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러티브보다 이미지에 천착한 갖가지 실험과 다양한 주제의식이 빛난다. 형식면에서 2D와 3D는 경계를 허물었고 퍼핏, 스톱모션, 클레이, 페이퍼 등 여러 기법이 사이좋게 공존한다. 인간의 내면과 현대 자본주의사회를 응시하는 시선이 만만치 않다.
퍼스 포패
린다 김 / 6분47초 / DV6mm컬러 / 퍼핏
어둡고 환상적인 작품으로 이름높은 체코의 초현실주의 아티스트 얀 스팡크애머와 그의 상상력을 이어받은 인형애니메이션 작가 퀘이 형제, 인체에 관한 기형적이고 에로틱한 상상력을 보여준 일련의 인형작품으로 유명한 프랑스의 초현실주의자 한스 밸머 등에게 영향을 받은 퍼핏애니메이션. 기괴한 이미지와 풍경, 낡고 지저분한 인형의 딱딱한 움직임으로 표현한 거짓된 자의식과 정체성에 대한 음산한 상상력은 <팀 버튼의 크리스마스의 악몽>을 연상시키지만, 그보다 몽환적인 느낌은 덜하고 기괴한 압박감은 더하다. ‘퍼스 포패’는 거짓된 인형이란 뜻이다.
Now, Who Rules You?
이우진 / 4분 / DV6mm컬러 / 3D
현대 자본주의사회를 지배하는 다국적 자본의 보이지 않는 손길을 풍자적으로 보여주는 작품. 소비에트 공화국의 붉은 깃발이 위압적으로 솟구쳐오르고, 사람들은 압제에 시달린다. 사람들은 저항하여 독재자를 무너뜨리고, 자유·평등·박애의 삼색기가 깃대에 오른다. 그러나 그 기치를 짓밟고 사람들을 지배하는 깃발이 올라간다. 새로이 ‘당신을 지배하는’ 독재자는 바로 맥도널드. 맥도널드 로고가 새겨진 깃발이 펄럭이면서 맥도널드 인형 동상이 우뚝 솟는 통렬한 반전이 돋보인다.
연분
이애림 / 17분 / beta컬러 / 2D&3D&스톱모션
샤갈의 그림, 또는 캐나다 애니메이터 이슈 파텔을 연상시키는 현란한 비주얼과 색채감이 돋보이는 컷아웃 애니메이션. ‘신랑은 졸고, 신부는 머리를 만지고 있었다…’라는 이야기가 자막으로 떠오르면서 시작한다. 졸고 있는 신랑 옆에서 머리를 만지던 신부는 훔친 꽃을 바치며 사랑을 속삭인 도둑과 사랑의 도피를 해버리고 복수를 위해 쫓아가던 신랑은 자신을 부추겨 함께 쫓아가던 사람과 사랑에 빠진다는 동화 같은 이야기를 풀어낸다. 운명의 아이러니, 인연의 기이함을 이국적이고 환상적인 톤으로 채색한 수작.
너나 잘해!
신영재 / 5분 / 35mm컬러 / 페이퍼애니메이션
선과 면, 원, 입방체의 단순명료한 조형 요소들의 움직임이 스타카토처럼 톡톡 튀는 애니메이션. 빈 공간에서 떨어져 정육면체로 변한 하얀 종이에 ‘애정’이 가해진다. 갑자기 등장한 물체가 상자의 색과 모양을 바꾸려 한 것. “애정이 때로는 상대방에게 고통으로 다가올 수도 있음”이라는 주제를 간결하고 깔끔하게 표현했다.
여름
김정화 / 11분 / 35mm컬러 / 2D
신발을 갖게 되어 너무 기쁜 소년. 그런데 신발을 날리다 그만 시냇물에 빠뜨리고 만다. 신발을 찾아 물 속으로 들어간 소년은 물고기 한 마리를 만난다. 중국 수묵애니메이션의 걸작인 테웨이의 <피리부는 목동>을 연상시키는 담채화 같은 느낌의 화면이 돋보인다. 외로운 동심과 물고기로 대변되는 자연과의 교감이라는 주제를 세련된 화면이 단단히 받쳐준다.
레인
이규희 / 6분 / beta컬러 / 2D
순정만화풍의 그림과 움직임을 자제한 컷으로 도심의 메마른 일상과 외로운 사랑을 그린 작품. 출퇴근 길에 마주친 남과 여는 서로 사랑하게 되지만 다가가지 못한다. 어느 날 남자는 누군가와 이야기를 하고 싶지만 곁에는 아무도 없다. 그가 흘린 눈물 한 방울이 때마침 불어온 바람을 타고 그녀에게 전해진다. 단정하게 정지된 그림체와 아르페지오로 들려오는 기타소리가 쓸쓸한 여운을 남긴다.
음양(陰陽)
안소정 / 2분30초 / beta컬러 / 2D
사람의 얼굴과 입술 사진을 다양하게 변형시켜 인간 내면의 이중성을 표현한 전위적인 작품. 인간의 야누스적인 면을 얼굴 사진 한장이라는 간소한 재료로 표현한 재치가 돋보인다. 얼굴과 입술의 클로즈업, 흑과 백의 강렬한 콘트라스트, 데칼코마니처럼 쪼개서 펼쳐보이는 등 사진을 해체, 재조합해서 나타나는 효과를 노련하게 잡아냈다.
Lunch Times
김경미, 박수영, 서정엽, 양세희 / 4분30초 / beta컬러 / 2D
햄버거를 베어먹는 만족스러운 입을 클로즈업하면서 시작하는 <Lunch Times>는 소를 의인화해서 들려주는 햄버거에 대한 섬뜩한 명상이다. 햄버거 공장 컨베이어 벨트에서 일하던 한 노동자가 사고로 기계 속으로 빨려들어간다. 노동자는 햄버거 속 패티로 ‘부활’하고, 게걸스럽게 햄버거를 먹어치운 사람들에게는 재앙이 닥친다. 위정훈 oscarl@hani.co.kr▶ 인디포럼2002 5월18일부터 9일간 서울아트시네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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