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항상 사회성을 의식한다”
<파수꾼> <스타킹> <노을소리> 등을 연출한 홍두현(37)씨는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독립영화작가다. 지난해 그의 작품 <노을소리>는 베니스국제영화제 단편경쟁부문을 비롯해 로테르담, 프리부르, 드레스덴 등 여러 도시의 영화제에 초청되기도 했다. 코닥에는 <노을소리>에 이어 이번에 두 번째로 문을 두드려 당선됐고, 영진위 사전제작지원은 두 차례 받은 경험이 있다. 이만하면 사전제작지원제에 꽤 노하우가 있는 듯. 서울시립대 전자공학과를 졸업한 뒤 방송사 음향실에서 오디오 엔지니어로 일하며 한겨레문화센터 영화제작학교 1기로 영화에 입문한 그는, 용인대 영화학교에 편입, 졸업했고 지금은 한겨레문화센터 강사로 일하고 있다. <신도시인>은 그의 다섯 번째 단편영화이다.
-작품을 구상하게 된 계기는.
=화정 신도시에 산 지 3년째다. 지금은 개발이 많이 됐지만 예전만 해도 시골이었다. 화정에 이사오기 전에 안산, 산본 등 신도시에 집을 보러 많이 다녔는데, 신도시는 신도시마다의 특징이 있음을 알게 됐다. 그 느낌들이 내 안에 쌓여 있었다. 그걸 풀어낸 것이다. 신도시가 급작스럽게 형성되고 나름의 공간을 구성해나간 과정을 <신도시인>에서 교통사고가 일어나고 처리되는 과정으로 그려보고자 했다.
-‘신도시’라는 공간과 함께 ‘가족’이 이 시나리오의 중요한 화두인 것 같다.
=카메라가 가족 내부를 관찰하는 것이 지금까지 영화가 가족을 다룬 보통의 방식이었다. 나는 가족의 외부에서 한 가족과 사회와의 관계를 나타내고 싶다. 가족 내부의 갈등보다는 가족이 사회 내에 위치한 지점이 나의 관심사다. <신도시인>에서 딸이 아버지의 뺑소니 살인사고를 묻어 넘기듯이, 한 가족의 희생이 묻혀져야만 다른 한 가족이 유지되는 게 현실이다. 신도시라는 공간은 그것과 무관하지 않다. 신도시는 수십년 동안 사람들이 살아온 생활터전을 갈아엎어버린 뒤 재개발을 해 만든 공간이다. 신도시의 형성과정 자체가 이 영화의 사건전개과정과 유사하다. 그 유사성을 어떻게 영상과 사운드로 표현하는가 하는 것이 나의 과제이다.
-중요한 장면들에서 대사가 거의 없고 영상과 사운드가 이야기를 주도한다.
=면접 때도 사운드에 대한 질문을 받았다. 대사가 없는 이유와 어떻게 사운드를 운용할 것인지에 대한 물음이었다. 대사는 후시녹음을 염두에 두고 뺀 것이기도 하지만 물화된 인간의 특징을 ‘말없음’으로 드러내고자 한 것이다. 신도시의 주민들은 상당히 수동적이다. 공간을 자기들에 맞게 능동적으로 변화하는 대신 스스로 공간에 수동적으로 적응한다. 그리고 소비지향적이다. 그런 신도시인의 특성을 무채색의 공간묘사로 나타내려고 한다. 흑백으로 할까 생각중이다. 상당히 표현주의적인 영상이 될 것이다.
-<파수꾼> <스타킹> <노을소리> 등 이전 작품들에 어떤 경향이 있다면.
=나는 항상 사회성을 의식한다. 현실을 어떤 식으로 이야기에 담을지 생각한다. <파수꾼>은 100만원이라는 초저예산으로 만들었는데, 영화검열관의 이야기였다. 영진위에서 300만원을 받아 만들었던 <스타킹>은 수몰지구 사람들의 이야기였다. 시립대 다닐 때 학보사에서 만화 만평을 그렸는데, 그때부터 사회적인 시각을 갖게 된 것 같다.
-방송사 음향실에서 일했는데 사운드에 대한 특별한 감각이 있을 것 같다.
=<노을소리>를 35mm로 찍은 것은 사운드 때문이었다. 그 작품은 청각장애아가 집을 나와 헤매는 이야기인데, 비장애인이 듣는 소리와는 전혀 다른, 청각장애인이 듣는 소리를 영화에 담았다. <신도시인>도 마찬가지이다. 다른 공간에서는 전혀 듣지 못하는 신도시만의 사운드를 이 영화에서 들을 수 있을 것이다.
-이 작품의 제작일정은. 장편 데뷔계획은 없나.
=6월에 장소 섭외와 캐스팅을 마치고 7월에 촬영을 마치고, 8월에 편집과 녹음을 완료할 생각이다. 장편 연출은 구체적인 계획은 없지만 생각은 있다.
<신도시인> 시놉시스
주변 어디에나 아파트가 즐비한 신시가지 거리. 랑(20대 초의 여자)이 밤늦게 귀가중이다. 평소에도 지나는 차량이나 행인이 뜸했지만 오늘따라 유난히 한산하여 을씨년스러울 정도이다. 랑이 집 근처 사거리 언덕길에 거의 도달했을 때 근처 어디선가 자동차 바퀴의 날카로운 마찰음과 둔탁한 충돌음이 고요한 주변을 뒤흔든다. 교통사고이다. 당황한 랑이 현장에 도착했을 때는 사고차량은 이미 뺑소니를 친 뒤. 길바닥에는 랑 또래의 젊은 여자와 아기가 피투성이가 되어 쓰러져 있다. 여자는 겨우 숨이 붙어 있는 듯하다. 어찌할 줄 모르던 랑은 바닥에서 눈에 익은 무엇인가를 발견한다. 바로 아버지의 넥타이핀이다. 경찰차의 사이렌 소리가 들려오자 랑은 재빨리 그것을 주워 자리를 피한다. 아파트 앞에서 랑은 아버지를 만난다. 그리고 말한다. “아빠, 오늘 넥타이핀 안 하고 출근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