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철비2>를 보고 나면 왜 이 작품이 <강철비>(2017)의 2편인가 하는 의문을 가지게 될 것이다. 타당한 의문이다. 양우석 감독의 <강철비>와 <강철비2>는 일반적인 형태의 시리즈물과는 다른 방식으로 연결되어 있다. 보통의 시리즈물은 캐릭터와 스토리혹은 세계관의 연속성을 유지한다. 단적인 예로 ‘007 시리즈’는 배우가 바뀌어도 제임스 본드라는 캐릭터는 변함없다. 1편의 주인공이 2편의 주인공이 되어야 하는 법은 없지만 시리즈물의 가교는 대체로 캐릭터다.

<강철비> 시리즈는 그렇지 않다. <강철비>의 주인공은 북한의 엄철우(정우성)와 남한의 곽철우(곽도원)였다. 북한에서 쿠데타가 발생하면서 북한1호를 데리고 남한에 내려온 특수요원 엄철우는 남한의 외교안보수석 곽철우를 만나 북핵 위기 상황을 함께 돌파한다. 그런데 <강철비2>에는 엄철우도 곽철우도 등장하지 않는다. 대신 정우성과 곽도원은 출연해 1편과는 전혀 다른 캐릭터를 연기한다. 두 영화는 독특한 형태로 대구를 이루고 있으며, 연결된 듯 독립적이고 개별적인 듯 통합되어 있다. 양우석 감독은 이를 “상호보완적 속편 관계”로 설명한다.

남북미 정상이 북한의 쿠데타 세력에 납치당한다면?

그렇다면 <강철비>와 <강철비2>가 공유하는 것은 무엇인가. 한반도를 둘러싼 현실 인식과 ‘북한에서 쿠데타가 일어나 내전이 발생한다’는 설정이다. 양우석 감독이 직접 쓴 세편의 원작 웹툰 <스틸레인> 시리즈는 모두 북한에서 쿠데타가 발생하면서 시작된다. 웹툰 <스틸레인>은 북에서 쿠데타가 발생해 북한 위원장이 사망하고 내전이 발생하는 이야기이고, <강철비: 스틸레인2>는 쿠데타가 발생해 북한 위원장이 남으로 피신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이고, <정상회담: 스틸레인3>는 쿠데타가 발생해 남북미 세 정상이 납치되는 이야기다.

양우석 감독은 쿠데타와 내전으로 인한 북한의 정권 붕괴 가능성과 그 위험성에 주목하며 같은 듯 다른 이야기를 반복해왔다. 북한의 정권 붕괴가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 나아가 한반도 주변국에 미치는 영향을 시뮬레이션하며 영화적 상상력을 동원해온 것이다. <강철비>와 <강철비2>가 연결되어 있다는 것은 인식의 바탕이 같다는 뜻이다. 북핵보다 위험한 것은 정권 교체의 방식일 수 있다는 인식.

<강철비2>는 남북미 세 정상이 북한의 쿠데타 세력에 납치당하는 이야기로 나아가기 전에 북미 평화협정 체결이 한반도 주변국에 미치는 영향을 충분히 설명하고 간다. 영화 초반엔 한반도를 둘러싼 패권국들의 이해관계 및 셈법이 낱낱이 제시된다. 남북미 정상회담의 일정을 논의하던 때, 센카쿠열도와 독도 해역에서 심상치 않은 움직임들이 포착된다. 미국은 중국과 일본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센카쿠에서의 미일 해상훈련에 한국도 참여할 것을 요청한다. 한국은 중국과의 관계를 생각해 훈련 참가를 거부하지만 그 때문인지 미국은 남북미 정상회담 논의에 미온적 태도를 보인다. 독도 해역에선 일본 극우단체가 우리의 군사 정보를 빼내려 한 정황이 드러난다. 센카쿠와 독도에서의 이상한 조짐은 미국이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일본과 비밀리에 계획하고 있는 가케무샤 작전과 연결되어 있다.

