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이(황정순)는 둘째 딸 동희(김혜정)의 임종을 지킨다.
<육체의 고백> 제작 동성영화공사 / 감독 조긍하 / 상영시간 140분 / 제작연도 1964년1950년대 이후 한국영화를 대표하는 장르를 하나 꼽는다면 단연 멜로 드라마일 것이다. 사실 멜로드라마는 우리가 편하게 쓰는 말이긴 하지만 규정하기 까다로운 용어이기도 하다. 1970년대 초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서구 영화 학계의 논의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멜로드라마는 하나의 장르라기보다 최루물(weepies), 사극, 범죄 스릴러 등 다양한 하위 장르들과 결합한 혼성적인 영화 형식으로 파악할 수 있고, 가족 멜로드라마, 모성 멜로드라마처럼 특정한 하위 장르로 좁혀볼 수도 있다.
전후 한국영화의 비평 지면으로 한정해 얘기하자면 멜로드라마는 통속영화와 동의어인 동시에 대중영화의 품질을 파악하는 일정한 기준이었다고 할 수 있다. 과잉된 요소로 눈물을 강요하거나 개연성 없는 이야기로 만듦새가 엉성하다면 ‘신파조’ 멜로드라마라고 낮춰 불렀고, 서구영화의 것들을 지향하고 나름 성공했다면 ‘본격’ 멜로드라마로 부르기도 했다. 특히 후자는 1950년대 후반 유현목의 영화들이 대표적이다. 한편 ‘현대’멜로드라마라는 말이 많이 쓰였는데, 당시 멜로드라마 장르가 동시기 한국 사회라는 시공간을 배경으로 삼았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정리하면 전후 한국의 멜로드라마는 주어진 기술 기반에 비해 할리우드영화의 스타일과 분위기를 빠르게 습득해냈고, 다소 함량의 차이는 있었지만 한국 사회에 관한 진지한 문제의식을 담아냈다. 이는 물론 개인이 직면한 윤리의 문제, 그로 인한 비극적 상황과 직결되는 것이었다.
당대 한국 사회를 반영한 멜로드라마
이처럼 서구 태생의 멜로드라마가 한국영화의 장르 혹은 양식으로 토착화된 가장 결정적인 순간은 조긍하의 영화에서 만날 수 있다. 1919년 대구에서 태어난 조긍하는 다방면으로 예술적 재능을 발휘한 인물이다. 일본 도쿄 제국음악학교 성악과를 졸업하고 1940년과 1942년 각각 성악가와 피아니스트로 데뷔하기도 했다. 한국전쟁 이후 대구에서 사진관을 운영하던 그는, 일제 시기부터 대구를 기반으로 한 영화사의 작품에 출연하고 제작과 극장 사업에 관여하던 기획자 변종근과 영남영화사를 세운 후 <황진이>(1957)의 각본, 감독을 맡아 영화계에 데뷔한다.
여기서 두 가지 점을 주목할 수 있다. 먼저 그가 연출부 등의 도제 시스템을 거치지 않고 단번에 감독으로 데뷔한 점, 다음으로 한국전쟁 당시 극영화가 만들어지기도 했던 대구에 여전히 영화 제작의 불씨가 남아 있던 점이다. 이는 예술가 조긍하가 영화감독으로 데뷔할 수 있었던 배경으로 작용했다. 배우 도금봉의 데뷔작이기도 했던 <황진이>의 흥행 성공으로 그는 충무로 영화계에 진출하게 된다.
다작이 기본이었던 1960년대 주요 감독들에 비해 조긍하는 매년 1~3편 정도를 연출하는 과작 감독이었다(1973년 <광복 20년과 백범 김구>까지 모두 36편의 극영화를 연출했다). 아마도 그가 처음부터 충무로 출신이 아니었던 점이 이유였던 것으로 보이는데, 각본과 감독을 겸했던 그의 창작 기준 역시 중요한 원인이었을 것이다. 그는 <육체의 길>(1959), <육체의 고백>, <영원한 모정>(1968) 등에서 어머니, 아버지 등 부모 세대와 자식 세대간의 갈등과 애정을 묘사하는 데 특별한 재능을 보였다.
1959년과 1967년 두 차례 만들어진 <육체의 길>은 가족을 떠나 방랑하는 아버지로 김승호가 열연해 장대한 멜로드라마가 완성되었고, 어머니에서 딸로 이어지는 비극적인 운명을 그린 <육체의 고백>은 황정순과 김혜정의 인생 연기가 결합하며 한국 영화사의 모성 멜로드라마 걸작으로 등극하게 된다. 이처럼 조긍하의 필모그래피에서 가장 대중적인 사랑을 받았던 영화는 멜로드라마 장르였지만 그는 고전을 원작으로 한 영화, 근대사를 배경으로 한 시대극, 또 사극이나 전쟁영화 같은 장르에서 역시, 주어진 환경에서 인간들의 선택과 결과가 밀도 있게 그려지는 멜로 드라마적 서사를 구축하는 데 일가견이 있었다.
