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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울' 피트 닥터, 캠프 파워스 감독 - 재즈의 즉흥연주는 인생을 닮았다
송경원 2021-01-19

피트 닥터 감독.

익숙하지만 새롭게. 할리우드영화의 절대 명제를 디즈니·픽사만큼 충실하게 구현하는 곳도 드물다. “관객은 한번도 본 적 없는 새로운 걸 보고 싶어 하는 동시에 어느 정도 익숙하기도 해서 자신의 경험과 연결시켜 공감할 수 있는 무언가를 원하는 것 같다.” 피트 닥터의 답변에서 디즈니·픽사의 지치지 않는 상상력의 비결을 읽을 수 있다. <소울>의 원안과 각본, 감독을 맡은 피트 닥터, 공동연출로 참여한 캠프 파워스 감독에게 오직 애니메이션으로만 가능한 것, 창작의 영혼에 대해 물었다.

-<인사이드 아웃>의 속편은 아니지만 착상은 그 연장선에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인사이드 아웃>이 우리의 감정을 탐구했다면 <소울>은 성격이 어떻게 형성되는지를 상상한다.

피트 닥터 <인사이드 아웃>에서는 우리가 왜 감정을 가지고 있고 감정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 안을 들여다봤다. 반면 <소울>은 바깥을 바라본다. 세상에서 ‘나’라는 사람의 자리, 세상에 태어난 목적을 들여다보는 것이다. 굉장히 거대한 주제임이 틀림없고 이런 주제를 애니메이션으로 다룬다는 건 흥분되는 일이다.

-지금은 성인이 된, 피트 닥터 감독의 아들이 태어난 23년 전부터 아이디어가 시작됐다고 하던데.

피트 닥터 <소울>은 내게 개인적으로도 의미가 큰 영화다. 나는 8살 때부터 애니메이션에 매료되었고 애니메이션을 만들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라는 생각에 종종 사로잡혔다. 하지만 <인사이드 아웃> 작업을 끝내고 문득 이런 느낌을 받았다. 지금은 운 좋게도 이 분야에서 상상 이상으로 많은 성취를 이루었지만 내가 세상에 태어나 꼭 해야 하는 일이 더 있진 않을까. 지금 내가 하는 일에 큰 애정과 열정을 가지고 있지만 꿈을 좇는 것보다 인생에서 더 중요한 일을 잊고 사는 게 아닐까. <소울>은 이런 의문에 빠진 한 예술가에 대한 이야기다.

-그것이 완성된 애니메이션으로 나오기까지 프로세스 전반의 과정이 궁금하다. 애니메이션은 각본 수정이 쉽지 않을 텐데.

피트 닥터 픽사에서는 드로잉 형태의 글쓰기도 정말 많이 한다. 스토리 아티스트들이 대략적인 이미지를 수천장씩 그리고 거기에 임시 음악과 대사, 사운드 효과를 넣어 스토리 릴(초기 영상)을 편집한다. 이러한 초기 작업을 통해 어디를 고쳐야 할지, 완성된 영화의 대략적인 모습을 볼 수 있다. 초기 컨셉에서 출발해 이야기를 수없이 고쳐 썼다. 관객이 극장에서 보는 건 여러 시퀀스를 수십번 고쳐 쓴, 7~8번째 버전의 각본이다.

-제목인 <소울>은 여러 의미를 지닌다. 영혼을 직접 말하기도 하고, 재즈 음악에 담긴 정서이며, 아프리칸 아메리칸들의 정신을 담은 단어이기도 하다. 디즈니는 다른 문화권의 이야기를 소재로 삼을 때 디테일한 감성을 제대로 잡아내기 위해 해당 문화권의 스탭들을 참여시키는 것으로 알고 있다.

캠프 파워스 맞다. 이 영화에는 나 말고도 많은 흑인들이 참여했다. 총괄 프로듀서(키리 하트), 애니메이터들(프랭크 애브니, 몬태큐 루핀 등), 스토리 아티스트들(애프턴 코빈, 마이클 예이츠), 그리고 외부와 내부의 문화 자문 위원 등 일일이 열거하기 힘들 만큼 많은 분들이 있다. 그들의 영혼과 문화적 정서가 영화에 크고 작은 영향을 주었다고 생각한다. 정말 멋진 협업이었다.

캠프 파워스 감독.

-협업이라고 하니 공동감독을 맡은 피트 닥터와는 어떤 영향을 주고받았는지 궁금하다.

캠프 파워스 공동연출자들의 관계는 비행기 조종사와 부조종사의 관계와 비슷하다. 피트는 조종사이고 나는 부조종사였다. 작업과 관련된 중요한 미팅에 나도 전부 참석했고 피터 닥터, 마이크 존스(공동작가)가 함께 작업하지 않은 장면이 하나도 없었다.

