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유튜브의 매력을 알게 되었다. 첫 앨범을 내기 전, 그러니까 약 15년 전에 유튜브에 노래하는 영상을 올려서 그걸로 어쩌고저쩌고했던 나지만, 그것과 현재의 유튜브를 즐길 수 있는지는 별개였다. 요즘 사람들은 검색할 일이 있으면 포털 사이트에 쳐보지 않고 유튜브에서 찾는다고 지인이 말했을 땐 그가 잘못된 정보를 들었거나 확대 해석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영상으로 검색을 한다는 개념 자체를 이해하지 못했다. 아니, 검색이라는 것은 검색어를 검색창에 넣어서 나오는 텍스트를 읽고 파악하는 과정이 아니었나. 원하는 정보를 얻기 위해서 블로그의 수많은 신나는 토끼, 점프하는 토끼, 난처한 토끼, 여하튼 갖가지 토끼를 보며 스크롤을 빠르게 내리는 게 핵심 아니었냐고. 영상은 영상이고 텍스트는 텍스트인데 그게 어떻게…. 하지만 그 말은 사실이었다. 세상은 바뀌었고 패러다임도 바뀌었고 사람들은 내가 스크롤을 빠르게 내리듯 영상을 톡톡 건드리며 원하는 구간을 찾는 능력을 이미 갖추고 있었다. 뒤늦게 이해한 나는 인기 있는 콘텐츠를 몇개 클릭해보았으나 먹방도, 하울 영상도, 일상 브이로그도, 테크 리뷰도 내 취향이 아니었다. (아! 강유미의 ASMR은 정말 재미있었지만.)
하지만 세상은 넓고 어딘가에 분명히 내 취향의 뭐시기는 존재한다. 단지 내가 아직 발견하지 못했을 뿐. 잠이 오지 않던 어느 밤, 우연히 한 채널을 알게 되었다. 일본의 한 잡화점이 운영하는 채널이었는데 그중, 모닝 루틴 <나의 아침 습관>이라는 시리즈가 눈에 띄었다. 얄궂으면 어쩌지. 자기의 화려하고 멋진 일상을 자랑하려는 욕망이 화면을 뚫고 나오면 어쩌지. 아침부터 캐비어 먹으면 어쩌지(의심이 많다). 난 큰 기대 없이 한 중년 여성 편집자의 모닝 루틴을 보기 시작했다.
그는 새벽 5시에 일어난다. 그리고 밥솥의 취사 버튼을 누르고 한번 더 잔다. 그리고 반신욕을 한다. 뜨거운 물속에서 기분 좋게 정신을 차리고, 나오면서 극세사 행주로 욕조를 바로 닦는다. 5시 반에 커튼을 열고 환기를 한다. 스트레칭은 매일 15분. 어젯밤에 씻어두었던 그릇을 그릇장에 넣는다. 커다랗고 낡은 그릇장 안에 그릇이 가득해서 왠지 보는 내가 기분이 좋아졌다. (사실 밥솥 버튼 누르고 한번 더 주무실 때 이미 좋아졌다.) 그리고 수건을 널고 원고 작업을 시작한다. 밤에 졸음을 참으며 쓴 원고는 어차피 아침에 다시 고쳐야 해서, 그냥 아침에 처리하기로 마음먹었다고 했다. 8시에 가볍게 과일을 먹는다. 과일을 입에 넣으며 15분짜리 아침드라마를 본다. 남편이 내려놓은 뜨거운 커피를 들고 다시 작업방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11시 반에 이른 점심을 만든다. 오늘은 수프가 메인인데 재료는 그냥 냉장고에 있는 남은 채소. 국물 맛은 무첨가 두유와 미소된장으로 냈다. 식빵을 한장 구워 곁들이고, 요거트에는 복숭아 콩포트를 올렸다. 그리고 식후에 오는 졸음을 피하기 위해 30분간 청소를 한다. 언젠가 취재를 하다 만난 청소 전문가가 ‘청소는 어질러지기 전에 깨끗할 때 하는 겁니다’라고 말하는 걸 듣고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낮 12시가 되고 영상은 끝이 난다.
