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한 만화 주인공의 눈동자를 볼 때 거리감이 느껴질 때가 있었다. 특히 소년 만화 주인공의 눈이 그랬다. 맑고, 흔들림이 없고, 사사로운 감정이 느껴지지 않고, 곧고, 강한 정신이 드러나는 그런 눈. <드래곤볼>의 손오공이 그랬고, <헌터×헌터>의 곤이 그랬다. <원피스>의 루피도 그랬다. 그런 영웅이 보여주는 놀라운 정신력과 힘에 세상은 열광했고, 독자는 기운을 냈다.
초월적 존재의 이야기가 주는 카타르시스가 있다. 영웅이 위기에 빠졌다가 힘겹게 이겨내고, 더 센 적이 나타나서 또 위기에 빠졌다가 역시 이겨내고, 그런 과정에서 점점 강해지는 이야기. 나도 물론 재미있게 보았다. 그런데 역시 거리감이 있었다. 왜냐하면 그런 존재는 너무 대단하고 투명해서 대화를 나눌 기회가 생긴다면 내가 더 한심하고 작게 느껴질 것 같았기 때문이다. (역시 크리링을 무시할 게 아니었다.) <헌터×헌터>의 곤에게 만약 내 잡스러운 고민을 털어놓으면 그 말은 그를 투명하게 통과해버릴 것 같다. 아무런 상호작용 없이 말이다. 곤은 “이모, 그냥 일어나서 열심히 하면 되잖아. 그럴 수밖에 없어”라고 하겠지. 그럼 나는 머쓱하게 “으응…그래 곤 말이 맞아…” 하고 억지로 일어나겠지만, 기운은 여전히 하나도 없을 테고…. 대체 손오공은 저래가지고 결혼 생활은 어떻게 하는지, 아이는 어떻게 키우는지 그런 게 궁금했던 적이 있는데 만화 주인공을 두고 별 상상을 다 한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오사카 나오미의 눈은 서늘하다. 그는 테니스 선수이며, 97년생이고, 이미 그랜드슬램을 달성했다. 그나저나 그랜드슬램이라는 말이 정확히 뭘 뜻하는지 궁금해서 이번 기회에 찾아보니, 무려 ‘한해에 4대 메이저 대회를 모두 석권하는 일’이라고 한다. 한해에 윔블던, US오픈, 호주오픈, 프랑스오픈에서 모두 이긴 것이다. 오사카 나오미의 경력을 조금 더 적자면, 그는 여성 테니스 역사에서 랭킹 1위를 한 첫 번째 아시아 선수이고(그는 일본인 어머니와 아이티인 아버지를 두었고 3살부터 미국에서 거주했다) 2020년, 지구의 모든 운동선수 중 소득이 8번째로 높았고, 역사상 연간 소득이 가장 높았던 여성 운동선수다. 참고로 그의 서브 속도는 시속 201km다.
사실은 그를 이렇게 설명하고 싶지 않다. 나도 <어린 왕자>에 나오는 이야기처럼 집 지붕 색깔은 무엇인지, 창틀은 어떻게 꾸며져 있는지 그런 것에 대해 말하고 싶다. 그런데 넷플릭스에서 본 그의 집은 너무 캘리포니아의 대저택이라 창은 그냥 통창이었고 창틀에 보라색 팬지꽃 같은 건 없었다. 거실은 휑했고 가운데에 아주 커다란 트로피가 있었다. 오사카 나오미는 그 집에서 불면에 시달린다. 서늘한 눈으로.
대부분의 테니스 선수의 경우, US오픈에 평생 한번 출전한 것만으로도 인생의 영광이다. 하지만 오사카 나오미의 경우에는 우승을 하지 못하면 실패로 취급된다. 그의 내면에서도 외부에서도 그렇다.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오사카 나오미: 정상에 서서>에서 오사카 나오미는 덤덤하게 말한다. “나는 시합에 나가면 날 로봇이라고 생각해요.” “나는 모두의 부단한 노력을 구현하는 도구입니다.” 심지어 그런 스스로를 불쌍해하지도, 갸륵해하지도 않는다. 이 97년생은 그냥 아는 것이다. 현재 어떤 것을 요구받고 있고, 그 기준선이 얼마나 높은지, 세계 최고의 자리를 지키려면 얼마나 많은 연습량과 정신 소모가 필요한지, 업계가 얼마나 잔혹한지에 대하여. 동시에 자신이 수많은 사람들의 롤모델인 것도 알고 있다. 아이들은 방에 오사카 나오미의 포스터를 붙여둔다. 그에게는 엄청나게 많은 스폰서가 있다.
