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Magazine > 피플 > people
'아니아라' 펠라 카게르만 감독 - 인간이 지구라는 우주선을 잃는다면
조현나 2020-11-04

(왼쪽부터) 펠라 카게르만 감독, 휴고 릴리아 감독. 사진제공 주한 스웨덴대사관.

우주를 가로지르는 거대한 직사각형 형태의 아니아라호. 그 안에는 지구 멸망 후 살아남은 생존자들이 탑승해 있다. 3주 후 화성에 도착할 계획이던 아니아라호는 우주 부유물과 충돌한 후 경로를 이탈하고, 승객들은 자신들이 영원히 이 공허한 우주를 떠돌게 될 것임을 직감한다. 제9회 스웨덴영화제 초청작인 영화 <아니아라>는 노벨상 수상자 하뤼 마르틴손의 동명 SF 서사시를 각색한 작품이다. 2018년 토론토 영화제에서 프리미어 상영 후 국내외 유수 영화제에 초청받으며 "환경에 관한 경이로운 SF우화" "무섭도록 황홀한 우주 오디세이" (<가디언>) 란 평을 받았고, 2020년 스웨덴 최고 영화상인 굴드바게 어워즈에서 여우주연상을 포함해 4관왕에 오르는 영예를 안았다.

예술 학교를 졸업하고 다큐멘터리를 작업하던 펠라 카게르만 감독은 “이 혼란스러운 시기에 영화를 통해 무엇을 이야기할 수 있을까”란 질문에서 출발해 휴고 릴리아 감독과 함께 영화 <아니아라>를 연출했다. 영화는 “지구가 없는 인간은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을가”란 질문에 극단적인 답을 제시하며, 현재 우리가 누리는 지구가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역설적으로 깨닫게 한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내한하지 못한 펠라 카게르만 감독과 <아니아라>에 관해 화상으로 나눈 대화를 전한다. 올해 스웨덴영화제는 11월 5일 서울에서 시작해 부산, 대구, 광주, 인천을 거쳐 오는 16일까지 열린다.

-<아니아라>의 어떤 점에서 매료돼 영화로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했나.

=<아니아라>는 스웨덴에선 굉장히 유명한 시다. 나의 부모 세대는 이 시를 학교에서 배웠을 정도니까. 내용이 무척 복잡하고 어려운데 나는 할머니와 함께 상황극을 하면서 그 내용을 자연스레 익혔다. 할머니가 뇌졸중으로 병원에 입원해 계실 때였는데 병원의 의사와 간호사는 아니아라호의 승무원, 환자들은 탑승객, 이런 식으로 현실과 시를 접목해 연극을 하곤 했다. 그때부터 이 시가 내 마음에 강렬하게 남았다.

-<아니아라>는 지구가 멸망한 후 인간은 어떻게 될 것인가란 질문에 굉장히 암울한 답을 내놓는 영화다.

=그렇다. 비유하자면 이 지구가 우리의 유일무이한 우주선 아닌가. ‘우주선을 잃으면 인간은 어떻게 될까, 어떻게 살아갈까’란 질문을 계속 스스로에게 던지며 영화를 만들었다.

-아니아라호의 형태는 긴 직사각형으로 굉장히 독특하다.

=많은 사람들이 큰 메모리카드처럼 생겼다고 하더라. (웃음) 우주선의 모양과 크기 등은 시에 자세히 묘사되어 있었고, 내부 요소들까지 원작을 충실히 반영하기 위해 초기 설계 과정부터 공을 들였다. 다만 아니아라호의 웅장함을 부각하기 위해 우주선 외부에 조명을 켜는 디테일을 추가했다.

-지구의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AI 프로그램 ‘미마’도 마치 거대한 파도처럼 형상화했던데.

=미마는 좀더 현대적으로 디자인을 바꿔봤다. 고전이라 그런지 <아니아라>에선 미마를 TV처럼 묘사해놓았는데 그것보다 더 흥미롭게 보였으면 했다. 미마란 존재는 AI 프로그램이지만 한편 신처럼 느껴지기도 해서 천장으로 끌어올렸다. 그 편이 후반 CG 작업하기에도 편했고. (웃음) 또 자연스레 지구가 연상됐으면 해서 거대한 물결의 흐름처럼 구현했다.

-승객들은 항상 쿠션을 베고 엎드려서 미마와 텔레파시를 주고받는다. 특별한 이유가 있나.

=승객들이 후두엽을 통해 미마와 연결된다는 설정이었다. 그래서 전부 시체처럼 엎드려 있는 거다. 또 다들 지구가 파괴된 후 원치 않게 화성으로 떠나게 된 사람들이라 이들이 조금이라도 편안함을 느꼈으면 해서 평화롭고 깨끗한 자연의 이미지를 보여줬다.

