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영화의 꿈을 이루어 드립니다! 한국코닥주식회사와 <씨네21>이 공동 주관한 ‘이스트만 단편영화제작지원제도’가 올해 다섯 번째 지원작들을 발표했다. 선정작은 정서경 감독의 <전기공들>, 홍두현 감독의 <신도시인>, 조미정 감독의 <승부리 사건파일>이다. 올해 응모작은 모두 95편으로 지난해 81편보다 조금 늘었다. 이 가운데 8편이 본심에 올랐다. 당선작 3편 이외에 <엄마, 아름다운 5월>(서원태), <먼곳>(신상순), <별주부전>(조상범), <웃음을 참으면서>(김윤성), <발기부전을 위한 비디오>(신철호)가 막판까지 각축을 벌였다. 올해 심사위원은 오기민(마술피리 대표), 박찬욱(영화감독), 정성일(영화평론가), 김봉석(영화평론가)이 맡았다.
당선작 3편에는 한국코닥이 35mm 필름 1만자(시가 650만원 상당)를 제공하고, 이 필름의 무료 현상 및 인화를 영화진흥위원회, 서울현상소, 세방현상주식회사, 헐리우드 영상제작기술에서 돕는다. 또 한국코닥과 무비캄, 신영필름이 35mm카메라 장비 대여, 고임표 편집실과 박곡지 편집실에서도 편집 작업료를, 형보제작소와 무비라인, 와이드비전에서는 편집된 작품의 텔레시네 작업료를 할인해주는 등 혜택도 준다. 완성된 작품은 부산국제영화제 와이드앵글 부문의 우선 심사 대상으로 선정된다.
심사평
새롭게, 독특하게, 또는 탄탄하게
시나리오와 기획안만으로, 앞으로 만들어질 단편영화의 넓이와 깊이를 헤아리는 일은 쉽지 않다. 시나리오는 기초공사일 뿐이다. 그 틀 위에 수많은 기둥과 장식들이 덧붙여진다. 게다가 단편영화는 장편영화와 다르다. 시나리오가 아무리 튼튼해도, 관습적인 영역 안에서 맴돈다면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때로는 단 한줄의 대사나 지문에서, 그 영화의 전체 상이 맺히는 경우도 있다. 그런 순간을 꿈꾸며 시나리오를 쓰고 영화를 만드는 것처럼, 그런 순간에 동참하기 위해 95편의 시나리오를 읽었다. 미리 아쉬운 점을 밝히면, ‘실험영화’가 없다는 것. 전체적으로 ‘세련됨’이나 ‘상업적’이란 단어를 너무 염두에 두는 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도 얼핏 들었다.
코닥 단편영화 지원은, 아직 개발되지 않은 재능에 대한 지원이다. 아직 숙련되지 않은, 미래의 가능성을 예측하는 일은 심해의 보물찾기만큼이나 어려운 일이다. 그럼에도 나름의 기준과 지침으로 일단 8편을 골랐다. 시나리오를 각자 읽고, 크로스 체크를 하고, 의견이 엇갈릴 때에는 끝까지 토론을 했다. 하나의 소재나 주제를 새로운 방식으로 파고들거나, 독특한 영상감각의 단초를 드러내거나 혹은 포트폴리오의 장점이 확연한 감독의 작품을 골랐다. 8편이 뽑히기까지의 과정도, 거기서 면접을 거쳐 다시 3편을 선정할 때도 만장일치였다.
독특한 유머감각이 돋보이는 <웃음을 참으면서>(김윤성), 청소년의 성에 얽힌 기발한 발상이 파노라마처럼 이어지는 <발기부전을 위한 비디오>(신철호), 떠들썩한 축제의 현장이 떠오르는 <별주부전>(조상범), 휴가 나온 신병과 엄마의 정감어린 풍경이 담긴 <엄마… 아름다운 5월>(서원태), 정지된 사진에 얹힌 분열된 가족의 자화상이 이채로운 <먼 곳>(신상순), 도시인의 이기주의를 비판하면서 소리에 대한 자의식이 뛰어난 <신도시인>(홍두현), 농촌의 한가로우면서도 익살스러운 정경이 탄탄하게 짜여진 <승부리 사건파일>(조미정), 현실과 환상을 넘나들며 몽상적인 장면이 이어지는 <전기공들>(정서경). 이 8편의 작품 중에서 <신도시인> <승부리 사건파일> <전기공들>을 골랐다. 어느 작품이 부족했다기보다는 이 작품들의 장점이 두드러진 탓이다. 자신이 찍을 영화에 대한 장악력,(<신도시인>), 능숙하면서도 관습적이지 않은 탄탄한 드라마트루기(<승부리 사건파일>), 시나리오부터 독특한 영상이 예감되는 상상력(<전기공들>) 등. 시나리오보다 영화가 더 기대되는 작품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