 계획이다. <삼천포 가는 길>에서는 한 장면을 맛보기로 끼워넣었지만, 그는 자신이 지금도 즐겨 읽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설정을 빌려 본격적인 뮤지컬영화를 찍고 싶다고. 앨리스를 남자 캐릭터로 만들고, 실제 연기는 여학생에게 맡긴다는 구상이다. 찍는데 맛 들린 친구들 역시 언제라도 달려올 분위기. 하지만 “정식으로 팀을 만들고, 공간이 생기는 순간, 구성원들이 흩어진다”며, 프로젝트가 본격화할 때만 풀(pool)을 가동하는 방법을 택할 것이라고. 글 이영진·사진 정진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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