그는 세계 이곳저곳을 다니며 손에 상품을 들고 입혀주는 옷을 입고 하라는 멘트를 한다. 그런 시간을 겪으면 누군가는 우쭐해지고 누군가는 절망한다. 이민자였던 그의 엄마는 일이 너무 많아 차에서 잠을 자기도 했다고 한다. 그는 엄마가 일을 안 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하루에 8시간씩 연습을 했다. 엄마는 더이상 일하지 않지만 그는 멈출 수도 없다. 이미 그는 나이키의 얼굴인 ‘오사카 나오미’가 되어버렸으니까.
가끔 사람들은 누군가가 엄청난 부와 명예를 갖고 있다는 이유로 그를 잔인하게 대하기도 한다. 그래야 세계의 평형이 맞는다고 생각하는지도 모르겠다. 테니스 선수는 경기가 끝나면 무조건 기자 회견을 한다. 그리고 이런 질문을 받는다. “패배할 때의 기분은 어땠나요?” ”당신이 왜 패배했다고 생각하나요?” 패배 직후에 말이다. 대중은 절대적인 존재고 그 대중을 대변하는 기자 또한 그렇다. 얼마 전 오사카 나오미는 프랑스오픈에서 기자 회견을 거부했다. 선수로서 경기에 집중하기 위해 내린 결정이었다. 하지만 협회는 1만5천달러의 벌금을 부과했고 4개의 그랜드슬램 관계자들은 공동성명을 통해 그가 앞으로 의무를 다하지 않으면 더 많은 벌금을 부과할 것이고 경기 출전 금지 등의 징계를 내릴 것이라고 경고했다.
새로운 세대의 정신력이 약해졌다는 말을 종종 본다. 20세기의 영웅 손오공은 셀이 진화할 때 ‘오우, 이건 내가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으니까 난 빠질게요’ 하지 않았다. 슈퍼사이어인으로 진화해 악을 무찔렀다. 어떻게든 해내는 정서가 찬사를 받는 시대였다. 표어는 ‘안되면 되게 하라’. 누군가는 그리스 시대나 지금이나 비슷한 말을 반복하고 있을 뿐이라고, 젊은 애들은 버릇없고, 꼰대는 짜증날 뿐이라고 한다. 하지만 다른 부분도 분명히 있다. 지금은 초등학생도 인스타그램을 하고 철없는 마음에 찍은 사진이 박제당해 영원히 남기도 한다. 어른들은 상상도 못할 부분까지 신경을 써야 하고 그 연령은 점점 어려지고 있다. 지금의 자본주의 시스템에서는 열심히 일해도 아무것도 보장되지 않는다. 그리고 아이들도 이미 그걸 알고 있다. 지금은 우리가 처음 경험해보는 시대이고, 고로 예전의 기준으로 현재 세대의 스트레스를 판단해선 안된다.
오사카 나오미는 자신의 우울증에 대해 고백했다. 우울증이 있는 그는 약한 사람일까. 그는 미국의 인종차별 시위 때 경기에 검은 마스크를 쓰고 나왔다. 마스크에는 희생자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농구나 미식축구는 팀 스포츠여서 동료와 함께 뜻을 표할 수 있지만 테니스의 경우는 개인 스포츠여서 오사카 나오미는 철저히 혼자였다. 그는 모든 경기에서 이겼다. 그래서 준비했던 7개의, 각각 다른 희생자의 이름이 적힌 마스크를 전부 쓸 수 있었다. 내가 생각하는 21세기의 영웅의 모습은 이렇다. 흔들리고 고민하고 때때로 무너져도 계속 달려가는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