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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파이더맨>을 둘러싼 팬들의 논란
2002-05-16

문제는 거미줄이었다!

굳이 <아라크네포비아>라는 영화를 거론하지 않더라도, 거미는 인간에게 심리적으로 교묘한 불쾌감과 불안감을 주는 곤충임에 틀림없다. 길고 가느다란 다리로 천장 모서리를 슬슬 기어다니는 거미들을 보면, 질겁하지 않을 수 없다. 심지어 어느 정도 강심장이라고 자부하는 이들까지도 거미를 바퀴벌레보다도 더 처리하기 힘든 상대로 꼽을 정도니 말이다. 완벽한 악당이기에 처형의 정당성이 세워지는 바퀴벌레와는 달리, ‘인간에게 이로운 곤충’으로 알려진 거미의 경우 그 처리에 윤리적인 부담이 지워지기 때문이라나. 여하튼 그래서 거미는 될 수 있으면 마주치지 않고 싶어하고, 마주치면 죽이고 싶지 않아하며, 죽이고 나면 잠깐이나마 죄책감에 시달려야 하는 곤충쯤으로 사람들의 머릿속에 자리매김하고 있는 듯하다.

그런데 유일하게 거미가 친숙하게 느껴지는 경우가 있는데, 바로 만화 주인공 스파이더 맨을 접할 때다. 1962년 마블사의 <Amazing Fantasy>라는 만화잡지에 처음 얼굴을 드러낸 이후 수많은 만화와 애니메이션을 통해 영웅의 이미지로 재생산된 것이 그런 친숙함을 만들어낸 원인. 우리나라의 경우엔 마블사의 원작만화나 TV애니메이션을 접할 기회가 많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거미와 연결된 캐릭터의 독특함이 사람들의 뇌리에 강하게 박혀 있어 친숙함을 느끼게 한 경우라고 할 수 있다. 그렇게 전세계적으로 무려 40년간 사랑을 받아온 영웅 캐릭터이니만큼, 스파이더 맨이 두터운 팬층을 확보하고 있을 것이란 사실은 쉽게 예상할 수 있는 일. 이번에 개봉된 샘 레이미 감독의 영화 <스파이더 맨>은 바로 그런 팬들, 특히 골수팬들로 인해 여러모로 화제가 되었던 영화다. <스파이더 맨>의 영화화가 축복인 동시에 재앙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 골수팬들이 간접적으로 영화제작에 딴죽을 걸었기 때문이다.

이런 딴죽 걸기는 아예 영화가 제작되는 중간부터 여기저기에 터져나왔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바로 2000년 7월경부터 시작된 스파이더 맨의 거미줄 발사기에 대한 팬들의 논란이다. 영어로는 ‘Webshooter’라고 표현되는 거미줄 발사기를 둘러싼 논란은, 스파이더 맨이 건물 사이를 움직이거나 범인을 잡을 때 사용하는 거미줄이 어떤 원리로 발사되는 것인가에 대해 원작만화와 영화의 해석이 다른 데서 기인한 것이다. 원작만화에서는 과학에 천부적인 재능을 가진 주인공 피터가 거미줄을 발사할 수 있는 별도의 기계장치를 발명해내는 것으로 설정되어 있다. 문제는 제임스 카메론이 참여한 영화 <스파이더 맨>의 초기 시나리오에서부터 그런 기계장치의 개념이 사라졌다는 것. 그 대신 피터의 팔목에 구멍이 생기고 그곳에서 생체적으로 만들어진 거미줄이 발사된다는 설정이 시나리오에 도입되었다.

