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2020년 연말에 작성했습니다. 원고의 ‘올해’는 2020년을 뜻합니다.-편집자)
2020년은 모두에게 힘든 해였다. 연말을 맞아 더 허무한 마음이 들기 전에 올 한해 있었던 일들을 떠올려보았다. 상반기에 예정되었던 공연과 스케줄은 모두 취소되었고, 하반기에는 전에 없던 정도로 일이 없었기에 크게 기대하지 않았다. 연말에는 거리두기 2.5단계 확대 실시로 준비했던 공연도 모두 취소되어 비대면 공연으로 전환한 참이었다. 연초부터 회사의 스탭들과도 아쉽게 작별해야 했던 시기가 있었고, 밴드 멤버 변동까지 있었으니 내외적으로 정신없는 일년이었다.
하지만 올해 했던 일들을 하나하나 정리해 보니 놀랍게도 생각보다 많은 일이 있었다. 물론 예년에 비하면 활동에 제약도 많았고 힘 빠지는 순간이 많았음에도 최선을 다해서 뭔가를 한 기록이 남아 있었다. 공연은 취소되었지만 준비했던 곡을 음원으로 발표했고, 방역 지침을 이행하다 보니 매출이 반 이하로 줄었지만 여름 공연을 진행할 수 있었다. 수입은 없고 제작비만 드는 활동이었지만 꾸준히 온라인 공연을 만들었다. 공연 횟수나 기획의 종류만 보았을 때는 오히려 최근의 몇년과 비교했을 때 더 많은 활동을 한 것 같은 기분까지 들었다.
물론 그런 기분이 든 것은 예년과는 다르게 한해 있었던 일들을 기록한 덕이다. 지난해까지는 잘 기록하고 발표하기보다는 속으로만 생각하는 편이었다. 흘러가는 것은 흘러가는 대로 그냥 두는 것이 좋지 않을까 생각했고, 굳이 말과 글로 덧대지 않으려고 했다. 그러지 않더라도 남는 것은 남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다. 이를테면 ‘하지 않았다면 좋을 말들’이 많으니 하지 않는 게 좋고, ‘잊어야 할 일은 잊어’야 한다는 입장이었던 셈이다. 잊고 싶지만 잘 잊히지 않는 잊어야 할 것들을 잊어버리겠다고 이야기하는 곡을 수년에 걸쳐 써왔다.
하지만 한편 생각해보면 애써 붙들지 않으면 남지 않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어제 무엇을 했고, 몇주 전과 몇달 전에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돌아보면 희미하게 느껴지는 경우가 많다. 예전에는 가사 작업을 할때도 메모하지 않을 때도 있었다. 굳이 애쓰지 않아도 기억나는 것이 의미 있는 거라 생각한 적도 있지만 지금은 매 순간 놓치고 있는 사소함들이 아쉽다. 그런 사소함조차 없었더라면 2020년은 나에게 더욱더 가혹한 시간이었을 것이다.
가을이 훌쩍 깊어진 후에야 곡을 쓰기 시작해서 연말에 발표한 《2020》은 이제까지 만들었던 어떤 노래보다도 빠르게 작업을 마무리한 노래다. 보통 주제나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그것을 명확한 말과 멜로디로 정리하는 데도 시간이 많이 걸리고, 다시 편곡의 아이디어나 앨범의 구성까지 생각하다보면 몇년씩 걸리는 일도 다분했다. 아쉽거나 모호한 것들이 정리될 때까지 하염없이 붙들고 있는 편이었는데, 그러다 보니 잊히거나 시기를 놓친 곡들도 꽤 된다. 중간에 잊히는 것은 별로 좋지 않은 노래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 적도 있지만 이제 와 생각하면 아쉬움이 크다.
노래를 만들고 부르는 일을 10여년간 해왔다. 시간이 지나면서는 더 잘하고 싶다는 마음과 더불어 이전보다 더 나은 것을 만들어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기에 노래를 만드는 일이 점점 더 어렵게 느껴졌다. 그뿐만 아니라 사운드나 편곡에 대한 고민까지 많이 하게 되면서 어려움은 더 커져갔다. 시간이 지나면서 노래를 발표하는 간격이 멀어졌다. 그에 비례해서 자신감도 줄어들고, 언제까지 음악을 할 수 있을까 생각하기도 했다. 2020년을 맞으며 쓴 메모를 찾아보니 ‘이제 다른 일을 알아보려고 한다’라고 쓰여 있었다, 세상에. 하지만 그러기에는 시간이 너무 부족했던 것 같다. 하루하루 닥친 일들을 해내고 책임져야 할 일들을 정리하다 보니 어느새 한해가 지나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미처 깨닫지는 못했지만 이미 ‘모든 것이 무너져내리고 있었던’ 것 같다. 그 사실을 인정하기 싫어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순간이 있었던 것 같다. 그때 나를 감당하게 했던 것은 ‘잘하는’ 것이 아니라 ‘해내는’ 것이 아니었을까. 자꾸만 아쉬움이 드는 작업들, 시행착오로 가득했던 기획을 생각하면 귀밑이 벌게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 때도 있었지만 끝나고 나서 보면 뿌듯하게 느낄 수도 있는 것 아닐까. 막상 코너에 몰리고 나서야 포기하지 않고 시간을 견뎌내는 것만으로도 의미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 같다. 그렇게 버텨내고 나면 희미했던 시간도 사라지지 않고 무엇인가가 되어 남을 것이다.
2020년은 쉽지 않았다. 많은 것들을 내려놓았다. 함께했던 사람들과도 아쉬운 작별을 하고, 늘 하던 일들도 달라졌다. 앞은 더 보이지 않는데 돌아갈 길도 딱히 보이진 않는다. 하지만 코로나19가 아니었다고 해도 이런 상황을 겪지 않았을 것 같지는 않다. 아주 거칠게 바라보면 그 온도와 속도가 달라진 것뿐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갑작스럽게 다가온 길고 매서운 한파 속에서 옷깃을 여미듯, 단단한 마음으로 다시 2021년을 걸어갈 때다.
2020
모든것이 무너지고 있었지
천천히 기울어가는 하루 또 일년
쏟아지는 햇살에 말라버린 풀처럼
더디 타버린 마음
우리 이제 그만 접을까
많이 버텼으니까
참다가 속마음을 들키고 무너지면
나 다시는 일어설 수 없을것 같아
포기해도 괜찮지 않을까
차라리 투정부리는게 나을지도 몰라
희미해져가는 날들을 붙잡는게 삶이라면
올해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