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작연도 2002년 광고주 한국 맥도날드 제품명 맥도날드 대행사 레오버넷 제작사 옐로우(감독 김상택)
패스트푸드 CF가 재미있다. 맥도날드 광고, 파파이스 광고, 롯데리아 광고, KFC 광고 등 어느 하나 웃기지 않는 게 없다. “안 갈았으면 하는 소망이 있네”라는 류승범의 능청맞은 목소리 하면 생각나는 파파이스 CF, <아침이슬>이란 진지한 곡의 ‘긴 밤 지새우고’란 노래말과 새우버거의 주재료인 새우를 연결하는 ‘추운’ 유머로 웃음을 자아낸 롯데리아 CF 등은 올 상반기 소비자의 기억세포를 즐겁게 자극한 대표적인 예다. 통통 튀는 광고를 논할 때 정말이지 이 ‘빠른 식품’ 분야를 허투루 보아선 곤란하다.
이들 광고의 특징은 CF 교체 주기가 빠르고, 명확한 메시지로 치고 빠진다는 데 있다. 유머를 소구전략으로 삼고 있다는 점도 공통분모다. 할인 서비스, 경품 선사 등 다채로운 이벤트로 소비자에게 쉼없는 관심을 유도하고 있는 패스트푸드 CF는 프로모션 내용을 알기 쉽고 재미나게 알리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열 손가락 깨물어 아프지 않은 손가락이 없겠지만 그래도 좀더 눈길이 가는 비교우위의 대상은 있는 법. 맥도날드 캠페인이 바로 그런 경우다.
‘야비한 세계화의 첨병’이라며 반미운동과 관련해 심심치 않게 구설에 오르는 브랜드지만 맥도날드는 광고만을 온전히 떼어놓고 보면 패스트푸드 브랜드들 가운데 ‘군계일학’의 크리에이티브를 선보이고 있다. 특히 지난해 5월부터 전개해온 ‘목숨 걸지 마세요’ 시리즈는 후속작에 대한 기대를 꾸준히 낳으며 인기를 누리고 있다.
이 ‘목숨’ 시리즈는 한마디로 ‘식탐에 관한 짧은 필름’이다. 광고의 주인공은 한결같이 맥도날드 제품을 먹고 싶은 욕구를 참지 못하다가 난처한 상황에 처한다.
‘버스’편에선 왜소한 체구의 한 남성이 덩치 큰 옆자리 승객의 프렌치프라이를 조는 틈을 타 뺏어먹으려다가 들킨다. ‘사장실’편에선 결재를 받으러 사장실에 들른 직원이 사장 책상 위의 프렌치프라이를 집으려다가 낭패를 맛본다. 자리를 비운 줄 알았던 사장이 책상 밑에서 때마침 나타났기 때문. 그는 바닥에 떨어진 프렌치프라이 한 조각을 찾기 위해 책상 아래에서 한바탕 수색작업을 벌이던 터였다.
민망해진 주인공은 모두 이같은 훈계를 듣는다. ‘목숨 걸지 마세요.’ 작은 일에 목숨 걸지 말고 저렴한 맥도날드 제품을 부담없이 사먹으라는 메시지다.
지난 4월 한달간 선보인 ‘1/2’편은 독특한 영상구성과 무성영화 같은 전개방식으로 흥미를 유발했다. 1/2이란 글자와 함께 가로로 분할된 화면의 위아래에 천천히 걸어가고 있는 남자와 종종걸음으로 갈길을 재촉하고 있는 정복 차림의 남자가 등장한다. 알고 보니 후자는 전자를 뒤쫓고 있다. 이들은 갈수록 걸음의 속도를 높이며 제법 긴박한 추격전을 연출한다. 두 남자의 도착지는 맥도날드 매장. 앞서 있던 남성은 판매대로 달려가 날름 햄버거를 주문한다. 이때 “잠깐”이란 소리가 들려오고, 쫓아가던 남성은 앞 손님의 일행처럼 가장해 “하나 더”를 외친다. 그는 똑같은 햄버거 2개를 사면 두 번째 버거는 반값에 구입할 수 있는 맥도날드의 프로모션을 활용하기 위해 쫓는 자가 됐다. 두 남성이 나란히 앉아 햄버거를 먹고 있는 마지막 대목이 압권이다. 뜻하지 않게 혹을 붙이고 매장에 오게 된 남성은 정복 남성에게 “저, 아세요?”라고 묻고, 정복 남성은 쓸데없는 질문하지 말고 먹는 데나 열중하라는 듯한 천연덕스러운 손짓으로 대답을 대신한다.
5월 초 방송을 타기 시작한 ‘성당’편은 미사시간에 꼬마의 햄버거를 한입 뺏어먹다가 성당의 엄숙한 분위기를 깨뜨린 한 중년 남성의 에피소드를 그리고 있다. 이번에도 “목숨 걸지 마세요”란 한마디가 주인공의 난감한 표정과 겹쳐진다.
맥도날드 CF가 특별한 맛이 난다면 그것은 원초적인 인간군상을 세밀하게 포착한 데서 비롯했을 것이다. 이 광고에는 감자튀김 한 조각 같은 사소한 것에 악착을 떠는 다양한 인물이 나온다. 그들은 나이나 지위고하를 떠나 남의 것에 무임승차하기 위해, 혹은 그런 자를 방어하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기도시간에 나이 지긋한 어른이 아이의 햄버거를 탐하다니, 말 다한 것 아닌가. ‘1/2’편의 정복 남성처럼 돈 몇푼 아껴보겠다고 뻔뻔한 기지를 발휘하는 인물이 있는가 하면, 대단한 것 도둑질하다가 들킨 것마냥 어쩔 줄을 몰라하며 소심하게 구는 사람도 있다. 메인 카피인 ‘목숨 걸지 마세요’란 말은 다분히 과장섞인 문구지만 광고 속 인물은 정말 목숨을 거는 사람처럼 식탐 앞에서 물불을 가리지 않는다.
세상에 목숨을 걸 만큼 대단히 가치있는 일은 별로 없을 것이다. 그러나 막상 일상을 찬찬히 반추하면 세상살이란 게 별것 아닌 목표를 향한 치열한 분투기나 다름없는 것 같다. 대의를 위해 사사로운 것을 미루거나, 배가 고파 죽을 것 같은 와중에도 혹여 게걸스럽게 보이지나 않을까 우려하며 맛있는 것을 천천히 입에 넣는 이성적인 사람도 있지만 대다수는 식욕, 성욕, 명예욕을 비롯한 갖가지 욕망을 주체하지 못해 창피를 무릅쓰고 질주한다. 그 욕망 때문에 얼굴을 붉히는 것도 보통 인간의 모습이다.
맥도날드 CF는 그런 인간사의 본질을 재치있게 풍자하고 있다. ‘쟤들, 잘 노네’라며 구경꾼의 입장에서 웃으며 감상하는 다른 유머광고와 달리 연민과 조소가 복합적으로 얽힌 감정으로 가깝게 다가가게 되는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조재원/ <스포츠서울> 기자 jone@sports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