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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회 이스트만 단편영화 제작지원작 발표 [2]
사진 오계옥최수임 2002-05-24

<전기공들>의 정서경 감독

“모든 게 다 이상하다, 는 느낌을 표현하고 싶다”

정서경(27)씨는 “아직 제대로 영화를 만들어본 적이 없다”고 한다. 서울대 철학과를 4년 다닌 뒤 영상원에 입학, 현재 마지막 학년에 재학중인 그의 필모그래피는 “웬만하면 보여주고 싶지 않은 몇편의 비디오영화”가 전부다. <전기공들>은 그가 필름으로 찍는 첫 영화. 필름 포트폴리오를 제출해야 하는 이번 공모에도 촬영스탭이 대신 신청했다. <전기공들> 시나리오는, 그러나 풋내기 작가의 작품 같지 않게 정교하고 매우 창의적이다. 서울대 재학 시절 단대 학생회 문화국장을 지냈던 정서경씨는 웹진 ‘달나라 딸세포’의 편집장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당선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나.

=아니, 절대로 아니다. 면접관 4명이 다 이상한 분 같다. (웃음) 나보고 “경험도 없고 영화 찍을 의지도 없는 당신을 어떻게 믿고 필름을 주냐”고 그랬는데 뽑았다. 인기상인 것 같다. 면접 내내 면접관들이 굉장히 즐거워했다. 당선이 돼서 좋기도 하지만 부담스러워 싫기도 하다.

-시나리오가 마치 논문처럼 상세한 주를 달고 있다. 이렇게 쓴 의도는.

=예전에 썼던 시나리오는 영화화될 계획이 없던 것이었지만, 이번 것은 달랐다. 워낙 영화를 못 만들기 때문에(웃음) 설명을 많이 해야 했다. 이미지를 만들 때 스탭인 친구들에게 많은 도움을 받아야 함을 알기 때문이다. 지금은 시나리오가 더 두꺼워졌다. 주에 주가 붙어서. 내 의견에 대한 다른 스탭들의 의견들을 다 주의 주로 붙여 썼다.

-이야기를 어떻게 구상했나. 그리고 주제는.

=예전에 이사를 하는데, 이사하는 날 친구 한명이 이삿짐을 싸주러 오기로 돼 있었다. 그런데 그날 친구가 전화를 해서는 ‘전기공사 아저씨가 와서 못 간다’고 하는 것이다. 정말 그럴 듯한 이유라고 생각했다. 학교에 가기가 싫고 해서, 나도 ‘우리집에 전기공들이 왔으면’ 하는 생각을 했다. 주제는, 생각한 적이 없다. 그런데 스탭들이 자꾸 물어봐서 ‘접대용’으로 하나를 정했다. (웃음) 바로 ‘삶의 낯선 느낌’이다. 모든 게 다 이상하다, 는 느낌을 표현하고 싶다. 인물들이 모두 서로 소외돼 있는데, 이렇게 이상한 일을 배우들이 진지하게 연기하고 있으면 참 재미있을 것 같다.

-‘삶의 낯선 느낌’을 시각적으로 어떻게 표현하려 하나.

=방은 환하고 부엌은 어둡다. 그리고 컬러풀하다. 비현실적인데 너무 현실적인 부분도 있는 느낌이다. 카메라는 미니멀한 스타일로 간다. 카메라가 인물을 따라다니는 대신 인물이 카메라 앞에 들어왔다 나왔다 한다. 카메라 자기만의 법칙이 있는 양 말이다. 연기는 사실보다 약간 오버인 듯하게 한다. 이상한 상황인데 ‘되게 열심히 한다’는 느낌을 주도록. 전체적으로 ‘리듬’이 있는 영화로 만들고 싶다. 납중독 때문에 심장박동이 보통 사람들보다 빨라서 베토벤이 그만의 박자감을 갖게 됐다는 얘기를 어디선가 들은 적이 있다.<전기공들>에는 벽지 모티브나 전기공들의 대사, 은희의 행동 등이 바로크 음악의 구조처럼 반복된다. 나만의 패턴으로, 나의 호흡과 맥박을 타고 싶다.

-방 벽지에 대한 묘사가 색다르다. 왜 벽지에 몰두하나.

=부엌에서 전기공들이 시끄럽게 공사를 할 때, 방에서 뭘 할까 생각을 해봤다. 할 일 없는 사람들은 벽지를 많이 보지 않나. (웃음) 벽지의 무늬를 따라 계속 보고 있으면 무늬가 왔다갔다하고 아무 생각도 없어진다. 벽지는 판화로 무늬를 찍어 직접 만들 계획이다. 이번 영화작업 중 개인적으로 제일 설레는 부분이다. 스탭들이 세트를 지어야 한다고 했을 때, 일이 너무 번잡해지는 것 같아 좀 우울해졌다. 그런데 벽지 판화를 생각하고 기분이 좋아졌다.

-촬영계획은.

=무대미술과 친구들이 학교 스튜디오에 세트를 지은 뒤 5월28일에 촬영을 시작한다. 캐스팅은 거의 다 되어 있다. 7∼8일간 세트에서 찍고, 카페에서 은희가 친구를 만나는 장면을 하루 정도 로케 촬영한다.

<전기공들> 시놉시스

어느 아침, 잠에서 깬 은희는 집안에서 ‘쿵’ 소리를 듣는다. 문을 열어보니 유니폼을 입은 남자 둘이 싱크대를 들어 옮기고 있다. 부르지도 않은 전기공들이 ‘이집 때문에 주변 집들의 전기에 문제가 있다’며 은희의 집을 제 집처럼 헤집고 다닌다. 은희는 방 안에 틀어박혀 외출도 못하고 공사가 빨리 끝나기만을 기다린다. 공사는 며칠 동안 계속되고 은희와 함께 사는 남자 종수는 ‘더이상 못 참겠다’며 집을 나간다. 시간이 지나면서 은희는, 그들이 좋아한다는 반찬 ‘깻잎찜’까지 해주며 묘하게 전기공들의 비위를 맞추려 한다. 드디어 공사는 끝나고, 은희는 홀로 남은 집에서 노래를 부른다. “벽 속에 정말 요정들이 살고 있다면 깻잎처럼 보이는 것들도 사실은 갈매기 날개인지도 몰라. 그리고 나는 온 세상이 얇은 실 하나 위에 세워졌다 해도 믿을 거야. 만약 니가 떠난 것이 사실이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