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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미국 시상식 화제작] '프라미싱 영 우먼' 독성 주의, 대체 불가 복수극
김소미 2021-04-09

프라미싱 영 우먼 Promising Young Woman

사진제공 유니버설픽처스코리아

감독 에메랄드 페넬

출연 캐리 멀리건, 보 버넘, 앨리슨 브리, 레버른 콕스, 클랜시 브라운, 제니퍼 쿨리지

상영 플랫폼 극장 개봉

주요 수상·후보지명 기록

- 제93회 아카데미 시상식 작품상, 감독상(에메랄드 페넬), 여우주연상(캐리 멀리건), 각본상(에메랄드 페넬), 편집상(프레데릭 토라발) 후보

- 제26회 크리틱스 초이스 어워드 여우주연상(캐리 멀리건), 각본상(에메랄드 페넬) 수상

- 제33회 시카고비평가협회상 유망감독상(에메랄드 페넬) 수상

- 제46회 LA비평가협회상 여우주연상(캐리 멀리건), 각본상(에메랄드 페넬) 수상

2021년 오스카의 복병은 <프라미싱 영 우먼>이다. 배우 출신의 감독 에메랄드 페넬은 <노매드랜드>의 클로이 자오 감독과 함께 감독상 후보에 나란히 이름을 올렸다. 2인 이상의 여성감독이 감독상 후보에 오른 것은 93년의 긴 권위를 자랑하는 아카데미 시상식 역사상 최초이며, 페넬은 연출 데뷔작으로 단번에 걸출한 이력을 거머쥐었다. 에메랄드 페넬 감독과 배우 캐리 멀리건, 85년생 동갑내기 친구이자 ‘촉망받는 젊은 여성’들이 만든 <프라미싱 영 우먼>은 제목과 달리 사회의 기대를 철저히 배반하는 강간 복수극이다. 파괴와 분노의 파토스로 가득 찬, 미투 시대의 리벤지 무비를 소개한다.

“나 좋은 사람이야!” “헉, 너 사이코구나?!” 눈빛이 돌변한 여자를 보고 남자들은 즉시 뒷걸음질치며 이렇게 내뱉는다. 30살의 주인공 카산드라(캐리 멀리건)는 밤마다 클럽이나 술집에서 만취한 척 연기하는 여자다. 지금껏 그의 수첩에 꼼꼼히 기록된 바로는, 단 하루도 빠짐없이 늘 집까지 데려다주겠다며 접근하는 남자들이 나타난다. 그들은 자신의 집으로 여자를 데려간 다음 저항 능력이 없는 틈을 타 성폭행하는 수순을 매뉴얼처럼 지키는데, 그때마다 카산드라는 결정적인 순간에 몸을 일으켜 저승사자의 얼굴을 하고 묻는다.

“지금, 뭐하는 거야?” 불행 중 다행인지 <프라미싱 영 우먼>은 사이코패스 호러가 아니다. 카산드라의 시그니처 코멘트 직후 화면에 피가 튀지도 않고, 칼질을 마친 사이코가 남자들의 손가락을 하나씩 수집한다든가 하는 전개도 일어나지 않는다. 다만 영화는 이러한 상상이 그 남자들의 머릿속에 빠르게 자동재생되도록 그저 내버려둔다. 카산드라는 그렇게 언젠가 잠재적 성폭행 가해자가 될 수도 있었던 남자들이 전보다 조신한 삶을 살도록 혼자만의 조용한 리벤지 캠페인을 이어나간다.

그녀는 도대체 왜 불특정 다수의 남자들을 대상으로 뜻모를 복수에 열을 올리나. 복수를 위해서만 존재하는 축소되고 정체된 카산드라의 인격은 서사 내적으로는 죄의식의 발로다. 7년 전, 카산드라의 친구 니나는 대학 파티에서 술에 취해 정신을 잃은 사이 집단 성폭행을 당하고, 사회가 전도유망한 의대 남학생들을 벌주려 하지 않는 사이 스스로 목숨까지 내려놓게 된다. 복수심에 사로잡힌 여성의 가차 없는 자경단식 정의 구현이 온전히 새로운 장르는 아니다.

다만 <프라미싱 영 우먼>은 그 복수의 대상으로 방관자였던 주변 여성들까지 지목하고, 그들에게 기꺼이 불온한 트라우마를 선사한다는 점에서 매우 문제적인 몇몇 설정을 품고 있다. <프라미싱 영 우먼>이 남긴 질문들 앞에서 미국 평단은 “강간 복수극의 새로운 개정판”이라고 화답하거나 반대로 “초창기 미투 시대의 분노에 여전히 사로잡혀” 있다고 한계를 지적하기도 했다.

