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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쟁이' 한제이 감독 - 가족은 무엇으로 사는가
조현나 사진 오계옥 2020-10-29

“가족이 어떻게 이런 일이 생겼다고 서로를 버려!” 함께 끌어안고 갈 것인가, 아니면 냉정하게 현실을 받아들일 것인가. 영화 <담쟁이>는 은수(우미화)와 예원(이연)을 통해 동성 커플이 마주한 제도와 인식의 한계를 드러내고, 조카 수민(김보민)의 침묵을 빌려 진정한 가족의 의미에 관해 묻는다. 한제이 감독은 “수민이의 마지막 눈빛을 바라보며 관객이 각자의 질문을 가져갈 수 있는 영화이길 바란다”고 전했다. 한제이 감독의 첫 장편 연출작 <담쟁이>는 올해 전주국제영화제, 서울국제여성영화제에서 차례로 상영되며 좋은 평을 받았다. 생명공학을 전공한 뒤 진로를 바꿔 단국대 영화콘텐츠전문대학원에서 영화를 공부한 한제이 감독은 영화 <담쟁이>가 “영화감독의 꿈을 이뤄준 고마운 작품”이라고 말한다.

-대학원 지도교수였던 김태용 감독과 함께 <담쟁이> 시사회를 진행했다. 감회가 남달랐겠다.

=그 어떤 사람을 만날 때보다 긴장됐다. 감독님도 시놉시스부터 개봉까지 보셨는데 뿌듯하고 자랑스럽다고 하셨다. 시나리오 땐 교훈적이고 일면 동화적인 면도 있었는데, 영화를 보니 배우들에게 잘 묻어났다고 하시더라. 원래 칭찬을 해주시는 분이 아닌데… 이제 하산하겠다고 했다. (웃음)

-시나리오 초고를 3주 만에 썼다고. 이야기를 빨리 완성할 수 있었던 계기가 있나.

=우선 졸업이란 마감의 힘이 컸다. (웃음) 이야기의 발단부터 말해보면 한 아이가 누군가를 기다리고, 문을 열고 누군가 들어오는 장면이 꿈처럼 강렬하게 떠올랐다. 며칠 동안 그 이미지가 맴돌았는데 어느 순간 그 아이가 사회적 시스템의 문제 때문에 버림받았다는 생각이 들더라. 그렇게 그 아이의 이야기가 궁금해졌고 그 뒤로는 머릿속에서 영상이 재생되고 나는 손으로 받아 적기만 했다.

-오래된 커플인 예원과 은수를 극의 중심에 둔 이유는 뭔가.

=기존의 퀴어영화를 보면 사랑이 시작되면서 인물이 자신의 정체성을 깨닫는 서사가 주를 이룬다. 물론 그런 서사도 좋고 더 많이 나와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상대적으로 덜 논의된 오래된 커플의 이야기를 해보고 싶었다. 그러면 논의할 주제가 달라지는데 가령 은수와 예원이 그랬던 것처럼, 연인이 병원에 갔을 때에도 법적 보호자가 될 수 없는 상황 같은 것 말이다. 이런 말도 안되는 일들에 관해 이야기해보고 싶었다.

-수민이를 돌봐야 하는 상황을 맞이하면서 동성 커플의 사랑에서 가족의 이야기로 주제가 확장됐다는 것도 다른 작품과의 차별점이다.

=그렇다. 아이가 있어야 가족이라는 건 편협한 시선이긴 하지만 일반적인 의미에서 저 사람들이 가족 구성원 같다는 걸 이미지적으로 보여주려고 했다. 또 예원과 은수는 연인이고 수민이는 은수와 친족이고, 그런 다양한 관계가 엮이면서 생겨나는 재미를 그리고 싶었다.

-인물들이 가족을 정의하는 관점이 상이하다. 가령 은수는 “누가 우리를 가족으로 봐”라며 타인의 시선을 굉장히 신경 쓰지만, 예원은 아랑곳하지 않고 “가족이 어떻게 이런 일이 생겼다고 서로를 버려!” 하면서 함께 해결하려는 모습을 보인다.

=예원이의 중심에는 항상 은수가 있다. 일면 판타지적인 인물로 보이지만 저런 인물이 한명쯤 존재하면 좋겠다는 나의 순수한 바람이 담겼다. 은수는 좀더 보수적인 분위기에서 자랐고 그렇게 교사가 됐고, 때문에 주변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는 전사가 있다. 책임감이 강하고 말없이 혼자 결정을 내리는 때가 있어서 이기적으로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촬영을 다 하고 나서 그게 예원의 앞날까지 고려한 은수 나름의 사랑이란 생각이 들더라.

