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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듀케이션' 김덕중 감독 - 혼자만의 방에 갇힌 사람들에게
남선우 사진 오계옥 2020-11-26

한 방울만 더하면 넘칠 것 같은 잔에 떨어진 한 방울. 장애인 활동 지원인과 장애인 보호자로 매칭된 성희(문혜인)와 현목(김준형)은 첫 만남에서부터 그 한 줄기 액체를 온몸으로 맞는다. 각자의 물살을 가르기에도 버거운 삶을 살아온 두 사람은 낯선, 그러나 필요해져버린 타인에게로 삐죽이며 달려나가는 억센 마음을 정돈하지 못한다.

서로의 존재를 살피고 견디는 이들에게 찾아든 파문(波紋)과 범람을 응시하는 김덕중 감독의 첫 장편영화인 <에듀케이션>은 제24회 부산국제영화제 뉴커런츠 부문에 초청되어 배우 문혜인과 김준형에게 올해의 배우상을 안기며 근래 가장 주목할 만한 데뷔작으로 손꼽혀왔다. “사건도 없이 무언가 벌어지고 있다는 미스터리한 매혹을 느끼게 해줄” (정한석 부산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 작품이라는, 영화를 향한 애정 어린 찬사를 받아든 김덕중 감독은 이제 관객의 ‘수강후기’를 기다리고 있다.

-영화의 제목은 처음부터 정해져 있었나.

=기획 단계에서 성희를 중심에 둘지 현목을 중심에 둘지 고민했었고, 잠시 현목에 더 집중한 시기가 있었다. 그때 임시로 <대답>이라는 제목을 짓고, 촬영 때까지 가져갔다. 편집을 끝내고 비로소 <에듀케이션>이라는 제목을 붙였는데, 결말에서 그려진 ‘비틀린 가르침’을 뜻하게 하고 싶었다. 영어를 남용하다보면 가벼워 보이기도, 우스워 보이기도 하지 않나. 제목이 올곧게 받아들여지기보다 약간은 비틀린 느낌을 내포하길 바랐다.

-20대 후반에 했던 장애인 활동 지원 아르바이트 경험에서 출발한 영화라고 들었다.

=학교에서 처음엔 보다 극적인 아이템을 선보였지만 친구들과 선생님 모두 “이건 아니”라며, “경험으로부터 이야기를 끌어올려보라”고 조언했다. 덕분에 내가 실제로 해온 고민을 돌이켜봤다. 노들야학에서 인터넷 언론 일을 했던 것과 활동 지원 아르바이트를 했던 게 기억나더라. 특히 활동 지원을 했을 때 이용자와 활동 보조간의 관계에 있어서 고민이 많았다. 감정노동으로 소모되는 것 같다고 느끼기도 했지만, 인간적인 유대를 마냥 무시할 수도 없었다. 그 경계에 대한 물음을 던지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작업을 시작했다.

-현목의 엄마(송영숙)는 활동을 거의 못하지만 성희가 교육 보조를 하는 은진(신선해)은 활동적이고 유쾌하다. 장애인의 모습을 하나로 보여주지 않기 위해 신경 쓴 것이 느껴졌다.

=현목의 엄마는 묘사에 있어서 아쉬움이 있었다. 그로 하여금 장애인 캐릭터의 대표성을 띠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 대표성을 흐트러뜨리기 위해 노들야학을 영화에 담았고, 이 공간이 성희에게 조금이나마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다른 영화의 문제점을 답습하고 싶지 않았다.

-한편 성희와 현목은 위악적으로 보일 만큼 이기적인 면면을 보인다. 폐허와 같은 공간에서 공무원 시험으로 연결되는 이들은 청년 세대의 그늘진 한구석을 극화한 인물들로도 느껴졌다. 두 인물은 어떻게 구체화됐나.

=두 사람이 처한 상황 때문에 못나 보일 수는 있겠지만 미움받지 않기를 바랐다. 그리고 이들의 권력관계가 한쪽으로 치우치면 안된다고 생각했다. 현목이 남성성이 강조되지 않은 미성년이어야 성희가 그와 한 공간에서 시간을 보낼 수 있다고 봤다. 성인과 미성년, 고용주와 고용자, 남성과 여성, 어떤 축으로 보느냐에 따라 인물간의 균형이 달라지게 했다.

-성희와 현목은 감정을 드러내는 말을 하지 않는다. 영화에는 음악도 나오지 않는다. 두드러진 표현 없이 극을 이끌어가는 것에 대한 불안은 없었나.