피트 닥터 캠프 파워스는 여러 가지 영감을 주고 디테일을 채워주었다. 재즈는 미국 흑인 문화로서 세상에 커다란 기여를 했다. 그래서 조가 흑인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조를 흑인으로 설정하고 보니 그의 이야기를 정확하고 진정성 있게 들려주려면 도움이 필요했다. 감사하게도 많은 자문위원이 흑인 문화와 재즈, 재즈 뮤지션의 일생 등 여러 방면에서 도움을 주었다. 모두가 이 영화에 큰 영향을 끼쳤다.

-조의 직업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마일스 데이비스의 콘서트 영상을 보고 재즈 뮤지션으로 방향을 잡았다고 하던데.

피트 닥터 마일스 데이비스가 스토리의 일부분인 건 사실이다. 애니메이터는 내게 진정성과 고귀함을 느끼게도 하지만 관객에게 재미도 선사할 수 있는 그런 직업이다. 우리 작품의 주인공에게도 그런 직업을 선물하고 싶었고, 그게 바로 재즈 뮤지션이었다. 난 아마추어 뮤지션이자 팬으로서 예전부터 재즈 음악에 관심이 많았다. 어느 날 재즈 거장 허비 행콕이 투어 중에 전설적인 재즈 트럼펫 연주자 마일스 데이비스와 함께 공연했던 이야기를 들려주는 영상을 보게 됐다. 마일스 데이비스와의 합동 공연은 그투어를 통틀어 가장 중요한 무대였는데 그만 허비가 음을 틀린 거다. 너무 큰 실수라서 그는 콘서트를 통째로 망쳐버렸다고 생각했는데 마일스가 곧바로 이어 연주를 하더라는 거다. 허비가 틀린 부분을 틀린 것이 아니게 만들어주는 음을 연주했다고. 한마디로 마일스는 허비가 연주한 음이 맞는지 틀린지를 판단하지 않고 그냥 새롭게 일어난 일로 받아들인 후 재즈 뮤지션이 해야만 하는 일을 했던 것이다. 계획을 벗어났다고 버리는 게 아니라 주어진 것을 뭔가 값진 것으로 만드는 것. 정말 놀라운 이야기였다. 재즈는 우리가 이 영화에서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의 완벽한 은유였던 셈이다.

-뮤지션 존 바티스트와의 작업에 대해서도 궁금하다. 그의 연주를 손가락 하나 하나 정확히 묘사한 장면들도 있고, 황금기의 재즈 명곡들을 애니메이션으로 표현하는 방식들이 놀랍다.

캠프 파워스 우리는 재즈가 이 영화에서 다루는 중요한 주제에 대한 완벽한 비유라고 생각했다. “인생은 즉흥연주와 같다”고 하지 않나. 인생에서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고 우리가 통제할 수 없지만 눈앞에 닥친 일을 가치 있고 (가능하다면) 아름다운 것으로 바꾸는 것은 우리에게 달려 있다. 존 바티스트가 거기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영화에 나오는 연주곡을 존이 전부 편곡했는데, 뉴욕을 배경으로 하는 장면들에선 그가 각각의 장면을 위해 작곡한 재즈 사운드가 구석구석 다 들어간다. 주인공 조 가드너가 피아노를 연주하는 장면도 존을 모델로 한 거다. 존이 연주하는 모습을 카메라 여러 대로 찍었고 애니메이터들이 그 영상을 참고해서 조의 손가락을 표현했다.

-조와 물방울 모양의 영혼들, 제리와 테리 등 ‘태어나기 전 세상’의 디자인이 흥미롭다.

피트 닥터 ‘태어나기 전 세상’은 무해하고 편안하면서도 지구가 아니라는 느낌이 나길 바랐다. 전세계의 다양한 종교와 문화마다 영혼을 어떻게 묘사하는지 많은 연구를 했는데 대부분 “천상의”, “수증기 같은”, “비물리적인”같은 표현이 쓰이더라. 하지만 영혼들을 촬영하고 표정을 보려면 실체가 있어야 하기 때문에 기체를 모티브로 인간의 실루엣을 단순화시켰다. 얼굴은 보이되 머리카락이나 귀, 턱 등 꼭 필요하지 않은 부분들은 제외했다. 제리와 테리처럼 카운슬러 캐릭터는 “인간이 이해할 수 있도록 우주가 수준을 낮춘 것”이라는 컨셉에서 출발했다. 비주얼 또한 인간이나 영혼 캐릭터와는 구분되어야 했기에 어떤 형태든 될 수 있는 반짝거리는 선으로 표현해보았다. 피카소와 알렉산더 칼더의 와이어 조각뿐 아니라 스칸디나비아의 현대 조각 작품들을 많이 참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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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