-동성 커플에 대한 제도와 사람들의 인식 모두 부족하다는 점을 영화가 계속해서 짚어줬다.

=한 스탭이 나보고 동성애에 반대하는 피켓을 든 사람의 설정이 과하지 않냐고 했다. 너무 장치 같다고. 그 이야기를 듣고 나중에 홍대를 갔는데, 똑같은 피켓을 들고 시위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때 느꼈다. 역시 현실이 더하다고. 나는 그런 사람들의 날선 말이 쌓여서 누군가를 베는 칼날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무분별한 말을 내뱉는 사람들이 영화를 보고 느끼는 바가 있길 바란다.

-수민이가 누군가를 기다리는 장면으로 영화를 시작하고 또 끝을 맺은 이유는.

=그 장면이 <담쟁이>의 키 이미지라고 생각하고, 또 이 영화를 만든 이유와도 겹친다. 수민이가 카메라를 응시하는 마지막 장면을 보면서 누군가는 희망을, 또 누군가는 분노나 죄책감을 느낄 것이다. 그런 다양한 감상 외에도 수민이의 눈을 바라보며 아이가 던지는 질문에 관객이 한번쯤 생각해주길 바란다.

-우미화, 이연, 김보민 배우는 어떻게 캐스팅하게 됐나.

=김보민 배우를 제일 먼저 캐스팅했다. <미쓰백>에서 보여준 눈빛이나 아우라를 보고 꼭 같이 일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은수는 하반신을 못 쓰니 상대적으로 눈빛으로 많은 걸 표현할 수 있는 배우였으면 했는데, 아는 제작사 대표님이 우미화 배우를 추천해주셨다. 연극 <그와 그녀의 목요일>에서 우미화 배우를 봤는데, 등장하자마자 ‘은수다’ 싶더라. 후광이 비치는 느낌이었다. (웃음) 이연 배우는 인터넷에서 관련 기사를 본 후 인스타그램으로 메시지를 보냈다. 오디션 때 만나보니 예원이처럼 솔직하고 사랑을 중요시하는 점이 많이 닮아 제격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사주도 봤다. 이연 배우에게 전화해 태어난 시를 물었는데 이번 작품과 다른 배우들과의 합이 좋다고 하더라. (웃음)

-김사월 음악감독과는 어떻게 협업하게 됐나.

=이연 배우 때처럼 인스타그램으로 다이렉트 메시지를 보냈다. 음악이 중요한데 누구에게 부탁하면 좋을까, 기왕이면 여성 싱어송라이터였으면 좋겠는데 하다가 김사월 뮤지션이 떠올랐다. 엔딩곡은 내가 작사에 참여했다. 엔딩곡 가사까지가 대본이라고, 그리고 수민이가 하는 이야기라 생각하며 썼다.

-‘다이노’(DIE NO)라는 제작사 이름이 독특하다. 어떤 뜻이 담겼나.

=내가 공룡을 정말 좋아한다. 그리고 좋은 영화를 만들 때까지 죽지 말자, 좋은 영화를 만들어서 공룡처럼 전설이 되자는 뜻도 담았다.지금 말하니 좀 오글거린다. (웃음)

-학부 전공이 생명공학이더라. 어떻게 영화감독이 될 결심을 하게 됐나.

=영화는 원래부터 좋아했다. 그런데 생명공학에 관심이 많았고, 공부를 더 해서 의학전문대학원을 가거나 연구원이 되려고 했는데 실험이 정말 재미없더라. 성격이 급해서 바로 결과를 확인하고 싶은데 그럴 수 없는 실험과 연구들이 많았거든. 그래서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생각하며 싸이월드 일기장을 봤는데, 20살 때 <아멜리에>영화와 함께 다시 태어나면 영화감독이 되고 싶다고 써놨더라. 그걸 계기로 영화 현장과 방송국 등을 거쳐 단국대 영화콘텐츠전문대학원에 진학하고 <담쟁이>까지 연출하게 됐다. 결국 꿈을 이룬 셈이다.

-최근 관심 가는 주제는 무엇인가.

=<담쟁이>를 찍고 내가 진짜 원하는 게 행복한 가정을 이루는 것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잘 몰랐는데 영화를 찍으면서 알게 됐다. 앞으로도 다양한 가족의 형태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싶다. 차기작도 코믹한 분위기의 가족 판타지물을 계획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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