윤리의 영역에서는 다소 거친 마감새가 느껴지지만, 오프닝 시퀀스부터 <프라미싱 영 우먼>은 제 갈 길을 선명히 제시하고 있다. 신나는 팝 사운드와 진분홍색의 아날로그한 타이틀 크레딧이 떠오르고 그 주위로 하트 모양 이모티콘이 경쾌하게 퐁퐁 솟아오를 때, 관객은 <프라미싱 영 우먼>에 기꺼이 탑승할 것인지 하차할 것인지를 재빨리 결정해야 한다. 이어서 팔을 타고 피처럼 흐르는 도넛의 시럽을 아무렇게나 방치한 채 맨발로 거리를 걷던 주인공은, 영어덜트 소설에나 나올 법한 파스텔 톤 인테리어를 자랑하는 집에서 핑크색 샤워가운을 입고 나타난다.

사진제공 유니버설픽처스코리아

카산드라의 엄마는 서른살이 되도록 독립은커녕 멀쩡히 다니던 의대를 관두고 방황하는 딸에게 핑크색 캐리어를 선물함으로써 “이제 제발 내 집에서 꺼져줄래”라는 메시지를 간접적으로 전달하기도 한다. <프라미싱 영 우먼>의 표면에서 묘사되는 문화적 코드는 분명하다. 요컨대 카산드라는 <퀸카로 살아남는 법>(2004)에 등장하는 린제이 로한의 시대를 통과해온 미국 주류의 밀레니얼 여성이다. 예술은 저속하고 유치한 대중문화의 패러디를 포스트모더니즘의 반열에 올리지만, 사회는 만취한 여성을 결코 피해자로 인정하지 않는다. <프라미싱 영 우먼>은 바로 그 냉소와 절망의 땅 위에 서 있다.

흐름을 깨는 멜로드라마적 전개나 화려한 뮤직비디오적 몽타주를 삽입함으로써 초현실성을 견지하는 <프라미싱 영 우먼>의 벌레스크적 양식은 하모니 코린 감독의 문제작 <스프링 브레이커스>(2012)와도 일부 흡사하다. 오스카가 <프라미싱 영 우먼>의 편집에도 주목한 것을 수긍하게 되는 이유다. 영화는 팝 컬처가 안기는 저속한 카타르시스를 풍자하면서 그것이 어떻게 여성이 처한 폭력과 결탁하고 있는지 보다 선명한 메시지를 심는다.

예컨대 카산드라가 마지막 결정적 복수를 행하러 나서는 장면에서 느리고 서늘한 단조로 편곡된 브리트니 스피어스의 대표곡 <Toxic>이 흘러나온다. 어느 산중 저택을 향해 천천히 걸어가는 캐리 멀리건의 뒷모습에 기이한 기악곡처럼 변주된 <Toxic>이 삽입된 이 장면은 <싸이코>(앨프리드 히치콕)의 명장면을 유도한 뒤 2021년형의 반전까지 꾀한다. 유행이 지나간 포스터모더니즘 영화의 조류, 그 마지막 열차에 탑승한 에메랄드 페넬 감독은 ‘미투 시대’라는 거구의 손님을 태우고 있는 힘껏 질주하는 데 성공했다. 작품성과 상업성, 배우의 연기력과 논란까지 골고루 끌어안은 <프라미싱 영 우먼>은 동시대의 센세이셔널함을 넘어 강간 복수극의 한 정점으로 분명히 기억될 영화다.

에메랄드 페넬

사진제공 SHUTTERSTOC

에메랄드 페넬은 <킬링 이브> 시즌2의 각본가이자 프로듀서를 거쳐 <프라미싱 영 우먼>에서 또 한번 광기를 발산한다. <킬링 이브>의 빌라넬(조디 코머)과 <프라미싱 영 우먼>의 카산드라(캐리 멀리건)가 비슷한 혈통을 지닌 것처럼 보이는 데에는 조물주 에메랄드 페넬의 손길이 묻어 있다. 2006년에 배우로 데뷔한 페넬은 <앨버트 놉스> <안나 카레니나> <대니쉬 걸> 등의 시대극을 거치며 주로 고전적인 이미지로 자리 잡았다.

이후 페넬은 영국 드라마 <더 크라운> 시즌3, 4에서 해리 왕자의 첫사랑인 카밀라 파커 볼스를 연기하면서 배우로서 인지도를 높였다. 2017년에 피비 월러 브리지 주연의 단편영화를 만들면서 본격적으로 연출 작업에 시동을 걸었고, <프라미싱 영 우먼>은 미국과 영국, 그리고 전세계 곳곳에서 일어나는 만취한 여성을 대상으로 한 집단 성폭행 사건을 참조해 페넬이 직접 각본을 쓴 결과물이다. 페넬은 극중에서 ‘성행위를 막 끝낸 다음의 입술 느낌을 연출하는 법’을 알려주는 유튜버로 잠시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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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 유니버설픽처스코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