그렇게 이른바 ‘유기체적 거미줄 발사기’라는 설정이 영화에 도입되었다는 사실이 팬들에게 알려지자마자, 일부 골수팬들은 www.no-organic-webshooters.com이라는 아주 직설적인 도메인을 가진 안티 사이트를 만들었다. 그 사이트를 통해 표출된 팬들의 유기체적 거미줄 발사기에 대한 반대 입장은 매우 뚜렷했다. 우선 원작에 그려진 것처럼 거미에 물린 피터가 거미의 특성을 가지게 되는 것은 충분히 이해될 수 있지만, 그가 <플라이>의 주인공처럼 신체의 일부가 변하는 일종의 돌연변이로 그려지는 것은 옳지 못하다는 주장이다. 또한 초기 시나리오에 팔목에 구멍이 생긴 사실을 피터가 창피해하고 숨기려 하는 장면들을 넣음으로써, 변화된 자신의 모습을 자랑스럽게 받아들이는 원작의 캐릭터 설정을 훼손했다고 주장했다.

더욱이 팔목에 난 구멍에서 하얗고 끈적끈적한 액체가 방출된다는 설정은 성적인 코드로 읽힐 가능성이 많으며, 이를 강조하기 위해 초기 시나리오에 피터가 잠을 자다가 팔목의 구멍에서 액체를 흘리는 장면(몽정의 영어식 표현인 wet-dream을 빗대 web-dream 장면이라고 불렸다)이 삽입되었던 점은 불쾌해서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는 반응이었다. 한편 일부 팬들은 사람 몸 속에서 나오는 거미줄이 아주 먼 곳까지 정확하게 발사되고 엄청난 충격까지 견딜 수 있다는 설정 자체가 너무 비현실적인데다가, 몸 속에서 그렇게 많은 거미줄이 생성된다는 설정도 스파이더 맨 캐릭터의 사실성을 너무 떨어뜨린다는 주장을 펼치기도 했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충분히 이해될 수 있는 주장들이었던 것만은 사실.

그런데 이런 일부 골수팬들의 주장은 www.no-organic-webshooters.com에 모여든 많은 네티즌들을 골수팬들을 지지하는 이들과 그렇지 않은 이들로 나누어 논쟁을 일으켰다. 그 과정에서 샘 레이미가 감독으로 결정된 뒤, 거미줄 발사를 위한 기계장치를 사용할 것이라는 소식과 함께 그 소품 사진이 공개되는 일이 일어났다. 물론 며칠 지나지 않아 그 장치가 거미줄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몸 속에서 나온 거미줄을 정확히 조준하는 데만 쓰인다는 사실이 발혀져 게시판은 다시 한번 난장판이 되었다. 그런 논쟁들이 계속되는 동안, 한편에서는 샘 레이미를 비롯한 제작진들에게 유기체적 거미줄 발사기 개념을 이용하지 말라는 청원 운동이 일어나 약 수천명이 동의하는 일이 일어났고, 개봉이 가까워지자 샘 레이미가 ‘난 인터넷에 모인 마니아들의 요구를 들어줄 책임이 없다’고 공언하는 일까지 일어났다.

여하튼 그렇게 골수팬들의 시끌벅적한 논란이 있었기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개봉된 영화 속에서 거미줄 발사기는 자세히 다루어지 않고 살짝 지나갔고 영화는 역대 최고의 흥행기록을 갈아치우고 있는 중이다. 그러고보니 묘하게도 네티즌팬들의 청원운동이 일어났던 두 영화 <반지의 제왕>과 <스파이더 맨> 모두 대대적인 흥행을 기록했거나 할 예정이다. 네티즌들의 기대를 한몸에 받으면, 결국 흥행과도 직접적으로 연결된다는 뜻이 아닐까?사진설명

1. <스파이더 맨> 공식 홈페이지.

2. 영화의 소품으로 사용된 거미줄 발사장치.

3. <스파이더 맨>을 처음 선보였던 마블사의 1962년작 .

4. 스파이더 맨의 거미줄은 어떻게 만들어져야 하는가는 골수팬들 사이에서 큰 논란거리였다.

영화 <스파이더맨> 공식 홈페이지 http://spiderman.sonypictures.com/

<스파이더맨> 팬페이지 http://www.spiderfan.org/

<스파이더맨> 한글 공식 홈페이지 http://spiderman.co.kr/

영화 <스파이더맨>에 대한 반대 사이트 http://www.no-organic-webshooter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