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술이 바짝 마른 산모가 오래 참아온 아이스아메리카노(이하 ‘아아’) 한잔을 주문한 참이다. 배가 눈에 띄는 임신부 때는 그가 뭘 먹고 마시는지 참견하는 사람 천지라 카페에서 디카페인 커피 반샷으로 달라 속삭여도 어디선가 나타난 귀 밝은 자가 엽산이 풍부한 키위 주스를 마시라고 훈수를 두었다. 출산 후엔 찬 것 마시면 이가 빠진다고 ‘아아’를 압수당한 산모는 결국 미역국을 들이켰다.
회사에선 42살 최연소 상무 자리에 오르고, 산후조리원에선 최고령 산모가 된 오현진(엄지원)은 내 또래 여성이다. 아이가 없는 나는 선의를 앞세운 타인의 오지랖에 같이 진저리치는 정도의 공감뿐이겠지만, 출산하다 만난 저승사자를 강물에 메다 꽂고 사후세계에서 산후세계로 진입한 현진을 따라 tvN 드라마 <산후조리원>을 들여다봤다.
“젖을 위해 먹고 젖을 위해 운동하고 젖을 위해 마시고 젖을 공부하고 젖을 마사지하는 참으로 젖과 같은 천국.” 현진은 ‘세레니티 산후조리원’ 일정을 따라가다 코피까지 흘린다. 평생 인연으로 이어진다는 조리원 동기들 사이에서 나이 많은 초산에 젖의 양이 적고, 육아 정보가 없는 워킹맘 현진은 영화 <설국열차>마냥 ‘꼬리칸 엄마’로 분류된다. 여태 드라마의 배경으로 쓰인 적이 없는 조리원을 주목하고 출산을 겪은 여성들끼리 아이를 위해 얼마나 희생했는가로 계급을 나누는 것을 보여줬으니, 이후 어설프게 갈등을 가져다 쓰는 유사 드라마가 나오겠다 싶지만, 그건 그때 일이고. <산후조리원>은 출산에 따르는 명백한 희생과 희생의 당사자들끼리 서로 옥죄는 모성의 규범, 점점 높아지는 좋은 엄마의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죄책감이 다시 희생하는 모성을 드높이는 구조를 그들 안에서 풀어나간다. 행복해야 정상이라는데 그렇지 않은 엄마라 불안하다고 말을 트면, 나도 그렇다고 또 다른 목소리가 보태진다. 조리원 동기들이 모여 서로 불행하다고 말하며 마음 놓고 웃음을 터뜨리지만, 밖에서 짐작하는 만큼 불행하지 않다고 질 낮은 호기심에 손가락을 세워 욕을 날린다.
VIEWPOINT
엄지원과 박하선
세상에서 가장 말도 안되는 상황, 이를테면 산모입원실에 펼쳐진 삼바 카니발을 외부 업무에 차출된 공무원 표정으로 연기한 엄지원에 이어, 무통 주사 없이 온전히 진통을 겪는 ‘자연주의 출산’으로 쌍둥이를 낳고, 2년간 모유 수유를 한 ‘일등칸 엄마’ 조은정 역의 박하선은 가치관이 다른 사람을 만나면 눈을 희번덕거리는 코믹함을 더한다. 멈출 지점을 입력하지 않으면 끝도 없이 가버리는 고지식한 타입의 광기를 언뜻언뜻 비치던 <하이킥! 짧은 다리의 역습> 시절이 떠올라 반가웠다. 두 배우의 잔잔하게 미친 연기를 놓치지 마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