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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놈들,서울가다
2001-03-23

유현목 감독의 <수학여행>

1969년,

감독 유현목

출연 구봉서, 문희

ebs 3월17일(토) 오전 11시50분

1960년대 후반은 유현목 감독에게 다작의 시기였다. 흔히 감독의 연출인생에서 ‘1기’로 분류되곤 하는 <오발탄>과 <잉여인간> 등 시대에

대한 절망을 담은 리얼리즘영화를 통과해, 장르물로의 전환을 모색하던 무렵이기도 했다. 1966년작 <특급 결혼작전>을 만든 감독은 “당시

난 비흥행감독이었다. 하지만 빠른 템포로 경박한 영화를 만들었더니 흥행이 잘 되었다. 이런 게 흥행가치구나 싶은 생각에 쓴웃음을 지었다”라고

말한 바 있다. 이후 유현목 감독은 서사극과 멜로드라마의 양식을 차용하면서 한편으로는 반공 이데올로기와 타협하는 모습을 보였다. 즉 <카인의

후예>와 <나도 인간이 되련다> 등으로 요약되는 1960년대 후반, 유현목 감독의 이른바 ‘반공영화’들이다. <수학여행>은 유현목 감독의

필모그래피에 예외적으로 속해 있는 코미디물이다. 코미디언으로 익히 알려진 구봉서 등의 스타가 출연하는 점도 흥미로운 작품이다.

선유도 초등학교에 부임한 젊은 교사는 수학여행을 계획한다. 부모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아이들을 서울로 데려가려는 것. 처음에 반기를 들던

부모들도 아이들 교육을 위해 수학여행이 필요한 것임을 깨닫게 된다. 서울에 도착한 선유도 아이들은 온갖 신기한 것을 접한다. 전깃불에서

자동차, 그리고 텔레비전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이 낯설기만 하다. 아이들은 창경원, 남산을 구경하는데 그 와중에 서울로 돈벌러온 가족을 만나

웃지 못할 해프닝을 벌이기도 한다. 모든 경험을 뒤로 한 채 교사와 아이들은 다시 섬으로 향한다. 올 때와는 다른 무엇인가가 그들 마음에

깊이 아로새겨진 채. 영화 <수학여행>에 대해 언급하기 전에 1960년대 당시 시대상황을 점검할 필요가 있다. 박정희 정권은 1967년에

2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실행했으며 서울이라는 대도시 중심의 국토개발을 서둘렀다. 영화평론가 유지나는 같은 해 개봉된 노부부의 여행담을

다룬 영화 <팔도강산>에 대해 “조국근대화와 산업화론에 대한 찬양을 담은 국책 홍보영화이자 국민영화로 성공했다”라고 썼다. <수학여행>

역시 영화의 계몽성이 강조되고 있으며 근대화에 대한 무한한 찬양을 담는다는 점에서 일맥상통하는 구석이 있다.

<수학여행>은 에피소드식 구성을 취한다. 교사를 중심으로, 서울을 방문하는 외딴 섬 학생의 작은 체험을 연대기순으로 기록하고 있다. 처음에

아이들은 “서울물은 싱겁다네, 미리 먹을 물이나 챙겨가야겠다”라며 초행길을 두려워하다가 막상 서울에 도착하자 여자가 서서 볼일 본다며 장발족을

비웃는다. 영화에선 전통과 문명의 대립이 전면에 부각되진 않는다. 선유도 아이들은 세탁기와 전화기, TV라는 근대화의 상징 앞에서 그저

감탄사만 연발할 따름이다. <오발탄>과 달리 영화 <수학여행>에서 서울은 열심히 일하고 공부하면 만사형통인 긍정적인 공간으로 탈바꿈한다.

그런데 부분적인 균열이 감지된다. 무지하고 촌티나는 한 섬마을 소녀는 신형 세탁기를 구경한 뒤 “이런 게 있으면 내가 앞으로 서울 와서

식모살이를 할 수 없겠구나”라며 한탄한다. 계몽영화의 외피를 두르면서 은근히 현실에 대해 비판적인 시선을 던지고, 또한 삶의 비애감을 섞어내는

것은 유현목 감독의 탁월한 능력이라고 표현할 수밖에 없다. 이것이 1960년대라는 ‘시대’에 잔뜩 옥죄어 있는 이 영화를 구원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 같다.

김의찬/ 영화평론가 nuage01@hite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