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잿빛으로 물든 세계
김철용 프로듀서에 따르면 “일본은 잿빛의 어두운 느낌, 타이는 덥고 쨍하게, 그리고 한국은 누아르영화처럼 차갑고 무거운 정서를 살리고자 했다”. 인남(황정민)이 처음 등장해 살인 청부를 완료하는 장소는 2층 구조의 일본 고택이다. “마당이 있는 2층 구조에 다다미방, 그리고 긴 복도가 필수였다. 국내에서 적산가옥(일제강점기에 지어져 해방 후 남겨진 일본 주택.-편집자)을 찾아보기도 했는데, 딱 조건에 맞는 집이 없었다. 도쿄에서 멀지 않은 세타가야구 기타자와에 있는 한 건물을 섭외했다. 촬영을 앞두고 태풍이 불어와 건물이 망가지면 어떡하나 걱정도 했지만 다행히 무사히 촬영을 마칠 수 있었다.”
한국, 운명처럼 낚아챈 매직 아워
짧지만 강렬하다. 한국에서의 촬영은 분량상으로는 경유지에 불과하지만 정서적으로는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인남의 상태를 드러내는 핵심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인천 부둣가에 자리한 횟집 뒤로 펼쳐지는 해질 무렵 매직 아워는 자연 그대로의 색감을 선호하는 홍경표 촬영감독의 장기가 고스란히 드러난 장면이다. 노력한 만큼 행운이 따랐던 현장이라는 게 김철용 프로듀서의 설명이다. “인천의 북성포구 일대에서 찍었는데 낡고 허름한 공간의 정서를 잘 살릴 수 있는 곳이었다. 그런데 그곳이 올해 철거 예정이라는 걸 나중에 들었다.” 리얼리티가 살아 있는 공간과 색감은 그렇게 운명처럼 찾아왔다.
타이, 피할 수 없는 태양의 열기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는 일본에서 7회, 한국에서 10회, 타이에서 54회 등 총 71회차에 걸쳐 촬영했다. 세트에서 촬영된 11회차의 액션 총격 신을 제외한 대부분은 현지 로케이션 촬영으로 완성되었다.
타이 방콕에서 전체 로케이션의 80%가량이 진행된 만큼 이곳에 무게가 실릴 수밖에 없다. 타이 로케이션의 핵심은 햇볕, 그러니까 광량이다. 타이에서 찍은 모든 숏에서는 빛이 들어올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다. 심지어 레이(이정재)가 살육을 벌이는 방콕의 차고 장면에서조차 그림자 사이사이 빛이 부챗살처럼 들어온다.
김철용 프로듀서는 “무덥고 쨍한, 어딜 가나 햇볕이 따라다니는 상황을 컨셉으로, 관광지답게 부산하고 어수선한 느낌을 함께 살리는 게 중요했다”고 밝혔다. 인남이 딸을 처음 발견하는 공장 건물부터 카 체이싱과 총격전이 벌어지는 시가지까지 상당 부분의 촬영이 한 마을에서 이뤄졌다. “방콕 시내에서 1시간 정도 떨어진 외곽 마을인데 한때는 성업했지만 지금은 주민들이 20% 정도 남은 곳이다. 실제 공간을 최대한 살리되 피치 못한 경우에만 세트를 활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