이런 와중에 북한 원산에서 남북미 정상회담 개최가 결정된다. 대한민국 대통령 한경재(정우성), 북한의 최고지도자인 조선사 위원장(유연석), 미국의 스무트 대통령(앵거스 맥페이든)은 원산의 호텔에 모여 북한의 비핵화 논의를 이어간다. 그러나 핵을 포기하고 평화 체제를 수립하는 노선에 동의하지 않는 북 호위총국장 박진우(곽도원)의 주도로 쿠데타가 발생한다. 호위총국장은 계획대로 세 정상을 핵잠수함 백두호에 납치한다. 마침 초강력 태풍 스틸레인이 동해로 향하고, 잠수함에 갇힌 세 정상은 핵미사일을 발사해 동아시아의 평화를 위협하려는 호위총국장을 어떻게든 막아서야만 하는 상황에 처한다.

<강철비2>는 끊임없이 현실을 환기시키면서 동시에 이것은 영화일 뿐이라고 말하는 영화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적용되는 영화이기도 한데, 작품의 일차적 재미는 영화적으로 가공된 현실의 요소를 발견하는 데서 시작된다. 우선 캐릭터. 캐릭터의 활용법은 <강철비>와도 차이가 있다. <강철비>에도 북한1호가 등장한다. 하지만 영화 내내 얼굴과 이름은 드러나지 않고 그저 북한의 위원장이라고 짐작 가능하게만 표현된다. <강철비2>는 아예 남북미 정상을 주인공으로 데리고 온다. 조선사 위원장과 스무트 대통령은 첫눈에 김정은 북한 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연상시킨다.

현실의 소환은 디테일에서 비롯된다. 조선사의 사고가 김정은 위원장의 사고를 대변하는 것도 아니고, 북한 위원장을 연기한 유연석이 김정은의 풍채를 가진 것도 아니지만, 김정은 위원장을 연상시키게 하는 요소는 충분하다. 특유의 올백 머리와 애연가라는 설정, 스위스 유학파로서의 출중한 영어 실력 등이 그렇다. 스무트 대통령의 경우 다분히 희화화된 측면이 있지만 웃음의 원천 제공자는 트럼프 대통령일 것이라고 합리적 의심을 하게 된다. 격식을 차리지 않는 직설적 어투를 대사에 녹여냈기 때문에 언뜻 트럼프의 말투까지 모사해서 연기한 것은 아닌가 싶을 정도다. 트위터로 정상회담 일정을 공개한다든지, 정치는 쇼 비즈니스라고 생각하는 모습이라든지, 통역관을 한국인 여성으로 설정한 점(북미 정상회담 당시 트럼프 통역관은 한국 출신 이연향 통역관이었다) 등은 현실의 요소를 영화에 적절히 녹여낸 것이다.

한경재 대통령은 (정우성이라는 존재 탓에 더 영화적 인물로 받아들여지는 측면도 있지만) 특정 인물을 반영했다는 인상보다 남한의 상황을 총체적으로 대변하는 인물로 그려진다. 배제된 당사자로서 딜레마적 상황에 수시로 부딪히는 존재, 중재하고 설득하고 양보하는 게 일인 존재. 최종엔 자기희생적 태도가 영웅의 면모로 탈바꿈하는 가장 영화적인 캐릭터가 한경재다. 이처럼 현실에선 한자리에 모이기 힘든 세 정상이 좁디좁은 핵잠수함에 갇혀 날것의 모습을 보여주는 상황 자체가 이미 정치 풍자극의 한 토막이다.

<강철비2>에는 숨은그림찾기 하듯 숨은 의미를 찾게 되는 과정이 자주 등장한다. 알려졌듯 배우 캐스팅에도 의미가 숨겨져 있다. 배우들은 1편과 2편의 연결고리이기도 한데, 1편에서 북한 인물로 등장했던 배우들이 2편에선 남한의 인물로 등장한다. 그 반대 상황도 마찬가지. <강철비>의 북한 요원 정우성이 <강철비2>에선 남한 대통령이 되고, <강철비>에서 남한의 외교안보수석이던 곽도원이 이번엔 북한의 쿠데타 주동자인 호위총국장이 되는 식이다. 1편에서 북한 호위총국장이었던 이재용 배우는 이번에 남한 대통령을 보좌하는 청와대 안보실장으로 출연하고, 1편에서 북한 특수요원으로 출연해 정우성을 집요하게 괴롭혔던 조우진은 2편에서 특별한 목소리 연기를 선보인다. 독도 앞바다에서 울려 퍼지는 대한민국 잠수함 함장의 목소리, “우리는 대한민국 해군입니다. 여기는 대한민국 영해입니다.” 이 목소리의 주인공이 조우진이다.