-휴고 릴리아 감독과는 어떻게 함께 작업하게 됐나.

=휴고와 나는 12년을 함께한 연인이다. 본래는 각자의 작업을 하다가 ‘이런 혼란스러운 시기에 영화를 통해 메시지를 전달해보자’란 생각이 들어 함께 <아니아라>를 연출하게 됐다. 주 업무를 분리해 이야기하기 힘들 정도로 긴밀하게 협업했다.

-미마를 관리하는 미마 로브 역에 에밀리아 가버스를 캐스팅한 이유도 궁금하다. 에밀리에는 휴고 릴리아 감독의 전작 <더 언리빙>의 주연배우이기도 했는데.

=사실 에밀리아와는 18살 무렵부터 친구 사이였다. 휴고가 단편을 찍는다기에 에밀리아를 주연으로 추천했고 이후 <아니아라>도 함께하게 됐다. 처음부터 에밀리아를 염두에 두고 각본을 썼기 때문에 주인공의 이름도 에밀리아다. 그는 굉장히 다재다능하고 준비를 철저히 하는 배우다. 촬영 전부터 스웨덴에서 핀란드를 오가는 페리에 올라 리허설을 하며 미마 로브 캐릭터를 구축하더라.

-영화에선 기억이라는 테마가 중요하게 작용한다. 화성에서의 삶도 대안책이 되지 못하니 결국 생존자들 전부 미마를 통해 지구의 기억에 의존하며 살아간다.

=사실 미마도 지구의 대용품이지 않나. 인간들은 지구를 계속 소비해 지구를 파괴한 후 같은 방식으로 미마를 파괴한다. 인간들에겐 그 어느 것도 충분하지 않다. 그렇다면 인간은 지구에서 벗어나 과연 얼마만큼 버틸 수 있을까. 이 질문은 결국 인간들에게 지구가 얼마나 필요한지에 대한 답으로 귀결된다.

-평소 환경문제에 관심이 많은 편인가.

=솔직히 그동안엔 그렇지 않았는데, 이번 영화를 제작하면서 환경문제를 깊이 생각하는 쪽으로 변화했다.

-에밀리아는 애인이 자살한 이후에도 마지막까지 생을 이어나간다. 이처럼 강인한 여성을 주인공으로 설정한 이유를 말해준다면.

=처한 현실을 각기 다르게 받아들이는 여러 인물들을 보여주고 싶었다. 아니아라호의 캡틴은 낙관주의의 끝을 보여주고, 주인공에게도 그런 면이 일정 부분 존재한다. 그러나 반대의 인물들도 등장한다. 승객 중 한 사람인 천문학자는 다른 관계자들과 달리 현실을 은폐하지 않고 공공연하게 드러내고, 에밀리아의 애인 이사벨은 자신들이 처한 상황을 아주 냉정하게 받아들인다. 이런 식으로 양극단의 사람들이 어떻게 변화하고 또 서로 어떤 영향을 주는지 그리고 싶었다.

-물리적인 폭동보다 사람들의 감정과 생각의 변화에 초점을 맞춘 부분이 인상적이었다.

=그런 심리적인 묘사도 기본적으로 원작의 묘사를 따랐다. 다만 원작은 영화보다 훨씬 더 암울하다. 가령 탐사선 하나가 아니아라호 안으로 들어오는 장면이 있지 않나. 원작에서는 이 탐사선이 아니아라호 옆을 스쳐 지나가버리고 만다. 그건 너무 허무한 것 같아서 원작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선에서 작게나마 희망적인 요소를 넣었다.

-<아니아라>라는 제목을 ‘원자의 움직임’ 혹은 그리스어로 ‘슬픔, 절망’ 등 여러 가지로 해석할 수 있던데, 감독이 설정한 의미는 무엇인가.

=같은 자료를 조사한 것 같은데. (웃음) 우리는 그리스어에서의 ‘우울, 절망’이란 뜻을 차용했다. 원작자는 아니아라(Aniara)의 ‘A’에서 미학적인 아름다움을 발견해 이를 제목으로 설정했다고 들었다.

-<아니아라> 이후론 어떤 이야기를 해보고 싶나.

=다음 작품은 한 젊은 저널리스트가 평행 세계를 통해 여러 시대를 겪는 SF영화를 계획하고 있다. 일종의 성장영화다.

-끝으로 관객이 영화 <아니아라>를 통해 어떤 메시지를 전달받길 원하나.

=이 영화를 보고 밖에 나가 신선한 공기를 마셔보길 바란다. 우리가 얼마나 아름다운 곳에 살고 있는지, 지금 여기에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다행인지. 지구가 우리를 신경 써주는 만큼 우리도 지구를 지켜줘야 한다는 걸 깨닫길 바란다.

관련영화

관련인물

사진제공 주한 스웨덴대사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