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품된 작품 수가 37편. 예년에 비해 늘었다는 점이 일단 고무적이다. 다만 지난해 상영됐던 <애국자 게임> 같은 화제작은 눈에 띄지 않는다. 대신 다양한 형식의 다큐멘터리 10편이 상영된다. “소재만이 아니라 형식에 대한 고민과 실험이 작가들 사이에서 활발히 진행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는 것이 김노경 프로그래머의 총평이다.
1980년 4월 사북의 봄-먼지, 사북을 묻다 이미영 / 80분 / DV8mm컬러
광포한 역사는 ‘희생양’을 요구한다. 1980년 광주가 그러지 않았던가. 그해 강원도 사북의 광산노동자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마을의 한 여인을 무참히 린치하고, 심지어 군부대가 관리하는 무기고까지 탈취했던 폭도들. 어용노조 퇴진 요구를 내걸었던 탄광촌의 그들을, ‘역사’는 그렇게 기록했다. 그 일이 있은 뒤, 누군가는 자식 손을 잡고 고향을 등졌고, 누군가는 무속인이 되어 세상과의 연을 끊었다. <…사북의 봄>은 침묵과 망각의 더미에 묻힌 20여년 전 사북의 ‘진실’을 캐내기 위해 조심스레 나선다. 2년 넘게 진행한 꼼꼼한 자료수집과 가해자까지 망라한 방대한 인터뷰도 돋보이지만, 감독의 태도가 무엇보다 주목할 만하다. 직접 화자로 등장하는 감독은 사북사건에 대한 섣부른 단정이나 과중한 의미부여 대신 끊임없이 자신의 작업에 대해 되묻는다.
가족 프로젝트-아버지의 집 조윤경 / 52분 / DV6mm컬러
‘Family’의 라틴어 어원을 파들어가면, ‘하인’이라는 말이 튀어나온다. 누리는 남성과 떠받드는 여성의 역사, 수천년이 지난 지금도 상황은 별반 다르지 않다. 감독은 이를 증명하기 위해 자신의 가족을 무대로 밀어올린다. “내가 사는 게 아니라”며 울부짖는 어머니와 “자신 또한 피해자”라며 욕설을 내던지는 아버지, 집안의 대소사를 따르면서 카메라는 가족들 사이의 불협화음까지 빼놓지 않고 담는다. 상대 없이 춤을 추는 어머니의 실루엣과 묵묵히 골목길을 걸어가는 아버지의 뒷모습이 나란히 놓이는 대목은 보는 이들까지 자신들의 ‘가족’을 투영하고 자문하게 한다. 드라마와 비교해도 손색없을 정도로 긴장감 있는 구성이 돋보이는 작품. “사적인 영역을 공적인 논쟁의 장으로 끌어올렸다”는 호평을 받으며, 올해 서울여성영화제 경쟁부문에서 최우수 작품상을 수상했다.
주민등록증을 찢어라! 이마리오 / 45분 / DV6mm컬러
“내 지문 돌리도!” 이 무슨 황당한 요구인가. 얼마 전 도로교통법을 위반해서 지문을 날인한 적 있는, 한 청년의 난데없는 습격에 담당 경찰관은 당황스러워 한다. 주민등록증을 대신할 만한 신분증이 있음에도 지문을 남기라고 강요했던 경찰에게, 청년은 법적 근거가 무엇이냐며 따져든다. 도발적인 제목에서 보여지듯, 어느 누구도 의심하지 않는 제도에 딴죽을 거는 ‘불온한’(?) 작품이지만, 이후 카메라의 조근조근한 설명을 듣고 있노라면 ‘왜 지문날인을 거부해야 하는지’ 고개가 끄덕여진다.
i.am.you 임태용 / 15분 / DV6mm컬러
짧고 소소한, 그러나 독특한 개인 다큐멘터리. ‘금지된 것들’이라는 반복 언술이 묘한 분위기를 만들어내는 가운데, 카메라는 도시인들에게 허용되지 않는 금제의 표지와 기호들을 하나씩 비춘다. 출입금지, 보행금지, 접촉금지 등 붉은색으로 도색된 각종 금제의 지표들 사이로 푸른 창공을 나는 새가 이따금씩 고개를 내민다. 현실의 환영으로만 등장하는 개인의 욕망을 단순한 내레이션과 이미지의 병치만으로 효과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작품.
그리고, 나락 박성배 / 39분 / DV6mm컬러
풍작이지만, 들녘은 웃음을 잃은 지 오래다. 2004년 농산물 수입개방을 앞두고, 농촌의 풍경은 스산하기 그지없다. 탈곡기에선 쌀뿐만이 아니라 농민들의 푸념과 분노가 함께 쏟아진다. 늘어만가는 부채, 저가 매입만을 내세우는 정부. “우리, 아들 맨날 데모하러 다녀”라고 웃는 할머니의 웃음 뒤안에는 그래서, 서글픔이 묻어난다. 신문 사진기자 출신으로 지난해 인디포럼에 다큐멘터리 <망월동行 25-2>을 내놓았던 박성배 감독의 두 번째 작품.
친구 류미례 / 59분 / DV6mm컬러
<나는 행복하다>에 이어, 류미례 감독이 카메라로 대필한 장애인들의 두 번째 생활일기. 어느 날 혼자 버스를 탔다 행방불명되는 상훈, 기분이 나쁘면 자해를 밥먹듯하는 광수, 친구의 돈 5천원을 훔친 경수. 정신지체자들이 모인 이곳 재활센터는 이들의 연이은 ‘사건’들로 인해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다. “장애인은 별종이 아니라 이웃이고 친구라고 믿는” 감독의 따뜻하고 차분한 시선이 돋보인다. 이영진 anti@hani.co.kr▶ 인디포럼2002 5월18일부터 9일간 서울아트시네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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