순수한 멜로드라마 장르이건 아니건 간에 한국 사회의 시대적 분위기를 묘사하는 것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이승만 정권 말기를 정면으로 다룬 <잘돼갑니다>(1968년 제작, 1989년 개봉)를 연출했다가 당국의 검열로 20년 이상 상영하지 못하는 비운을 겪기도 했다. 조긍하의 영화 세계는 다음의 세 가지 키워드로 요약할 수 있다. 바로 멜로드라마, 한국 사회의 시대상을 그리는 것 그리고 현실과 갈등하는 예술가들의 이야기이다. 그의 자녀들이 조동진, 조동익, 조동희인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어머니에서 딸로 이어지는 비극
부산의 부둣가에서 외국인 선원들이 접대부들과 만나는 장면으로 영화는 시작한다. 그들이 텍사스타운 거리로 들어서고, 클럽의 홀에서 어울려 춤추는 모습이 이어진다. 한 외국인 선원이 미스 프레지던트를 찾다 시비가 붙고 홀은 선원들의 싸움으로 난장판이 된다. 이때 2층에서 검은 드레스를 입고 다리를 절며 등장한 여성이 대통령 엄마라 불리는 분이(황정순)다. 양공주들의 대모인 그는 특유의 카리스마로 미군 헌병들이 오기도 전에 현장을 압도하고 상황을 정리한다.
영화 속 캐릭터부터 2층으로 설계된 양공주들의 공간까지 효율적으로 설명하는 매력적인 오프닝이 지나고, 방으로 올라온 대통령 엄마는 등록금을 보내달라는 둘째 딸 동희(김혜정)의 편지를 읽은 후 한 선원을 받는다. 다음날 아침이 밝고 클럽의 여성들이 아침 인사를 하러 대통령 엄마를 찾는다. 그는 양장점을 경영하는 것으로 잘못 알고 있는 세딸의 엄마일 뿐만 아니라 텍사스 거리 여성들을 돌보는 엄마이기도 하다. 딸 셋을 부호의 아들에게 시집보내는 것을 인생의 목표로 삼고 있는 그는 딸들을 대학까지 공부시키기 위해 시궁창 같은 현실을 버티는 중이다.
영화는 플래시백으로 세딸 성희(이경희), 동희, 양희(태현실)가 부산으로 갑자기 찾아오는 바람에 엄마가 양장점 주인 행세를 하는 에피소드를 보여주고 난 후, 세딸에 관해 각각 묘사하기 시작한다. 별명이 왈가닥인 동희는 학생운동을 하는 현규(방수일)와, 첫째 성희는 소설가 지망생이지만 트럭 운전을 하는 태호(김진규)와, 성악을 하는 셋째 양희는 피아노를 전공하는 상일(남석훈)과 사귀고 있다.
이후 영화는 양공주 대모인 엄마의 부산 이야기와 서울의 딸들을 묘사하는 것을 병행하는데 그중 둘째 동희에게 좀더 집중한다. 사실 동희의 에피소드들이 펼쳐질 때 보이는 의아한 표현들은 엄마의 길을 따르는 그녀의 비극을 예비하는 것처럼 보인다. 특히 현규를 찾아 운동장을 지나가던 동희가 재벌가 아들 만규(이상사)의 실수로 다리에 공을 맞는 장면이 그렇다. 그녀는 다리를절룩거리며 돌아다니는데, 이를 본 동생 양희가 왜 다쳤냐고 묻자 “어떤 미친 남학생이 날 걷어찼어”라고 말한다. 이후 동희는 현규와 멀어지고 엄마의 바람대로 재벌가 아들 만규와 사귀지만 그의 노리개가 되었을 뿐이다.
만규에게 약혼녀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충격을 받은 동희가 바이크를 타고 엄마가 있는 부산으로 가는 장면부터 영화의 분위기는 급변한다. 홀로 바닷가에 있던 동희는 깡패에게 강간을 당하고, 엄마는 밀수와 불법 달러 소지 등의 죄과로 감옥에 간다. 그사이 동희는 그녀가 있던 세계로 돌아가지 못하고 바를 전전하다 결국 엄마가 있던 텍사스타운까지 흘러든다. 2년6개월 만에 클럽 블루엔젤로 돌아온 엄마는 동희가 건너 바에서 일하고 있다는 얘기를 듣고 메기(남미리)를 시켜 그녀를 데려온다. 동희는 1층 홀에서, 얼굴을 감춘 엄마는 2층 계단 위에서 대화를 나누는 비극적이지만 아름다운 이 장면은, 한국 영화사를 대표하는 멜로드라마적 순간으로 기록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