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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회 <씨네21> 영화평론상 [2] - 변성찬 비평 <복수는 나의 것>
2002-05-17

과감한, 그러나 조급했던 `장르의 퓨전`

영화는 박찬욱표 ‘종합선물세트’이다. 이러저러한 장르적 요소들이 한데 어우러진 일종의 ‘초패러디’인 셈이다.

우선, 이 영화는 그 구성이 너무 치밀하고 완벽해서 오히려 모든 인과관계가 ‘우연성’으로 조작된 듯 보이는 일종의 ‘범죄스릴러’이고 잔혹한 ‘필름누아르’이다. 어떤 의미에서 이 이야기는 일련의 엽기적인 죽음들에 관한 극도로 축약된 ‘검찰보고서’이기도 하다. 잘 알다시피 수사보고서는 거꾸로 쓰여진다. 결과가 먼저 있고 원인이 뒤따른다. 먼저 처벌해야 할 ‘죄’가 있고, 나중에 그 행위의 그럴듯한 ‘동기’가 구성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불필요한 잉여가 전혀 없다. 이 영화는 마치 수사보고서처럼 군살 하나 없이 철저한 ‘인과율’로 꽉 짜여 있다. ‘결과’는 황당한데, 그러한 결과가 나올 수밖에 없는 ‘동기’는 지나칠 정도로 풍부하고 설득력 있게 주어져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류’가 그토록 황당할 정도로 잔인하게 ‘장기밀매 패밀리’를 처단하지 않을 수 없었던 이유를 영화는 풍부하게 제시한다. ‘류’에게 있어 누나는 단순한 ‘피붙이’가 아니었다. 그녀는 류 자신의 입과 귀이자, ‘여자’이기도 했다(누나의 몸을 씻겨주는 ‘류’의 근친상간적 시선). 게다가 그는 죽은 누이에게 생전에 누나가 필요로 했던 ‘건강한 신장’을 갖다주어야 할 산 자로서의 의무도 있다. 그의 ‘살인’은 단순한 ‘감정풀이’가 아니라 필요한 물건(신장)을 얻기 위해 불가피했던 정당한 행위이다. 그리고 죽은 누나에게 그 신장을 바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자신의 일부이기도 했던 누나 대신 그 신장을 ‘먹는 것’이다. 그것은 하나의 ‘제의’적 행위인 셈이다.

한편, 영화는 여러 측면에서 일종의 ‘블랙코미디’적 요소를 담고 있다.

첫째, ‘자본’에 대한, 또는 ‘자본’과 ‘공권력’의 결탁에 대한 맹랑한(한편으로 허망한) 풍자. ‘자본’에 대한 풍자는 동진에 대한 묘사 속에서 나타난다. 어차피 죽은 딸을 위해 초법적인 복수(그는 경찰에게, 그들을 찾으면 “죽여야죠!”라고 말한다)를 결심한 그가 하찮은 자장면 배달부를 자신의 범죄에 대한 ‘목격자’라는 이유만으로 죽인다. 그는 그만큼 ‘도덕적’ 분노가 고양되어 있는 순간에도 이후의 일을 미리 판단하고 대비할 만큼 자본가적 ‘현실성’을 잃지 않는다. 이러한 동진의 이중성은 마지막 부분, 그가 팽 기사 아들의 보호자임을 부정하는 대목에서 다시 한번 나타난다.

둘째, 이 영화는 ‘영화 만들기’에 대한 ‘자기 반영적’ 냉소 또는 유머를 담은 ‘블랙코미디’이기도 하다. 영화 속에서 감독은 관객을 정면으로 보며 반복적으로 말한다. “A가 아니라 B야, B!”/ “근데 너 확실히 B 맞아?” 이 질문은 결국 감독 자신에게로 향하고 있는 것이기도 할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요소는 의도적으로 옆이 터진 세트의 벽을 보여준다거나(그렇게 함으로써 감독은 영화에서 가장 희비극적인 상황을 카메라 한번의 이동으로 만들어낸다) 현실에서 모 아이스크림 광고의 모델인 아이(영화 속 아이스크림 가게 유리문에 붙은 광고에서 그 모습이 보인다)를 극중에서 첫 번째 유괴 대상으로 설정해 보여준다거나 하는 작은 ‘자기 반영적’ 유머를 배치해놓고 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영화는 일종의 인류학적 실험 보고서이기도 하다. 전작인 <공동경비구역 JSA>는 ‘체제(분단된 남북)와 개인’의 대립을 다루고 있었다. 그런데 이 영화에서 감독은 모든 수단을 써서 ‘체제’(공권력)를 이야기의 중심에서 배제시킨다. 겨우 딸 수술비 정도의 돈을 챙기고 엽기적인 연쇄 살인을 도와주거나 방임할 수 있는 ‘반장급’ 경찰은 현실적으로 있을 수 없다. 그러나 그런 허무맹랑하고 허약한 근거를 가지고 감독은 ‘체제’를 밀어내어 부차화시킨다. 그리고 남은 이야기의 뼈대는 원시부족에서나 있을 법한, ‘복수’에 관한 문화인류학적 실험 보고서와 같았다. 영화는 그것을 사실적(?)으로 기록하고 있는 다큐멘터리인 셈이다. 모든 법의 원형이라 할 수 있는, “눈에는 눈, 귀에는 귀”라는 원리가 어떻게 이루어지는가에 관한 실험보고서. “신장에는 신장, 익사에는 익사.” 류는 딸과 똑같은 장소에서 같은 방식으로 ‘익사’해야 했기에 발목이 잘리며, 동진 또한 류처럼 ‘말’을 잃은 채 최후를 맞는다.

이 모든 장르적 요소를 단 한편의 영화에 버무려놓은 감독의 솜씨는 대단하다. 그러나 영화의 이러한 성격은 그 특유의 빠른 문체- 이를테면 <…JSA>에서도 즐겨 사용했던, 특히 극적으로 중요한 순간에 나타나는 ‘조형 일치(graphic match) 몽타주’- 와 함께 관객으로 하여금 그 하나하나를 음미하고 즐길 여유를 주지 않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어쨌든 감독 박찬욱은 ‘주류 영화’를 ‘비껴가는’ 것이 아니라 ‘넘어서’보고자 하는 의욕과 능력을 갖춘 감독 중의 하나이며, 이 작품에서도 그 가능성을 여전히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이 ‘과잉’은 곧 ‘결핍’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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