9분짜리 영상이었다. 말도 많지 않고, 자막도 많지 않았다. 드라마틱한 일도 없이 그냥 아침 시간을 보낼 뿐이었다. 하지만 신기하게 빠져들었다. 난 자기 전 머릿속이 시끄러울 때 그 시리즈를 하나씩 보기 시작했다. 번역가의 아침 루틴, 교정자의 아침 루틴, 주부의 아침 루틴, 빵집 주인의 아침 루틴. 에세이스트의 아침 루틴 등 앞에 적었듯, 별다를 것이 없었지만 동시에 모두가 별달랐다. 사는 것 다 똑같지 뭐, 하고 쉽게 말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삶을 지키기 위해 꼬물대는 방식이 각자 다른 것처럼. 누구는 아침마다 식물 화분을 볕이 잘 드는 베란다에 내놓고, 누구는 겨울 아침에 항상 오트밀을 끓인다. 메이플 시럽과 시나몬 가루를 꼭 넣는다. 누군가는 커피를 내린다. 누군가는 아직 어두운 거실에서 맹물을 끓여 마신다. 그나저나 맹물을 끓이는 사람이 많아서 찾아보니 인도의 아유르베다 건강법이라고 한다. 10분 이상 끓인 물을 50도 정도 식혀서 일어나자마자 먹으면 장에 참 좋다고…. (혹해서 직화가 되는 도자기 주전자를 바로 알아봤다- 아마 곧 사겠지.)
왜 모르는 누군가가 커튼을 걷는 뒷모습을 보는 게 좋았을까. 왜 대충 냉장고에 있는 채소를 썰어 넣은 수프가 그렇게 맛있어 보였을까. 생각하다가 갑자기 아. 미지근한 맹물도, 청소도, 목욕도, 스트레칭도, 그릇 정리도, 다 주문이었다. 그리고 결계였다. 오늘 나의 하루가 조금이라도 단단해지길, 하는 마음에서 외우는 주문이자, 나의 쉼터가 더 포근해지길 하고 바라며 만드는 작은 결계.
일상은 얼마나 떠내려가기 쉬운가. 무난하고 평범한 하루를 보내기는 얼마나 힘든가. 어떤 사람은 공감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그리고 왠지 점점 더 그렇게 생각하게 될 것 같다. ‘어른이 되어가는 건 지혜가 생겨나는 것’이라고 28살 때 건방지게 가사로 적었지만, 지금이라면 감히 그렇게 쓰지 못할 것 같다. 상황은 더욱 복잡해지고, 문제는 해결되지 않으며, 이젠 레퍼토리가 같아 하소연하기도 미안하다. 그렇다고 화성으로 떠나버릴 수는 없다. 지금 내가 발을 붙이고 있는 이곳에서 조금이라도 마음에 바람이 통하게 하려면, 어둠에 잡아먹히지 않고 밝은 곳을 보려면, 파도에 휩쓸리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나는 그 편집자의 아침 루틴을 두번 보고 살짝 따라해보았다. 일어나자마자 뜨거운 물에 들어가 잠을 깨는 건 멋진 일이었고, 매트를 훌훌 깔고 몸을 잠시 움직이는 것도 멋진 일이었다. 덕분에 아주 멋진 낮잠을 잤다. 두유 수프도 만들어보았다. 콩물을 넣었더니 들깨 수제비 국물 느낌이 났다. 알배기 배추가 달았다. 더 추워지면 오트밀도 끓여보고 싶다. 아유르베다 건강법인 미지근한 물도 마셔보고 싶다. 어째 본질과 거리가 있는 쪽에 집착하는 것 같지만, 여튼 마음이 휩쓸려버리지 않도록 뭐라도 하고 싶다. 아니, 다시 말하자면, 휩쓸려도 빨리 제자리로 돌아오게 하기 위해서 뭐라도. 역시 도자기 주전자를 빨리 사야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