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화 <완벽한 타인>의 베트남판 영화 <블러디 문 페스트>가 역대 베트남 자국영화 흥행 4위에 올랐다. 지난 10월 23일 베트남에서 개봉해 6주 만에 약 730만달러를 벌어들인 이 작품은 <완벽한 타인>과 마찬가지로 이탈리아영화 <퍼펙트 스트레인저>를 베트남 현지화해 제작된 영화다.
그런데 <블러디 문 페스트>의 제작자가 한국인이라는 점이 흥미롭다. CJ ENM베트남의 영화제작팀장으로 베트남판 <수상한 그녀>인 <내가 니 할매다>, 베트남판 <써니>인 <고고 시스터즈> 등 여러 한국 영화를 베트남에서 리메이크해 흥행에 성공했던 최윤호 대표가 그다. <블러디 문 페스트>(제작 안떼우스튜디오, 공동제작 싸이더스·필름몬스터, 감독 응우옌 꽝 중)는 최윤호 대표가 <내가 니 할매다>를 연출했던 판 자 낫 린 감독과 함께 차린 제작사 안떼우스튜디오의 창립작이기도 하다. 최윤호 대표가 안정적인 대기업 생활을 그만두고 베트남으로 건너가 베트남 영화인들과 함께 베트남영화를 제작하게 된 사연은 무엇일까.
-12월 2일 현재까지 얼마나 많은 관객을 동원했나.
=총매출액이 약 730만달러로, 234만여명을 동원했다. 개봉 6주 만에 역대 베트남영화흥행 4위에 올랐다. 이 추세대로라면 역대 3위도 가능할 것 같다.
-많은 베트남 관객이 이 영화를 즐겨본 이유가 무엇인가.
=몇 가지 이유가 있는데, 코로나19가 장기화되면서 극장 매출이 지난해 대비 40%가 줄었다. 극장에서 볼만한 영화가 없는 상황에서 인기 배우들이 대거 출연한 영화가 개봉하니 관객이 기다렸다는 듯이 극장을 찾았다. 연기 잘하는 배우들이 베트남 사람들이 공감할 만한 유머를 구사하면서 리메이크가 현지화하는 데 성공한 것도 흥행 비결 중 하나다.
-원작인 이탈리아영화 <퍼펙트 스트레인저>의 어떤 점을 보고 리메이크해야겠다고 판단했나.
=베트남은 모바일 사용량이 전세계 상위 5위 안에 들 만큼 모바일 문화가 자리 잡은 국가다. 등장인물들이 자신의 휴대폰에서 주고받은 통화와 문자를 다른 사람과 공유한다는 원작의 소재가 베트남과 잘 맞을 것 같았다. 영화에도 등장하지만 다른 여성과 주고받은 문자를 여자 친구한테 걸려 싸운 사람들이 실제로 많고. 파트너인 판 자 낫 린 감독이 <완벽한 타인>을 보고 베트남 배우들로 가상 캐스팅을 하며 함께 제작하자고 제안했다.
-베트남 문화에 맞게 각색하는 과정에서 가장 고민한 것은 무엇인가.
=디테일. 그동안 한국영화를 리메이크한 베트남영화가 많았지만 흥행에 성공한 영화는 많지 않다. 베트남판 <수상한 그녀>인 <내가 니 할매다>나 베트남판 <써니>인 <고고 시스터즈>가 그렇듯이 리메이크는 이야기의 큰 틀이나 설정을 그대로 가져가되 대사나 유머 코드 등 디테일을 현지 문화에 맞게 바꾸는 게 중요하다. 푸드 스타일리스트를 따로 고용해 등장인물들이 먹는 음식을 실제 베트남 중산층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요리로 세팅하고, 대사 하나하나도 베트남 사람들의 피부에 와닿게 하기 위해 베트남식 유머를 살려 반영했다.
-큰 사건 없이 등장인물들이 대화를 통해 서사를 이끌어가는 이야기인 만큼 연기력을 갖춘 배우들을 캐스팅하는 게 관건인데.
