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반기 방영 예정인 JTBC 드라마 <설강화>의 초기 시놉시스가 돌면서 명문대 운동권 학생으로 알고 여대 기숙사에 숨겨준 남자가 실은 남파 간첩이었다는 설정이 과거 간첩으로 조작되어 고문당한 실제 피해자들과 민주화운동을 폄훼하고 왜곡한다는 우려가 불거졌다. 방송사가 논란을 부정하며 내놓은 입장문에는 “<설강화>는 80년대 군사정권을 배경으로 남북 대치 상황에서의 대선 정국을 풍자하는 블랙코미디”라는 구절이 있다. 어떤 드라마가 될지 아직 알 수 없지만, 저 무렵을 다룬 내가 아는 최고의 블랙코미디는 KBS 아카이브 프로젝트 <모던코리아>에 있다.
지난해 KBS1 공사창립기념일 특집이었던 ‘정성을 다하는 국민의 방송’편은 전두환이 방송계 인사들을 불러 운동권 학생들과 북한을 엮는 언질을 주면 냉큼 프로그램을 제작해 내보내던 방송이 누구에게 ‘정성을 다’했는지 밝히며 스스로 풍자의 도마에 오른다.
<모던코리아>는 내레이션 없이 쇼, 교양, 드라마, 뉴스 영상과 인터뷰를 조합하고 배치한다. 보는 사람에 따라 다른 해석을 끌어내기에 적절한 형식이고, 나는 정재은 감독이 맡은 ‘짐승’편에 가장 강렬하게 반응했다. 80년대 말, 인신매매 사건을 보도하는 앵커의 어깨걸이 영상에는 납치당하는 여성의 그래픽이 빠지지 않았는데, 이를 모아보니 재생산된 공포에 짓눌렸던 10대 시절이 떠올랐다. 겁에 질린 여성의 얼굴과 남성의 비릿한 웃음을 교차시키던 드라마들이 성폭력 피해 여성의 내면을 인생이 끝장났다는 식으로 극화하는 것에 학습되고 얽매였던 기억도 났다.
여기서 끝이라면 ‘그때 그 시절’에 머물렀겠지만, 여성이 피해자일 때는 외면하다 저항하면 가해자로 심판받던 사건들- 91년 김부남 사건, 92년 김보은 사건의 피해자와 연대자들이 성폭력특별법 제정에 중요한 역할을 했음을 짚어간다. 성폭력 피해 재연의 관음적 시선을 실재하는 피해자들과 그들이 얼마나 큰일을 했는지 증언하는 목소리로 깨부수는 경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