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콕’ 생활이 길어지면서 더해가는 지루함과 운동 부족을 해결하고자 결단을 내렸다. 결정하는 과정은 쉽지 않았다. 거의 1년 가까운 오랜 고민을 하고도 조금은 충동적인 마음을 먹고서야 지를 수 있었다. 고민은 길었지만 배송은 빨랐고, 난생처음 구매해보는 게임기가 신기하기도 하고 떨리기도 해서 이렇게 저렇게 설정하는 것만으로도 하루가 훌쩍 지나갔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조금 바보 같지만 버튼을 누르고 나서 패드에 진동이 오는 것에 충격을 받았다! 화면도 너무 선명했다!!
게임기를 조작해서 게임을 시작하는 모든 순간들이 신기하고 놀라웠지만 그중에서도 인상 깊었던 것은 ‘사일런트 모드’의 존재였다. 이 게임 특성상 플레이 중 이동하려면 컨트롤러를 장착한 채로 계속 조깅을 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아래층에 소음이 발생할 수 있기에 조깅을 무려 스쿼트로 대체할 수 있는 기능이 있는 것이다. 게임의 난이도가 급격히 올라가는 부작용이 있기는 하지만 이 모드로 플레이한다면 조깅 동작을 할 때 신체가 바닥에 닿으면서 생기는 층간 소음은 급격히 줄어들게 된다.
거실에 매트를 깔거나 소음을 감소시키는 덧신을 신는 물리적인 방법과 아래위층의 이웃들과 긴밀히 소통하고 예의를 지키는 사교적인 방법을 넘어서 이제는 게임 자체의 모드 변경을 통해서 ‘이웃에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 생활할 수 있는 가능성이 생기다니, 참으로 놀랍다. 생각해보니 층간 소음이 없는 홈트레이닝 ‘슬로 버피 테스트’를 알게 되었을 때도 이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몇번 해보지는 않았지만.
게임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운동이라고 생각하고 열심히 하려고 난이도를 높여놓았더니 조금만 진행해도 땀이 쏟아지고 정신이 없을 정도였다. 어쩔 수 없이 ‘사일런트 모드’는 꺼놓고 몸을 사일런트하게 움직이려고 노력했다. 하루 30분 정도 하는 것도 가볍지 않을 정도의 강도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단조롭던 일상에 어느 정도 활력이 돌아온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코로나19가 아니었다면 아마 게임을 하기보다는 밖으로 나갔을 것이다. 마음이 갑갑하다면 자정 무렵 공원을 달리며 가로등 불빛 아래 음악을 듣고 있었을 것이다. 운동을 하고 싶다면 피트니스센터를 가거나 자전거를 탔을 것이다. 무엇인가 만들어야 하는데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는다면 옆 사람과 닿지 않게 전철 좌석에 조신하게 앉아 2호선을 타고 돌아다니거나 늦게까지 여는 패스트푸드점이나 카페의 구석 자리에서 허송세월을 했을 가능성이 높다. 어떤 책을 살지 고민하면서 서점을 빙글 빙글 몇 시간째 돌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은 코로나19로 외출을 삼가고 있는 터라 어디에도 몸과 마음을 붙일 곳이 없다. 심지어 날씨마저 너무 춥다. 좋으나 싫으나 집에서 모든 것을 해결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어쩔 수 없이 이웃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야 한다. 예전 같으면 그냥 지나갔을 수도 있는 소음들에도 더 민감해질 것이다. 사회적 거리두기를 통해서 코로나의 전파를 줄이고 서로를 위하려 하는 일인데도 외려 이웃에 방해가 되는 상황이라니 아이러니하다. 그래도 지금은 서로에게 걱정 끼치지 않기 위해서는 가능한 한 집에 머물러 있어야 한다. 그 속에서 어떻게 해서든 삶의 즐거움도 찾고 남에게 피해를 주지도 않으려 하니 왠지 게임 속 ‘사일런트 모드’에서 조깅 자세를 스쿼트로 대체했을 때 느꼈던 부담감이 다시금 떠오른다. ‘그래… 끝나고 나면 더 강해져 있을 거야….’
2021년에도 여전히 거리두기의 시대가 이어지고 있다. 2년차를 맞으면서는 마음가짐도 변하는 것을 느낀다. 지난 한해는 삶의 많은 부분이 잠식되어가는 것들을 눈 뜨고 지켜보아야만 했다. 또 한편으로는 위기감을 느끼고 조급한 마음으로 우왕좌왕한 일도 많았지만, 이제는 그조차도 일상이 되어버린 것 같다. 여러모로 팍팍한 와중에도 즐거움을 추구하고자 하는 노력이 없다면 오래 버티기 힘든 시기가 아닐까. 이웃에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 재미있고 즐거운 일들을 많이 벌이고 싶다. 이런 마음이 꿈같은 생각이 아니었으면 좋겠는데.
이웃에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
친구가 내게 말을 했죠
기분은 알겠지만 시끄럽다고
음악 좀 줄일 수 없냐고
네 그러면 차라리 나갈게요
그래 알고 있어 한심한 걸
걱정 끼치는 건 나도 참 싫어서
슬픈 노래 들으면서
혼자서 달리는 자정의 공원
그 여름날 밤 가로등 그 불빛아래
잊을 수도 없는 춤을 춰
귓가를 울리는 너의 목소리에
믿을 수도 없는 꿈을 꿔
이제는 늦은 밤 방 한구석에서
헤드폰을 쓰고 춤을 춰
귓가를 울리는 슬픈 음악 속에
난 울 수도 없는 춤을 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