=판 자 낫 린 감독이 각 캐릭터에 맞는 배우들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완벽한 타인>에서 유해진 캐릭터에 해당되는 빈 역은 베트남영화 역대 흥행작 10편 중 절반을 차지할 만큼 베트남 국민들이 신뢰하는 배우 타이화가 맡았다. 염정아 캐릭터의 뀐 역은 배우 투짱이 맡아 연기했는데 그녀는 베트남에서 유명한 코미디 배우다. 이서진과 송하윤 캐릭터에 해당하는 린과 캐시 역은 차세대 스타 끼우민뚜언과 젊은 스타 배우인 케이티 응웬이 각각 연기했다. 스타 감독이기도 한 배우 득틴이 윤경호 캐릭터의 만 역을 맡았다. 모델 출신 배우인 흐어비반과 무용가 출신인 홍안이 조진웅과 김지수 캐릭터에 해당되는 꽝과 응웻안 역을 각각 연기했다. 응우옌 꽝 중 감독이 시나리오작가, 배우들과 함께 리조트에서 일주일간 리허설하면서 촬영을 준비했고, 작가가 배우들과 끊임없이 대화를 주고 받으며 디테일을 쌓았다.
-촬영은 얼마나 했나.
=2주간 했다. 영화의 주요 공간인 아파트 세트를 직접 지어서 찍었다. 이야기의 대부분이 이곳에서 이루어진다. 카메라 동선을 고려해 내린 판단이다. 오픈 세트를 선호하는 베트남 영화산업에서 보기 드문 세트다.
-CJ ENM을 나와 베트남에서 독립해야겠다고 생각한 이유는 무엇인가.
=CJ ENM 베트남 영화제작팀장으로 일한 뒤 한국으로 발령받아 서울로 돌아왔더니 마흔이 넘었더라. 베트남에서 제작 일을 했던 까닭에 다른 경력을 시작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이런저런 고민을 하다가 지금의 파트너인 판 자 낫 린 감독이 제작자 마인드를 갖추고 있고, 좋은 아이템도 가지고 있어 함께하기로 했다. CJ 시절 <내가 니 할매다>를 함께 만들면서 서로 잘 알고, 동갑이라 금방 친해지기도 했고, 선호하는 시나리오를 보면 취향도 비슷한 데가 있다. 앞으로 이곳에서 그와 함께 베트남의 젊은 재능을 발굴해 새로운 시도를 많이 하고 싶다. 이곳에도 젊은 영화인들이 모이는 커뮤니티가 있는데 우리가 직접 그들을 교육하고, 한국과 베트남간의 교류도 주도할 계획이다.
-CJ라는 큰 우산 안에 있다가 독립하니 어떤가.
=CJ는 인프라를 갖춘 회사라 결정도 빠르고, 역할 구분도 철저한 반면에 우리는 작은 회사다보니 계약서를 포함해 작은 것 하나도 직접 챙기며 둘이서 발로 뛰어다니고 있다. 제작자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이다.
-코로나19가 장기화되고 있는데 베트남 극장가 상황은 어떤가.
=다른 국가에 비하면 확진자 수가 많지 않다. 그럼에도 할리우드영화가 개봉을 연기했고, 한동안 볼만한 영화들이 개봉하지 않았다. 지난 3월 한국영화 <해운대>가 재상영해 꽤 많은 관객을 불러모았다. 우리도 지난 8월 개봉을 준비했다가 내년으로 미룰까 했는데 극장이 지금 개봉하면 흥행할 수 있을 거라고 설득했고, 비수기인데도 10월에 개봉해 많은 관객을 불러모으고 있다.
-최근 베트남영화의 기획 트렌드는 어떻게 바뀌고 있나.
=코미디가 대세였던 과거와 달리 최근에는 다양한 장르를 시도하는 분위기다. 코미디가 섞인 하이브리드 장르뿐만 아니라 액션영화도 많이 제작되는 분위기다. 우리 회사도 다음 영화로 액션영화를 준비중이다. 슈퍼히어로물을 기획하는 회사도 있다. 다만 스릴러와 호러는 검열 때문에 시도하기가 쉽지 않다. 그럼에도 과거에 비해 새로운 시도를 하려는 움직임이 많다.
-언제까지 베트남에 있을 건가.
=아직 모르겠다. 코로나19가 종식되면 한국과 베트남을 오가며 재미있는 시도를 많이 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