배우의 진영을 바꾼 것은 역지사지의 의미를 담기 위함이다. 하지만 주변국의 변화는 없다. 1편에서 미국 CIA 한국 지부장 역을 맡았던 크리스틴 돌턴은 2편에서 미국 부통령으로 출연하고, 1편에서 중국 리 선생으로 나온 김명곤은 2편에서도 주한 중국 대사로 출연해 “같은 동포로서 한말씀 드리갔습니다”를 반복한다.

현실을 경유한 상상력으로 이면 읽어내기

영화와 현실이 흥미롭게 줄타기하는 모습은 한반도를 둘러싼 정치 관계를 그리는 대목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정치와 외교는 표면이 아니라 이면, 즉 숨겨진 속뜻을 파악하는 활동이다. 외교 전쟁 또한 수면이 아닌 수면 아래에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 영화는 그러한 외교 전쟁의 실상을 잠수함 전투만큼이나 치열하게 그린다. 국익을 위해선 동맹과 적의 구분도 모호한 상황들, 한반도를 둘러싼 패권국들의 머리 굴 리는 소리를 생생히 들려준다. 내용을 요약하면 신흥국가 중국과 패권국가 미국의 전장이 한반도가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21세기의 역사는 중국의 도전과 미국의 응전으로 쓰일 것이라는 리콴유 싱가포르 전 수상의 말이나, 신흥 세력이 지배 세력을 대체할 정도로 위협적일 경우 무력 충돌이 발생하는 현상은 차라리 법칙에 가깝다며 한반도 전쟁의 위협을 진단한 <예정된 전쟁>의 그레이엄 앨리슨의 사고가 영화의 바탕에 깔려 있다.

복잡한 외교 전쟁이 지적 재미를 안겨준다면, 중후반부에 본격적으로 펼쳐지는 잠수함 전쟁은 현실의 답답함을 잊고 영화적 카타르시스에 몰입하게 만든다. 잠수함 전투에 있어서 최고 전략가인 백두호 부함장 장기석(신정근)과 한경재 대통령이 뜻을 같이해 호위총국장과 대립하는 잠수함 내부에서의 전쟁은 물론, 동해 심해에서 펼쳐지는 각국 잠수함들의 추격전과 미사일 폭파전은 이제까지 한국영화에서 보지 못한 규모와 완성도를 보여준다.

잠수함 장면의 재미는 장르적 쾌감 너머 판타지의 욕망과도 맞닿는다. 언급했듯 <강철비2>는 끊임없이 역사를 소환하고 현실을 환기시키며 영화와 현실 사이에서 흥미로운 줄타기를 하는 영화다. 후반부 잠수함 장면은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기만 했던 한경재 대통령이 영웅적 캐릭터로 부상해 활약하는 이야기로 채워진다. 배제된 당사자가 결국엔 주도권을 쥐는 이야기이고, 관용과 포용, 희생의 정치가 승리하는 드라마이며, 평화를 바라는 남(한경재)과 북(장기석)이 손을 맞잡고 진정으로 남북 공조를 이루는 판타지 드라마다. 이상적인 판타지가 냉혹한 현실을 타파하는 영화적 결말. 그 안에선 답답했던 마음도 풀린다.

<강철비2>는 현실을 경유한 도발적 상상력이 판타지와 같은 결말로 귀결하는 영화다. 한반도의 비핵화와 평화 체제 구축이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포기할 수 없는 희망이라는 것을 역설하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영화적 상상력과 판타지가 중요한 이유는 현실을 새로운 시각으로 돌아보게 하기 때문이다. 1편과는 또 다른 방식으로 지적이고 풍자적이고 화끈한 이번 영화는 마지막까지 질문 던지기를 멈추지 않는다. 한경재 대통령이 던지는 질문에 관객이 어떻게 응답할지 궁금하다.