=자신 있었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웃음) 결말은 미리 정해뒀는데, 거기까지 관객이 따라갈 수 있게 하는 포인트가 부족하다는 걱정이 있었다. 직접적인 대사나 표현을 넣어보기도 했지만 영화의 흐름과 다른 결이 생겨버리더라. 일부러 상황을 만들 수는 없구나 싶어서 대사를 얼버무리거나 제스처를 살리는 식으로 인물이 느끼는 불편함을 강조하는 데 집중했다.

-소리보단 빛으로 정중동(靜中動)을 포착한 것 같다. 어머니가 거실에서 햇빛을 받게 두라는 현목의 지침부터 안방 스위치를 깜박이는 성희의 행동까지 말이다. 인물들이 어둑한 집에서 나와 푸른 공원에서 피크닉을 할 때 관계가 다른 지평으로 나아가기도 한다.

=실은 더한 설정도 있었다. 거실을 포함해 방마다 밝기를 다르게 한다든지. (웃음) 현목의 엄마가 빛에 반응해 눈을 뜨는 신이나 성희가 집에 들어올 때마다 창문을 여는 신도 있었지만 애매하다고 느껴서 들어냈다. 빛의 변화가 특정한 무드를 전달할 수 있을 정도로만 편집했다.

-그렇다면 처음부터 정해둔 결말로 뭘 말하고 싶었나.

=자신과 맞지 않는 사람과의 관계는 단절해버리는, 요즘 말로 ‘손절’해버리는 것이 일종의 지혜처럼 받아들여지고 있다. 나도 내향적인 성격이라 나와 맞지 않는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한다. 그럼에도 다양한 군상이 모인 이 사회에서, 혼자만의 방에 갇힌 채 상황에 따라 자아를 끊어내는 것이 정말 괜찮을까 하는 의문이 있었다. 영화 속 성희와 현목 또한 현실에서 만날 필요도, 만나서 깊은 관계를 쌓을 수도 없는 사람들이다. 각자 살기 바쁘니까. 그렇다면 각자의 위치에서 마이너리티인 두 사람을 만나게 했을 때 이들의 삶이 뒤엉키게 하고 싶었다. 더 나은 미래를 장담할 수 없더라도 도망치지 않고 마찰해야 한다는 걸, 위험을 감수하고 무언가를 더 해야만 한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물론 마지막에 성희가 현목에게 한 행동이 윤리적으로 최선이라고 보지는 않는다. 그러나 성희에게는 그 결정을 내린 타당한 이유가 있다. 성희의 내적 변화를 보여주기 위해 필요한 결말이었다.

-영상 취재와 연극 기획을 하다가 단국대학교 영화콘텐츠전문대학원에 진학해 영화를 만들기 시작했다. 왜 영화감독이 되고 싶었나.

=어떠한 작품을 보고 감독이 되기로 결심했다기보다 콘텐츠 제작 자체에 관심이 많았다. 콘텐츠를 통해 사람들과 이야기 나누는 일 자체에 흥미가 있었는데, 내게 영상이 잘 맞았던 것 같다. 감독이 되고 싶다는 생각은 학부 때부터 했지만 방법을 몰라서 노들야학의 언론사에서 영상 취재도 하고, 연극쪽에도 있어보고, 우즈베키스탄에서 봉사도 했다. 그제야 영화를 만드는 방법에 대해 주워들은 게 좀 생겼다. (웃음) 한국에 돌아와서 한국독립영화협회나 미디액트 같은 곳에서 수업도 듣고, 단국대에 가게 됐다.

-어떤 영화를 좋아하는지 궁금하다.

=학창 시절에 좋아했던 영화로 <빌리 엘리어트>를 꼽아왔다. 빌리가 발이 부서질 정도로 춤을 추는 모습, 그 자기 학대에 가까운 열정이 감동적이라기보다 서늘했다. ‘저러다 다칠 것 같은데’라고 생각하며 봤다. (웃음) 근래는 좀더 감독의 특색이 부각되는 영화에 관심이 간다. 요르고스 란티모스의 <더 랍스터>를 보면서 많이 놀랐다. 말도 안되는 내용처럼 보이는데 어떻게 이런 감정적 여운을 남길 수 있을까 신기했던 영화다.

-앞으로 어떤 영화를 만들고 싶나.

=<에듀케이션>이 내 몸에 딱 맞는 영화라고 말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이 작품 이후에도 여러 시나리오를 써봤는데, 작품마다 다른 결의 이야기를 쓰게 되더라. ‘내가 이런 이야기에 더 관심이 있는 건가’ 반문하며 스스로 돌아보고 있는데, 내보일 수 있을 만한 나만의 스타일을 찾아가는 중인 것 같다. 기회가 닿는다면 상업영화의 틀 안에서 내 특성을 반영한 영화도 만들어보고 싶고, 독립영화로 자유로운 작업도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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